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전에는 양면이 있다죠
양극성 장애는 내게서 많은 걸 앗아갔다(그렇게 다 가져가야만 했냐!!!).
인간관계, 인지능력, 신체적 정신적 심리적 건강, 자기확신, 자존감, 돈...
남들에게는 흔한 일상이 내게는 사치일 때, 그 기분을 아는가? 심지어 그것들은 나도 이전에 당연히 누려왔던 것들이었다.
3년. 3년하고 조금 더. 내가 양극성 장애를 조금씩 받아들이고 뒤바뀐 현실에 적응하며 살기까지 걸린 시간이다. 나는 이 시간동안 매일 매일이 지옥같았고, 단 하루도 자살을 떠올리지 않은 날이 없었다. 성인인 당신이 유아가 되었다면, 이해하기 쉬울까? 그전에는 쉽게쉽게 읽던 책을 한시간 동안 붙잡고 있어도 읽을 수 없고, 방금 읽은 것도 잊어버려서 하나도 기억이 안날때, 당신은 어떤 기분이 들 것 같은가? 가장 나를 절망스럽게 한건 내가 좋아하는 글을 쓸 수 없다는 것이었다. 머리가 텅 비어서 아무 생각도 안나고 멍하니 앉아서 몇 분이 지나도록 노트만 바라봐야 했다. 발병 전까지만 해도, 전공 분야에서는 촉망받는 학생이자 제법 글을 잘 쓰고, 명석했던 나는 어느 곳에도 없었다. 그저 약에 취해 식탁과 침대, 화장실을 왔다갔다 하는, 사육당하는 동물 하나가 있을 뿐.
그간의 고통과 어려움을 다 쓰려면 너무도 길기에 나중에 또 쓰기로 하고, 이제 내가 얻은 게 무엇인지 쓰고자 한다.
나는 발병 하면서 내 세계가 완전히 전복되는 경험을 했다. 삶의 근간이 흔들린 것이다. 이 혼돈 속에서 나는 내가 진정으로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고, 어떻게 삶을 살아야 하는지 고민하게 되었다. 고통으로 가득한 이 삶을 왜 지속해야 하는지, 나는 도대체 누구이며 내 인생의 의미는 어디에 있는 지 늘 고민해야 했다. 이런 고민 속에서 나는 점차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게 되었고, 나 자신에게 솔직해지는 법과 그 동안 무시해왔던 트라우마와 상처들을 직면하는 과정을 겪었다.
양극성 장애라는 재난은 내 세계를 무참히 무너트렸지만, 나는 폐허 속에서 나만의 세계를 다시 건설했다. 이전처럼 무너지지 않을, 그리고 무너져도 다시 일으킬 수 있는 굳건한 토대를 만든 것이다. 나는 아직 부족하고 약점도 많지만, 내게 주어진 삶을 선택하고 책임을 지겠다는 각오가 있다. 삶과 죽음의 경계에서 하루하루를 보내면서 정신적인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간혹 고통이 축복이라는 말을 듣는다. 맞는 말이다. 감당할 만큼의 고통은 인간을 단련하고 성장할 수 있는 토대를 마련해준다. 하지만 한계를 넘어서 충격에 쇠가 부러지는 것처럼 지나친 고통은 인간을 파멸에 이르도록 할 수 있다. 나도 까딱하면 파괴될 뻔 했으나 주변의 도움과 나를 지탱해주는 과거의 좋은 경험과 기억 덕분에 살아남았다. 모든 사람이 나같은 환경에 놓인 건 아니다. 나는 이 사실을 잘 알고 있으며 그래서 섣불리 나와 비슷한 상황에 처해있는 사람들에게 고통을 받아들이라고, 축복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나또한 내가 받는 고통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말들을 많이 들었고, 그 덕분에 고통이 가중되었기 때문이다.
정신질환은 육체적 질환 만큼, 어쩌면 그 이상으로 더 괴로운 질환이다. 지금까지 정신질환은 완치 사례가 드물다. 양극성 장애의 경우에도 완치란 없으며, 자살률 또한 다른 정신질환에 비해 상당히 높은 편이다. 그리고 정신질환에 쓰이는 약들은 여타 다른 질환에 쓰이는 약에 비해 부작용이 많을 뿐만 아니라 상당히 심각하다. 오죽하면 임산부는 절대 먹으면 안되는 약들이 대다수겠는가. 다음에는 약에 대해서 다뤄볼 생각이다. 내 경험과 의학 정보, 그리고 여러 사례를 종합해 실제적이고 객관적인 정보를 전달하고자 노력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