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을 끄고 누운 밤,
일곱 살 막내 세하가 조용히 물었다.
“아빠, 몸에 피가 없으면 죽어?”
낮 동안 한참을 뛰놀던 아이는 잠이 들기 전,
꼭 한두 마디씩 마음속에 숨겨둔 질문을 꺼내곤 한다.
오늘은 유난히, 가볍게 지나갈 수 없는 질문이었다.
“아니야. 피를 흘려도, 피는 또 생겨.”
나는 조심스럽게 대답했다.
“아빠, 수술하면 죽어?”
“아니야. 수술을 하면 다시 살 수 있는 거야.”
작고 따뜻한 숨결 속에서 느껴지는 그 물음의 무게에
나는 대답하면서도 내 마음을 들키지 않으려 애썼다.
“그럼 꼬부랑 할머니가 되면 죽어?”
“응, 세하야. 사람은 누구나 언젠가는 죽어.
그렇지만 그건 아주아주 나중 일이야.
백 살이 되면 하나님 곁으로 가게 되는데
그때까지 아빠는 세하랑 오래오래 같이 있을 거야.
그러니까 너무 걱정하지 않아도 돼.”
세하는 한참을 말없이 내 옆에 누워 있다가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아빠... 나는 죽고 싶지 않아.”
그 말 앞에서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이제 막 세상을 알아가고 있는 아이가,
‘죽음’을 상상하고 있다는 사실이 벼락처럼 가슴에 내리 꽂혔다.
“그래, 세하야. 아빠가 옆에서 항상 지켜줄게.”
나는 그렇게 말하며 아이의 등을 쓰다듬었다.
작은 몸이 이불속에서 내게 바짝 달라붙었다.
세하는 그제야 안심한 듯 눈을 감고 조용해졌다.
그날 밤, 나는 한동안 잠들지 못했다.
언젠가 아이는 이 질문들을 잊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나는 그날의 이불속 공기를,
작은 숨결의 떨림을,
두려움을 말하는 아이의 목소리를
아마 평생 잊지 못할 것이다.
죽음이란 단어를 아직 다 알지 못하는 아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고 싶다’는 마음을 품고 있는 존재.
그 진심은 삶의 본질에 가장 가까운 외침이었다.
세상엔 우리가 대신 살아줄 수 없는 길이 있고,
대신 죽어줄 수도 없는 순간이 있지만,
함께 있어줄 수는 있다.
내가 아빠로서 할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일은
그 곁에 오래 머무는 것,
두려운 밤에 가장 먼저 대답해 주는 사람이 되는 것.
그 밤, 세하는 나에게 죽음을 묻지 않았다.
삶을 지켜달라고 말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