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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eami Aug 02. 2018

움직여야 괜찮아진다

사바아사나

신체는 언제나 정신을 배신했다. 원한다고 모든 걸 할 수는 없다는 사실은 손금처럼 선명했다. 크게 아픈 것은 아니었지만 자주 앓았고, 잦은 잔병치레는 번번이 내 발목을 잡았다. 억지로 버티는 일에도 신물이 나면, 일상으로 다시 돌아오기가 쉽지 않았다. 생에 다시 정을 붙이기가 쉽지 않았다. 평정을 잃는 것에 공포와도 같은 수치심을 느끼는 까닭은 어쩌면 그래서인지도 모르겠다.

  

햇볕이 진득하니 따라붙는 날은 천천히 움직여야 한다. 자칫하면 수신 상태가 나쁜 텔레비전 화면처럼 깜빡하고 시야가 암전 됐다가 시공간이 어그러진다. 비가 오는 날에는 공기의 무게를 느낄 수 있다. 물기를 머금은 대기가 온몸을 짓누르는 탓이다. 그런 날은 언어의 중추마저도 속력을 잃는다.

 

움직여야 오히려 괜찮아진다는 역설은 요가를 하면서 깨닫게 되었다. 전에는 꾸역꾸역 소화했던 동작을 의식하지 않고도 자연스레 해치운다거나, 초 단위로 간신히 버텨냈던 동작을 분 단위로 유지할 때 아주 튼튼해진 기분이 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장 좋아하는 동작을 꼽으라면 단연 사바아사나다. 팔다리를 대자로 뻗은 채 똑바로 누운 자세. 온몸에 힘을 풀고 죽음을 흉내 내는 자세다.


사바아사나는 요가의 정리 운동 중에서도 가장 마지막이다. 이국의 노래 한 곡이 다 끝날 때까지 할 일은 오로지 하나. 최선을 다해 몸에서 힘을 풀어내는 것뿐이다. 매트 넓이만큼 벌린 채 툭 떨궈낸 다리, 겨드랑이와 팔 사이에 주먹 하나 정도의 간격을 두고 털썩 내려놓은 팔(이때 손바닥은 천장을 향한다), 살랑살랑 흔들다 툭하니 내려놓은 머리. 당신이 제대로 힘을 풀었다면 입술은 자연히 반쯤 벌어지고 미간에서는 주름이 사라진다. 은은한 조명마저 소거한 방안에서 우리는 각자의 매트 위에 떠 있는 하나의 섬이 된다.


60분에 해당하는 요가 시간 중 10분의 1에 조금 못 미치는 5분가량이 사바아사나에 할애된다. 마지막 5분의 온전한 비움을 위해 55분을 채우는 것이다. 기분 좋은 피로감이 눈꺼풀에 사르르 내려앉으면 오래된 슬픔도 잠깐은 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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