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까 3

단편소설 '좋은 남편이 될 수 있을까'

by 하트온


평소처럼 아내는 별달리 치장하지 않은 수수한 차림으로 집을 나섰다. 청보라색 아메바 무늬 원피스에 파란색 카디건을 걸친 것외에 아내는 액세서리도 화장도 하지 않았다. 평소 많이 꾸미지 않는 아내의 모습이 현철에게는 불만이었다. 하지만 오늘 상담사를 만나러 함께 나서 주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한 현철이었기에 수수한 아내의 모습조차도 진지하고 맑아 보여 좋았다.


아내는 조용히 상담사에게 인사하고 소파에 얌전히 치마를 쓰다듬으며 앉았다. 현철도 아내 옆에 조금의 간격을 두고 자리를 잡았다.


“잘 오셨습니데이! 저는 상담사 나라 신입니다. 오늘 함께 오시라고 한 이유는 사랑의 기술을 가르쳐 드릴라꼬 하는 기지예”


생각지 못한 상담사의 사투리에 아내의 입가에 살짝 미소가 번졌다. 어떤 이유로든 웃는 것은 참 좋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현철 씨는 제가 드린 숙제 다 읽어 보셨습니꺼?”

“네, 열심히 읽고 많이 배웠습니다.”

“그라면, 아내분은 전혀 모르시니까 현철 씨가 <사랑 은행> 읽은 거 요약 좀 해보이소.”


현철은 갑작스러운 요구에 잠시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흘렸지만, 상담사의 말이 누르는 힘을 이기지 못할 것이라는 것을 이미 알기에 지난주 내내 읽고 생각했던 것을 더듬어 끄집어내고자 최선을 다 했다.


“<사랑 은행: Love Bank>라는 제목의 글이었는데요, 사람마다 사랑을 받는 다고 특별히 느끼는 순간이 다 다르며 자신과 상대방의 사랑의 언어를 잘 알아서 상대방에게 그 사랑의 언어를 구사할 때마다 상대방의 사랑 은행에 사랑이 쌓이고, 섭섭한 말이나 행동이 사랑 은행의 돈을 빠져나가게 한다는 그런 내용이었습니다.”


아내가 눈을 반짝이며 귀를 기울이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맞십니다. 제대로 숙제를 하셨네예. 사랑이 쌓일 때는 하나씩 하나씩 천천히 쌓이지만 마음을 상하게 할 때는 여러 개씩 왕창 왕창 쉽게 없어지기 때문에 평소 배우자가 좋아하는 것을 찾아서 꾸준히 사랑을 쌓아두어야 사랑이 고갈되는 일이 없는것이지예. 제가 저의 이야기를 예로 한 번 들어보겠습니다. 저의 남편은 목욕을 하고 나면 시원한 음료수를 한 잔 딱 마시고 싶어 하거든예. 저는 사랑 은행의 원리를 이미 잘 아는 상태에서 결혼을 했지만 그래도 사랑 은행에 저축하는 게 쉽지 않았어요. 왜냐하면 제가 좀 무뚝뚝한 성격인 데다가 요리도 잘 못하고 풀타임으로 일도 하니까 남편을 챙겨주고 사랑받는다고 느끼게 만드는 기 참 어렵더라고예. 그러다가 남편이 목욕만 하면 시원한 거 찾는다는 거를 느끼고, 집에 차가운 맥주나 소다 같은 차가운 음료를 안 떨어지게 사놓고, 목욕 마치자마자 딱 대령하기 시작했거든예. 그라니까 남편 기분이 완전 좋아지는 기 정말 은행에 돈 들어가는 소리가 들리는 거 같더라고예. 그리고 제 사랑 은행도 안 챙겨서 파산하면 제 마음이 멀어질 기 아임니꺼. 그래서 남편한테 처음부터 나는 둘이 함께 시간을 보내는 거를 해야 사랑받는다고 느낀다 요래 말해줬더니만 남편이 꼭 적어도 한 달에 한 번씩은 식당이든 여행이든 둘이서만 할 수 있는 거를 딱 예약해놓고 데이트 시간을 따로 내더라고요. 그게 제 삶에 주는 힘이 아주 큰 거라예. 이게 말은 쉬워도 부부로 살다 보면 잊어버리고 하루하루 살아가기만 급급해지기 쉽다 아임니꺼. 그래 아무 노력도 안 하다가 갑자기 안 하던 거를 할라 하면 마음이 안 내키고 하기가 어렵거든예. 하지만 지금이라도 사랑 은행에 투자를 시작을 해서 생활습관으로 만들어 사랑을 늘 비축해 놓으면 어렵고 힘든 일이 닥칠 때도 무사히 넘겨가며 행복한 결혼생활을 유지할 수 있는 깁니다.”


상담사는 목이 마른 지 물을 한 모금 들이키더니 곧 또 말을 이어갔다.


“다섯 가지 사랑의 언어라는 거 들어보셨십니꺼, 사람마다 사랑받는다고 느끼는 사랑의 언어가 다 다르다꼬 말했지예. 현철 씨는 제가 내 드린 숙제장에 보셨지예? 미국의 유명한 결혼상담 전문가가 이 사랑의 언어를 다섯 가지로 정리했는데, 그 다섯 가지 기억나십니까, 현철 씨?”


“'봉사', '인정하는 말', 또… '함께 하는 시간', '스킨십',… 나머지 하나가 기억이 안 나네요.”

“선물을 잊으신 거 보이까네 현철 씨의 사랑의 언어는 '선물'은 아닌 모양이네예.”

“그런 것 같습니다. 선물은 주로 마음에 들지 않거나 부담스럽다고 느낍니다.”

“저는 선물이 필요해요!”


갑자기 아내가 외치듯 말하는 바람에 상담사도 현철도 깜짝 놀라 아내를 바라보자 두 사람의 시선에 무안해진 아내가 얼굴을 붉혔다. 그러면서도 아내는 말을 이어나갔다.


“ 큰 선물을 바라는 게 아니라요. 그냥 산책길에 돌멩이라도 하나 주워다 주기만 해도 내 생각했구나 싶어 좋은 거예요.”


아내가 스스로의 사랑의 언어를 깨닫는 순간인 듯 산들바람이 살랑 부는 것처럼 방 안의 공기가 시원하게 편해졌다.


“현철 씨는 자신의 사랑의 언어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세요?”

"저는 글쎄요... 특별히 무엇인지는 모르겠는데 지금은 '인정하는 말'이 고픈 것 같아요. 아내가 같이 못살겠다고 이혼하자고 할 만큼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못되고 있는 지금의 상황이 저를 너무 지치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현철은 숙제 글을 읽으면서 생각했던 것을 입 밖으로 뱉어내기 시작했다.


“저희가 그래도 '봉사'라는 사랑의 언어는 열심히 하고 있지 않았나 생각이 듭니다. 특히 아내가 많이요. 가족들을 챙기고 밥을 계속 짓는 일, 빨래를 매일 하는 것, 집안 청소를 하는 것 이 모든 것이 아내의 사랑의 언어였다는 것을 깨달았어요. 그래서 저희 관계가 아니 제 마음이 밑바닥에 이르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다만 그것이 제가 가장 사랑을 느끼는 언어가 아니었을 뿐이죠. 생각해보면, 저는 인정받는 말을 듣는 것이 정말 중요한 것 같아요. 자존심 때문에 아내에게는 한 번도 말을 한 적은 없지만요. 어릴 때부터 승부욕이 강했고, 늘 남보다 잘해야 했고, 그것은 결국 인정받는 말, 칭찬을 너무도 원했어요. 아내가 힘들어 하기 시작하면서 저는 하루아침에 모자란 남편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렇게 아내가 만족하지 못하는 눈빛이, 그리고 마음이 상해버린 아내가 저를 투명인간 취급하는 차가운 태도가 제 사랑 은행의 돈을 다 빠지게 하는 중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데 제가 더 나빴다는 것도 깨달았어요. 제가 너무 제 식대로 할 것을 강요하고 내 아내, 연진이가 어떤 사람인지 잊어버리고 살고 있었어요. 숙제를 하면서 ‘아내의 사랑의 언어는 무엇일까? 아내를 위해 내가 해주고 있는 게 뭐지?’라는 생각을 해 보았는데요. 생활비를 벌어다 주는 것 밖에 없더라고요. 아내가 참 잘 웃는 사람이었는데 제가 많이 잘못한 것 같아서 미안한 생각이 많이 듭니다.”


아내는 숨죽여 흐느끼기 시작하는가 했더니, 이내 엉엉하고 어린애처럼 울음보를 터뜨리고 만다. 현철은 상담사가 주는 티슈를 아내에게 건네주고 등을 어루만져 주는 것 밖에 해 줄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아내가 지금 실컷 우는 것이 필요한 것인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어, 적극적으로 달래지 않고 그냥 기다렸다.


“아내분께서는 천천히 마음을 진정하시는 동안 저는 남편분과 잠시 이야기를 하겠습니다. 현철 씨, 결혼하기 전에 아내를 처음 만났을 당시를 한 번 떠올려 보세요. 아내가 좋아했던 것이 무엇이었나요?”


잠시 과거의 추억을 더듬던 현철이 입을 떼었다.


“연진이는 새로운 것들을 보고 경험하는 것을 좋아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유학을 왔다고 했어요. 아내는 춤추는 것도 좋아했어요. 유학시절 아내는 캠퍼스 안에서 라틴댄스를 배우러 다녔어요. 하지만 제가 춤과는 거리가 먼 데다가 애들이 생긴 이후로 아내의 삶도 춤과 거리가 멀어졌던 것 같습니다. 여행 다니는 것도 좋아했는데….”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아내가 좋아하는 것들을 못하게 하고 괴롭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자 현철의 마음이 힘들어졌다. 반면, 아내는 자신이 좋아했던 것을 들으면서 마음이 좀 진정되는 듯 보였다.


“현철 씨, 어떤 가정을 꾸려나가길 원하십니까? 생각을 해 보시고 우리 다음 시간에 솔직하게 한 번 마음을 털어놓아 보입시더. 다음 시간에도 같이 오실 수 있지예?”


아내는 말없이 흐르는 콧물을 훔치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지난번 현철의 고름이 터졌던 것처럼 아내의 상한 마음도 고름이 터지고 흘러나온 듯 느껴졌다. 다행이다라고 현철은 생각했다.


“현철 씨 숙제는 아시겠지예? 꾸리고 싶은 가정에 대해 글을 먼저 한 번 써보시면 도움이 될낍니다. 그리고 연진 씨는 언제 사랑을 받는다고 느끼는지, 또 언제 마음이 상하는지, 남편이 들어줬으면 하는 이야기들을 쭉 써오이소! 그리고 이 '대화법'과 '경계선'에 관한 복사물을 읽으시는 것도 연진 씨 숙제입니다.”




집으로 돌아오는 차 안에서, 현철은 그 전의 상담들이 어땠는지, 현철이 어떤 마음의 수술을 견뎌야 했는지, 현철이 왜 부모님 이야기만 나오면 그렇게 예민하게 반응했는지 아내에게 담담하게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내는 말없이 현철의 말을 처음부터 끝까지 들어주었다. 그렇게 다 들어준 아내가 고마웠다.


그날 밤부터 현철은 계속 집에 무언가를 사다 날랐다. 붉은 장미부터 시작해서 하다 못해 초콜릿 한 조각이라도 집으로 귀가하는 현철의 손이 비어있는 날이 없었다. 아내는 별 표정의 변화 없이, 말도 없이 선물을 받아 들곤 했지만 거부하지 않는 것 만도 다행이라고 현철은 생각했다. 오늘은 귀갓길에 아내가 좋아하는 사과를 한 봉지 가득 사서 들고 왔다.


“이렇게 매일 선물 주지 않아도 돼. 나 당신을 떠나지 않을 거야. 당신이 포기하지 않고 우리 부부 관계를 위해 노력해 줘서 고맙다는 생각이 들었어.”


떠나지 않는다는 아내의 말에 현철은 가슴이 벅차오르다 못해 눈에 눈물까지 차올라 아내에게 달려들듯 부둥켜안고 그 품에 머리를 파묻었다. 아내가 현철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을 느끼며 현철의 마음이 조금씩 차분해졌다.


“현철 씨, 나 죽어가고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어. 너무 지쳐서 살아갈 힘이 도저히 없어서 헤어지자고 그랬어. 진짜 '사랑 은행' 파산 직전이었나 봐. 나 살고 싶어. 이 가정을 깨지 않고 살 길을 찾고 싶어…”

“연진아, 내가 잘 못 살아온 것 같아. 상담받고 배울게. 뭐든지 할게.”




두 사람이 다시 상담사를 찾아간 날은 가을내음이 제법 짙어진 고즈넉한 저녁시간이었다. 상담사는 초등학교 여교사처럼 대뜸 숙제 검사부터 시작한다.


“두 분 숙제는 잘 해왔지예? 두 사람 숙제한 거 서로 교환해서 읽어보고 먼저 읽은 사람부터 읽고 느낀 점을 말하세요.”


수 분간 정적이 흘렀다. 현철은 아내가 언제 사랑을 느끼는지, 마음이 상하는 지를 쭉 읽어 보면서 허탈한 심정이 들었다. 아내도 현철의 글을 읽고 썩 좋아하는 표정은 아니다. 먼저 읽은 현철이 갑자기 내려앉는 것 같은 자신의 어깨를 주무르며 아내의 숙제지에서 눈을 들어 상담사의 눈과 마주치자 상담사가 현철을 조용히 재촉했다.


“현철 씨는 아내분이 쓴 거를 보고 무엇을 느끼셨습니까?”

“제가 참 부족하다는 생각이 먼저 듭니다… 아내에게 좋은 남편이 될 자질 자체가 없는 것 같아 저 자신이 싫어집니다. 그리고 아내의 미래의 꿈과 제가 생각하는 가정에 대한 꿈이 좀 많이 다른 것 같습니다.”

“아내 분은 남편분의 글에 대해 어떻게 느끼십니까?”

“솔직히… 하...”


아내는 말을 멈추고 한숨을 쉰다. 그리곤 선생님 앞에서 발표하는 학생처럼 굳은 표정으로 다시 말을 이어갔다.


“화가 납니다. 남편의 글에는 저에 대한 배려와 존중이 없습니다. 물론 하루 종일 남편이 밖에서 일하는 게 힘들다는 것도 알고, 자존심 강한 남편 성격에 살갑게 말해주고 세심하게 배려해주고 하는 것이 힘들다는 것도 압니다. 하지만 이건 좀 아닌 것 같아요. 이 꿈 안에는 제 인생이, 제 꿈이 존재하지 않아요…”

“무슨 말이야. 내가 당신 없이 어떻게…”

“잠깐 내가 하던 말 먼저 끝낼게.”


아내는 단호하게 현철을 자르고 자신의 말을 이어갔다. 현철은 하고 싶은 말이 입만 열면 폭포수처럼 터져 나올 것 같았지만, 아내의 대답만을 진지하게 기다리고 있는 상담사의 굳은 표정을 보고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선생님이 저에게 숙제로 내주신 거 <경계선>에 대해서 읽어보고 참 많은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저는 저 자신을 잃어버리고 살았고 그것은 저의 책임이었습니다. 제가 저의 필요를 항상 뒷전으로 만들었고, 그것에 대해 늘 남편이 외조를 해주지 않는다 마음속에 불평만 가득했어요. 이제 제 삶에서 제가 사라지도록 내버려 두지 않을 거예요. 저도 저의 재능을 세상과 나누는 일을 찾고 싶고, 하던 공부도 마무리하고 싶어요…”


아내는 남한테만 맞추는 것이 아닌 남편이나 시부모에 의해 통제되는 것이 아닌 자신 있는 그대로 존중받는 삶을 꿈꾸며 자신의 일을 찾고 개발하여 인간으로서 의미 있는 인생을 살고 싶다는 말을, 그러한 생각을 남편으로부터 존중받기를 원한다는 것을 여러 예를 들어가며 긴 설명을 한 후 말을 그쳤다. 내가 입을 열려한 것과 동시에 상담사가 억센 경상도 사투리로 중재를 했다. 우렁찬 그녀의 경상도 사투리가 항상 이길 수밖에 없다.


“자. 잠깐만예. 현철 씨가 할 말이 많으시지예. 제가 할 말 할 시간을 드리겠습니다. 그런데 아내분이 말씀하신 거에 대한 거 말고, 현철 씨가 어떤 가정을 원하시는가, 그거를 저한테 간단하게 설명해 주시겠습니꺼? 아내한테 하고 싶은 말이 있는 거 그 안에 포함시켜가며 말씀해 주셔도 괜찮겠지예. 자 지금부터는 현철 씨가 다 말하는 동안 연진 씨는 반박하고 싶은 대목이 있어도 끼어들기 안 하고 끝까지 들어주셔야 됩니다.”


나는 내가 만들고 싶은 가정에 대해 깊이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노트에 정리해서 들고 왔기에 그것을 그냥 읊어 주기만 하면 되었다.


“참 솔직하게 잘 써오셨네예. 숙제 참 잘했어요! 짝짝짝!”


유치한 상담사의 반응 때문에 이유 없이 또 웃었다. 아내는 턱을 아래로 떨어뜨리며 고개를 기우뚱 젖히는 특유의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처음부터 자신이 원하는 것을 분명하게 알고 솔직한 기 좋은 깁니다. 현철 씨는 가정의 리더가 되고 싶고, 자신을 리더로 존중해 주고 따라 줄 사람을 원하고, 당신과 당신의 아이들에게 따뜻한 집이 되어 줄 여자를 원한다. 당신이나 자녀가 일과 학교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지친 육신과 영혼을 따뜻한 음식과 보살핌으로 재충전시켜 줄 수 있는 홈 스위트 홈을 꿈꾼다. 이기 요점이네예!”

“네, 물론, 같이 교육받고 같이 일하는 여자들에게 집안일까지 전담시키는 것은 가혹한 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만. 솔직히 제가 꿈꾸는 가정은 그렇습니다.”

“현철 씨 생각, 가정에 대한 꿈은 존중받을 가치가 있습니다. 일의 분배를 어떻게 할 거냐 그런 것들을 구체적으로 생각하기 이 전에 현철 씨가 무엇을 원하는지는 스스로 분명히 하고 아내와 대화해 나가는 것은 중요합니다. 현철 씨가 꿈꾸는 가정은요, 정말 좋은 가정이 될 수 있십니다. 그것은 가족 구성원 모두에게 재충전의 역할을 공급할 수 있는 효과적인 가정을 꾸리는 것이기에 이 꿈은 정당하고 좋은 꿈입니다. 하지만 이 꿈에서 하나 빠진기 있습니다. 바로 아내 역할 엄마 역할을 하는 여자의 재충전에 대한 부분입니다. 쉽게 설명하자면, 현철 씨나 애들이 따뜻한 휴식 같은 집이 필요하다면, 연진 씨도 휴식할 수 있는 따신 집이 필요한 기지예. 인간은 누구나 재충전이 잘 돼야 자기 역할을 계속 잘해 나갈 수 있는 거거든예. 일을 하는 여성의 경우도 아이를 소홀히 한 것 같은 죄책감 때문에 나머지 시간을 좋은 엄마가 되는데 쏟아붓느라 자신의 재충전 필요를 돌아볼 여유가 없고, 전업 주부의 경우에도 계속 집에 있는 사람이라는 이유로 여성 자신조차도 재충전의 필요와 이유를 간과하기 쉽고, 다른 가족 구성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기 현실입니다. 여자의 재충전은 남자들과 좀 다를 수밖에 없심니더. 여자에게도 따뜻한 음식과 보살핌이 늘 주어질 수 있으면 좋겠지만, 여자에게 이러한 따스한 보살핌은 친정엄마가 아닌 이상 누가 매일 해 줄 수 있겠능교? 간혹 요리를 잘하는 남자가 있어서 도움이 되는 경우도 있겠지만 대부분의 남자들은 여자가 마음 놓고 쉬도록 보살펴 줄 수 있을 만큼 위로가 되는 음식을 만들 수 있는 기술이 없다 아임니꺼?”


아내는 누가 가려운 등이라도 긁어준 듯, 고개를 크게 주억거리며 상담사의 말에 홀린 듯 빠져들고 있었다.


“그래서, 남편은 여자를 재충전해 줄 수 있는 다른 기술이 필요한 것입니다. 여자가 재충전이 안되면 외롭고 슬픈 마음이 마음 바닥에 까득 차오릅니데이. 불평불만을 달고 살거나 비교의식에 빠져 남자가 신경 쓰고 잘해주는 다른 대상에게 질투의 불똥이 튑니데이. 아내가 시댁 식구들을 꺼리는 근본적인 이유도 바로 이겁니데이. 당신이 아내를 사랑으로 재충전시켜주지 않은 탓요. 내가 마음이 말라 터진 논이요, 현금이 돌지 않아 부도직전인데 시댁 식구들까지 신경 쓰이게 하든지, 섭섭한 소리 한마디씩 거들면 완전 빡 도는 거 아입니까, 그건 진짜 급속 파산의 지름길입니데이! 그라고 연진 씨, 남자도 마찬가지로 재충전이 이루어지지 않으면 원망과 실망이 쌓이다가 결국 외도나 중독, 급기야는 가정을 버리고 떠나고 그라는기지예.”

“아내를 어떻게 재충전을 해줘야 합니까?”

“바로 사랑의 말과 행동입니다. 지난번에 배웠던 사랑의 언어 있지예. 방금 또 아내가 싫어하는 거, 원하는 거, 앞으로 하고 싶은 것들 들으셨다 아임니꺼. 그것들 종합해서 배려하고 아내가 사랑받는다고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행동을 하시면 되지예. 어려울 거 하나도 없심니데이. 머를 원하는지 잘 모르겠으면 그 다섯 가지 - 선물, 함께 하는 시간, 봉사, 인정하는 말, 스킨십 - 모든 것을 돌아가면서 하면 돼요. 당신의 아내, 연진 씨가 당신을 위해 하루는 콩나물국, 하루는 된장찌개 돌아가며 다른 음식을 하듯, 남편들도 돌아가면서 하면 됩니다. 하루는 아내가 좋아하는 과일, 빵, 꽃 이런 것들을 선물하고, 다음날은 설거지를 도와주고, 매일 칭찬 한 마디, 매일 출퇴근 길에 꼭 안아주고, 가끔은 둘 이서 차 한잔/외식 이런 시간들을 끊임없이 가지는 것 이지예. 이것은 단순히 사랑의 표현을 넘어서서 당신이 가정을 건강하게 유지하기 위한 신성한 치유활동입니다.”


상담사는 긴 말을 하고 목이 몹시 마르는지 물로 목을 천천히 축이며 잠시 간격을 두더니, 다시 오른손 검지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현철을 응시하며 말을 이어간다.


“하지만 여기까지는 사실 결혼 안 한 총각들도 알만한 상식적인 내용일 수 있어예. 제가 오늘은 부부 사이 대화가 부드럽게 도와주는 좋은 기술 하나를 더 가르쳐드릴라고예.”


상담사는 연극배우 같은 과장된 태도로 굉장한 비밀을 가르쳐 준다는 양 안경을 고쳐 쓰며 눈을 빛냈다.


“그기 먼가 하면요, 바로 서로의 마음을 깊이 알아주는 일, 부부 사이의 ‘공감’, 영어로 ‘empathy’라 카는기 필요하다 이 말입니다. 여기서 공감은 ‘맞아, 나도 그렇게 느낐다!’라고 맞장구 쳐주는 정도가 아입니데이. 상대방의 마음으로 들어가가 함께 그의 관점으로 세상을 봐주는 기라예. 상대방의 느낌과 사고방식을 판단 없이 이해해 주고 받아 주는 것을 말합니다. 상대방의 의견에 모든 것을 동의하라는 말도, 문제를 다 해결해 주어야 한다는 뜻도 아입니데이. 그저 상대방의 깊은 마음을 이해하고 그것을 서로가 소통하는 것에 관한 이야기라예. 이것은 남녀노소가 없이 적용되는 인간의 기본적인 필요인데도 학교에서도 사회에서도 말해주지 않는 친밀한 관계의 비결이지예.”





모처럼 온 식구 다 같이 둘러앉아 밥을 배불리 먹고, 평온한 집안 공기를 힘껏 들이키며 현철은 상담사에게서 받아 온 복사물을 펼쳐 들었다. 쭉 읽어 내려가다가 현철의 입에서 “아!” 하고 탄성이 터져 나왔다. 현철이 읽고 있던 대목은 이것이었다:


[상대방의 말을 들으면서 어떤 생각과 감정이 밀려와도 잠시 내려놓고, 상대방의 세상으로 들어가 충분히 함께 느껴 보라. 상대가 어떤 상황에서 어떻게 느끼고 어떻게 반응하고 어떻게 생각을 정리하는 사람인지를 충분히 이해하게 되면 더 이상 화낼 것도 두려워할 이유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사람은 그 감정과 생각과 모든 것을 수용받을 때에야 그때 비로소 깊이 사랑받고 존중받는다고 느끼는 존재들이다…]


왜 이런 것들을 나이 40이 되도록 알지 못했을까? 인생 1막이 접히고 2막이 시작되는 것을 느끼며 현철은 가슴이 벅차올라 제 가슴을 퉁퉁 치고 있는데 아내가 과일을 깎아 들고 들어오다가 토끼눈을 하고 현철을 본다.


“체한 거 같아? 너무 많이 먹더라.”

“아냐, 이거 '공감'에 관한 거 읽다가 깨달음이 와서… 당신도 이거 읽어봐.”

“알았어. 읽을게.”


아내가 건성으로 대답하곤 현철을 물끄러미 보다가 조심스럽게 입을 연다.


“있지… 난… 아무리 생각해 봐도… 어머님 아버님과 사는 거… 내 몸과 마음이 감당 못해. ”


아내가 갑작스레 꺼낸 말이 예민한 신경을 툭 건드린다. 항상 아내가 내 부모의 이야기를 할 때마다 그랬던 것 같다. 생활비 학비 다 보내주는 시부모님한테 배은망덕한 마음자세라고 늘 결론지었었다. 그냥 아내 마음을 들어주랬는데… 젠장!


“나이 드신 부모님이 하나밖에 없는 아들 가까이 있고 싶은 마음, 가까이 모시고 싶은 아들 맘 짐작 안돼? 넌 나중에 안 늙을 것 같아?”


내 예민한 맘이 허락도 없이 경박하고 이기적인 본성을 드러내며 먼저 튀어나와 버린다.


“으이그, 상담받으면 뭐해? 늘 자기네들 맘, 생각만 중요하지. 내 입장은 들어보지도 않고. '공감' 그거, 나보고 읽어보라 하지 말고, 너나 100번 다시 읽어보고 실컷 공부해라 인간아.”


아내가 빈정거리며 방문을 신경질적으로 닫아 붙이고 나간다. 머리로는 알겠는데 감정이 따라주지 않는다. 알 수 없이 복잡하게 헝클어져 도무지 풀 수 없는 매듭처럼 부모님 문제만큼은 죽어도 타협하기 싫다는 고집이 불쑥 튀어나와 다시 제대로 건강한 부부 관계를 만들어 보려는 현철을 가로막는다. 이 고집은 자꾸 둘 중 하나를 고르라고 한다. 아내 말을 듣던지 아니면 부모 말을 듣던지.


'제길, 아무도 내 생각은 안중에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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