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온전하게 통합하는 치유 작업의 시작
평생 사람들을 따라다니며 괴롭히는 익숙한 내면의 목소리가 있다. 내면의 목소리의 내용은 내가 어느 나라에서 태어나, 어떤 부모를 만나, 어떤 유년기를 보냈느냐에 따라 달라진다. 그런데 이 내면의 목소리들은 인생을 살면서 아주 중요한 타이밍에 나타나 꼭 참견한다. 가장 흔한 목소리는 아마도 이런 애들 아닐까.
(능력도 없는) 네가 그 어려운 일을 할 수 있겠어?
(못생긴, 매력 없는) 나를 그런 멋진 사람이 좋아할까?
(돈이 없는데) 내가 저렇게 좋은 곳에서 살 수 있을까?
(시간 없는데) 저 사람 같이 매일 자유롭게 살 수 있을까?
(부족한) 내게 성공할 수 있을까? 기회가 와도 감당할 수 있을까?
사람들은 왜 '나는 못생겼다, 매력 없다, 무식하다, 가난하다, 재능 없다, 그런 일이 내게 일어날 일이 없다'같이 스스로를 괴롭히는 내면에 목소리를 듣게 되는 걸까? 이 목소리는 대체 어디에서 시작되어서 환청같이 반복 재생되는지 궁금하지 않은가? 사실 우리 모두는
이 세상에 태어날 때만 해도 완전했다.
그러나 그 완전함은 사회화 과정을 거치면서 서서히 사라지게 된다.
갓 태어난 아기는 숨 쉬고, 먹고, 자고, 배설하는 등의 기본적인 욕구가 모두 부모에게 달려있다. 유년기가 될 때까지 부모에 의존해서 생존할 수밖에 없다. 즉 아이는 부모 말을 잘 듣고 따라야만 살아남을 수 있다. 아이는 관계 의존적으로 태어났기 때문에 생존을 위해서 부모에게 받아들여지는 모든 것을 하게 된다.
반면, 부모는 아이가 사회에서 잘 적응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교육시키는데 '어떤 모습이 사회적으로 허용되고, 어떤 모습이 허용되지 않는지'에 대한 기준을 아이에게 가르치게 된다. 이 기준은 그 가족의 가치관에 의해 결정되는데 이 가치관들은 가족, 문화, 국가에 달라지는 주관적인 판단들이다. 우리를 괴롭히는 내면의 목소리는 이 주관적인 판단들에서 비롯되었다.
일반적으로 부모들은 사회에서 받아들여지지 않는 모습은 자신의 아이에게도 허용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서 남아선호 사상이 심하게 뿌리내린 사회에서 태어난 여자 아이는 '여자는 얌전하고 친절해야 하며 부모/남편의 의견에 순종해야 한다'는 말을 듣고 자란다. 애초에 타고난 기질이 자기 주도적이고 진취적이었다고 해도 이 모습은 부모에 의해 거부된다. 이 아이는 부모에게 사랑(수용) 받기 위해, 즉 생존을 위해, 긍정적인 모습임에도 불구하고 자기 주도적이고 진취적인 측면을 부정하고, 억누르고 버릴 수밖에 없게 된다. 부모의 입장에서는 이 아이가 매우 사랑스럽고 순종적인 어른으로 자란 것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실제 어른이 된 아이는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인정받고 존재할 수 없기에 고통을 느끼게 된다. 이렇게 아이가 사랑받기 위해
부정하고, 억누르고, 외면하고, 거부한 자신의
진짜 모습이 바로 그림자(shadow)이다.
이렇게 우리는 내면에서 우리 자신을 나눠버리는데 이렇게 의식, 무의식이 나눠진다. 모든 사람은 스스로 인식하고 있는 자기의 모습(의식, 자아, ego, 빛)과 전혀 인식하지 못하는 자기의 모습(무의식, 참나, true self, 그림자)을 가지고 있다. 이런 분리 행위는 본능적으로 자기를 보호하기 위함이지만 이 행위는 처음으로 자신을 부정하는 행위이기도 하다.
심리학자 칼 융은 사람들이 인식하지 못하는 부분, 즉 무의식적 측면을 그림자(shadow)라고 불렀다. 흔히 사람들이 하는 그림자에 대한 가장 큰 오해는 그림자 속에 있는 모든 것이 부정적인 것이라는 생각이다. 사람들이 그림자를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이유는 (부모에게 허용되지 못했기 때문에) 자신이 부정적으로 느끼는 자신의 어떤 모습을 부정하고, 억누르고, 외면하고 거부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진짜 모습을 부정하고, 억누르고, 거부하는 하는 것만으로 그 모습을 없앨 수 없다. 우리는 억누른 모습을 의식적으로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뿐이다. 그 모습들은 그림자 속으로 들어간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종종 우리 자신도 이해할 수도 없는 일들을 하는 이유가 바로 이 그림자(shadow) 때문이다.
우리가 우리 자신을 완전히 통제하지 못하게 되는 이유, 우리가 매번 똑같은 패턴의 실수를 저지르는 이유는바로 이 그림자 속에 묻혀진 내 진짜 모습이 때문이다.
무의식을 정화해나가는 작업인 그림자 작업(shadow work)은 분리시킬 수 밖에 없었던 무의식 속 내 진짜 모습을 의식화함으로써 진짜 나를 찾아가는, 진짜 나를 통합해가는 과정이다.
하지만 이 작업은 쉽지 않은 과정이다. 왜냐하면 우리가 부정하고, 도망가고 싶고, 받아들이길 거부하기 위해 무의식 깊숙이 눌러놓아 버린 그림자 속 모습을 빛(의식)을 쏘아서 다시 인식하기 시작할 때, 우리는 사랑받기 위해 자신의 일부를 잘라냈을 때의 그 고통과 다시 마주해야 하기 때문이다.
힐링을 위해선 그 엄청난 고통을 꼭 다시 감당해야하는 걸까?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다음 편으로 계속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