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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힐링가객 Jan 10. 2024

명품 웃음의 그녀   - 결명자차

본초수 1

             

 노년은 평등하다는 말이 있다. 소유의 정도나 외적인 미모나 배움의 유무에도 불구하고 노화의 막바지에 다다르면 인간은 모두 평등해진다는 말일테다. 어떤 관점에서 보면 맞아떨어지는 면이 없지 않지만 그대로 동의가 되지는 않는다. 인간이 인간인 이상, 매일의 선택에 따라 서로 다른 결과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살아온 날들을 돌아보면 운 좋게 존경스러운 인생의 선배들을 많이 만났다. 그 중에 아주 특별한 교우 한 분이 생각난다. 체구가 유난히 왜소한 80대 할머니였던 그 분은 손주 둘과 중년의 아들과 함께 내가 다니는 교회에 출석하셨다. 일찍 남편을 사별하고 자녀손을 돌보면서 신앙에 의지해 살아오는 분이었다. 우리 지역으로 이사를 하시게 되어 예배할 교회를 찾다가 오시게 되었다고 하셨다.

    

 80대라곤 하지만 항상 웃고 있어서 인상이 고우셨던 권사님은 걱정거리라곤 없어보였다. 웃을 때 권사님의 눈가에 새겨진 주름은 참 편안하고 독특했다. 아기의 웃음을 볼 때 아무 생각 없이 웃음에 동화되는 것처럼 권사님의 웃음도 전염력이 컸다. 웃음이 만병통치약이란 말도, 웃으면 복이 온다는 말도 웃음의 치유 효과 때문일 거였다. 권사님은 그야말로 명품 웃음을 소유하고 있었다. 생의 이력을 최고의 경지로 보여주는 명품웃음이었다.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 고백하시는 권사님의 생애는 결코 평탄하지 않았다. 아들이 결혼하고 둘째 손주가 태어나 형제가 어여쁘게 커갈 때 그만 큰 불행을 겪었다. 며느리가 여러 몫의 계를 운영하다 사기를 쳐서 수감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아들은 며느리가 진 빚을 갚아야했고, 권사님은 농사를 지으면서 두 손주를 돌봐야 했다. 출소한 며느리는 가정으로 돌아오지 않고 이혼을 요구했다. 혼자 된 아들과 두 손주 양육의 살림을 권사님이 온전히 떠맡게 되았다.      


 권사님은 아들이 마음을 잡지 못해 삶을 포기할까봐 늘 기도했고, 행여나 어미 없는 아이들로 비칠까 혹은 손주들이 상처받을까 염려하며 돌봤다고 했다. 권사님을 만났을 당시 손주는 성격 좋은 훈남 청년들로  성장해 있었다. 이후 모두 결혼해서 권사님의 소망대로 가정을 이뤘다. 권사님은 그런 힘겨운 상황을 통과해온 분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긍정적인 마인드를 보이셨다.      


 감사해유!  감사허쥬!     


 인사를 나누든 이야기를 하든 권사님은 감사로 대화의 끝을 맺었다. 그래서 우리는 그 분을 감사권사님이라고 불렀다. 그야말로 '기승전 감사'였다. 때론 맥락도 없이 감사하는 권사님을 이해할 수 없었다.     


 작은 손자가 술을 많이 먹어서 신발을 잊어버리고 왔슈. 감사허쥬.     

그게 왜 감사해요?      

신발만 잊어버리고 몸은 성케 돌아왔으니께 감사허잖유.      


또 어느날은 새벽기도를 하러 가시려고 아무리 기다려도 태우러 오기로 약속한 차가 오지 않더란다. 나와 서서 기다리다가 들어가서 기도하셨다고 한다. 차량 봉사자가 전화를 드리면 권사님은 늘 하하 웃으시며 전화를 받으셨다.   

  

그런 줄 알었슈. 감사해유.     

감사하다니요, 제가 죄송합니다.     

아녀유, 맨날 피곤헌디 쪼금 피곤이 풀렸잖유? 그러니 감사허쥬.       

   

 권사님의 상황은 그리 감사할 일이라곤 없어 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사하려고 노력하는 정도로 보였다. 세상 행복한 웃음을 짓는 권사님의 눈은 맑게 빛났다. 권사님이 계신 공간에는 누구도 허물 수 없는 화목함이 있었다. 누가 어떤 이야기를 해도 웃으며 끝까지 들으셨고, 간명한 한 마디로 결론을 지으셨다. 감사해유. 남의 일도 내 일도 다 감사하셨다. 불행한 일도 고난을 통과중인 이에게도 감사하셨다. 알 것도 같고, 모를 것도 같은 권사님의 감사는 의문과 감탄을 동시에 불러 일으켰다.      


 그때까지 혼자 살며 음식점을 운영하던 아들이 재혼하게 되었다. 중년의 새며느리를 얻으신 권사님은 또 감사하셨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들이 위암 투병을 하게 되었다. 불행한 소식이었다. 설상가상으로 며느리도 갑상선 암에 걸렸다. 권사님은 소식을 전하면서 목사님께 기도를 요청하셨다. 목사님과 교회 성도 중 몇 분이 권사님 댁을 방문하려고 연락을 드렸다.  예배를 드리고 함게 기도하며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권사님은 뛸 듯이 기뻐하셨다.      


 평소 권사님의 지혜를 흠모하던 나도 함께 갔다. 작은 연립주택의 거실에 들어서서 며느님과 인사를 나눴다. 둘러앉아서 함께 예배를 드렸다. 설교를 시작하면서, 목사님이 권사님께 물으셨다.      


 “권사님 댁에 천사가 오면 어떨 것 같으세요?”

 “감사허쥬. 오늘 천사가 이렇게 많이 왔네유. 감사해유~우.”

    

 권사님의 대답을 들으면서 다 함께 웃었다. 역시 감사권사님다웠다. 목사님이 말씀하셨다.      


 “천사는, 우리 곁에 머물 땐 모르지만 떠나면 알게 되는 존재입니다. 우린 서로에게 그런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고 섬기는 것이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러면 어떤 상황도 감사하게 되고, 곁에 있는 이들을 존귀하게 대할 수 있습니다. 감사권사님의 그 별명은 결코 우연히 얻으신 것이 아닙니다. 부름 받는 그 날까지 감사권사님으로 기억되시길 바랍니다. 우리에게도 기회를 허락하셨으니 서로에게 그런 존재가 되셔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주님의 말씀을 이루어 가시길 축원합니다.”     


 목사님의 뜬금없는 천사 예화는 이미지와 메시지가 선명해서 오래 기억에 남았다. 그 때 나는 알지 못했다. 의미심장한 말씀의 상징과 의미들을. 지금 나는 느낀다. 감사권사님이 바로 천사였다는 걸. 9순이 넘어도 여전히 곱고, 존경스러운 위엄을 간직한 그 분의 웃음과 감사는 삶을 넓게 해석하고 멀리 내다보는 혜안 속에서 나오는  영성이었다.    

  

"아부지 나점 데꾸가유. 영혼만 얼렁 데꾸가유, 여기 있으나 거기 있으나 같으니 이제 나점 가져가유."      


 권사님이 기도하실 때 옆에서 들은 적이 있었다. 기도 내용이 슬프면서도 허물없는 표현이 재밌어서 잊히지 않는다. 언젠가 나 역시 그런 기도를 하게 될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로부터 얼마 후 권사님은 떠나셨다. 권사님의 소망대로는 아니고 이사를 가셨다. 늘 어머니의 인자한 웃음으로 성도들을 품어주시던 감사권사님을 떠나보낸지 또 십년이 지났다. 삼십대에 만난 감사권사님을 오십대가 되어서도 그리워하게 될 줄은 몰랐다.

     

 93세에 아들과 함께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서 연락이 끊어진 권사님. 그런 권사님을 가까이 대하며 인생을 대하는 선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배울 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었음을 이제는 안다. 불평이 목에 걸릴 때나 마음이 불편해질 때 감사권사님의 목소리가 들린다. 그럴 때 문득 깨닫는다. 무수한 감사 속에 영적 해석을 부여하신 권사님의 중심에 신의 성품이 깃들어 있었다는 것을.           





  음양탕으로 섭취하라


 감사권사님을 10년 넘게 뵈었지만 한 번도 감기에 걸린 것을 보지 못했다. 아픈 곳이 없다고 했다. 건강검진을 한 번도 하지 않았다는 권사님은 모든 상황을 감사하게 받아들였고, 모든 음식을 감사하게 드셨다. 물을 자주 드셨고, 식사 후에 믹스커피 한 잔을 보약처럼 즐겼다.    

  

 권사님의 식습관을 보면서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최근 건강도서를 다루는 유튜브 채널에서 의사인 저자가 생수 마시는 법을 소개했다. 냉수에 온수를 섞어 대류를 일으켜 음양탕으로 섭취하라는 거였다. 권사님 생각이 났다. 물 한 잔을 드셔도 권사님은 온수에 냉수를 섞어 드시면서 감사기도를 올렸다. 절대로 차거나 뜨거운 상태로 음식을 드시지 않았다. 추운 겨울날 좋아하시는 믹스커피를 타 드리면 조용히 일어나 냉온수기로 다가가 냉수를 섞어 미지근하게 만들어서 드셨다. 국도 뜨거우면 냉수 반 컵을 부어서 드셨다. 왜 그러는지 여쭤보았다.      


“먹기 편해서유. 바쁠 때 늘 이렇게 먹었더니 질이 됐유. 감사허쥬.”       

   

 권사님이 즐겨 드시던 음료가 생각난다. 계절에 따라 보리와 옥수수 결명자를 끓여 드셨다. 부활절과 추수감사절에는 감주와 식혜를 만들어 오셨다.

 


 보리수와 옥수수 수염차


 보리를 볶아서 끓인 보릿물은 아기를 키울 때 해열을 돕는 안전한 물이라고 하여 많이 사용했던 기억이 난다. 보릿물을 끓여서 냉장고에 보관하면 여름날 갈증을 해소하는 데도 큰 도움이 되었다.  옥수수 수염차는 최근 몇 년동안 다이어트에 좋은 차로 알려져 많은 이들이 애용하는데, 아마도 옥수수 수염차의 이뇨작용에 주목한 것 같다.      


 몇 해 전 전립선 비대증으로 수술을 받은 친정아버지가 방광무력증 때문에 소변 배출에 어려움을 겪으셨다. 처음에는 수술한 병원에서 처방한 약을 드셨는데, 불편을 해결할 수 없어 고생하셨다. 약을 바꿔도 소용이 없었다. 하루 걸러 한번씩 비뇨기과를 찾으셨다. 병원을 바꿔보았지만 다르지 않았다. 그러다 엄마가 끓여주신 옥수수 수염차를 드시곤 기적처럼 불편이 해소되셨다. 그 후부터 아버지는 항상 옥수수수염차를 드신다. 맛이 달큰하고 구수해서 먹기 좋은 음료다.

      


결명자 차의 효능


 보석처럼 반짝이는 야무진 열매 결명자는 신장과 눈 건강에 도움이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결명자 덕분인지, 권사님은 안경을 쓰지 않고 성경을 읽으셨다. 무학인 권사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성경과 찬송가를 읽을 수 있게 되었다며 늘 말씀읽고 묵상하셨다. 권사님은 돋보기를 쓰는 갓중년의 성도들을 바라보시고 빙그레 웃으며 한 마디 하셨다.      


“결명자 끓여 드슈.”     


 결명자라면 나도 진한 향수를 가진 음료다. 열 살 무렵에 아버지가 녹두보다 긴 꼬투리 모양의 씨앗을 한웅큼 얻어오셨다. 껍질을 까자 보석처럼 각이 진 암녹색의 씨앗이 나왔다. 신기한 그 식물은 햇살에 마르면서 윤기 나는 암갈색 종자가 되었다. 결명자였다. 신기한 그 씨앗이 궁금했지만 종자로 쓸 만큼만 얻은 거라 맛볼 수 없다고 했다.      


 다음 해에 텃밭에 심은 결명자는 무럭무럭 커서 나뭇잎 겨드랑이에 노란 꽃을 피우더니 곧 길쭉길쭉한 씨를 맺었다. 땅콩 이파리처럼 잎을 마주 닫고 잠드는 쌍떡잎을 가진 결명자 나무는 호리호리하고 예뻤다. 열매를 따서 말렸다. 꼬투리가 마르면서 톡톡 터졌고 만지기만 해도 갈색 씨앗이 쏟아졌다. 씨앗을 말려서 엄마가 끓여주셨다. 처음 기대하면서 맛을 보았을 땐 정말 이상한 냄새와 쌉싸레한 맛 때문에 실망했다. 마실 때마다 인상을 썼고 될수록 마시지 않으려고 피했다. 나중에는 몸에 좋다고 강권하시는 엄마를 이길 재간이 없어 물에 희석해서 마셨다. 뭐든 하나에 꽂히면 끝장을 보시는 엄마 덕분에 학창시절 내내 결명자차를 식수로 마셔야 했다.    

  

 집을 떠난 후로는 결명자를 잊고 살았는데, 감사권사님 덕분에 다시 결명자를 먹게 되었다. 나이가 들어서 다시 만난 결명자차는 시원하고 매력적이었다. 그 즈음부터 겨울철이면 집에서 결명자차를 마신다. 내가 이용하는 차도 여러 종류이고 남편을 위해 준비하는 본초수도 있기 때문에 일상적으로 매일 마시지는 않지만 떨어지면 진하게 우려서 냉장고에 보관해두고 하루 1회 정도 따스한 물에 희석해서 마신다.      


 동의보감에 결명자를 베개에 사용하면 두풍을 치료하고 눈을 밝게 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기록되어 있다. 실제로 안트라퀴논, 카르테노이드, 라보노이드지질, 베타카로틴 성분이 풍부하여 여러 효능을 입증받은 본초수이다. 특별히 안구 건조증과 시력저하를 예방한다. 또 칼륨이 풍부하여 나트륨과 노폐물을 배출하므로 간 기능을 개선하고 신장 질환을 예방하며 몸의 부종을 완화시킨다. 혈액내의 콜레스테롤을 낮춰 피를 깨끗하게 만들어 혈액의 순환을 돕고 고혈압, 신장병, 동맥경화 등 심혈관계 질환 예방에도 효능이 좋다. 뿐만 아니라 식이섬유가 많아 대장의 활동을 활성화하며, 유익균의 성장을 도와 소화불량과 위염 등 소화계 질환에 좋고, 배변활동을 촉진시켜 변비에도 좋다. 특히 안트라퀴논은 위 점막을 보호하고 소화능력을 개선시켜 위를 건강하게 한다. 녹차만큼이나 항산화제인 플라보노이드가 많이 함유되어 있어 몸 안에 활성산소를 제거하여 노화예방에 도움을 주며 만성 퇴행성 질병을 예방해준다.


 한마디로 결명자는 안 먹을 이유가 없는 훌륭한 본초수이다. 스스로 건강을 관리해야하는 중년이라면 결명자차를 준비해서 챙겨마시면 긍정적 효능을 얻을 것이다.


 영양제 과다 복용으로 투석을 받는 환자가 급증하고 있다는 불편한 뉴스를 대한다. 필요한 만큼 영양분이 흡수되고 나머지는 배출되는 자연식품을 챙겨먹어야 하는 이유다.


생각해보면 우리에겐 좋은 본초수가 많다. 본초수란 질병의 치료를 위해 약재로 구별된 초,근,목, 피, 열매, 종자를 달여서 얻은 약물이다. 본초수를 이용해 질병을 치료하는 방법은 인류 역사에 있어 매우 오랜 전통을 갖고 있다. 서양에서도 허브식물의 잎과 뿌리와 열매에서 에센스를 추출하여 치료에 이용해 왔다. 본초가 곧 허브다.      


 동양 의학에서도 본초에 대한 연구가 전해져오는데,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시대 향약구급방과 조선시대 향약집성방에서 이러한 약초들의 효능을 기록해 한의학의 전통을 이었고, 민간요법으로 널리 알려져 현대까지 약재로 이용해오고 있다.

 돌아보면 지혜로운 조상의 식음료 전통에 많은 빚을 지고 살아가고 있다. 이래저래 감사하다.

  

 대설이 내리는 창밖을 바라보며 결명자차 한 잔을 손에 쥐었다. 독특한 향기가 추억 속으로 나를 데려간다. 쌉싸레한 맛에서 여러 종류의 차맛이 느껴진다. 후미가 시원하다.  

    

열매가 예쁘고 야무진 결명자를 달여 차로 마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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