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 우린 어디까지 왔을까 -웰니스아파트804호

연작소설 <웰니스족>

by 힐링가객

연재소설 11회차입니다. 전편의 이야기는 여기에서 이어집니다. ->https://brunch.co.kr/@healingsiinger/60







그 즈음 나는 꽤 명랑해져 있었다. 업무로 매일 만나는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점심엔 혼자가 아닌 직원들 속에 어울려 식사를 했다. 때론 휴게실에서 커피를 마시면서 점심시간의 남은 시간을 동료들의 수다를 들으며 웃음으로 맞장구를 쳤다. 나보다 어린 여자의 연애를 들었고, 또래 직원의 쇼핑이야기와 여행계획을 들으면서 쓸쓸한 느낌이 가슴을 훑고 지나갈 때도 있었다.


나보다 연배가 있는 분들에게서 보기 드문 인재라는 칭찬을 들었다. 일중독자로 살아온 것에 대한 일종의 보상 같은 거였지만 칭찬은 내 자존감을 높여주었다. 그 무렵 식당장인 이모가 은밀히 소개팅을 주선했다. 좋은 사람이니 딱 한 번만 만나보라고. 당시 나는 식영과 출신이라는 이유로 회사의 영양사를 겸하고 있었다. 사내 급식소의 위생점검과 급식운영, 검식, 식단표 등등 협력할 일이 많았기 때문에 식당장 이모와는 친분이 있었다. 중소기업에선 겸직이 자연스러운 취업 조건이라 이직을 하면서 조건을 따질 여유가 없어 수락했던 거였다. 식당장 이모는 입사 이후 3년이 넘도록 나를 지켜본 분이었다. 처음엔 핑계를 대면서 피했다. 하지만 친절한 이모는 포기할 줄 몰랐다. 변명의 여지가 없을 만큼 설득하고 강권했다. 엄마처럼 챙겨주는 걸 계속 무시할 수가 없었다. 소식을 들은 진희는 쫒아 와서 입고 나갈 옷을 골라주면서 질문과 대답까지 연습시켰다. 단호한 얼굴로 약속장소까지 동행하여 내 등을 떠밀었다.


그렇게 또 하나의 깊은 인연이 된 남자를 만났다. 그는 나를 긴장시키지 않았다. 아무런 쇼맨십도 없었다. 덤덤하게 만나는 남사친이라고 생각하고 계속 만나보라고 진희가 추임새를 열심히 넣었다. 이모도 응원했다. 처음엔 남자, 아니 새로운 사람을 만난다는 것이 어색하고 신경 쓰였다. 솔직히 끌릴만한 매력도 없었다. 계속 만날 수 있었던 건 연기를 하지 않아도 있는 그대로 나를 대해주었기 때문이었다. 경계를 풀기까지 시간이 걸렸지만 건강한 사람이라는 신뢰는 있었다.


처음 만난 날 그는 아버지를 보내 드린 지 얼마 되지 않았다고 쓸쓸함을 드러냈다. 아버지와 캠핑도 다니고 낚시도 같이 하고 좋은 추억이 많다고 했다. 아버지에게서 배운 자전거 여행의 기억을 실감나게 묘사하곤 했는데 너무 재밌어서 함께 웃었다. 그의 어머님은 오랜 지병인 신장 암으로 스무 살 무렵 돌아가셨다고 했다. 나와 마찬가지로 그도 고아인 셈이었다. 현실적으로 자신은 자유도 반쪽 외로움도 반쪽인 사람이라고 말했다. 오빠가 있는 나는 그 보다는 덜 외로운 처지였다. 하지만 자주 볼 수 없는 남매란 남과 다르지 않았다. 그의 말에 공감이 되었다.

캠핑족인 그는 작은 낭만을 사랑했다. 때론 유치하고 가벼운데, 캠핑에 진심이었고, 따라 나서면 귀빈 대접을 해주었다. 불멍을 하면서 밤 깊도록 이야기를 나누다 매트가 깔린 잠자리를 양보하고 자기는 차 좌석에서 잠들었다. 그 때 진희가 했던 말이 생각난다.


“혹시 무기에 문제 있는 거 아닐까? 바보야, 작동불가인지 아닌지 확인해 봤어야지!”

“내 기능도 작동이 되는지 안 되는지 모르겠는데?


말해놓고 눈물이 날 정도로 웃었다. 진희는 심각한 문제라며 꼭 확인해 보라고 했다. 1박 캠핑이 주말 2박이 되고 휴가엔 3박이 되었다. 그는 정서가 안정되고 항상성이 있었다. 소탈한 그는 수다를 시작하면 여자친구들끼리 그러듯 많은 이야기를 했다. 이야기를 들어줄 누군가를 지금까지 기다린 것이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어느 날은 자기의 첫사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초임으로 와서 담임을 맡은 여선생이었는데, 순정의 마음으로 무사히 숙소에 들어가는 걸 매일 지켜보고 나서야 귀가를 했다고 한다. 그거 혹시 스토킹 아니냐고 했더니, 아니란다. 자신은 그 때 중학생이었고, 선생님은 좋은 분과 결혼해야 하니까 누군가 보호자가 필요했다고. 그러다 남자 교사와 함께 숙소로 들어가는 걸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했다. 만약 남자 교사가 선생님과 결혼하지 않으면 벌을 주려고 지켜봤는데, 다행히 곧바로 두 분이 결혼식을 올린다고 발표를 했단다.


캠핑의 좋은 점은 이야기할 시간이 무궁무진하다는 것이다. 그는 여사친을 포함한 친구들 이야기와 자신의 연애담, 아니 실연담도 들려주었다. 대부분 깊은 인연까지 가지 못한 만남들이었고, 그가 결혼을 기대한 여성은 양다리를 걸치고 저울질 하다가 그를 버렸다. 담담하게 이야기했지만 마음의 상처가 느껴졌다. 나는 그 사람 만큼 전방위로 나를 보여줄 자신이 없었다. 나는 내 자신이 순수하못하다고 느꼈다. 도저히 내 이야기를 있는 그대로 말 할 수 없었다. 다만 내 어두운 시간 중 자살을 시도했었다는 사실은 털어놓았다. 그는 지금 여기에 있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다고, 이젠 지난 일일 뿐이라고 했다. 그 어떤 평가가 아니라 넓은 의미의 위로에 가까웠기에 그의 말은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주었다.





어느 날은 캠핑 날짜를 기가 막히게 잡아서 내내 비가 왔다. 소나기 수준의 비가 주룩주룩 내렸다. 비멍을 하는 것도 나름 괜찮았다. 숲의 음영이 시나브로 짙어지는 걸 바라보는 것도, 암회색 어둠이 풍경을 삼키고 한결같은 빗소리로 채워지는 감각의 전이도, 흐린 빛 아래서 이야기하는 사람에게 시선을 오롯이 고정하며 귀를 모으는 것도 좋은 경험이었다. 그는 맑은 날만큼 비 오는 날의 운치도 좋아한다고 했다. 특히 빗소리를 들으면서 잠드는 걸 좋아한다고. 나는 사실대로 이야기했다.

“비 내리는 풍경을 보는 건 좋아해요. 하지만 몸이 젖으면 꿉꿉해서 움직이기 싫던데요.”

“절대 움직이거나 비 맞을 일 없게 해줄게요.”


그는 장담했다. 비 오는 날의 캠핑은 특별한 추억을 남겼다. 그가 나에게 목이 불편하냐고 물었는데, 당시 나는 3일 동안 야근을 한 후였다. 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목과 등과 어깨가 뭉쳐있다는 걸 알았다. 체대를 나온 그는 체육보건학을 이수하면서 스포츠마사지를 배웠다고 했다. 그리곤 조금 참으면 편안해 질 테니 참으라고 당부하면서 내 어깨와 목을 만졌다. 두툼한 손으로 부드럽게 마사지를 해주었는데, 만지는 곳마다 너무 아파서 소리를 질렀다.


“조금만 참아요. 남들이 들으면 오해합니다. 신고 들어가면 제가 현행범으로 쇠고랑 찰 수도 있어요. 그러면 사식 넣어줄 건가요?”


목 빗근을 주무르는 그의 손길에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는데, 그의 진지한 농담을 들으면서 웃었다. 처음엔 아프고 불편했으나 내 관절들과 불편한 부분을 마사지 하는 따스한 손에서 그의 마음이 느껴졌다. 앉아서 받던 마사지를 어느새 매트에 엎드려 받고 있었다. 뭉쳤던 근육을 풀어주는 부드럽지만 생동감있는 에너지는 이성을 넘어 인간적인 동류의식으로 나를 감쌌다. 목적이 있는 터치가 아닌 내 아픔을 덜어주기 위해 땀이 나도록 진심을 다하는 그의 마사지가 그날 내 마음에 채워진 경계들을 녹여버렸다. 내 리듬에 보조를 맞추는 몸의 대화 역시 깊고 포근했다. 그 후로 그는 내 목과 어깨를 마사지 해주고 있다. 지금도 내가 불편한 곳을 나보다 더 잘 알고 풀어준다. 그에게 없는 것은 다만 시간 뿐이다.


비가 오던 그 날의 캠핑에서 그는 약속을 지킬 수 없었다. 그의 차는 캠핑카는 아니었다. 어쩔 수 없이 공중 화장실을 이용해야 했는데, 그 때마다 장우산을 받치고 데려다 주는 거였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잃어버린 남매라도 되는 것처럼 그의 앞에선 민망함이 없었다. 혼자 바쁘게 움직이던 그의 상차림과 요리에 내 솜씨를 얹자 그가 감탄했다. 솜씨야 있든 없는 그래도 식품영양학 전공자로서 식재료를 다루고 조리하는 정도는 그보단 내가 나았다. 그 날을 기점으로 캠핑여행의 밀도가 달라졌다. 그는 치유를 위한 산책이나 등산 코스를 좋아해서 항상 경치가 끝내주는 곳에서 내 사진을 찍어주었다. 인생 2막이 그렇게 열리고 있었다.


갑자기 달려와서 함께 있다가 바쁜 일이 있는 것처럼 휑하게 가버려서 길바닥에 혼자 남겨졌던 호와의 데이트가 한 번씩 스쳐갔다. 같이 있으면서도 호의 급변하는 기분을 살펴야했던 기억들은 캠핑 감성의 느리고 묵직한 안정감 속에서 희미하게 사라져갔다. 옛 상처를 더 이상 기억하지 않아도 좋을 추억들이 풍성하게 쌓여갔다. 불을 피우고 손수 만들어준 대나무밥과 코펠에 끓인 커피와 숯불에 구워주는 꼬치요리들의 훈연향이 내가 좋아하는 그의 향기가 되었다.


그와 있으면 나를 중심에 두고 함께 하는 시간을 있는 그대로 마주볼 수 있었다. 나는 생각보다 욕구가 선명하고 표현이 진솔한 인간이었다. 진희가 확인시켜 준 나에 대한 평가와 일치했다. 그 동안 잃어버리고 살아온 내 모습이었다. 덕분에 호와 만나던 시절의 내 모습도 돌아볼 수 있었다. 만나기 전이나 만나고 있을 때나 만난 후에도 온통 호를 중심으로 생각하느라 내가 나로 존재할 수 없었던 시간이었다. 그제야 호에 대한 기억을 봉인할 수 있었다. 그 아픈 시간에 호만 떠난 건 아니었다. 그 시간으로부터 나도 떠나온 거였다. 그 해 가을에 3일간의 명절휴가 캠핑여행에서 캠핑족의 프러포즈를 받았다.






임신이 늦어지긴 했지만 직장생활을 하다 보니 막달이 되었다. 녹동까지 가서 차를 배에 태우고 제주도에 건너가서 만삭 캠핑을 한 것이 최고의 추억으로 남아있다. 함덕 해수욕장이 내려다 보이는 위치에서 원없이 노을을 보면서 곧 태어날 사내아이와의 앞날을 상상하며 남편이 다짐했다. 아들에게도 캠핑감성을 가르치자고.

규원이가 태어난 후에도 아쉬울 것 없는 시절을 보냈다. 산후조리원에서 몸조리를 마치고 집에 왔을 때, 꼼꼼하게 준비한 출산준비물품들은 완벽하게 세팅되어 있었다. 규원이는 건강했고, 성격이 좋았다. 키우는 동안 규원이가 심하게 우는 소리를 들어보지 못했다. 아기를 돌보는 일에 집중하면서 나는 세상을 다 얻은 것처럼 행복했다. 세상에 태어나 그렇게 따스하고 만족한 시간을 경험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다. 순간순간이 소중해서, 소중함을 느끼는 나 스스로가 경이로웠고, 나를 둘러싸고 있는 가정이라는 울타리에 깊은 애정을 느꼈다.


규원이를 재우고, 남편에게 감사한 마음을 느낄 때면, 인생 2막을 경험해보지 못하고 끝날 수도 있었던 것을 생각하곤 했다. 그런 날엔 잠자기 전에 잠깐씩 불길함을 느꼈다. 이 완벽한 행복이 사실은 깨지기 쉬운 테라리움의 평화가 아닐까 조바심이 나기도 했다. 규원이는 남자아이치고 소통에 적극적이라 눈빛만으로도 마음이 통하는 섬세한 아이였다. 복직한 후에도 정서적 돌봄에 소홀해지지 않으려고 규원이를 중심으로 일상을 운영했다.


솔직히 외동이 엄마의 정성과 치성을 이해 못하는 것 아니다. 외동이에 질환을 가진 딸아이를 양육하는 아래층 여자의 입장도 충분히 알만하다. 나도 유난스럽다는 말을 들어가며 과잉보호 해봤다. 규원이에게 브랜드 옷을 사 입히고 발 빠르게 좋은 프로그램은 찾아서 경험시켜주었다. 퇴근하고 저녁 6시에 한글프로그램과 영어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방문교사에게 맡겼다. 남편이 그토록 끈덕지게 아이들을 원하지 않았더라면 지금도 규원이 하나를 떠받드느라 아랫집 여자와 경쟁관계가 되었을지도 모른다.


남편은 아이를 잘 돌봤다. 선천적으로 육아의 기본기를 가진 사람처럼. 열이 나거나 토하거나, 내가 당황할 상황이 생겨도 남편은 안정감 있게 아이를 달래고 약을 먹이고 주물러주었다. 당시 남편은 딸아이가 있으면 좋겠다는 말을 자주 했다. 규원이를 품에 안고 있으면서도 여자아기가 지나가기라도 하면 눈을 떼지 못했다. SNS에 올라온 회사 동료의 딸 사진을 들여다봤고, 유튜브 동영상에서 아기 사진을 업로드 하는 채널을 구독해 보면서 웃었다. 그 즈음 왜 그렇게 딸을 원하냐고 물었다. 남편은 대답하지 않았다. 아빠는 딸바보라는 말이 있듯 모든 아빠들이 딸을 좋아하는 건가 생각했다. 아빠에게 사랑받은 경험이 없는 나로서는 짐작도 할 수 없었다.


한참 지난 후 어느 날 남편이 갑자기 가족 이야기를 했다. 어릴 때 고궁으로 나들이를 갔다가 여동생을 잃어버렸다는 거였다. 실종신고를 하고 양육기관을 찾아다니고 주말마다 벽보를 붙이러 다녔다고 했다. 여동생을 찾느라 남은 세 가족이 얼마나 애가 닳았을까 생각하니 가슴이 먹먹했다. 엄마가 지병으로 앓다가 돌아가신 이유도 동생을 찾지 못해서 그랬을 거라고 했다. 그는 여동생이 해외 어딘가로 입양되었을 거라고 했다. 입양기관에서 동생의 자료를 찾지는 못했지만 그렇게 믿고 있었다. 그것만이 유일한 희망인 듯.


그 즈음 나는 남편을 실망시키지 않고 잘 살아내는 것이 목표였다. 나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배우자의 역할 하나라도 해내고 싶었다. 아이를 얻고 나서는 아이의 엄마라는 역할을 충실히 해내고 싶었다. 규원이는 튼실하게 태어나 잘 자라준 고마운 아이였다. 첫 돌이 지날 때까지 한 번도 크게 앓지 않았다. 내 존재의 효용성을 증명하듯 나는 역할에 집착했다. 그 역할이 나를 지탱하는 추라는 걸 그 땐 인식도 못했지만, 덕분에 결혼생활 십년이 역할단위로 삭제되었다.

지금은 나를 필요로 하는 존재가 4명으로 늘어났다. 그토록 원하던 아이들을 얻었는데 남편은 그만큼 더 벌어야 해서 투 잡을 하고 있다.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지금 쌍둥이와 보내는 시간이 짧은 것이 안타까운 이유다. 남편은 주말 2일간의 시간을 온전히 아이들과 보내면서도 늘 아쉬워한다. 주말 알바를 추진하던 그를 뜯어말린 건 아무리 생각해도 잘한 일이다.


나는 알고 있다. 내가 그다지 건강하지 못하다는 것을. 하지만 그 모든 것은 과거의 일이다. 예전엔 관계를 회피하고, 비좁은 내 공간에 스스로를 가두고 자기멸시와 모멸에 빠져있었지만 지금은 아니다. 한 때, 의지도 소망도 없었던 내가 아이들의 엄마가 되고 보니 분기탱천할 일이 왜 이렇게 많은 건지 모르겠다.


세상에 온전한 사람은 없다. 신이 아닌 다음엔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는 사람에게도 결핍은 있다. 나도 그런 저런 결핍 중 하나를 지닌 채 살아가는 존재일 뿐이다. 지금은 다 가진 것처럼 보이는 진희도 한 때는 죽을 만큼 멸시와 핍박을 당하고 울부짖었다. 지금까지 죽지 않고 살아오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하고, 그 와중에 생명을 탄생시켰으니 모자란 존재에게도 그에 맞는 역할은 부여되는 것이 세상 이치인 모양이다.


‘그러므로 지금이 중요하다!’


이 결론에 도달한 언젠가부터 나는 건강한 사람이 되고 싶어졌다. 그래서 노력하고 있다. 철학이니 인문학이니 웰니스니 따지지만, 그게 그렇게 대단한 건가? 사람이 살아가면서 다양한 방식으로 저마다 인생 페이지를 작성해 가면, 그것이 인문학이고 철학인 거지. 이웃과 함께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것이 웰니스 아닌가 말이다.


탈출기에서 내가 무릎을 탁 치며 공감했던 내용이 있다. 부족한 것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 애정을 듬뿍 받으며 유복하게 성장한 사람은 당당한 자아상을 장착한다. 플러스에서 시작한 그는 사회성이 평균치까지 내려오는데 평생이 걸린다. 반면 결핍이 많은 환경에서 태어나 필요한 관심과 애정을 받지 못한 채 성장한 사람은 결핍된 자아상을 장착한다. 마이너스에서 시작한 그 역시 사회성이 평균치까지 올라가는데 평생이 걸린다.


내 경우는 후자다. 그러므로 내가 사회적으로 평균적 삶을 살아가고 평균적 행복을 쟁취하는 데는 평생이 걸릴 것이다. 내가 마이너의 삶을 살아가고 있는 이유다. 그러나 유익도 있다. 하드트레이닝 끝에 역할을 부여받고 이렇게 살아가고 있으니까. 그렇다면 아래층 여자는 나와 반대의 경우일까? 그럴 수도 있다. 메이저의 삶을 살아가면서 평균치까지 내려오는 데 평생이 걸릴 것이다. 그렇다면 우린 각각 어디까지 왔을까.




앞뒤 창문을 다 열어놓고 다시 냄새를 맡아본다. 옅어진 걸까? 지금은 괜찮은 것 같다. 쌍둥이가 퍼즐을 가지고 놀고 있는 동안 환기를 시키고 청소를 했다. 베란다에서 냄새가 더 나는 것도 같았다. 가만히 서서 맡아보았다. 냄새는 순식간에 없어졌다. 바람에 실려서 사라져버리는 건지도 몰랐다. 혹시 위층 언니도 냄새를 맡은 적이 있을까? 물어보려고 인터폰을 했다. 언니는 기다리고 있었던 듯 올라오란다. 요즘 새로 부업을 시작해서 배우러 오는 분이 있는데, 대용량 어묵을 사다줘서 잔뜩 끓이고 있었단다.


‘세상에나, 진짜 소울 메이트 인가! 이렇게 딱딱 통할 순 없는 거 아냐?’


혼잣말이 절로 나온다. 쌍둥이를 데리고 올라가자 언니가 삶은 메추리알을 까고 있다. 떢볶이용 가래떡과 당면을 물에 불리고 있어서 물어보니 통화하고 바로 담갔단다. 시원이와 지원이는 자기 집처럼 놀이방으로 들어간다. 언니가 드레스 룸을 아이들 전용 놀이공간으로 꾸며놓는 후로 아이들에게 인기공간이 되었다. 처음엔 창고로 쓰다가 부업일감과 섞이지 않게 하려고 공간 정리를 한 것이다. 다시 봐도 근사해서 나도 계획을 가지고 있다.

내가 메추리알을 까는 동안 언니가 떡과 당면 어묵과 야채를 넣고 간장 소스를 만들어 간을 맞췄다. 언니는 양배추와 대파 양파를 많이 넣는데 늘큰하고 감칠맛이 좋다. 맵지 않아서 아이들이 환장하고 먹어치우는 궁중떡볶이다. 어묵탕에 떡볶이로 점심을 먹었다. 주먹밥도 만든다고 했지만 떡볶이에 들어있는 메추리알까지 먹었더니 더 들어갈 배가 없었다. 시원이랑 지원이도 포크로 야무지게 찍어 먹었다. 설거지 하면서 내가 냄새 이야길 했더니 언니도 이상한 일이라고 했다.

“규원엄마 쓸데없이 고민하지 말고 냄새가 난다싶으면 다시 전화해. 내가 바로 내려갈게.”


그렇게 다짐을 받고 내려왔다. 쌍둥이를 재워놓고 건조기에 들어있던 빨래를 꺼내서 개고 있는데 냄새가 느껴졌다. 즉시 언니를 불렀다. 일하던 사람답지 않게 바람같이 나타났다.


“규원 엄마, 냄새 나네.”

“언니도 느껴지죠? 어제랑 같은데, 이거 라벤더 향 맞죠? 화학약품이랑 섞인 냄새에요.”

“맞아, 이거 정말 이상한데.”


언니는 무슨 수사관처럼 킁킁거리며 화장실 배수관을 확인하곤 베란다로 나갔다. 샅샅이 조사를 하던 언니가 등 뒤에 붙어선 나를 향해 갑자기 목소리를 낮추곤 속삭였다.


“쉿, 규원엄마, 아랫집에서 뭘 뿌린 거 아냐? 들어가서 얘기 하자.”


그러고는 들어가라고 손짓을 했다. 살금살금 집안으로 들어온 언니는 여전히 작은 소리로 뭘 뿌린 게 틀림없다고 했다.


“설마요. 아랫집에서 뿌린 게 우리 집까지 올라와요?”

“내가 지금 봤는데, 규원이네 창문 아래쪽에 무슨 액체 같은 걸 뿌린 자국이 있어.”

“정말요? 그게 그럼 우리 집에서 무슨 냄새라도 나서 그랬다는 건가요?”

“글쎄. 그런 건가? 아래층 여자 혹시 결벽증 환자 아냐?”

“왜 아니겠어요. 우리 집 불결해서 자기 아이가 심해졌다며 피해자 코스프레 하고 다니는 거 보면 알만하죠. 관리실에도 몇 번이나 찾아갔다는데.”

“그래? 혹시 모르니까, 사진이라도 찍어 놔. 인체에 해로운 것일 수도 있잖아. 옥시 사건 생각 안나? 규원이네가 피해자가 될 수도 있지!”

“설마가 사람 잡는다더니, 그래서 메슥거린 건가?”

“그렇게 당하고도 몰라? 이 아파트 구조가 안방 쪽 창문이 높으니까 자기 집 베란다에 뭘 놓고 올라가서 창문 열면 규원이네 창문 아래쪽에 뿌리는 것도 가능한 거 아냐?”

“알았어요. 일단 육안으로 확인해 보고 자국이 남아 있으면 사진 찍어 볼게요.”

“규원엄마 나도 이 냄새 맡았던 거 같아. 섬유린스 향이겠지 하고 대수롭지 않게 지나쳤는데, 이건 그냥 넘길 일은 아냐. 사실을 확인해야지.”


나는 안방 쪽 베란다 창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유심히 보지 않아도 무언가를 뿌린 자국이 무수히 많았다. 액체가 유성인지, 외벽 페인트가 변색이 되어 있었다. 다른 집들도 살펴봤으나 그런 자국은 없었다. 나는 급한 대로 스마트 폰으로 사진을 찍었다. 사진으로도 자국이 보였다.

언니가 돌아가고 난 뒤에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내 상식의 범위 안에서는 해석이 불가한 일이었다. 이런 경우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생각할수록 아래층 여자가 무서웠다. 만약 언니 말대로 뭔가 유해한 거라면, 혹시 살충제를 뿌려서 우리 가족이 마시고 있었다면 이건 정말 살인미수 아닌가! 살충제가 아니라도 천연성분이 아닌 것을 의도적으로 뿌렸다면? 그래서 발암물질인 미세플라스틱을 나와 아이들이 마시고 있었다면? 그냥 지나칠 수 없는 문제였다. 정말로 의도를 가지고 그랬다면 뉴스에 나올 일이었다. 마지막으로 내가 혹시 오버하는 건 아닌지 생각해보았다. 역시 아무것도 안할 수는 없었다.


남편한테도 어떻게 말해야할지 알 수 없었다. 내가 너무 민감해서 정신이 이상해졌다고 할지도 몰랐다. 아이들에게 피해가 될 일이라고 생각하면 남편이 나서서 소득 없이 소란만 피울 수도 있었다. 이렇든 저렇든 사실 여부를 밝혀줄 증거를 잡는 수밖에 없었다. 그 동안 미심쩍었던 정황들이 하나하나 떠올랐다. 화장실에서도 이상한 소독약 냄새가 나곤 했는데 간과했던 건 아닌지, 역시 가만히 있을 여자는 아니었다. 생각할수록 점점 더 확신이 차올랐다. 살충제 생각을 해서 그런지 머리가 지끈거리고 메슥거렸다. 이런 증상이야말로 그 여자가 뿌린 살충제 때문인 것이 틀림없었다.


비상계단을 봉쇄했던 여자가 방법을 바꾼 것일까? 이번엔 방어가 아닌 적극적인 공격인가? 나는 궁리하고 고심했다. 어영부영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내 아이들의 건강을 위협하는 일이라면 당장 멈추게 해야 하는데, 그것이 무엇인지를 명확히 알아야했다. 역시 현장을 잡는 수밖에 없었다. 아무 증거 없이 몰아붙였다가 교활한 아래층 여자가 뭐라고 발뺌할지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온라인 스토어에서 감시카메라를 검색했다. 에어컨 실외기에 설치할 작은 사이즈가 필요했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초소형 방범 카메라 종류들이 셀 수 없이 많았다. 일단 시선을 끄는 것들을 위시리스트에 담았다. 먹은 것도 없이 자꾸만 비위가 상하고 식은땀이 났다.
















*연작소설 <웰니스아파트 804호> 11회 차를 구독해 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브런치부그로 발행한 1부 <웰니스아파트 704호> 편을 보시면 연작소설의 서사와 갈등을 이해할 수 있어요.

*라이킷과 텍스트 공유 및 댓글에 감사드려요. 더 열심히 쓰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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