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4. 추락하던 곳에 풀장이 생겼다

by 리을

시멘트로 이루어진 딱딱한 바닥에 하루에도 수십번 떨어지는 것과 같다고 느끼던 시절이 길었다.

눈에 초점이 흐려지는 나를 보면서 당신은 다짐을 한듯 했다.


내가 계속 떨어지는 그 자리에 당신은 무언가를 만들기 시작했다.

벽을 두르고, 형형색깔의 공들을 가져와 계속해서 부었다.


당신이 좋아하는 이야기, 당신이 좋아하는 음식, 당신이 느끼는 삶의 단면들

뭐가 저렇게 의미있는 것들이 많을까 생각했다. 사실 그다지 듣고 싶지 않았던 것 같다.

하지만 당신은 계속해서 색깔의 공들을 채워넣었다.

그러면서 나는 어떤 것들이 좋은지 끊임없이 물었다. 감정없이 내뱉은 말들도 주워담아 그것들에 색을 칠해 넣었다.


어느 순간 떨어지는 곳은 시멘트 바닥이 아니게 되었다. 당신이 채워넣은 다채로운 색이 가득한 공들이 가득한 풀장이 되어있었다.


"내가 풀장을 만들어줄게."


당신은 나를 위해 거대한 풀장을 만들었다.

나의 추락들은 서서히 놀이가 되었고 어느순간 추락도 멈췄다.


사랑은 어쩌면 상대방이 자꾸 떨어지는 곳에 풀장을 만드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참 유치하고 눈물겹도록


월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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