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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Aug 11. 2021

빵과 삶을 구우며

#나만의 식빵


소설이 삶을 닮은 것이라면, 한길로 꼿꼿이 가지 못하고 휘청휘청 비틀댄다 해도 뭐 어떤가. 내가 걷는 모든 걸음걸음이 결국엔 소설 쓰기의 일부가 될 텐데. 길 읽고 접어든 더러운 골목에서 맞닥뜨리는, 누군가 허물처럼 벗어 놓고 간 쓰레기들과 죽은 쥐마저도 내 빵에 필요한 이스트나 밀가루가 될 텐데. 그러므로 그림자처럼, 한낮의 시간에는 더욱 짙어지는 익숙한 열등감과 수치심이 찾아오면 이제 나는 그것들을 양지바른 곳에 펼쳐놓고 마르길 기다리며 찬찬히 들여다본다. 오븐의 열기는 하오의 볕처럼 공평하니까 어쩌면 내가 소설을 쓰는 사람인 한, 나에게도 언젠가는 따뜻한 식빵 한 덩이가 생길지도 모른다고 믿어보면서.

 백수린 '다정하게 매일매일' p64


잠들지 못해 힘들어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과 거래를 하고 싶다. 나의 잠을 줄 테니 너의 시간을 달라. 나는 '심심함'이란 단어를 모른다. 눈이 보이지 않을 때까지도 읽어도 다 읽지 못할 좋은 책이, 발이 닳도록 누벼도 다 디디지 못할 미지의 땅이 세상에 얼마나 많은가. 단 2시간만이라도 내게만 특혜가 주어지면 좋겠다. 26시간의 삶을 살고 싶다. '하오의 볕이 공평하다'는 것이 불공평하게만 느껴진다.


8월이 되며 빵을 굽는 횟수가 현저히 줄었다. 내게 빵 굽기란 '여유'의 다른 이름이다. 평소보다 2시간이나 일찍 일어나는 부지런함을 실천했지만 여전히 며칠 굶은 사람처럼 시간에 허덕인다. 일찍 일어난 만큼 일찍 잠들었고 아이가 방학을 했다. 수업 시간을 늘린 탓에 출근이 빨라졌다. 그러나 무엇보다 새롭게 시작한 것들에 애정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모두 좋아서 하는 일이다. 하루 종일 해도 질리지 않을 것 같은 일이다. 아이가 조금 늦게 일어나 주기를 바라고 출근 시간이 다가오는 것이 두려워지는 일이다.


우리 집 광파오븐은 베이킹 전용이 아니다. 사양이 달려 아랫 불 조절이 되지 않는다. 좋아하는 하드 빵을 잘 만들어 내려면 불 조절이 필수다. 오븐의 열기가 공평하게 퍼지면 좋겠지만 겉면을 빠삭하게 하기 위해 온도를 높이면 아랫부분이 익기 전에 윗부분이 타기 시작한다. 나의 에너지도 사양이 달리는가. 좋아하는 것에 몰두하느라 주업과 육아, 본분에 소홀해지고 있다는 죄책감이 스멀스멀 타는 냄새를 풍기며 올라온다.


사실 빵의 빠삭한 겉면을 더 좋아할 뿐 폭신한 속결도 적당히 익은 아래쪽 바닥도 다 좋아한다. 잘 굽힌 빵에 불 조절이 필수였듯 생을 꾸리는 것도 마찬가지인가 보다. 육아와 일에서 글감을 찾을 수 있었고 책을 통해 그들에게 유연하게 다가가는 방법을 배운다. 비틀대고 휘청거리는 것이 결국 을 잘 구워내는 노하우를 터득하는 과정이라는 말에 힘을 얻는다. 새벽에 빵 반죽을 하고 글을 썼다. 훈훈한 다짐처럼 오늘 빵도 골고루 익도록 여유를 가지고 불 조절해야겠다. 은유 작가의 '나를 세계로 밀어내니 세계가 나를 글쓰기로 밀어준다.'는 문장이 떠오르는 아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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