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떠나기 전 나는 프랜차이즈 레스토랑에서 화덕피자를 굽는 일을 했다. 아침 10시에 출근해서 밤 11시 까지 풀타임 근무였고, 휴일은 주 1회로 하루종일 잠을 자고 나면 다시 내일이 쫓아왔다. 당시엔 그저그녀와 멀어지고 싶다는 생각에돈을 벌고 일을 할 뿐이었다.
그러다 8월. 화덕 안에 일렁이는 열기가 주방의 열기와 별반 다르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설거지를 하다 젖은 내 주방 옷소매는 내가 흘리는 땀 때문인지 계속 쌓이는 설거지 때문인지 마르질 않고, 밀가루는 여기저기 달라붙어 내 몸이 점점 눅눅하게 무거워지는 감각을 느꼈다. 그때 대학동기에게 연락이 왔다.
"MT 수요조사 중인데 갈 수 있어?"
아니, 없어. 일해야 해서.라고 했다. 여름날 계곡에 앉아 수박을 먹는 것보다 이 눅눅한 시간을 견뎌 돈을 벌고 나의 영역을 구하는 게 내게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건 금방 무의미한 일이 되고 말았다.
그녀가 떠났으니까.
기껏 모은 돈을 월세로 날리고 싶지 않았기에, 나는 텅 빈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돈이 떨어질 때쯤 다시 일을 구 하고 돈을 벌었다. 왜 때문인지 계절은 겨울인데, 지난여름보다 내 몸은 더 무겁고 눅눅해졌다.
그날은 그러다 찾아왔다. 다들 그런 날 있지 않은가?
잔고 속 돈이 점점 떨어져 가면 다시 벌기 시작하고, 돈을 벌다가 보면 왜 이렇게 일을 해야 하지? 의문이 들고, 의문을 가지다 보면 애초에 왜 살아가야 하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에 도달하는 그런 날.
그러다 칩거를 시작했다. 일을 하지 않아도 범죄피해자지원금으로 다달이 집 대출이자를 내고, 그녀 앞으로 남아있는 빚을 조금 갚을 수 있었고, 기초생활수급자였기에 나라에서는 쌀을 배달해주기도 했다. 배달음식을 하루이틀 시키고 나눠 먹으면 한 주는 금방 지나갔다. 겨울바람을 맞기 싫어 창문을 잘 열지 않는 게 습관이 되어 집안 공기는 탁해졌고, 곳곳에 먼지는 쌓여갔다. 매일매일 하는 일은 없이 나보다 불행하고 불쌍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던가 연예계 가십을 찾아보는 게 다였다. 그러다 의문이 들었다.
"그녀는 왜 살았지?"
그녀에게는 말습관이 하나 있었는데, 바로 '죽으라는 법은 없나 보다'라는 말이었다.
이 말을 들을 때마다 나는 의아했다. 모든 것에 그 말을 붙이곤 했으니 말이다. 이제 와서 보면 그녀는 그저 살고 싶어서 매 순간에 의미를 부여했던 것 같다. 그렇다면 그렇게 살고 싶은 이유가 뭐지? 그것도 이렇게 꾸역꾸역 이유를 만들어가면서. 그런데 단순히 생각해 보면 그녀가 살 이유를 찾은 건 이유가 있었을 뿐이라는 걸 안다. 이유가 이유를 낳은 것뿐이다.
그래서 나도 이유를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내가 살 이유를 위한 이유 말이다.
12월 26일. 크리스마스 다음날이었다. 고양이를 입양했다. 이름은 호랑이라고 지었다. 가쁘게 뛰는 심장소리를 수십 번 확인했다. 살아있네. 나도, 너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