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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찬 the 하트히터 Apr 06. 2020

가장 보통의 존재들의 유일한 이야기

가장 보통의 존재


한국 모던 록의 효시 '언니네 이발관'


<가장 보통의 존재>는 내가 좋아하는 '언니네 이발관'이란 모던 록 밴드의 5집 앨범명이자 노래 제목이다. 이들을 처음 만난 건 두 번째 인도 여행을 다녀오고 팔 춘기가 기승을 부릴 즈음이었다. 끝없는 허기짐과 철없는 자유로움, 그리고 뭐라도 하긴 해야 한다는 막연한 의무감은 싸늘하게 식은 찬밥에 남은 음식 대충 때려 넣고 섞어버린 비빔밥이 되어 내 목구멍을 꽉 막고 있었다. '보통 사람'들이 다들 그러하듯, '보통의 방식'대로 살아가야만 하는 내 처지에 대한 20대 끝무렵의 발악이자 반항이었다.

노래가 좋기도 했지만, 사실 더 관심이 간 건 '이석원(리더, 보컬)'이었다. 그의 삶의 이력(?)에서 나오는 분위기인지는 몰라도 유약하고 자조적인 데다가 너무 현실적이라 더욱 씁쓸한 그의 센서티브함에 이끌렸다. 사실 호불로 따지자면 내가 가장 싫어하는 유형의 사람이다. 하지만 그런 그가 싫지 않았던 것은 그를 통해 내가 부정하는 나의 모습을 위안받았기 때문이었다.


나는 보통의 존재 어디에나 흔하지
당신의 기억 속에 남겨질 수 없었지
가장 보통의 존재 별로 쓸모는 없지
나를 부르는 소리 들려오지 않았지

- '언니네 이발관' 노래 <가장 보통의 존재> 가사 중





보통의 존재들이 사는 법



소설이 가진 매력 중 하나는 그 속에서 우리의 모습을 발견함으로써 때로는 공감하고 때로는 위로받으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장류진 작가의 소설집 <일의 기쁨과 슬픔>은 그 역할을 충실히 해낸다.

각 8편의 단편 소설 속에는 보통의 세계를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그들은 사회 부조리와 시스템에 치이고 상처 받고 좌절하는 존재들이다. 그런 주인공들에게 작가는 그 어떤 마법의 판타지나 극단의 절망을 부여하지 않는다. 슬픔과 기쁨, 절망과 희망, 상처와 회복, 그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은 채 어떻게든 자신의 삶을 살아가는 주인공들의 이야기를 담백하게 그려낸다. 그런 점이 마음에 들었다. 왜냐하면 그 모습은 바로 보통의 존재인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노동과 일상의 경계를 명민하게 알고,
일의 기쁨과 슬픔을 조화롭게 이해하는,
이 시대 가장 보통의 우리들이다.

- |해설|, 215p

소설을 읽어가는 동안 곳곳에서 삶을 살아가는 작은 힌트들을 얻을 수 있었다. 우리는 태생을 정한 것도 원한 것도 아니지만 현재에 태어난 이상 이곳의 시스템 안에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 다만 포기와 회피가 아닌 인정을 통해 내가 해나가야 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실제로 해나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나라 꼴이 거지 같은 거랑 내방 꼴이 거지 같은 거랑은 별개의 문제인 것처럼 말이다.


이 개인들은 시스템 안에서 노동자로서의 위치를 정확하게 자각하고 작은 행복을 소중히 여기며 그것을 지키기 위해 예민한 센스를 발휘할 줄 안다.

- |해설|, 231p





가장 유일한 존재



안타깝게도 나의 팔 춘기를 함께 했던 <언니네 이발관>은 6집을 끝으로 2017년 8월 정식 해체를 발표한다(참 한결같은 양반이다. 떠날 때도 그만의 유일한 분의 기를 잊지 않는다).


훗날 언젠가
세월이 정말 오래 흘러서
내가 더 이상 이 일이 고통으로 여겨지지도 않고
사람들에게 또 나 자신에게 죄를 짓는 기분으로 임하지 않아도 되는 날이 온다면..
그때 다시 찾아뵐게요.

감사합니다.

23년 동안 지지하고 응원해 주신 것
잊지 못할 순간들을 만들어 주신 것
모두 감사합니다.

다들 건강하세요

2017년 8월 6일 저녁 이석원 올림


- 이석원의 공식 해체 발표문 중


우리는 '보통의 존재'들이다. 그렇지만 기죽을 필요도, 좌절할 필요도 없다. 78억 분의 1인으로서 각자 삶의 이야기가 있는 '유일한 존재'들이기 때문이다.
'가장 보통의 존재'였던 <언니네 이발관>이 그들만의 스토리를 남긴 것처럼 이제는 우리가 각자의 '유일한 스토리'를 만들어갈 차례이다.
아직 '나의 이야기', 그리고 '당신의 이야기'는 세상에 나오지 않았다.


나는 이런 평범한 사람
많은 세월 살아왔지만
아직은 부족하지 그래서 난 가네
나는 나의 길을 가
소나기 두렵지 않아
구름 위를 날아 어디든지 가
외로워도 웃음 지을 수 있는 곳이면
어디든 가고 싶네
그게 나의 길

- '언니네 이발관' 노래 <산들산들> 가사 중





* 참고 : <일의 기쁨과 슬픔>, 장류진

<가장 보통의 존재>, <산들산들>, 언니네 이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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