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가 뜨는 모습을 보고 싶었다. 첫 해을 보며 무슨 소원이던 빌고 싶었다. 매일 뜨는 그 아이는 오늘도 여전히 뜨겠지. 새해 첫날은 시댁에서 떡국을 함께 먹는다. 조금 더 일찍 일어나 해를 보기로 마음먹었다. <12월 32일>이라는 노래 가사처럼 1월 1일 해가 아니라 12월 32일의 해인지도 모르지만 그저 떠오르는 해를 보고 싶었다.
그다지 설레는 발걸음은 아니었다. 원래 사라봉이나 원당봉을 가는데, 새벽부터 오를 엄두가 나지 않았다. 누군가의 추천으로 사람들의 발걸음이 더딘 신흥해안도로를 찾았다. 주차된 차들이 보였지만 충분히 우리 차를 세울 여유는 되었다. 오름에 올라가 마주했던, 사람들 머리 사이로 떠오르는 해가 아니었다. 시야에 들어온 바다가 온전히 내 것인 것만 같았다.
차에서 내리지 않아도 수평선 너머 구름이 보였다. 보온병에 챙겨 간 뜨거운 물로 믹스커피를 남편과 나눠 마셨다. 아이들은 오늘따라 얌전했다. 잠이 덜 깬 것이겠지.
모든 이들의 슬픔을 훔쳐가 달라고 빌었다. 그리고 남아있는 이들의 평안을 빌었다. 우리 가족의 안위를 보태는 것이 조금 부끄러웠으나 생각하지 않을 수 없었다. 속세에 물든 나의 욕심들도 조심스레 내비쳤다.
해는 뜨는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늘 있었다. 움직이는 건 우리들이다. 우리의 공간이 돌고 돌며 해가 뜬다 진다 표현하는 것이다. 애초에 해는 뜬 적도 진 적도 없다. 거기에 그저 있었을 뿐이다. 언제인지 알 수 없는 아주 오래전부터. 그걸 알면서 사람들은 첫 해에 의미를 둔다. 나 역시 그렇다.
아홉 살이 된 아들의 얼굴은 어제와 같았다. 세 살이 된 아이 또한 어제와 같은 모습이다. 하루 또 하루를 보내며 돌고 도는 이 공간에서 서서히 변해갈 테지.
벽달력을 바꾸어 걸었다. 어제를 보내 주는 것이 큰 의미로 다가오지 않았다. 벌써 달력에는 새로운 일정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하나씩 해나가다 보면 분명 좋은 일들은 생길 거라 믿는다.
그럼에도, 해는 떠올랐다.
새해 모두 안녕하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