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증거물을 남기다
앙드레 고르의 'D에게 보낸 편지'를 읽고
급하게 먹은 고기 두 점이 내 몸을 통과하려고 밤새 요동치고 있었다. 명치 아래가 뻐근하고 배는 뒤틀리고 몸은 한기가 느껴졌다. 자기도 힘든 긴긴밤이 시작되고 있었다. 체하는 것은 손 한 번 따면 낫는다거나 시간이 지나면 차츰 괜찮아진다고 생각되는 레벨 1 수준의 병치례다. 나의 고통을 크게 호소하기에도, 과도한 관심을 받기에도 멋쩍다. 그래서 체기를 만난 밤은 입원해 있는 밤보다 홀로 외롭다.
나의 이상형은 책 읽는 로맨티스트였다. 그러나 남편은 프러포즈를 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드라마를 보다 주인공이 고백하는 장면이 나오면 아내의 눈총에 죄인이 되는 사람이다. 게다가 고향집 책장에 책이 많고 문학동아리 사람들과 꾸준한 만남을 가지지만 결혼 후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다. 연애하는 기간에도 맛집을 찾아보거나 스스로 여행을 계획하거나 하는 적이 없었다. 하물며 나는 몰래 준비된 선물 같은 것을 받은 적이 없다. 나는 그렇게 이상형과 다소 거리가 먼 남자를 남편으로 만났다.
《D에게 보낸 편지》는 철학자 앙드레 고르가 불치병으로 죽음을 기다리는 아내에게 쓴 편지를 출간한 글이다.
“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우리의 인연이었는데 당신은 왜 내 글 속에 그리도 등장하지 않는 것인지. 어째서 나는 내 책 [배반자]에서 당신을 표현할 때 당신의 진면목을 왜곡하는 그릇된 이미지를 보여준 것인지. 당신에게로 온통 빨려 드는 내 마음이 나를 다시 살고 싶게 만든 결정적 전환점이었음을 그 책은 보여주어야 했습니다.”
고르는 자신의 책에서 11줄에 걸쳐 표현했던 아내의 모습에 대한 후회를 죽음을 1년 앞둔 때 편지글로 전한다.
단지 열 한 줄뿐이었다고 생각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 열 한 줄이 ‘우리 삶에서 7년의 의미를 앗아갔다.’고 자책하는 남자. 왜곡된 아내 이미지를 평생 마음의 거리낌으로 여기고 살아왔을 고르의 정직함. 그것을 바로 잡고 진실한 사랑을 고백하고 싶었을 만큼 아내를 소중히 여기는 마음. 그 진심이 내게 와 닿았다.
“처음으로 열렬히 누군가를 사랑하는 것, 그리고 그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 이것은 누가 봐도 너무나 평범하고 사적인 일이었습니다. 이런 소재로는 보편적인 것에 이를 수 없었던 것입니다.”
작가이기에 아내를 향한 사랑을 여과 없이 글에 담기란 더 쉽지 않았을 것이다. 나처럼 가족 자랑은 팔불출이라는 생각이 이 오스트리아 남자에게도 있었던 걸까?
글과 사랑에 대한 엄격한 잣대는 필요했다. 더욱이 글이란 말과 달라 증거가 뚜렷이 남았으니까. 고르는 분명 이미 고쳐 쓸 수 없는 글의 무게 때문에 힘들었지만 다시 글로 만회하였다.
글의 마지막에 그는 “우리는 둘 다, 한 사람이 죽고 나서 혼자 남아 살아가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라고 고백했다. 고르는 글이 발간된 1년 후 아내 고딘과 함께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자신의 사랑과 글을 진실로 완성시겼다.
남편은 여전히 여행 계획을 짜거나 맛집을 알아보지 않지만 가자고 하면 흔쾌히 승낙한다. 단 한 번도 거친 말이나 행동을 하지 않았으며 나에게 심부름을 시키는 일이 없다. 책을 아무리 많이 사 모아도 잔소리를 하지 않는다. 먼저 연락은 하지 않지만 잊지 않고 매일 장문의 카카오톡 메시지를 답으로 보낸다. 일 년에 한 번 며칠을 끙끙대며 숙제하듯 생일 편지를 쓰며 나도 잊어버리는 결혼기념일을 기억하고 있을 때도 있었다. 어제는 고르처럼 아내의 숨소리를 살피고 손으로 쓰다듬었을지도 모르겠다.
설핏 든 잠에서 깨니 벌써 남편은 출근을 하고 없었다. 남편은 엄살이 심한 아내 옆에서 조금 피곤했을 것이다. 약이 통하지 않는다며 끙끙 앓기만 한 아내에게 챙겨 준 매실차와 탄산수 등이 어질러져 있다. 그 흔적을 정리하다가 책의 마지막 장을 다시 펼쳐 보았다. 언제 보아도 흐뭇해질 노부부의 웃음이다.
“우리 팔십이 되어도 손잡고 걷자. 혹시라도 다음 생이 있다면 그때도 둘이 함께하자.”하고 혼자서 조용히 글로 읊조린다. 사랑의 증거물을 남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