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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희진 Sep 10. 2020

초록 잎을 샀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2020/09/10

오늘 살아서 좋았던 점

꽃집에 들러 초록 잎을 샀다.

쑥색에 가까운 차분한 녹색에 작고 뾰족한 잎이 빼곡히 나있는 식물이었다. 사장님이 분명 이름을 들려주셨으나 돌아오는 길에 잊어버리고 말았다. 아, 아쉽다.

나는 초록을 사랑하고, 초록 비슷한 것들도 모두 사랑한다.

색색의 꽃도 좋아하지만, 초록의 잎만 가득한 식물들을 묶어 두었을 때 느껴지는 강인함이나 순진한 매력이 분명히 있다.

꽃과 잎이 함께 있으면, 조연이 되기 쉬운 잎들.

그렇게 빨강, 노랑, 분홍과 섞였을 때는 그저 초록이라고 퉁쳐지던 것들이

자기들끼리 모여 있으면 연두, 올리브색, 진녹색, 밝은 녹색 (색 표현의 한계가 있어서 나름의 방식으로 부르지만...) 등 자신만의 색을 뽐낸다.

하늘 아래 같은 초록은 없다.

서로 다른 초록끼리 모였을 때 내뿜는 평온함이 좋다.

애초에 될 수 없는 화려한 색이 되고 싶어 하지 않고, 주인공이 되려는 욕심을 내지 않고, 자신만의 특별한 초록을 드러내면서,  은근하게 빛나는 침착함 같은 것. 경쟁하지 않는 널찍한 마음 같은 것.

꽃집에 갈 때마다 조금씩 다른 모양, 다른 색의 잎 들을 만난다.

가끔 들러 한 줄기, 두 줄기씩 살 때마다 내가 아는 초록이 조금씩 늘어간다.

오늘도 새로운 초록을 만났다.

살아있어서 다행이다.  



오늘이 마지막일지 몰라 정리한 것

수 년째 여름만 되면 교복처럼 즐겨 입던 검은색 땡땡이 바지를 버렸다.

부드럽고 시원한 원단에 통바지 스타일, 검은색 바탕에 흰색 물방울무늬가 크게 그려진 바지였는데

애착 옷이라 밑단이 뜯어지면 꼬매기를 몇 번이나 반복하고, 가랑이 부분에는 이미 보푸라기가 잔뜩 났지만 개의치 않고 입고 또 입었던 옷이다.

오늘 그 땡땡이 바지를 꺼내 발을 넣는 순간, 발가락에 걸린 밑단이 툭 뜯어지고 말았다.

그 순간, 이번에는 진짜 보내줄 때가 왔구나 싶은 기분이 들었다.

옷이 망가진 것보다, 문득 이 바지를 올 여름에는 거의 입지 않았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왜 떠올랐는지 싶은데, 몇 해전에 더 이상 만나게 되지 않게 된 소꿉친구 얼굴이 떠올랐다.

우리는 거의 20년 동안 친구였는데 그 시간에만 너무 기대 있었다.

오래 알고 지냈으니까 괜찮아, 편하니까 그런 거겠지, 괜찮겠지, 하며 넘겨 버렸던 일들.

조금씩 쌓여 온 균열이 결국 큰 흔들림이 되어버렸었다.

이미 서른이 훨씬 넘은 나이였으니, '절교'같은 사춘기스러운 단어를 쓰면서 악을 쓰며 다투거나 눈물을 흘리는 것 같은 유난스러운 헤어짐의 분기점은 없었지만

조금씩 시들다 결국 죽어 버린 식물처럼, 우리의 관계는 자연 소멸해 버렸다.

우리 사이엔 더 이상 서로를 끌어당기는 어떤 감정이 남아있지 않았다. 동성이든 이성이든, 혹은 아무리 오래된 관계라도 그런 설렘, 궁금함, 긴장감 같은 게 남아있지 않으면, 그것은 그렇게 생명력을 잃게 된다는 걸 알았다.

그렇다고 친구와 내가 함께해 온 시간이 헛되었다거나 하는 건 아니다.

그저 우리 관계의 유통기한이 그러했을 뿐.

20년이 다 되는 관계였으니, 으레 계속되지 않을까 안일하게 생각하며 방치해두었지만

어떤 관계는 20년이 되어도 30년이 되어도 끝날 때는 끝나는 것이었다.

세상 모든 것은 대부분 영원하지 않았다.

이런 맥락에서

오늘 물방울무늬 바지의 유통기한이 끝났다.

곤도 마리에는 아니지만, 설레지 않는 바지는 이제 버리기로 한다.

고마웠어, 함께 많은 곳을 다녔네. 덕분에 참 좋았어.

침착한 이별의 인사를 건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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