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까'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속을 털어놓고 시원한 마음으로 집에 갔었던 첫 상담과 완전히 달리, 두 번째 상담은 누가 심장을 도려내기라도 한 듯 너무 뜨겁고 펄떡이는 예상치 못했던 고통이 손을 뻗어 현철을 목 죄는 바람에 숨조차 제대로 쉴 수 없었다. 현철은 상담실 문밖을 나서는 순간부터 상담사에게 화가 치밀어 올라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다신 이 재수 없는 경상도 여자 찾아오나 봐라!’
너무 화가 나서 운전대를 잡고 반항하는 청소년처럼 집과 반대 방향으로 차를 몰아 달렸다.
바다에 도착했다. 해질 무렵 저녁 바다는 조깅하는 몇몇 젊은 청년들만 뜀박질 소리를 내며 지나갈 뿐 한산했다. 현철은 잠시 바닷가를 거닐며 분이 가라앉는가 싶더니 수술을 갓 마친 환자처럼 마취가 풀리고 생생한 통증이 밀려오기 시작하는 것을 느끼는 순간 다리에 힘이 풀리며 그 자리에 쓰러지듯 그대로 누워버렸다. 현철의 눈가로 흘러내리는 눈물이 머리카락을 적시고 또 적셨다. 마음속에 무거운 돌로 꼭꼭 덮어 놓은 이야기를 파헤친 대수술이 예고도 없이 진행된 탓이었다.
상담사는 현철이 부모와 사이가 어땠는지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는지를 물어보았다. 가장 슬펐던 장면이나 가장 화가 났던 장면을 떠올려 보라고 했는데, 그 순간 그 기억이 떠오른 것이었다. 유학 온 이후 지난 10년간 그 기억이 뇌리에서 까맣게 묻혀 있었다는 것을 그때 깨달았다.
‘어떻게 형을 잊고 지낼 수 있었는지 모르겠다. 형을 잊다니!’
잠재의식 속에 잠자고 있던 그 기억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 면도날로 생살을 찢는 것 같은 아픔이 그때 느꼈던 그대로의 강도로 현철의 가슴을 후벼 파기 시작했다. 상담사는 자신의 질문이 불러온 그 엄청난 결과를 아는지 모르는지 현철의 속을 더 긁고 뒤집는 소리들만 계속해서 지껄이고 있었다.
“그런 기억을 심리 전문 용어로 <트라우마>라고 하지요. <트라우마>는 그 부분에 관해서 그 사람을 어린 시절에 묶어버려 자라지 못하고 머물러 있게 해요. 현철 씨가 과거의 기억을 늘 생각하면서 산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현철 씨 현재의 상황에 아직도 그때 현철 어린이가 형의 죽음으로 느낀 깊은 슬픔, 더 나아가 남은 자식 하나 바라 보고 사시는 부모님을 향한 연민이 아내와 부모님에 관해 이야기를 할 때 혹은 현철 씨가 부모님과의 사이에서 '바운더리', 한국말로 '경계선'이라고 하죠. 그러한 선을 분명히 긋지 못하도록 작용을 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는 거죠. 또 다른 한 가지는, 현철 씨는 아직 돌아가신 형이나 부모님과 자신을 '분리'하지 못하는 상태인 것 같기도 합니다. 청소년기에 일어났어야 할 '분리'가, '형의 죽음'이라는 특수한 상황 때문에 자연스럽게 일어날 수 없었던 것 같아요. 제가 도움이 될 만한 내용을 복사해 드릴 테니, 다음 시간까지 꼭 읽어 오이소. 다음 주엔 꼭 아내와 함께 오셨으면 좋겠네예.”
마치 상담사가 ‘파헤쳐보니, 너한테 심각한 문제가 있네!’
라고 손가락질을 하는 것만 같아 여자의 멱살이라도 잡고 달려들어 따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상담사는 정각 6시 50분이 되자 복사지 묶음을 안기며 숙제로 읽어오라고 했다. 쏟아졌던 마음을 추스르지 못하고, 갈피를 잃은 채 서 있는 현철을, 1분의 여유도 더 줄 수 없다는 듯 칼 같은 태도로 방에서 밀어냈다. 내 지원군이 생겼다는 첫 만남의 기쁨은 사라져 온데간데없었다.
허기진 속을 차 안에 앉아 맥도널드 햄버거 하나로 달래고 집에 도착했을 때는 시계는 10시를 훌쩍 넘기고 있었다. 아담하고 예쁜 홈 스위트 홈. 현철은 가로등 불 빛에 비친 제 집을 보며, 집을 처음으로 장만했을 때 느꼈던 감격이 잠시 떠올랐지만, 그 추억이 지금 아무런 의미도 기쁨도 되지 못하고 무너지고 있다는 사실에 금세 서글퍼졌다. 그리고 다시는 묻어둘 수 없을 것 같은 형의 그 기억, 그 기억은 현철을 너무 화나게 하고 또 슬프게 했다.
‘무의식 속에서 이 아픔의 덩어리가 여전히 펄떡이며 나를, 내 삶을, 내 가정을 조종하고 있었던 것인가?’
현철은 시동 꺼진 깜깜한 차 안에 앉아 그 아픈 기억에 정면으로 맞서 보기라도 하겠다는 듯 떠오르는 말들을 그대로 뱉어 내 보았다.
“형! 왜 혼자 가버린 거야! 왜 그것밖에 못 살고 가버린 거냐고오오! 대답 좀 해 보라고오오!”
현철은 악을 써댔다. 속에 말을 터뜨리는 것도 악을 써 보는 것도 그땐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부모님이 더 죽을 듯 마음이 아파 보였으니까. 부모님 중 한 분이라도 어떻게 되실까 봐 조마조마 눈치를 보는 사이, 그는 사춘기를 건너뛰고 너무 일찍 철이 들어 버렸던 것이다.
악을 쓰다가 엉엉 울다가 다시 욕을 퍼붓다가 얼굴이 눈물 콧물에 범벅이 된 현철은 목이 메어 더 이상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눈물인지 콧물인지 아님 그동안 곪디 곪은 데가 터진 탓인지 눈과 코에서 엄청난 양의 분비물이 흘러나오는 것을 닦을 힘조차 현철에게 남아있지 않을 만큼 몸의 기운이 다 빠져나갔다. 그냥 얼굴에서 그것들이 다 흘러나올 때까지 그냥 무릎에 얼굴을 묻고 어둠에 잠겨있을 뿐이었다.
현철은 자동차 운전석을 뒤로 빼서 공간을 넓히고 창문을 열었다. 여름이 다 지나갔는지 약간은 선선해진 늦여름 밤공기를 대자연의 어머니가 머리카락을 쓰다듬는 것처럼 느끼며 그냥 그대로 운전석에 몸을 널브러뜨렸다. 그때의 현철은 형의 죽음을 실감하지 못했다. 형의 교통사고 소식을 전하던 경찰서로부터의 다급한 전화 한 통, 사고 소식을 듣는 그 순간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리는 것만 같았던 아빠 그리고 엄마, 영혼이 떠난 차가운 육신의 껍데기, 하얀 국화 냄새로 얼룩진 젊은 청년의 영정 앞에서 모두가 기막히고 어이없는 눈물을 쏟던 빈소, … 당시의 기억들은 급속냉동이 풀리고 곧 튀어나올 기세로 싱싱한 그대로 남아있다.
“나는 겨우 15살짜리 어린애였을 뿐이었어. 내가 책임질 일이 아니었어. 내 부모의 슬픔도 내 책임이 아니야…”
조용히 천천히 마음 깊은 곳에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를 입 밖으로 내뱉어 보았다. 상담사가 아픈 상처를 갈아엎고 처방해준 메시지라는 것을 그는 문득 깨달았다.
‘역시 상담사는 잘 만났어. 실력 있어 아주.’
현철은 희미한 웃음을 입가에 머금었다.
열쇠로 문을 열고 들어선 집안에는 아무런 인기척 없이 고요했다. 아내는 아이들과 잠든 모양이었다. 현철은 조용히 1층 화장실에서 얼굴을 씻은 후 소파에 몸을 뉘었다. 소파 쿠션에 머리가 닿자마자 까무룩 잠이 들었다.
잠에서 깬 아이들이 왁자지껄 계단을 내려와 레고 블록을 달그락 거리며 놀고 이내 따라 내려온 아내는 부엌에서 아침 준비를 하는 모양인지 냉장고 문을 열고 밥통 버튼을 누르는 소리가 난다. 아내가 현철을 투명인간 취급할지언정 신기하게도 밥하기는 멈추지 않는다. 어른들이 어찌 되건 먹여야 할 아이들이 있다는 사실이 책임이면서, 동시에 일상을 유지하는 큰 힘임을 문득 깨닫는다. 현철은 아무 소리도 내지 않고 소파에 누워 아내의 뒷모습을 찬찬히 눈에 넣어본다. 아내는 간헐적으로 마른기침을 하고 가슴을 두드려가며 부엌 안을 소리 없이 왔다 갔다 한다. 글썽이는 현철의 눈에 비친 아내의 왜소한 몸이 물기 없는 시든 꽃처럼 말라 휘청이는 듯 보인다. 캠퍼스를 함께 걸으며 활짝 핀 백합처럼 환하게 웃던 아내의 10년 전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신데렐라의 마법이 풀려버린 것처럼 그때의 사람도 감정도 흩어져 전혀 다른 것으로 변해버렸다.
현철이 몸을 일으켜 앉으니 아무것도 모르는 아들 녀석 둘이 “아빠 일어났다!” 외치며 달라붙고 매달린다. 아무리 어른들이 힘들어도 아이들을 사랑해 주는 일도 그만할 수가 없다. 아이들과 한참을 씨름하며 안아주고 만져준 뒤 아빠는 씻고 아침 먹어야 되겠다며 현철이 일어서 부엌으로 가서 물을 찾았다. 아내는 늘 그렇듯이 식탁 위에 식구 수만큼 각자의 컵에 물을 따라 놓았다. 식탁에 앉아 커피를 마시던 아내가, 식탁 위 물 잔으로 손을 뻗으며 현철이 다가서자 고개를 돌린 채 자리에서 일어서려 한다. 현철은 등을 돌린 아내를 향해 말문을 열었다.
“나 상담받고 있어.”
“…”
“다음 주에 당신이랑 같이 오라고 하는데, 같이 가 줬으면 좋겠는데…”
“…”
“ 상담사가 나 보고 잘못했대. 내가 얼마나 당신한테 잘못했는지 설명해 줄 것 같은데?”
“… 애들은 어쩌고?”
“애들은 봐줄 사람을 찾아야지. 주변에 맡길만한 사람 없어? 알렉스네 집에 부탁하면 안 될까? 비용을 충분히 드린다고 하고 말이야.”
말을 걸어 세 마디 만에 대꾸하게 만들었다는 것이, 자신이 생각지도 못했던 말이 저절로 튀어나온 것에 스스로도 놀라웠다. 아내가 현철에게 입을 열고 대꾸했다는 것 자체가 상담사에게 함께 갈 의향이 있다는 말임을 현철은 확신했다.
현철은 상담사를 향한 말로 이루 다 형용할 수 없는 여러 감정이 실타래처럼 엉긴 채 풀지 못하는 마음이 한편에 있었음에도, 아내를 데려오라는 상담사의 말에 저절로 복종하게 되는 어떤 힘 아래 있음을 느꼈다. 그리고 현철은 상담사가 내 준 숙제도 할 생각이었기에 아내에게 오후에는 회사일을 해야 한다고 말하고 점심을 먹고는 집을 나서 집 근처 도서관으로 향했다. 조용한 스터디 룸 한편에 앉아 상담사가 준 복사지들을 꺼내 보니, 한 묶음은, 상담사가 언급했던, <분리: Detachment>에 관한 것이었고, 다른 한 묶음은 <사랑 은행: Love Bank>라는 제목의 내용이었다. 현철 자신 한 사람을 위해, 상담사가 이 내용들을 번역해서 문서를 만들어 주었다는 느낌이 들자, 마음 가득 따뜻한 온기가 밀려들었다. 현철은 중요한 논문을 마주한 듯 형광펜으로 줄을 그어가며 읽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