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 개, 소, 똥이 만들어내는 이 인크레더블한 냄새가 너무나 그리웠다. 골목 이곳저곳을 정신없이 누비다 보니 목이 말라온다. 달착지근 시원한 라씨 한 잔에 잠시 더위도 잊는다. 멀찍이서 릭샤꾼 사내 한 명이 다가온다. 저렴하게 시티투어를 시켜준단다. 몇 번의 가격 흥정 실랑이 끝에 결국 내가 이겼다. 출발!
릭샤에 몸을 싣고 시원한 바람과 풍경에 빠져든다. 한참을 달리다 보니 여행자 기념품 가게로 들어간다(그러면 그렇지). 자기 삼촌네 가게니 잠시 들러 물 한 잔만 먹자 한다. 가게에 들어서자마자 호객행위를 하는 상인들이 들러붙는다. 릭샤꾼은 어디론가 슬쩍 사라지고 보이지 않는다. 남의 시간 귀한 줄도 모르고 한참 후에야 나타나 길래 왜 이렇게 늦었냐고 화를 내니, 대수롭지 않다는 듯하는 말,
No Problem! (노 프라블럼!)
이런 제길 '노 프라블럼'의 나라! 늘 이런 식이다. 하나같이 다들 자기들 위주다.나는 '프라블럼'이라고!!! 이번엔 내 두 다리에 의지해 이곳저곳을 누벼본다. 사기꾼 반, 실랑이 반, 세상에 있는 욕은 다 쏟아대며 그렇게 인도에 미운 정이 조금씩 들어간다.
벌써 해 질 녘이다. 하루라는 시간은 인도를 여행하기에 너무나 짧다. 허기도 채울 겸 근처 루프탑 라운지 식당을 찾아서 올라간다(말이 루프탑이지 그냥 옥상이다). 자리를 잡고 앉아 킹피셔 맥주를 한 병 시키고는 잎담배를 하나 꺼내어 입에 문다.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으며 가만히 두 눈을 감고 의자에 몸을 기댄다. 여기저기서 오늘 하루 동안의 인도 무용담을 나누는 여행자들의 목소리가 들려온다. 피곤함도 달랠 겸 잠시 그대로 있어본다.
여행의 이유
여행기란 본질적으로 무엇일까? 그것은 여행의 성공이라는 목적을 향해 집을 떠난 주인공이 이런저런 시련을 겪다가 원래 성취하고자 했던 것과 다른 어떤 것을 얻어서 출발점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 <여행의 이유>, 19p
김영하 작가는 <여행의 이유>를 쓰면서 '이 책을 쓰는데 내 모든 여행의 경험이 필요했다'라고 말했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지난 나의 모든 여행 경험을 떠올릴 수 있었다. 나의 첫 여행은 인도였다. 4학년을 앞두고 졸업작품 구상을 하던 시기, 그간 공들인 작업물이 예기치 않게 엎어졌고 도무지 다시 시작할 엄두도 소재도 떠오르지 않았다. 반포기 상태였던 나는 당시 환상을 품고 있던 인도에라도 다녀오면 뭔가 좀 얻을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무작정 떠났던 것이다. 여행은 매우 흡족스러웠다. 그런데 몇 달 간의 긴 여행이 나에게 준 것은 졸업작품의 소재가 아니었다.
여행이 내게 준 선물
<여행의 이유>라는 책을 끝으로 '씽큐 베이션 4기 - 사생활의 천재들'이란 타이틀의 여행도 이제 막바지다. 12주라는 시간이 이리도 빨리 갈 줄이야. 이번 여행에서 나는 무엇을 얻었을까? 그것은 바로 12년 전 첫 인도 여행 때와 마찬가지로 나의 일상을 더 잘 살아갈 수 있게 하는 힘이었다.
우리는 이 안전하고 지루한 일상을 벗어나 여행을 떠나고 싶어 한다. 거기서 우리 몸은 세상을 다시 느끼기 시작하고 경험들은 연결되고 통합되며, 우리의 정신은 한껏 고양된다. 그렇게 고양된 정신으로 다시 어지러운 일상으로 복귀한다. 아니, 일상을 여행할 힘을 얻게 된다. - <여행의 이유>, 206p
하나의 여행이 끝나면 또 다른 여행이 다시 시작된다. 그것을 알기에 이전의 여행을 기꺼이 놓아줌과 동시에 마음 한켠에 간직할 수 있다.그리고 다시 설레는 마음으로 새로운 여행으로 발걸음을 옮겨본다.
너무나 행복했습니다. 함께 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사생활의 천재들' 모든 멤버분들께
에필로그
저녁 9시 40분, 서점 영업 종료 시간을 알리는 안내 방송이 나온다. 감았던 눈을 뜨고 흠뻑 빠져있던 당일치기 인도 여행을 서둘러 마무리한다. 여행서적 코너에서 꺼내온 가이드북 한 권과 인도 여행기 두 권을 다시 재자리에 두고 서점을 나온다. 이제 집에 갈 시간, 아니 일상을 잘 여행할 시간이다.
자기 의지를 가지고 낯선 곳에 도착해 몸의 온갖 감각을 열어 그것을 느끼는 경험. 한 번이라도 그것을 경험한 이들에게는 일상이 아닌 여행이 인생의 원점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