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까 1

단편소설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까'

by 하트온

젠장. 유리 건물이다.


‘밖에서 다 보이는 거 아냐?’


문득 불안감이 스치고, 현철의 미간이 모아지며 세로 주름이 날을 선다. 자기 집 동네에서 1시간이나 떨어진 곳이라는 것을 다시금 되새기며 마음을 진정시켜 본다. ‘아는 사람을 만날 일은 없겠지.’ 유리문을 열고 들어서니 사방 유리창에서 막힘 없이 들이치는 여름 오후 막바지 햇살이 1층 홀을 훤하게 밝히고 있다. 안쪽에 보이는 아담한 엘리베이터 앞으로 걸어가 섰다. 금박 거울로 된 엘리베이터에 마른 몸의 중년 초입에 들어선 사내가 얼굴을 구긴 채 서 있다. 마른세수를 하며 머리를 쓸어 넘겼다. 아직 이 건물에 들어와서 사람 그림자를 하나도 보지 못했다. ‘인적이 드물어 보여 다행이군.’ 현철은 제 가슴을 쓸어내렸다. 2층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자, 바로 앞에 201호 팻말이 나타났다. 다행히 현철이 찾아가려는 방은 2층의 가운데에 벽을 올려 만든 공간이라 유리창을 면하고 있지 않는 것 같았다.


도어를 돌리며 문을 살며시 여니 아무도 없는 빈방이 펼쳐진다. 대기실인 모양인지 작은 소파가 놓여 있고, 소파 옆에 네모 난 나무 탁자 하나, 그 위에 은은한 탁자 등이 켜져 있다. 벽에 걸린 시계는 5시 30분을 가리키고 있다. 시계 아래는 다른 방으로 통하는 문이 굳게 닫혀 있다.


‘저 안에 다른 사람이 상담하고 있나? 그 사람이 나갈 때 내가 어떻게 해야 하지?’


재차 불안감이 엄습해오는 것을 느끼면서 의자를 더 구석으로 옮길까 둘러보다 문득 탁자 등 아래에 한국어로 자신의 이름이 분명히 써진 편지를 비롯한 서류 다발을 발견했다. 엉거주춤 앉으며 종이뭉치를 집어 들었다.


김현철 씨,


6시에 제가 문을 열어드릴 때까지 이 대기실에서 기다리시면서

다음 장의 서류들을 작성하시고 질문에 답해 주세요.

오늘 좋은 만남 기대합니다.


상담사 신나라 (Nara Shinn)


인터넷을 다 뒤지고 전화까지 일일이 걸어서 한국말을 알아듣되 다른 한국인 환자를 현재 보고 있지 않은 사람을 물어 찾아 여기까지 왔다. 현철은 미국에서 유학을 했고, 영어를 읽고 쓰고 알아듣는 데는 전혀 문제가 없는 정도의 실력이다. 자신이 한국어로 마음을 표현하는 것을 상담사가 알아들어 줄 수 있기만을 원했다.


‘이런 한글 서비스까지는 기대하지 않았는데…’


현철이 긴장으로 얼었던 마음이 조금 누그러지는 것을 느끼며 소파에 등을 기대고 앉아 서류를 작성하기 시작했다. 간단한 인적사항을 적는 서류 뒷 장에는 이 곳을 찾은 이유를 묻는 질문들이 사이사이 긴 빈칸에 주관식 답을 기대하고 있었다. 질문들에 꾹꾹 볼펜을 눌러가며 답을 달다가 기지개를 켜며 시계를 보니 바늘이 거의 6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맞은편 벽에 예쁜 꽃 길 너머로 바다가 펼쳐져 보이는 그림 하나가 눈에 들어온다.


‘이태리인가 그리스인가…’


“김현철 씨! 만나서 반가워요! 제가 상담사 나라 신입니다!”


또랑또랑한 한국어 발음으로 현철의 이름을 부르는 편안한 차림의 여성을 돌아보았다. 나긋나긋 조용한 목소리지만 반가운 친구라도 만난 양 환한 얼굴로 소개를 하며 손을 내밀었다. 자석에 끌리듯 손을 맞잡았다.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손. 갑자기 상담사가 여자라는 사실이 마음에 민망하게 내리 앉았다. 전화 통화까지 했기에 분명히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어를 하되 한국 사람과 왕래가 없어 보이는 사람 찾는데 온 신경이 곤두서서 미처 충분히 각오하지 못했다. 갑자기 상대가 이성이라는 사실이 들이닥치니, 순간 당황스러움을 감출 수가 없었다.


‘이 새파란 여자가 내 심정을 이해할 수나 있을까?’


현철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여자의 뿔테 안경 속 맑은 두 눈이 여전히 웃음기를 머금은 채 현철을 물끄러미 기다리는 것을 느끼자 현철의 얼굴이 달아올랐다. 어디론가 숨어버리고 싶은 기분이 확 몰려오면서, 자신도 모르게 얼굴을 돌리고 상대를 외면했다.


‘에이, 바보 같은 놈!’


현철은 제 머리를 한 대 쥐어박고 싶은 분이 가슴에 일렁이는 걸 느끼며, 정말 머리를 처박을 구멍을 찾고 싶은 심정이었다.


“ 준비되시면 들어오세요. 아! 서류는 저를 주시고요.”

“아… 예…”


뭔가 상담사는 현철의 마음에 휘몰아치는 온갖 감정에 대해 별 대수롭잖게 여기는 눈치였다. 그녀의 태도에서 마치 산전수전 다 겪어 이 세상 못 본 꼴이 없는 노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현철은 잠시 머뭇거리다 이까지 왔는데 싶은 마음에 거부하는 마음을 한 손으로 지그시 누르며 서류를 건넸다. 숨을 한 번 들이키고, 여자 상담사를 따라 들어갔다. 상담사는 현철이 열고 들어온 문을 꼭 닫아 붙이고는 상담사 전용의자로 보이는 탁자 옆 자리에 자리를 잡고 앉으며 현철에게도 맞은편 긴 소파를 권했다. 현철이 어색한 태도로 소파 가운데 자리를 잡고 앉자 상담사가 입을 열었다.


“우리 서로 소개부터 시작하까예?”


갑자기 경상도 사투리가 들려온 데다 여자의 목소리가 아까 대기실에서 말할 때 보다 우렁차서 깜짝 놀란 현철이 눈을 둥그렇게 뜨고 상담사를 쳐다보았다.


“제 목소리가 좀 커서 밖에서 들릴까 싶으지예! 이 방이 방음이 잘 돼서 문 밖에서 안 들립니다. 그라고, 현철 씨가 오늘 마지막 상담자니까 아무도 올 사람 없으이 마음 푹 놓이소!”

“어떻게 그렇게 경상도 말을 잘하세요?”

“제가 한국말을 잘해서 놀랐지예? 실은 제가 부산에서 고등학교까지 다녔어예.”

“한국 사람 손님이 어떻게 없으신지… 한국어를 하는 상담사라면 한국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으실 텐데… 실례지만 좀 여쭤봐도 될까요?”

“아무리 한국어 하는 상담사를 찾아도 여까지 올라카는 사람이 잘 없고예, 가끔 자녀 상담하러 수소문해서 찾아오시는 분들은 있는데 지금은 때 마침 찾아오는 한국 사람이 없었네예. 제가 상담사로서 분명히 비밀을 지켜드릴기 확실한 데다가 또 저는 한인타운에서 떨어져서 살고 있기 때문에 한국 친구도 거의 없으이까 걱정 놓이소. 김현철 씨가 걱정하는 일은 절대로 없을낍니다.”


현철이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는지 잘 안다는 듯 상담사가 저를 믿으라는 듯 현철의 눈을 마주한 채 맑은 눈을 더욱 빛 내고 있었다. 그리고는 현철이 작성한 서류를 넘겨 보며 말을 다시 이어갔다.


“현철 씨는 좋은 남편 되는 법 배울라꼬 여기 오셨네! 아이고 마 착하데이! 요새 어느 남자가 상담사를 찾아오노! 밖에 나가가 돈이라도 한 푼 더 벌라꼬 눈이 벌겋제!”


현철이 현재 아내와 자신의 관계를 회복할 수 있을지 상담받기 원한다고 기록한 것을 읽었는지 상담사는 할머니가 손자한테 하듯 반말을 섞어가며 현철을 칭찬하기 시작했다. 생각지 못한 상담사의 해석에 현철은 갑자기 껄껄 너털웃음을 터져 나오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다.


‘이렇게 웃어본 지가 얼마 만인가!’


현철은 이 작은 웃음으로 인해 쭈그리고 앉았던 몸을 펼치는 것 같은 시원함이 가슴에 퍼지는 것을 느꼈다. 한 바탕 웃고 나니 방안 공기도 훨씬 가벼워진 것 같았다. 아내와의 사이의 먹구름을 생각하며 다시 가슴이 싸늘해 오는 것을 피할 수는 없었지만.


‘상담사가 참 웃기는 여자네!’


재밌네 싶은 생각이 절로 드는 사이 상담사가 또 말을 이어갔다.


“상담사가 좀 웃기는 여자다 싶으지예! 제가 어릴 때 한국에서 삼촌들 줄줄이 있는 집에 할매, 할배하고 대가족으로 살았는데 할매 할매 삼촌들이 평생 물고 뜯고 싸우는 거 보고 자라서 입이 걸걸합니데이!”


헉. 이 여자가 독심술이라도 하는 가 싶어 순간 등골이 오싹해졌다.


“게다가 삼촌들이 일으키는 온갖 말썽 다 보고 자라서, 제가 원래 남자들을 참 잘 이해하고 남자들하고 말이 더 잘 통합니데이. 편하게 현철 씨에 대해 말해 보이소.”


그러고 보니, 막상 이 상담실에 들어와 마주 앉은 이후부터 딱히 상대를 여자라고 의식하지 않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묘하게도 상담사의 아이 같은 두 눈이 따뜻하고 고요한 바다를 마주 하고 있는 듯 현철의 마음을 가라앉히고 있었다. 마음이 상당히 편해졌다고 느낀 현철이 구부렸던 등을 펴고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입을 열었다. 뜻하지 않은 한숨부터 새어 나왔다.


“후-, 어디서 시작할지 모르겠네요. 제가 너무 힘이 듭니다.”


상담사는 언제 그렇게 수다스럽게 떠들었냐는 듯, 그저 조용한 눈으로 현철을 응시하며 귀를 기울이고 있었다. 현철의 다음 이야기가 무척 기다려진다는 듯이 두 손을 모은 채. 상담사의 지극한 관심에 힘을 얻는 현철이 다시 입을 열었다.


“저는 한국에서 유학생으로 미국에 왔어요. 유학하면서 아내를 만났죠. 아내는 결혼하고 임신을 하면서 학위를 끝내지 못했어요. 저를 우선 뒷바라지하면서 아기를 키우고 언젠가 제가 기반을 잡으면 아내도 공부를 다시 하는 걸로 그렇게 이야기를 했지요. 가정을 꾸리고 자녀가 생기니 생활비는 점점 많이 드는데 제가 학생이다 보니 부모님이 아이들 양육비며 생활비 다 보내주시고. 부모님 입장에서는 또 나이 들어 고생하시며 저희들 뒷바라지를 해 주신 거거든요. 지금은 제가 직장을 구하고 자리를 잡은 상태고요. 아내는 이제 뭔가 좀 해보고 싶다고 하지만, 아직 모은 돈도 없고, 유학시절 쌓은 영어실력으로 미국인들과 직장생활을 하는 것만도 벅차게 힘들고, 그동안 둘째도 생겨서 애들한테 손 갈 일은 많고 지금까지 엄두를 낼 수가 없었죠. 지난봄에 저희 부모님이 오시겠다고 했는데 그것 때문에 많이 다퉜어요. 결국은 오셔서 관광도 하시고 한 달 정도 머무르다 가셨죠. 그동안 유학 뒷바라지하느라 고생하셨으니 또 아들 입장에서는 오고 싶어 하시는 부모님 모셔서 여기 생활도 보여드리고 아이들도 보여드리고 싶고 그렇잖아요. 부모님이 여기 와서 무척 좋아하셨어요. 저희 아버지께서 내년쯤 한국 살림 정리하고 여기 와서 함께 살고 싶다는 뜻을 비치시더라고요. 제 생각엔 부모님이 계셔서 애들 봐주시면 아내가 다시 공부도 할 수 있을 것 같고 부모님도 떨어져 지낸 지 10년 가까이 돼서, 너무 그리웠고 그래서 얼른 준비해서 오시라고 그랬죠. 부모님이 한국으로 돌아가시자마자 아내가 자기랑 의논 한 마디 없이 결정했다고 그렇게 화를 내는 겁니다. 그동안 우리 뒷바라지 해 주신 시부모를 제 부모 같은 마음으로 여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면서 정이 확 떨어지더군요. 제가 모질게 쓴소리를 했어요. 그러고 나서 몸살로 앓아눕더라고요. 몇 주가 지나도 몸이 나아지지를 않는다고 하면서 계속 우울해하더니, 저 때문에 병들어 가는 중이라고 제가 말만 시키면 너무 감정적이 되어 소리를 지르고 도저히 대화가 되지 않더군요. 그렇게 얼마간 있다가 조용해지는가 싶더니 어느 날 이혼을 하자고 하더라고요. 이제는 저를 못 믿겠다고 합니다. 지금은 저를 투명인간 취급을 하고 눈도 마주치지 않고 말도 안 합니다. 이제 제가 너무 지칩니다. 처음에 뒷바라지하고 고생한 아내에게 미안하던 마음이 지금은 그냥 밉기만 합니다. 그냥 깨끗이 이혼하고 싶은 마음도 드는데 애들 보면 그게 또 차마 못할 짓이고, 이제 겨우 자리 잡고 산다고 마음 놓으신 부모님 실망시켜 드리고 싶지도 않고요, 주변에 말할 데도 없고, 부부관계 상담이라도 받아보자 싶어서… 후......”


현철은 말을 차마 다 마무리 짓지 못하고 한숨을 크게 뱉으며 손바닥으로 지끈지끈한 이마를 수차례 비벼대며 습관적인 마른세수를 했다. 눈을 감고 등을 소파에 기대었다. 방안에는 현철 혼자인 듯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그렇게 몇 분이나 있었을까? 현철이 인기척을 느끼고 다시 눈을 뜨니 상담사가 물을 한 잔 현철이 앉은 소파 옆 탁자에 내려놓고 있다.


“감사합니다…”


현철이 물을 단숨에 벌컥 마시며 목을 축이는 사이 상담사가 다시 자리를 잡고 앉으며 질문을 던진다.


“아내분과 한 번 같이 방문할 수는 있나요? 다음 주 말고 그다음 주쯤?”

“글쎄요… 아내가 제 말을 들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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