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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승희 Feb 23. 2022

사랑하고 부러워하고


언니는 바비 인형같이 예쁘게 생긴 공주님 스타일이었고 나는 못난이 인형같이 단발머리에 덩치가 컸다. 어릴 때는 질투심을 감추는 법을 몰라서 옷을 사러 가면 나의 심술이 도졌다. 똑같은 옷도 언니가 입으면 맵시가 나는데 나는 치수가 없거나 무얼 입어도 예뻐 보이지 않았다. 엄마는 뚱뚱한 체형을 보완할 수 있는 옷을 자주 권했는데 언니가 산 옷과 비슷한 옷을 찾아내지 않으면 집에 가지 않겠다고 토라지고 울어서 엄마를 곤란하게 했다.

친밀도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대학 동기가 있다. 나는 소설을 주로 습작했고 친구는 희곡을 공부했다. 분명 내가 책도 더 많이 읽고 글도 더 많이 썼는데 나는 대학 문예공모에 떨어지고 친구는 그 해 계간지에 등단하였다. 질투심을 바로 드러내 놓는 것이 자존심 상하는 걸 알 정도로 컸다. 그나마 장르가 달라져 천만다행이다 속으로 생각하며 과장해서 축하해 주었다.

집안 대소사까지 다 알 정도로 내밀한 교류를 하는 지인들이 있다. 다들 사연 없는 집이 없고 사는 게 다 고만 고만 도토리 키 재기다 싶어서 이야기하다 보면 위안이 된다. 하지만 집안에 우환도 없고 경제 사정도 풍족하고 가정도 화목하여 저렇게 팔자 좋은 인생도 있나 싶은 친구가 한 명 있다. sns상에서 여유롭게 문화생활 즐기고 여행 다니고 좋은 것들을 사서 자랑하는 사람은 크게 부럽지 않은데 자랑도 없이 소박한 일상을 살아가는 지인의 내공은 부러웠다.

나에게 질투는 모르는 타인이 아닌 친밀한 사이에서 생기는 감정이었다. 그래서 양심의 가책을 불러일으켰다. 상대방이 잘 되어서 다행이었고 축하하는 마음에 거짓은 없었다. 내가 삶에 여유가 있을 때와 그렇지 못할 때,  박수에 치는 진심과 힘의 크기가 묘하게 달라졌다. 그 치사함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 내 눈에 띄지 않 숨겨버리곤 했다. 그 감정 때문에 내 진심이 훼손된다고 느꼈다. 아니 내 마음의 실체를 의심했다.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은 남을 부러워하지 않는다는데’ 사실은 내가 자존감이 낮은 사람인가 싶어 자괴감도 한 번씩 들었다.

질투에 대한 글을 써보고 싶어서 자료를 찾던 중에 질투와 부러움이 어떻게 다른 건지 이야기하는 영상을 하나 보았다.
<기차 플랫폼에서 낡은 슬리퍼를 신은 행색이 초라한 소년은 말끔하게 차려입은 소년이 반짝이는 구두를 손수건으로 정성스레 닦고 있는 것을 부러운 듯 쳐다보았다. 기차가 들어오자 사람들이 몰렸고 그 소년의 새 구두 한 짝이 벗겨져버렸다. 기차가 출발하자 소년은 떨어진 구두를 보며 눈물을 흘렸다. 그 모습을 본 행색이 초라한 소년이 쏜살같이 달려가 남자애 구두를 주웠다. 보물을 주운 듯 사랑스럽게 구두를 보던 소년은 갑자기 기차를 향해 달렸다. 열심히 달려온 그가 구두를 힘껏 던져 주었으나 구두는 손을 힘껏 뻗은 구두 주인에게 가 닿지 못하고 땅에 떨어졌다. 신발을 잃어 울던 소년은 신발이 떨어지자 실망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그러나 잠시 후 그 소년은 나머지 한 짝을 벗어 밖으로 던져주고 행색이 초라한 소년에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다른 한 짝’이란 단편 영화의 내용을 소개하며 글쓴이가 자신의 생각을 덧붙였다. 질투심에 사로잡혔다면 행색이 초라한 소년은 구두 한 짝을 줍자마자 “그냥 내가 가져야지” 하며 도망을 쳤겠지만 부러워할지언정 마음 깊이 질투하지 않았기에 나쁜 마음을 먹지 않았다. ‘질투는 남을 깎아내리는 것이고 부러움은 남을 배우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이 글을 읽고 사랑하는 사람을 질투해 왔다는 숨겨둔 마음을 꺼내 바라보았다. 부러워서 지지 않으려 더 많이 읽어 왔고 잘 살려고 애써왔다. 부러운 마음이 부끄러워서 더 나누려 했고 많이 기뻐하려 했다.


마음에 묻은 먼지를 닦고 쓰다듬어 주니 죄책감이 씻겨져 나갔다. 이제는 부러움과 시기하는 마음의 차이를 알기에 부러운 일이 있을 때  움츠러들지 않는다. ‘아, 내가 부러워하는구나’ 하고 느끼고 그 감정을 받아들이거나 좋은 방향으로 나를 나아가게끔 애쓴다. 부러움도 서로 주거니 받거니 하는 것이고 사는 일은 결코 경쟁하여 일등, 이등으로 매길 수 있는 일이 아니란 걸 알게 되었기 때문이다. 내 생도 정오를 지나니 강렬한 태양빛에 눈을 가리지 않아도 될 그늘이 생기는 중인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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