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년 이후 7년 만에 한국에서 독주회를 가지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장영주). 그녀는 한국이 낳은 천재 음악가의 대명사로, 만 8세의 어린 나이에 뉴욕필 협연으로 세계 무대에 데뷔한 이후 EMI와 계약하면서 세계 최연소 레코딩 기록을 보유한 천재 뮤지션이기도 하다. 2006년 뉴스위크 매거진에서 '리더십이 강한 20인의 여성'으로 선정된 바 있고, 사회적 성취와 활동을 인정받아 2008년에는 세계경제포럼(WEF) 선정의 영 글로벌 리더로 뽑혔다. 2005년 예일대학교에서 스프라그 홀에 사라장의 이름을 딴 객석을 마련했으며, 2012년에는 하버드 대학교로부터 '뛰어난 예술 리더십상'을 수상했다.
사라장이 사용하는 바이올린인 '과르네리 델 제수'는 스트라디바리우스, 아마티와 함께 바이올린의 3대 명기로 꼽힌다고 한다. 세계에서 가장 비싼 현악기로 꼽히는 과르네리는 17~18세기 이탈리아 크레모나 지역 출신 현악기 제작 가문의 이름이다. 과르네리 중에서도 델 제수는 바르톨로메오 주세페 과르네리(1698~1744)가 만든 악기로 현재 120여 대가 전해 온다고 한다. 과르네리 델 제수는 차분한 소리를 내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달리 박력 있고 개성이 넘치는 소리로 유명하다. 1735년산 과르네리 델 제수는 210억원에 달한다고 하니 그 가치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겠다. 참고로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는 스트라디바리우스와 과르네리를 함께 썼었다고 한다. 핀커스 주커만은 스트라디바리우스에 대해 ''손을 대는 순간 온몸에 전율이 흐른다''고 표현하기도 했다.
내가 중학생 일 때 우연히 사라장의 연주를 TV로 보다가 바이올린 소리 자체도 너무 좋았지만, 소리 하나하나에 몰입해서 연주하는 사라장의 멋진 모습에 한 순간에 매료된 적이 있었다. 그래서 그 날부터 바로 바이올린 개인 레슨을 받기 시작했는데, '나는 바이올린 신동이 아니라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1년 정도만에 그만둔 적이 있었다. 그 뒤로 사라장의 공연을 직접 관람이라도 하고 싶었는데, 세계적인 거장이라 한국에서 만나기도 쉽지 않았고 티켓도 금방 매진되어서 구할 수 없었다.
올해에는 데뷔 30주년을 앞둔 바이올리니스트 사라장이 특별히 내한공연을 준비했다. 그렇게 오랜 시간 고대하다가 이번에 처음으로 예술의 전당에서 그녀의 연주를 가까이에서 직접 볼 수 있는 행운이 찾아왔다. 오랜만에 찾은 예술의 전당은 2020년을 맞이하는 예쁜 장식들로 더욱 아름다웠다. 콘서트홀의 음향도 역시 압도적이었다.
이번 공연의 레퍼토리는 '원초적 민속성'과 '도회적 세련미'로 압축된다. 사라장의 독주회인만큼 바르톡 ‘루마니아 민속 무곡’, 프랑크 '바이올린 소나타 가장조', 엘가 ‘사랑의 인사’, 드보르자크 ‘로망스’, 바치니 '고블린의 춤', 라벨 ‘치간느’ 등을 들려주며, 때로는 서정적이고 잔잔하게, 때로는 웅장하고 화려하게 바이올린의 선율이 마음속 깊은 곳까지 흘렀다. 특히, 내게 가장 익숙한 선율인 '사랑의 인사'는 달콤하고 단정한 정서가 살아 있어 더욱 빛나는 연주였다.
선명하게 울리는 고음의 비브라토와 깔끔한 음색, 아름다운 화음이 조화를 이루어 관객들에게 귀호강의 진수를 선물해 주었다. 피아노 연주는 시애틀 타임즈로부터 '강렬한 예술성과 파워'라고 찬사 받은 재능 있는 미국의 피아니스트 홀리오 엘리잘데가 무대에 올라서 사라장과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었다. 기립박수와 함께 3번의 앙코르곡을 끝으로 행복한 공연이 마무리되었다. 그야말로 예술의 깊이와 예술가의 성숙, 우리가 음악을 대하는 진정성이 함께 공유되는 무대였다.
2019년 어느 겨울날에 세계적인 바이올리니스트의 낭만적이고 화려한 연주로 색다른 행복을 경험했다. ''하루 연습하지 않으면 나 자신이 알고, 이틀 연습하지 않으면 동료가 알고, 사흘을 연습하지 않으면 청중이 압니다. 성공의 비결은 끊임없는 연습입니다.'' 사라장은 천부적인 재능을 타고났지만, 그녀의 연주는 그동안 쏟았던 노력과 기나긴 연습의 결과라는 사실을 느낄 수 있었던 시간이었다. 나는 '바이올린 신동'은 아니었지만, 사라장의 연주를 들으면서 바이올린 관객으로서라도 천재적인 연주를 깊이 느낄 수 있는 '관객 신동'을 꿈꿔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