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안아주는 남자'
우산을 무용지물로 만드는 거센 빗발에, 차에서 집까지 들어오는 그 몇 초간, 여자도 나도 피할 도리 없이 흠뻑 젖었다. 여자에게 마른 옷가지와 수건을 내밀었지만 그녀는 수건만을 받아 들었다. 그녀가 거실 소파에 앉아 젖은 옷과 머리를 수건으로 꾹꾹 눌러 닦는 사이, 나는 방으로 들어가 마른 옷으로 갈아입고 나왔다.
“배고프지 않으세요?”
“어… 전 따뜻한 물 한 잔이면 돼요.”
그녀는 멍한 눈길로 내가 앞치마를 두르는 것을 보다가 문득 깨달은 듯 예의 바르게 말했다.
“지금 힘이 너무 없어 보이시는데, 음식 드실 수 있으면 같이 드세요. 전 배고파서 뭘 좀 먹을까 하는데. 된장찌개에 밥 어때요?”
“그럼…, 주세요. 같이 먹어요.”
어릴 때 엄마가 끓여 주시던 된장찌개 맛을 내 보려고 얼마나 노력했는지 모른다. 엄마가 돌아가셨을 때 나는 ‘어머니를 잃는 것은 세상을 잃어버리는 것’이라는 말의 의미를 깨달았다. 나의 어린 시절. 나의 가족. 내가 좋아하는 음식. 나를 위해 기도하는 사람. 그것들이 나를 이루는 세상이었던 것을 그제야 깨달았다.
“제가 어떤 할머니한테서 된장찌개 맛있게 끓이는 비법을 전수받았거든요.”
“어떻게 끓여요?”
“말해 주면 비법이 아니죠.”
여자의 창백한 얼굴에 처음 보는 해맑은 웃음기가 떠올랐다.
“자 이제 다 됐습니다.”
따끈한 찌개와 함께, 단골 할머니들한테서 얻은 몇 가지 장아찌들과 김치들을 꺼내 상을 차렸다. 밥도 물 양이 딱 맞았는지 고슬고슬하게 윤기가 돌았다. 여자가 찌개를 한 수저 떠서 맛을 보았다.
“맛있네요! 어쩜 향이 이렇게 좋죠?”
“하나만 알려드려요? 마지막에 찌개를 불에서 내리기 직전에 꽈리고추 하고 쑥갓, 깻잎, 파를 얇게 썰어 듬뿍 넣어줘요. 향이 확 살아나요.”
“그 할머니가 가르쳐 주신 비법인가요?”
“그게 다는 아니죠. 여기 들어간 야채들 모두 어제 밭에서 직접 딴 싱싱한 놈들이라는 것도 큰 비결이죠.”
“정말요? 밭이 있어요? 재호 씨가, 직접 키우시는 거예요?”
여자는 밥을 먹고 나서 뒷마당으로 나가는 문을 열어 보았다.
“어머나, 토마토가 주렁주렁 열렸네요. 고추도 있고, 깻잎도, 저기 펜스를 타고 올라가는 건 뭐죠?”
“왼쪽에 잎이 좀 더 둥그스름하고 순박하게 생긴 건 호박이고, 오른쪽에 잎 모서리가 더 뾰족한 건 오이예요.”
“오이만 열매가 없네요. 오이는 언제 열려요?”
“지금 한참 열릴 때인데, 꽃만 피고 열매를 못 맺네요.”
“꽃 핀 자리에 열매가 열리는 거 아니에요? 과학 시간에 그렇게 배운 것 같은데.”
“꽃만 핀다고 되는 게 아닌 모양이에요. 요즘 벌, 나비의 수가 줄어가는 게 문제라지만, 오이 말고 다른 채소들은 열매를 잘 맺고 있는데 뭐가 문제인지 모르겠어요.”
“저 오이… 언제까지 기다려 주실 거예요?”
“네?”
“땅만 차지하고 민폐잖아요. 열매도 못 맺는 오이.”
씁쓸한 냉소를 짓던 여자는 이내 고개를 들어 하늘을 향하며 표정을 감추었다.
“그래도 하늘은 공평해요, 그죠? 제 몫을 하든 못하든 모두에게 해와 비를 주니까.”
여자의 알듯 말듯한 말들이, 가슴에 아릿한 전율을 일으켰다.
“비가 좀 잦아드네요. 전 가봐야 되는데…….”
“잠깐만요, 제가 집까지 운전해 드릴게요.”
“이제 괜찮아요. 늘 다니는 길인데, 아깐 잠시 딴생각을 했던 것 같아요. 참, 재호 씨 차 공원에 있죠?”
“전, 걱정 말아요. 여기서 공원까지 걸어갈 만한 거리니까. 그보다, 오늘 임무를 해야죠.”
“비가 와서 포기하고 있었는데… 지금 여기서 하자고요?”
“여기서 해요. 할 일은 해드려야죠.”
나가려다 멈춰 선 여자는 현관 입구에 서서 입수 준비를 하듯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나는 다가가 두 팔을 벌려 여자를 안았다. 마른 티셔츠 너머로 채 다 마르지 않은 그녀의 옷이 서늘하게 느껴졌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이 주문은 오늘도 어김없이 여자의 눈물샘을 폭발시켰다. 여자는 품 안에서 어깨를 들썩거리며 한참을 울었다. 차가운 여자를 더욱 꼭 힘주어 안은 채, 등을 천천히 두드려주자 여자의 북받치는 울음이 서서히 잦아들었다.
“미안해요. 갈아입은 옷을 다 버리셨네요.”
여자의 얼굴이 닿았던 티셔츠 부분이 얼룩져 있었다. 울음을 밖으로 다 쏟아내 버린 여자의 얼굴은 말갰다.
소중한 사람이라고 매일 주문을 외는 사이, 나도 마법에 걸려버린 걸까? 더 안아주고 싶었다. 더 깊이 더 오래 온기를 넘어서 뜨거운 열기를 전해주고 싶었다. 나는 여자를 순식간에 다시 감싸 안고 덮치듯 키스했다. 여자가 거부하지 않았기에 키스는 길게 이어질 수 있었다. 문제는 내 머릿속에서 일어나기 시작한 거부반응이었다.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는 말이 뇌리를 스치더니, 잇따라 엄마의 얼굴이 나타났다. 엄마의 존재감이 강렬해질수록, 가슴에 일던 불길은 흔적도 없이 사그라져 갔다. 여자를 아직 차갑게 젖은 그대로 남겨 둔 채, 낯 뜨거운 감정들이 내 두 팔을 등 뒤로 꺾어 묶어 버렸다.
다음날 아침, 여자에게서 문자가 왔다. 몸이 아파 당분간 못 나온다고, 다시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아무 기별 없이, 길고 긴 하루하루가 끝없이 이어질 뿐이었다. 일을 그르쳐버렸다는 느낌. 익숙한 실패감이 가슴을 파고들었다. 일주일쯤 지난 후 다시 연락이 왔다. 더 이상 도움이 필요하지 않다는 마지막 통보였다. 어차피 모든 심부름엔 끝이 있는 법이니까. 미션 완료일 뿐인 것이다.
그렇다 해도, 나도 모르게 쏟아진 마음이 그리 쉽게 주워 담아지지는 않았다. 구차한 이야기지만 나는 그녀의 집을 알고 있었다. 우연히, 아주 우연히, 길에서 그녀의 차를 발견하곤, 그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그 행동은 그의 뇌를 거치지 않은 자동 반사에 가까운 것이었다. 재빨리 콘솔박스를 열어 안경과 모자를 꺼내 쓰면서, 자괴감이 묵지근히 심장을 압박했지만, 이미 시작한 것을 멈추기엔 역부족이었다.
여자의 차가 우회전을 세 번 거듭하고 들어선 길 끝엔 집이 한 채 밖에 없었다. 나는 마지막 우회전을 하지 않고 맞은편으로 좌회전한 후, 천천히 차를 몰았다. 백미러로 보이는 그녀의 집은 거대한 맨션이었다.
시간 날 때마다 나는 그녀의 집 근처를 천천히 차를 몰며 배회하곤 했다. 미친놈처럼. 고객을 만나러 가면서 한 번, 들어오는 길에 한 번,… 그러는 사이 나는 그 집에 사는 풍채 좋은 날카로운 눈매의 할머니와, 그 체격과 눈매를 그대로 닮은 중년 남자를 보았다. 멀리서 보기에도 오만한 기세가 등등했다. 노인과 남자가 외출할 때마다 여자가 따라 나와, 그들을 꼭 안아주기도 하고, 차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손을 흔들어 주기도 했다. 저 뻣뻣한 얼음장 같은 사람들 사이에서 여자는 제 온기를 다 뺏기고, 주림에 허덕였던 것일까? 여자는 이제 어떻게 온기를 채우고 살까? 마음에 고인 눈물을 어디에다 쏟고 살까?
그녀의 주변을 배회할수록 나는 더욱더 괴로워졌지만, 결코 멈출 수는 없었다. 이 미친 짓을 자꾸 부추기는 건 나의 타고난 장기 인지도 몰랐다. 이상하게 들리겠지만, 나는 내 존재감의 정도를 조율할 수 있다. 안경을 쓰기 전까진, 그 능력을 자각하지 못했다. 청소년기에 들어서 시력이 나빠진 나는, 어느 날 뿔테 안경을 맞춰 쓰고 교회에 갔다. 엄마가 계셨던 동안엔 교회에 꾸준히 출석했으므로, 나와 내 가족을 모르는 교인이 없던 때였다. 그날은 예배 후 교회 행사가 연달아 있어 하루 종일 교회에서 지냈다. 종일 이상한 소외감에 시달렸다. 하루가 다 지나도록 평소 친하게 말을 섞고 지내던 녀석들조차도 말을 걸어오기는커녕 눈도 마주치지 않았다. 나를 알아보지 못하는 정도가 아니라 마치 나의 존재를 느끼지 못하는 것 같았다. 그런 기이한 경험이 반복되면서, 나는 익숙한 배경그림처럼 극도로 미미해질 수 있는 내 존재감에 대해 확신을 갖게 되었다.
나는 대범하게도 여자가 다니는 교회 안으로 들어섰다. 한인들만 천 명쯤 앉아 있는 대형교회의 11시 예배. 여자의 모습이 좀처럼 레이더망에 잡히지 않았다. 예배가 끝나고 사람들의 행렬은 카페테리아로 이어졌다. 점심이나 한 끼 때우자는 생각으로 나도 그 행렬에 끼어들어갔다. 아, 저 노인!
여자의 집 앞에서 보았던 날카로운 눈매의 할머니가 몇 발자국 앞에 서 있었다. 자세히 보니, 눈가에 짙은 아이라인까지 더해 더욱 부리부리한 느낌이었다. 금테 안경을 쓴 다른 할머니가 아이라인 할머니의 팔을 잡으며 다가왔다. 앗! 집주인 할머니! 예상치 못했던 인물의 출현에 가슴이 훅 내려앉은 나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 다행히 그녀는 뿔테 안경에 가려진 내 존재를 감지하지 못하고 아이라인 할머니를 보며 말을 걸었다.
“내가 그 집 며느리 이거 줄라고 한참 찾았네.”
“그때 말한 그거 구했어?”
“이걸 꿀에 재어서 한 토막도 빠짐없이 꼭꼭 씹어 먹으라 그래. 골프장 집 며느리도 이거 먹고 아들 쌍둥이 들어섰잖아. 이게 한국에서도 아무나 구할 수 있는 게 아냐. 우리 딸이나 되니까 구했지.”
“아유, 이 귀한 걸!”
“근데 당신 며느리 너무 말랐더라. 살 좀 찌워야 애가 들어서지.”
“새벽기도 나가고 아침운동 다니느라 살이 안 붙었지. 이제 그만 한다고 했으니 나아지겠지.”
“아유, 신앙심도 좋고 부지런한 예쁜 며느리, 애만 들어서면 얼마나 좋아!”
아이라인 할머니와 집주인 할머니는 카페테리아 안에 들어서자 줄을 서서 돈을 내고 식판을 받아가는 대신 테이블에 자리부터 잡았다. 나는 줄을 선 채, 곁눈으로 노인들을 계속 주시했다. 갑자기 어디선가 분홍색 앞치마를 입은 그녀가 음식이 소복이 담긴 식판들을 큰 쟁반에 받쳐 들고 나타났다. 명품 로고가 선명한 정장 차림 위에 조악한 분홍 앞치마는 우스꽝스러울 정도로 어울리지 않는다는 걸 그녀는 알고 있을까.
“어머님, 제가 어머님 좋아하시는 오이무침 많이 담아 왔어요. 이 국도 어머니, 정말 구수하고 맛있어요.”
여자는 눈가에 잔뜩 잔주름이 지는 줄도 모르고 아이라인 할머니 앞에서 갖은 애교와 아양을 떨었다. 그걸 본 옆에 같이 앉은 할머니들이 한 마디씩 거들며 여자를 칭송했다.
“이런 딸 같은 며느리가 있음 얼마나 좋아!”
아이라인 할머니와 여자가 손을 꼭 잡고 선 모양새는 언뜻 보면 다정한 모녀지간 같았다. 하지만 여자에게 빈틈없이 내려 꽂히는 할머니의 눈빛은 날카롭고 표독스럽기가 용맹스러운 표범도 얼려 죽일 킬리만자로의 눈 같았다. 저런 눈을 견디고 어떻게 같이 사는 걸까?
“장선생! 장재호 선생 맞지? 안경 쓰니까 영 딴사람이네!”
집주인 할머니의 반가운 외침에, 테이블 할머니들의 시선이 일제히 나에게로 모아졌다. 내 변장술의 성역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소리를 들으며, 나는 힐끔 여자를 보았다. 그녀의 눈빛이 애처로울 정도로 불안하게 흔들렸다.
여름방학의 끝을 알리는 노동절 연휴가 끝나고 월요일 오전의 아이리쉬 펍은 전처럼 한산했지만, 그때완 또 다른 묘한 분위기를 풍겼다. 방학이 끝나는 것이 아쉬운 학생들의 광란 파티가 있었던 모양인지, 밤새 실내 구석구석에 밴 맥주 냄새 음식 잡내가 퀴퀴한 무력감을 불러일으켰다.
집에서 잠이나 잘 걸 생각이 드는 즈음에 그녀가 문을 열고 들어섰다. 지난번 교회에서 보았을 때와 비슷한 느낌의 고급 정장 차림이었다. 셔츠 깃, 소매 끝, 가방에 달린 펜던트, 신발의 문양,… 그녀가 착용한 옷과 물건 여기저기서 반짝거리며 눈길을 끄는 명품 로고들이 독한 양주처럼 훅 들어와 속을 뒤흔들었다. 두통이 일었다.
“그동안 잘 지냈어요?”
여자는 묻고 싶은 많은 말들을 애써 누르기라도 하는 듯, 긴 한숨처럼 질문을 뱉었다.
“네. 전 그냥저냥…….”
내가 만만히 상대할 수 없는 높은 신분의 누군가와 이야기하는 듯한 어색한 기운에, 쉽게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 그저 고개만 주억거리다가, 이거 하난 꼭 물어봐야 하겠기에 눈을 들어 여자를 응시하며 천천히 입을 뗐다.
“행복… 하세요?”
“행복?”
여자는 행복이라는 두 글자를 날카롭게 뱉어낸 후, 제멋대로 비틀어지려는 입술을 깨물어 누르며, 웃음인지 찡그림인지 모를 표정을 지었다.
“그쪽이 무슨 상관?”
“난 당신이 행복했으면 좋겠어요.”
“지금 내 행복이 뭐가 그렇게 중요해요? 앞으로 태어날 내 아기의 행복이 중요할 뿐이지!”
“당신의 행복도 중요하지 않나요? 그래서 돈까지 주고 안아 줄 사람…….”
“의뢰인의 비밀!”
여자는 꽥 소리쳤고, 내 말은 힘없이 툭 끊겼다. 할 말을 잃은 나를 두고 여자는 무서운 속도로 말을 이어갔다.
“지켜주기로 하지 않았나? 그 정도 상도덕 비즈니스 룰도 못 지키면 그건 루저야 루저. 접시물에 코 박고 죽어야 할 인간이라고……! ”
미국 고등학생들이 등장하는 영화나 드라마에는 항상 루저라는 존재가 등장한다. 경쟁에서 밀려난, 인기 없고 실력 없는 찌질이. 아무도 끼워 주지 않는 외톨이. 누구나 무시하는 못난이.
이 여자는 왜 내 진심을 이렇게나 모욕하고 있는 것일까? 당신의 행복을 바라며 따뜻하게 안아주었을 뿐인데…….
뒷마당에 나가, 끊었던 담배를 피워 물었다. 버림받은 놈의 불안한 정서가 오랜만에 피우는 담배 맛만큼이나 익숙하게 호흡기 구석구석 파고들었다. 여자에게서 또 전화가 왔었다. 예의 바른 사과로 포장된 비밀보장 재확인. 비밀보장이야 말로 이런 일의 마케팅 포인트이자, 비즈니스 철칙이다. 당연하고 진부한 요구를 들으면서, 명치 부근이 찌르르 쓰려 오는 나 자신에게 몹시 화가 치밀었다. 이제 정말 끝! 끝이어야 한다!
오이는 담장 꼭대기까지 팔을 뻗어 올라가 목을 꼿꼿이 세우고 더 오를 데가 없나 살피는 것 같았다. 어디까지 올라갈 셈인지. 나는 성난 얼굴로 목장갑을 끼고 오이넝쿨을 향해 성큼성큼 걸어갔다. 담장 아래 묻혀 있는 뿌리를 뽑으려고 몸을 숙였다.
아! 오이!
넓은 오이 이파리 그늘 밑에서 새끼손가락만큼 작고 가느다란 오이 하나가 끝에 노란 꽃을 매단 채 자라고 있었다. 여름 끝물이라 다들 열매가 시들한데 오이는 이제 싱싱한 첫 열매를 맺고 있었다.
오이는 이제 더 행복할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