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람의 판도라 상자가 되어버린 핸드폰. 이제 핸드폰 안에는 누군가의 인생과 일상이 고스란히 담겨있다. 현대인이라면 핸드폰을 잃어버리는 순간 거의 모든 일상이 마비되기도 한다. 하루종일 핸드폰을 붙들고 있으면서 누군가와 계속 대화하고, 즐겁게 쇼핑도 하고, 놀러가서 사진도 찍고, 지도를 보면서 길찾기도 하고, 각종 SNS 탐방과 긴급업무도 처리하고..만능재주꾼이자 베스트프렌드이다.
영화 <완벽한 타인>은 현재 박스오피스 1위로 한국 코믹영화로서는 최단 시간 100만을 돌파하였고, 이미 손익분기점을 넘었다고 한다. 과장되지 않은 유머로 억지 웃음이 아닌 자연스럽게 빵빵 터지게 하는 유쾌, 통쾌한 영화를 오랜만에 보게 되어 흡족했다. 한강이 내려다 보이는 전망좋은 집이라는 한정된 공간에서 대부분 촬영되어서, 거대한 스케일이나 화려한 영상미는 없더라도 유해진, 조진웅, 이서진, 김지수, 염정아라는 걸출한 배우들이 모든 걸 다 해냈다. 찰진 대사, 견고한 연기력, 섬세한 연출력, 신선한 소재와 적절한 상황들까지 완벽한 앙상블이었다.
시작부터 핸드폰 공개라는 독특하고 신선한 발상이 관객들의 기대감을 상승시켰다. 한 친구가 저녁식사를 하는 동안 핸드폰의 모든 내용을 오픈하자는 게임을 제안한다. 이 제안을 거절하면 오히려 의심을 받을까봐 다들 흔쾌히 게임을 시작하게 된다. 전화는 스피커폰으로 모두가 들리게 통화하고, 문자나 카톡, 이메일 할 것 없이 싹 다 공개되었다. 공적인 일상, 개인적인 일상, 비밀스러운 일상이 하나둘씩 드러나기 시작하면서, 전혀 상상치 못한 상황이 벌어지게 된다. 차례차례 등장인물들의 실체가 드러나면서, 돌발적인 상황들과 함께 입체적인 전개와 서사적인 낭만스토리가 가미되었다.
전화벨 소리, 카톡오는 소리, 이메일 수신음이 울릴 때마다 배우들 뿐만 아니라 관객들도 긴장하게 만드는 스릴이 있었다. 40년지기 친구끼리, 20년 된 부부끼리도 몰랐던 무궁무진한 비밀을 알게 되는 순간, 희극보다는 비극이 펼쳐진다. 험담, 질시, 거짓말, 변명 등으로 견고했던 관계가 삐그덕거리는 소리가 들리기 시작한다. 영화 속에서 개기일식의 장면들이 자주 비춰지는데, 달이 태양을 완전히 가려서 한 순간 어둠 속에 있다가 다시 숨겨져 있던 것들이 훤히 드러나는 순간, 누구도 이미 일어난 일들을 감쪽같이 속일 수는 없었다. 비밀을 알게 되면 어쩔 수 없이 그 관계는 변질된다.
우스꽝스럽게 묘사된 상황들이 큰 웃음을 선사했지만, 진지하고 진솔한 메시지도 뒤섞여서 삶의 희노애락을 담아냈다. 그야말로 팩트폭행으로 절대적인 공감을 이끌어냈다. 배우 유해진의 인터뷰에서 '쉼표와 느낌표와 물음표가 적절히 있는 작품이라고' 소개하였는데, 핸드폰에 담긴 일상의 세계를, 그리고 모든 걸 알 수 없는 완벽한 타인의 존재를 다시 생각해 보게 하는 영화였다.
영화의 끝은 다시 핸드폰 오픈게임을 하지 않았던 상황으로 돌아간다. 얼마나 평화롭고 행복하고 안정된 관계인지 모른다. 아는 게 병이고, 모르는 게 약이라는 게 맞긴 하나 보다. 하지만 비밀을 알지 못하는 등장인물들의 해맑은 미소와 솔직한 척하는 대화가 오고 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오히려 소름이 돋았다.
영화를 보면서 실컷 웃고난 뒤에 타인 몰래 핸드폰 안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무언가로 인하여 식은땀이 흐르는 사람들도 많이 있을 거다. 이 영화는 나에게 '당신의 핸드폰은 괜찮은가?'라고 물어보는 느낌이 들어, 괜히 내 핸드폰을 이리저리 살펴보게 된다. 영화관을 나서는데 당장 핸드폰 내용을 공개해 보라며 싸우는 커플도 눈에 띄었다. 만약 가까운 지인 중 누군가에게 잠깐이라도 핸드폰 잠금패턴을 알려달라고 한다면..'응, 그래'라고 바로 응해줄 것인가, 아니면 '알면 다친다'라며 농담으로 넘어갈까. 서로의 민낯을 드러냈을 때 우리는 지속가능한 관계인가 아닌가..우리는 역시 완벽한 타인들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