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은 왜 폴란드로 갔는가. 1951년 한국전쟁 고아 1,300명이 비밀리에 폴란드로 보내졌다. 북한은 그 당시 공산권 동유럽 국가들에게 전쟁 고아 몇 천명을 보내 잠시동안 보살핌을 받게 하였다. 이 비밀실화는 폴란드 공영방송의 다큐멘터리로 제작되어 세상에 알려졌고, 폴란드에 있는 '김귀덕'이라는 13살 북한소녀의 묘지를 보고 히스토리를 찾아나선 폴란드 기자를 통해 소설화 되기도 하였다. <폴란드로 간 아이들>은 다큐멘터리 영화라서 서울시내 개봉관은 많지 않았어도, 부산국제영화제 초청작이 되었고 이미 누적 관객수 4만 정도라니 비밀실화를 찾아가는 과정에 다들 감동할 수밖에 없었다.
배우에서 감독으로 인생 제2막을 열며 10년만에 복귀하신 추상미 감독님. 출산 후 아이에 대한 집착으로 우울증을 겪으면서 세상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돌리기 시작하던 중, 운명처럼 <폴란드로 간 아이들> 스토리를 접하게 되었다고 한다. 추상미 감독님은 '우연히 한 지인 출판사에 갔다가 이야기를 듣고 극영화로 개발하게 됐다'라고 밝히며 '극영화 시나리오를 완성하려던 차에 폴란드와 접촉해보니, 아이들을 돌본 분들의 나이가 현재 80대 후반 또는 90대였다. 이 분들의 증언과 육성을 기록으로 남기는 게 우선이라고 생각했다'라고 설명했다.
그녀는 91세의 나이로 아직 생존하고 계신 보육원 원장님을 만나, 생생한 이야기를 직접 들으며 폴란드 현지에서 자료수집에 몰두했다. 현존하고 계신 폴란드 교사들이 80대, 90대의 나이에도 정정하신 모습에 놀랐고, 70년 정도 지난 과거를 생생히 기억하고 구체적으로 묘사하는 모습에 또 한번 놀랐다. 추상미 감독님은 탈북민 청년들을 대상으로 오디션을 실시하여 극영화 주인공으로 발탁된 이송씨와 함께 폴란드 여정을 함께 하였다.
프와코비체라는 폴란드의 땅끝 마을은 네비게이션에도 잘 나오지 않는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운 곳으로 마을 전체가 보육원 같은 역할을 했다고 한다. 폴란드 교사들이 아이들을 처음 보았을 때 까만 머리, 까만 눈에 생전 처음 보는 동양 아이들이었다. 그러나 그 아이들이 머나먼 타국의 아이들이 아닌 그들의 유년 시절의 일부 같았다고 했다. 2차 세계대전을 겪은 폴란드 선생님들 또한 전쟁으로 인한 상처를 가슴에 품고 있어 북한 전쟁 고아들의 마음을 아주 따스하게 어루만져줄 수 있었다. 자신들의 어린 시절을 투영하면서 함께 부모잃은 슬픔을 달래고자 보육원 교사들은 자신들을 '파파', '마마'로 부르게 했다.
북한 고아들이 겨우겨우 가족을 잃은 슬픔을 잊고 진정한 행복을 마주하게 될 때쯤 북한에서 천리마 운동으로 노동력 확보차원에서 8년만에 아이들을 송환하라는 명령을 내린다. 동유럽에 흩어진 북한 고아들을 불러 들이는 건 또 한번 큰 이별의 상처를 남겼다. 북한으로 돌아가지 않으려고 눈밭에 누워버린 아이들, 병을 얻어서라도 폴란드에 머무르려는 아이들..은 끝내 전원 북한으로 향했다. 전쟁에서 첫번째 부모를 잃었고 송환으로 두번째 부모를 잃었다.
그들은 북한에 돌아간 이후로도 폴란드를 그리워 하면서 그동안 배운 폴란드어로 손편지를 써서 선생님들께 보내고, 편지 안에 보육원의 모습을 직접 스케치 하여 그리움을 전달하기도 한다. 고된 일상에 지친 아이들이 폴란드로 다시 데려가 달라면서 떼를 쓰기 시작하자, 폴란드 선생님은 답장을 잘못 했다가 아이들에게 해가 될까봐 어느 순간부터 답장을 하지 않았다며 눈물을 흘리셨다.
2018년 현재 북한으로 돌아갔던 고아들은 폴란드어와 러시아어에 능통하다는 이유로 엘리트 계층을 형성하여 폴란드 대사나 러시아 영사가 되신 분도 있다고 한다. 물론 고생 끝에 그리운 폴란드로의 이민을 준비하다가 돌아가신 분도 있다고 하니, 이 자체가 영화같은 스토리이긴 하다.
실화를 추적하는 과정과 함께 추상미 감독님과 이송 배우가 친해지는 과정도 그려져서 또 한편의 실화를 영화 속에 담아냈다. 영화의 모든 과정이 서로의 아픔을 사랑과 연민으로 감싸며 치유의 길로 나아가는 것이었다. 누군가의 상처들이 하나의 사랑으로 승화되는 순간이다.
보육원 원장님은 자신의 삶을 돌아봤을 때 8년동안 아이들을 돌보았던 시기를 인생에서 가장 소중하고 의미있던 때였다고 밝혔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를 남기고 눈시울을 붉혔다. '그 아이들을 만난다면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전해주세요.'.. 인간의 존엄성에 대한 경의, 위대한 사랑의 경이로움이 느껴져 너무나 뭉클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