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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Sail of Argo

재발에 대처하는 나의 자세

재발을 막고 싶다면 제발 이것만은...!

by Argo

***앞의 개인적인 경험보다 재발 방지 대책을 먼저 보고 싶으신 분은 스크롤을 쭈욱 내려보세요 :) 급하신 분들은 제일 밑에 요약글로!


지난주, 그러니까 추석 이틀 전에 조짐을 보이던 인후염은 빨간날을 하루 앞두고 급격히 성장하여 밤잠을 설치는 수준까지 발전했다. 병원에서 주사 맞고 약을 받아와 복용하면서 차츰 괜찮아졌지만 1주일 동안의 컨디션이 아주 나쁨 수준으로 떨어졌다.


몸이 하루 종일 축 늘어진 젖은 빨래 마냥 쳐저있고 집중도 제대로 되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양극성 장애에 있어서 재발의 조짐으로 볼 수 있는 지표 중 하나인 수면 시간의 변화와 또 다른 중요한 지표인 감정 변화가 경고 수준 - 나만의 재발 위험기준으로 경고>위험>위기 수준으로 나뉜다. 자세한 내용은 다른 글에서 다룰 예정. -에서 위험 전 단계까지 가려는 상황에 이르렀다.


지난주 토요일부터 조금씩 잠을 잘 못자기 시작해서 피곤한데도 잠들기가 어렵고 수면시간 자체도 줄어들었다. 수면의 질 또한 나빠졌을 뿐만 아니라 사소한 일에도 짜증과 화가 치솟아서 스스로 컨트롤하기가 매우 어려웠고 부정적인 생각과 비관적인 생각 - 경미한 수준의 자살 사고, 절망감, 무력감 등 - 이 들기 시작했다. 내 생각에는 인후염 초기에 수면 부족과 스트레스로 인해 경미한 우울증 상태로 들어섰다가 경조증 삽화가 같이 발현된 것 같다.

*양극성 장애가 골때리는 이유 중 하나가 어떤 한 유형이 지속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단극성 우울증(우리가 아는 일반적인 우울증)은 우울증 삽화 하나만 존재해서 그 안에서만 상태가 좋아지고 나빠지고 한다면, 양극성 장애는 우울증 삽화와 조증 삽화가 존재하며 우울증 삽화에 있다가 조증 삽화로 변화하거나 그 반대, 혹은 이 두가지 삽화가 동시에 일어나는 혼재형도 있다. 이런 양극성 장애의 특징이 환자 스스로가 질환에 적응하지 못하도록 할 뿐만아니라 의료진의 치료적 개입에도 많은 어려움을 준다.


제 1형 양극성 장애 진단을 받은지 4년 차인 나에게 지난 1주일 간의 증상은 상당히 당황스러웠고 나 혼자 대처할 수준은 넘어섰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어제 다니고 있는 병원에 가서 의사 선생님을 만나 상황을 이야기하고 수액을 처방받아 맞고 집에 왔다.


수액은 마늘주사에 안정제를 추가한 것인데 효과는 탁월했다. 맞기 전에는 수면 부족으로 인해 피곤하고 감정 기복도 있어서 만성적인 짜증 상태였는데 맞으면서 1시간 정도 딥슬립을 하고 난 후에는 거의 모든 증상이 사라지고 몸도 마음도 편안해졌다. 다 맞은 것도 모르고 간호사 분이 깨워줘서 겨우 일어났다.


어제에 이어 오늘까지 지켜본 결과에 의하면 수액을 맞은 것으로 일단 위험 단계에서 벗어나 비교적 안정 상태로 접어든 것 같다. 감정 변화도 적어졌고 집중도 잘 됐으며 피곤함도 거의 사라졌다. 낮에 잠깐만 누워 있어야지 하고 누웠는데 1주일 만에 꿀낮잠을 자기도 했고.


양극성 장애에 있어서 재발은 공포의 대명사이자 바늘과 실 같은 존재다. 다수의 서적과 연구 결과에서 양극성 장애 환자의 대다수가 평생 동안 재발과 씨름하면서 살고 있고 대단히 실망+절망스럽게도 아무리 잘 관리한다해도 재발이란 녀석이 찾아올 가능성이 있다(그렇다고 해서 재발을 방지하기 위한 노력을 포기하면 아니되오...).

*연구결과(마이클 기틀린 외, UCLA, 1995) 조증 혹은 우울증 삽화를 경험한 사람의 60%에서 2년 이내 재발을 경험할 수 있으며, 평균적으로 4~5년 후에는 73%가 재발을 경험한다고 한다. 또 다른 연구(Judd 등, 2002)에서는 양극성 장애 환자들을 13년간 추적한 결과 그들이 우울증, 조증, 혼합 삽화 혹은 그 순환으로 인해 인생의 절반을 고통받았다고 보고했다. 1,469명의 양극성 장애 환자들을 대상으로 한 프로그램(Perlis 등, 2006)에서 추적 연구 결과 49%의 환자가 다음 2년 내에 재발했다. (이상 <조울병 치유로 가는 길>에서 참조).

+"양극성 장애는 재발률이 높아 삽화로부터 회복된 1년 이내에 약 절반의 환자들은 다음의 삽화를 경험하게 되며, 조증을 겪은 환자들의 최소 80%는 조증의 재발을 경험한다" (<양극성 장애 : 조울병의 이해와 치료)>


양극성 장애가 발병하기 이전에 전공 시간을 통해 이 질환에 대해 알고 있었고 발병 후에 더 많은 공부를 하며 양극성 장애의 핵심은 "재발을 최대한 막는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여러 서적과 연구 결과를 토대로 나의 재발 방지 노력 - 노력이라기 보다는 발악에 가까운 - 은 다음과 같다.


양극성 장애 재발 방지 대책 By Argo.

0. 약을 성실히 복용한다(가장 중요하고 확실한 방법!).

재발 방지와 치료의 가장 기본은 약을 성실히 복용하는 거다. 그 어떤 치료도 약물 치료를 근본적으로 대체할 수 없으며 상담이나 운동, 기타 여러 방법은 그저 "보조적인" 역할을 수행할 뿐이다. 건강보조식품 - 예를 들어 양극성 장애 치료에 도움이 된다고 알려져 있는 오메가3 같은 - 은 말그대로 건강을 보조하는 식품에 불과하다.

지금까지 과학적으로, 의학적으로 양극성 장애 치료에 효과적이라고 밝혀진 건 약물 밖에 없다. 부작용 때문에 약 복용이 어렵고 꺼려지는 건 사실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대체 요법을 선택해서는 안된다. 오히려 상황을 악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 약초나 몸에 좋다는 식물들도 양극성 장애를 악화 시킬 수 있다. 마황의 경우 조증을 유발할 수 있다고 알려져 있다. 이 부분은 다른 글에서 또 다룰 것이다.

+ 한방 치료도 그다지 추천하지 않는다. 위에서 말한 내용을 바탕으로 한약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입장이다. 사실 한의학은 현대의학에 비해 검증이 비교적 안 되어 있다. 특히 정신 질환에 있어서 질환의 기전이라든지 치료의 작용에 대한 연구가 현대의학에 비해 체계적인 연구가 그다지 이루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아직까지는 현대의학을 믿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1. 자신의 양극성 장애 유형에 대해 정확히 안다.

양극성 장애는 다양한 유형이 있기 때문에 그 유형에 따라 재발의 유형이나 기간, 치료법, 대처법도 각각 다르다. 우선 자신이 어떤 양극성 장애 유형인지 파악하도록 하자. 보통 의사의 진단을 보면 알 수 있는데, 나의 경우에는 현재 F 31.6 양극성 정동장애, 현존 혼합형으로 "과거에 적어도 한번은 확실한 조병, 경조병, 우울병 또는 혼합형 정동 에피소드가 있으며 현재 조병 및 우울병 증상의 혼합 또는 빠른 교대를 보이는 상태"(네이버 지식백과, 한국표준질병 사인분류)이다(관련 서적에서 흔히 나오는 제 1형 양극성 장애).

발병 초기에 조증 삽화가 3개월 정도 있었고 그 후 심한 우울 삽화가 2~3년 정도 있었다. 질병코드가 F 31.3에서 31.4로 변할 정도로 심한 우울증 삽화를 겨우 지나 작년부터 차츰 안정기로 향하는 중이다(관해기로 가기엔 아직 좀 멀...ㅠㅠ).

긴 우울 삽화가 거의 끝을 고하고 정상 범위에 경조증을 왔다갔다 하는 중이라 우울증 보다는 경조증으로 재발하는 걸 방지하는데에 초점을 두고 있다. 사람마다 경조증이나 우울증 중 어느 것이 더 잘 재발하고 그 양상이 어떤지 다르므로 스스로 파악하고 인지하는 게 중요하다.


2. 자신의 증상 즉, 이전에 나타났던 주된 삽화가 어떤 것이고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안다.

위의 1번과 비슷한 내용이지만, 1번이 대분류라면, 2번은 소분류에 해당한다. 같은 양극성 장애라도 사람마다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 다르다. 양극성 장애의 주요 특징이 기분 변화와 활동, 에너지의 변화(최근 연구 결과에서는 기분 변화보다 활동 수준, 에너지의 변화 또한 양극성 장애의 핵심 증상이라고 보고 있고 이에 따라 DSM-5에서도 기분 변화 뿐만 아니라 활동과 에너지에 대한 부분이 추가 되었다)라지만 DSM의 진단 기준에서 보면 알 수 있듯이 세부적인 증상은 다양하다.

따라서 자신의 주된 증상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고 있어야 후술할 대책 3번을 이용하는데 어려움이 없다.

*자세한 진단 관련 내용은 다른 글에서 다룰 예정!


3. 재발 징후를 알아차리자(매우 중요, 아주 중요, 진짜 중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을 정도로 중요!)

앞에서 말한 1,2번이 밑거름이 되어 3번에서 쓰인다. 이전에 나타난 증상이 무엇인지 알고 그것을 토대로 재발이 가까이 왔을 때 어떤 증상이 나타나는지 기억하자. 가급적이면 재발 징후를 어딘가에 적어 놓자.


나의 경우, 재발 징후로는 수면 시간의 변화와 감정 변화, 활동량의 변화가 있다.

세부적으로 보면, 정해놓은 수면시간 - 밤잠 4.5~6시간, 낮잠 1~2시간. 총합 6~8시간 - 을 체크하면서 감소하거나 증가하는 정도를 파악한다. 어쩌다 한번, 그리고 이유가 있어서 감소하거나 증가한 경우에는 괜찮지만 별다른 이유가 없거나 설령 있다해도 며칠 동안 반복적으로 변화가 있다면 주의 깊게 살피고 모니터링한다.

감정 변화의 경우 사소한 일에도 짜증이 나는가, 벌컥 화를 내는 경우가 늘었는가, 격한 행동을 하거나 거친 언어를 사용하는 빈도가 어느 정도인가, 근거 없이 비관적 혹은 부정적으로 생각하고 느끼지 않는가, 큰 이유없이 혹은 이유가 있더라도 평소에 비해 들떠있지 않은가 등을 체크한다. 특히 짜증과 분노, 격한 행동과 언어는 경조증과 조증의 조짐을 비교적 쉽게 나타내기 때문에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상태를 알 수 있다.

활동량우울 삽화 때는 감소하고 조증, 경조증 삽화에서는 증가한다.

우울 모드로 전환하려고 할 때는 무기력하고 아침에 일어나기가 싫고 - 이불 속이 천국이죠 - 밖으로 나가는게 너어어어어무 귀찮다. 특히 매일 하는 운동이 귀찮고 하기 싫어진다면 조금 의심해 볼만 하다. 그리고 씻기가 싫고 실제로도 잘 안 씻는다면 우울 모드의 전조 증상일 수 있다(사실 이게 좀 강력하...ㅋㅋㅋ).

그리고 조증, 경조증 전에는 갑자기 세상 발랄 활력 초싸이언이 되어 많은 일을 벌리고 - 평소에 하던 일보다 더 많은 일을 계획하거나 실행하고 - 약속을 무리하게 잡거나 너무 나돌아다닌다(내 성격상 내향적이고 집돌이인데 한 주 동안 거의 매일, 하루의 절반 이상을 외출하거나 약속을 잡는다면 이상하다고 볼 수 있다).

+ 양극성 장애 환자들을 위해 나온 앱이 있다. eMoods 라는 앱인데, 기본 추적 요소로는 수면, 기분, 체중 등이 있으며 여성의 경우 생리 주기에 따라 기분 변화 및 증상의 변화가 있을 수 있기 때문에 생리 주기도 기록할 수 있다. 기본 추적 요소 이외에도 사용자의 편의에 따라 여러가지 추적 요소를 추가할 수 있으며 처방약 체크도 할 수 있다(이거 진짜 중요한 기능!! 약먹는 거 의외로 잘 까먹는 단 말씀. 4년차인 나도 가끔 잊어버리거나 먹어 놓고서 안 먹은 줄 앎...). 캘린더와 그래프로 기록을 볼 수도 있고 리포트로 내보낼 수도 있어서 나중에 진료 받을 때 가져갈 수도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 암호를 설정할 수도 있으니 안심하고 사용할 수 있다. 아이폰 유저라 안드로이드에는 있는지 잘 모르겠다. 참고로 이 앱 제작자이거나 돈 받고 홍보하는 건 절대 아니다.


4. 수시로 내 상태를 체크한다. 최소한 1주일에 한번이라도!

3번에서 체크리스트를 만들었다면 수시로 체크리스트를 보며 체크하는 습관을 갖자. 항상 재발을 염려하며 초긴장상태로 있을 수는 없지만(그래도 안되고), 약간의 긴장감을 가지고 관심을 가져야 한다. 나는 거의 매일 일기를 쓰는데, 그날 있었던 일과 그 일과 관련된 생각이나 감정 혹은 하루 동안 느꼈던 감정이나 생각했던 것들을 적으면서 하루를 평가한다. 이 시간을 통해 현재 상태를 비교적 명확하게 파악할 수 있고, 뭔가 이상하다 싶으면 체크리스트나 앱의 기록을 보면서 상황을 검토한다.


5. 대응 방법을 정해 놓는다.

앞에서 나만의 재발 위험 기준(경고, 위험, 위기)이 있다고 했는데 각 단계별로 대응 방법이 다르다.

우선 경고 단계스스로 컨트롤이 가능한 범위다. 기분 증상이 나타났을 때 일기 쓰기나 좋아하는 글 필사하기, 산책, 음악 감상, 운동, 상담 치료 등을 통해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이다. 물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지는 말자. 내 경우에는 엄마가 심리학적 지식이 있고 상담을 했던 경력이 있어서 내 판단을 보충해주는 역할을 한다. 내 판단과 엄마의 판단이 "경고" 수준일 때 위의 방법 만으로 대처해도 충분하다.

+감정과 생각에 대한 꿀팁 : 인지치료 기법을 토대로 내가 자주 쓰는 건데,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감정과 생각이 사실에 근거하여 올바른 것인지 검증하는 방법이다. 스토아 철학도 유용한데 인지치료의 개념 자체가 스토아 철학에서 나왔으므로 근본적인 접근법은 같다.


위험 단계내 스스로 관리하기 어려운 수준으로 증상이 전개되고 있을 때다. 기분 변화가 심해서 내가 다잡으려해도 잘 안 될때, 아무리 노력해도 2~3일 이상 잠을 제대로 잘 수 없을 때, 활동 수준이 너무 증가하거나 감소해서 제어가 되지 않을 때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이 때는 보통 의료진의 개입이 필수적인데, 약물치료와 수액의 도움을 받는다. 개인적으로 약물을 추가하는 걸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 약물을 추가하면 적응하는데 걸리는 시간과 부작용이 상당하다. 지금 수준의 약으로 바꾸기 까지 오래 걸렸고 그 동안 먹었던 약의 부작용이 꽤 심각했기 때문에 약물의 추가적인 복용을 싫어하는 편이다 - 의사 선생님과의 합의하에 수액(안정제가 들어간)을 맞는 것을 1차로 하고 그래도 안 될 경우에는 추가적인 약물을 복용한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약물을 추가하는 단계까지는 안 갔다. 수액을 맞는 건 영양을 보충할 뿐만 아니라 충분한 수면을 취할 수 있게 함으로써 수면 부족으로 생기는 증상들을 개선하려는 방법이다. 의사 선생님은 뇌가 과잉 활성화된 상태에서 열을 받은 걸 수액을 통해 충분한 수면을 취하면서 그 열을 식혀줘야 한다고 설명해주셨다.

+ 내 상황과 의사 선생님의 판단이 있었기 때문에 수액을 통한 대처가 가능한 것이지 모든 사람이 수액으로 대처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지금 의사 선생님과 내가 꽤 오랜 시간 동안 구축한 신뢰 관계를 토대로 토의한 결과이기 때문에 무턱대고 "이런이런 방식이 있다는데 저도 해주세요" 이러면 곤란하다. 가끔 보면 인터넷에서 블로그나 까페의 글들을 보고 의료진에게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잘못된 지식을 섭취하고 오용하는 경우가 있는데 정말 위험하다. 대게의 경우 전문적인 지식이 없는 환자의 자의적인 판단과 지극히 주관적인 경험을 토대로 작성된 글이라 필터링을 거쳐 참고만 하는 게 바람직하다(이건 내 글도 그렇다). 의료진과 신뢰 관계를 쌓고, 그 의료진이 전문성을 갖추고 있다면 그들과 상호 협력하면서 치료를 진행하는 것이 기본이고 무엇보다 중요하다.

+ 의료진에 대해서 할말이 많은데, 이것도 다음에 쓰겠습니다!


마지막으로 위기 단계재발이 거의 확정된 단계로 이때는 고민할 필요도 없이 무조건 입원해야 한다. 예전에 입원했던 병원이 있으면 거기로 가거나 종합병원의 응급실로 직행해서 가능한 빨리 가능한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치료를 받아야 한다. 사전에 입원할 수 있는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 폐쇄 병동이라면 환경은 어떤지 알아보고 미리 정해두는 것이 좋다.

내 경우에는 우울 삽화일 때 3번 입원 했었는데 모두 같은 대학병원에서 있었다. 내가 사는 지역에 폐쇄 병동이 있는 종합병원이 별로 없기도 하고 시설이나 의료 서비스도 괜찮아서 만약 다음에 재발한다면 여기로 갈 생각이다.

+의료 수가 문제로 폐쇄병동이 없거나 병상 수가 줄어드는 병원이 늘고 있다. 최근에 정신 질환자들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데 정작 기본적이고 필수적인 인프라 구축은 제자리 걸음도 아니고 퇴행하고 있으니 안타깝고 걱정스럽다.

+ 입원 시 장기 입원은 그리 추천하지 않는다. 미국이나 유럽의 선진국의 경우 단기 입원을 통해 위험한 증상을 치료하고 나면 퇴원해 통원 치료를 하는 경우가 대세다. 장기 입원을 해야하는 극소수의 경우를 제외하면 증상이 어느 정도 잡혔을 때 퇴원하는 게 좋다.

+ 입원할 때 장점은 치료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환경에서 벗어나 치료에 전념할 수 있다는 거다. 체계적인 관리와 집중적인 치료로 증상 호전에 도움을 줄 수 있는 반면에, 같이 입원한 환자들에 따라 도움이 될 수도 안 될 수도 있다. 3번의 입원 중 2번은 같이 병실을 쓴 환자뿐만 아니라 폐쇄 병동에 있었던 환자들 모두 비교적 증상이 심하지 않았고 질환별로 다르긴 했지만 괜찮게 지냈다. 하지만 최근에 입원했을 때는 폭력적인 환자가 몇 명 있었고 의료진이나 다른 환자를 위협하는 등의 문제가 있었다. 따라서 환자 본인이나 보호자는 이런 부분을 파악하고 부정적인 영향이 예상될 때는 전원하거나 의료진에게 적극적인 해결을 요구해야 한다.


6. 주변인의 도움을 받는다.

자가 진단만으로는 자신의 증상과 재발 위험을 파악하기 어려울 때가 있다. 나의 경우에는 충분한 지식이 있는 엄마의 관찰을 통해 증상을 인지할 때가 종종 있다. 신뢰할 만하고 정신과적 지식이 있는 사람을 선정해서 그 사람에게 내 증상에 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으면 좋다. 보통 가족들이 이런 역할을 맡는 것이 좋은데 그러기 위해서는 가족들이 질환에 대한 지식이 있어야 하고 환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있어야 한다.

+문제는 가족과 사이가 좋은 환자가 별로 없다는 거다. 입원했을 때 살펴본 결과 가족들이 환자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 부족한 경우가 많았다. 내가 입원했던 병원에는 가족 교육 프로그램이 있었는데 이 프로그램을 통해 엄마가 양극성 장애 뿐만 아니라 정신질환 전반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었다. 가족들이 필요한 의학적 지식을 습득해 적절하게 사용할 수 있어야 한다.


7. 재발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며 그렇다고 그것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걸 명심한다.

양극성 장애는 피니쉬 라인이 없는 마라톤과 같다. 만성 질환이기 때문에 재발의 위험성을 항상 염두해 두면서 끊임없이 관리하며 살아야 한다.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하는 건 말처럼 쉽지 않다. 나 또한 하루에도 몇 번씩 재발 방지를 위한 노력이 버거울 때도 있고 이렇게 살아서 뭐하나 싶다. 하지만 그럼에도 내가 포기하지 않는 이유는 내가 원하는 삶을 살고 싶기 때문이다. 나는 글을 쓰고 싶고 제한적이지만 그래도 누릴 수 있는 소소한 행복과 즐거움을 누리고 싶다. 비록 양극성 장애로 인해 내 삶의 많은 부분을 잃어버렸고 고통을 겪고 있지만 그럼에도 나는 내게 주어진 삶을 끝까지 살아내고 싶다.

재발이라는 거친 파도가 밀려올 때마다 내가 왜 살아야하는지, 내가 왜 재발 방지를 위해 노력해야 하는지 그 이유를 명확히 하고 늘 되새겨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이 길고 긴 싸움에서 쉽게 지치고 낙담할 수 밖에 없다. 의지로 병이 낫는 건 아니지만 - 정신 질환에 대한 흔한 오해가 환자의 의지로 병이 나을 수 있다는 거다 - 의지 없이는 치료 과정을 견딜 수 없다.

+ 빅터 프랭클의 <죽음의 수용소에서>에 보면 의미치료에 대해 나온다. 삶에 의미에 대해, 그리고 그 의미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알 수 있는 책인데 양극성 장애 환자들이 이 책을 읽는다면 매우 유익할 것이라고 확신한다. 강력 추천!!!


쓰다보니 정말 길어졌다. 원래 생각했던 내용에 더 추가된 부분도 있고 내용을 정확히 쓰려다보니... 3시간 넘게 붙잡은 글을 이제는 끝내야겠다. 부디 이 글이 도움이 되었으면!

+ 질문이나 기타 다른 의견이 있다면 댓글 혹은 hearmy@naver.com으로 연락해주세요. 빠른 답변을 약속드리지 못하지만 가급적이면 답변하도록 하겠습니다.


요약 :

0. 약을 성실히 복용한다.

1. 자신의 양극성 장애 유형에 대해 정확히 안다.

2. 자신의 증상 즉, 이전에 나타났던 주된 삽화가 어떤 것이고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 어떤 것인지 정확히 안다.

3. 재발 징후를 알아차리자.

4. 수시로 내 상태를 체크한다. 최소한 1주일에 한번이라도!

5. 대응 방법을 정해 놓는다. 스스로 관리할 수 없는 상태라면 의료진의 도움을 받아 약물치료를 비롯한 다른 치료를 받는다. 응급 상황에서는 반드시 입원 치료를 받는다.

6. 주변인의 도움을 받는다.

7. 재발은 언제든 일어날 수 있으며 그렇다고 그것이 내 인생의 끝이 아니라는 걸 명심한다.


긴 글 읽느라 수고하셨습니다~ :>


#양극성장애 #정신과 #정신질환 #조울증 #재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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