사람을 상대한다는 사실만으로 당신이 의사이건 회사원이건 경비원이건 드라이버 건 상관없이 당신의 직업군은 서비스직이다. 직업은 자신이 하는 일의 종류로 구분하지만 그 일을 수행할 때 사람과의 관계가 연계된다면 그 즉시 당신은 친절이 생명인 서비스직에 종사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당신이 주로 이용하는 세탁소는 어디인가.
당신이 주로 이용하는 마트는 어디인가.
당신이 주로 이용하는 식당은 어디인가.
왜 당신은 많고 많은 세탁소와 마트와 식당 중에 왜 굳이 그곳을 이용하는가.
이유에는 가깝고 가성비가 좋거나 어디보다 맛있고 여러 가지 물건이 다양해서도 있겠으나 나의 선택 기준은 무엇보다 '느낌'이다. 그 매장 전체에서 풍기는 느낌. 그곳에 점원이나 사장이 나를 대하는 자세. 다시 말해 '친절'과는 약간 비슷하나 느낌이 다른 '마음을 알아주는 센스'가 있느냐 없느냐에 따라 그곳을 생각하는 나의 평가는 극명하다. 마지막에도 언급하겠지만 사람만이 아닌 매장, 기업, 나라에서 조차 느껴지고 완성되는 것 바로 '성품'이 그것이다.
조금 까탈스럽게 보일 수는 있겠으나 나는 성품이 사람과의 관계는 물론이고 모든 선택의 기준이 된다.
인터넷에서 사고자 하는 노트북의 가격을 보고 가전제품 매장에 갔다고 치자 A매장은 알아본 가격보다 조금 쌌지만 살테면 사고 말테면 말라는 식으로 직원이 불친절했고 B매장은 인터넷보다 가격이 약간 비쌌지만 직원이 친절하고 느낌도 좋았다면 당신은 어느 곳에서 사겠는가.
물론 이성이 더 발달한 사람은 직원이야 한 번 보고 말 사람인데 몇 만 원이 어디야 가격이 중요하지 기분 좀 나쁘면 어때 하면서 A매장에서 구매하겠지만 나는 둘 중에만 선택하라고(사실 더 둘러본다고 하고 나오겠지만) 하면 무조건 B다. 스타벅스에서 커피를 마시고 명품백을 구입하는 것은 그 브랜드 안에 있는 가치까지 구매하는 것이다. 같은 맥락에서 동네 마트에서 라면을 하나 사더라도 주위에 여러 마트 중 한 곳만을 가는 이유는 점원이 친절하던지 마트의 분위기가 좋아서이다. 아무리 가격이 저렴하고 매장이 깔끔해도 내가 직접 대하는 계산대의 점원이 불친절하다면 그 마트와는 안녕이다.
아무리 유능한 명의라 하더라도 환자의 마음을 읽어주지 못한다면 미안하지만 명의가 아니다.
명의라는 말 안에는 뛰어난 의술과 함께 좋은 성품이 함께 포함되어 있는 것이며 인간을 향한 긍휼함과 사랑의 마음이 그것이다.
매 해마다 '우리나라에서 존경받는 1위 병원'이라며 현수막을 내거는 대형병원에 갔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남자 직원에게 물었다.
"이 곳에 근무하는 직원에게 작은 물건을 전해줘야 하는데 맡아 줄 수 있을까요" 그 직원은 내 질문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나를 아래위로 기분 나쁘게 훑어보더니 말했다.
"저희는 물건을 맡아놓지 않습니다"
나는 사정 이야기를 다시 말했고 그가 말했다. "직접 건네주시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나는 규칙이라 생각도 되었지만 제대로 설명도 안 해주고 다짜고짜 안된다고 하는 그의 태도에 기분이 상했다. 그때 그는 내 눈을 똑바로 보고 더 큰 목소리로 다시 말했다. "저. 희. 는. 물. 건. 맡. 아. 놓. 지. 않. 습. 니. 다"
나는 욕이 턱 밑까지 차올라서 튀어나오려는 걸 참고 바로 돌아섰다.생각할수록 분하고 어처구니가 없었다.존경받는 병원 1위, 대형병원 이런 거 다 빼고서라도 인포메이션 데스크에서 업무를 보는 직원의 태도라고는 상상이 가지 않는 무례함이었다. 이 번뿐만이 아니었다. 전에 구내전화번호를 물어봤던 여직원도 얼굴에 웃음기라고는 찾아볼 수 없이 차갑디 차가운 똑같은 태도였다. 로봇을 갖다 놓는 편이 나을 것이다. 도대체 직원 교육은 어떻게 시키는 것인지. 컴플레인을 하러 간 것도 아니고 도저히 말이 안 되는 태도라니.
가족 중 한 사람이 직원이라 어쩔 수 없이 보겠지만 그 한 사람으로 인해 최소한 나에게 그 병원은 무례하고 밥맛없는 병원이 되었다. 그 직원이 나를 대하기 직전에 화나는 일이 있었는지는 몰라도 최소한 어떤 이유에서인지. 또 물건을 맡아줄 수 없는 것이 규칙이라는 내용을 약간이라도 부드러운 어조로 말했다면 충분히 이해하며 돌아섰을 것이다.
예전에 제과점을 한 때가 있었다. 나는 자주 오는 손님들의 이름은 모르더라도 그 손님이 자주 사가는 빵은 기억하고 있었다. 어느 날 한 손님이 계산할 때 말을 건넸다.
"오늘은 밤빵 안 사셨네요" 나의 그 말에 그 손님은 깜짝 놀라며 "제가 밤빵 자주 사가는 거 어떻게 아셨어요.. 우리 아들이 좋아하는데 며칠 전에 군대 갔거든요" 이후로 그 손님은 더 자주 빵을 사러 오셨고 집안 이야기를 나눌 정도로 친근한 사이가 되었다. 가끔 자신을 알아보는걸 부담스러워하는 사람도 있었으나 대부분은 알아주면 금세 가까워지고 기분이 좋아졌다. 오늘 동네 마트에 갔는데 계산하시는분이 말씀하시길.
"양재규 님 포인트 전화번호 뒷자리요"라고 하셔서 나는 무심결에 전화번호를 말하고 나서 놀라며 물었다. "근데 제 이름을 어떻게 아세요?" 그러자 그분 말씀하시길 "자주 오시니 당연히 이름을 알죠"포인트 적립할 때 이름을 보니 그럴 수도 있겠다 싶었지만 "그래도 대단하시네요"라고 하며 집으로 오는 길에 생각했다. 며칠 전 그분의 헤어스타일이 바뀌어서 "헤어 새로 하셨네요... 어울리세요"라고 말을 건넸을 때 내 이름을 기억하지 않았나 생각되었다. 이유야 어찌 되었든 나를 알아봐 준다느 것은 기분 좋은 일이다. 사람은 자기를 자신의 마음을 알아줄 때 에너지가 샘솟는다. 모든 직업이 서비스직인 이유가 바로 이것이다. 부서 안의 동료건 외부사람이건 일을 하면서 사람을 만나지 않을 수는 없다.
만나는 사람마다 마음을 알아주지는 못하더라도, 기분을 상승시켜 주지는 못하더라도 당신 앞에 서서 도움을 요청하거나 물어보는 사람의 마음을 무참하게 만들지는 말아야 하는 것이다.
누전 차단기가 내려간다거나 배관에서 물이 새면 전기기사나 집수리를 불러야 하는데 그럴 때마다 부르면 금방 와줄까를 고객이 걱정해야 한다.
물론 이런업에 종사하시는 분들이 모두 그런 것은 아니지만 부르면 즉시 와서 고쳐 주시는 분에게는 경외감과 함께 그가 부르는 액수는 아무 말하지 않고 건넨다.
그 사람의 서비스 정신의 바탕이 된 성품에 돈을 지불한 것이기에 혹여 비싸더라도 마음이 편하다.
서비스 정신은 좋은 성품이며 그 성품 안에는 믿음직스럽고 성실한 '신실함'이 바탕이 되어야 한다. 서비스의 본질은 성품이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