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안아주는 남자'
여름 아침, 7시가 채 되지 않은 시각, 텅 빈 놀이터를 지나 여자가 알려준 대로 오솔길을 따라 내려가면서,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몽롱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평소라면 아직 잠에 취해있을 시간이었다. 덕분에 일찍 하루를 시작하게 된 것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잘 찾아오셨네요.”
여자는 벌써 나와 있었다.
“제가 업무를 시작해도 되겠습니까?”
“네, 소중하게 대해 주세요.”
여자가 거듭 강조하는 ‘소중하게’, 어떻게 이 ‘소중하게’를 표현할까. 복잡 미묘한 감정 연기를 주문받은 연기자처럼 나는 단어를 마음에 거듭 새기며 심호흡을 했다.
“후, 그럼 소중하게 안겠습니다.”
나는 그녀를 두 팔로 감싸 안았다. 훅 밀려드는 서늘한 느낌에 소름이 오소소 돋을 지경이었지만, 그저 본분에 충실하려 사력을 다했다.
“당신은 소중한 사람입니다.”
잊기 전에 여자가 주문한 말부터 했다. 여자가 내 품 속에서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여자의 벅차오르는 감정이 느껴지는가 싶더니, 갑자기 그녀가 흐느끼기 시작했다. 흠칫 나도 모르게 몸을 떼서 여자의 상태를 확인하려 하자 여자가 내 등을 꼭 끌어안았다.
“가만히 있어요. 잠시만. 제가 그만 할 때까지요.”
나는 아차 싶었다. 친분이 없는 여자를 막상 가슴을 마주 대고 꼭 끌어안아 보니 그 어색함과 민망함은 상상 이상이었고, 약속한 15분은 미치고 팔짝 뛸 만큼 긴 시간이었다. 나는 내 몸이 나를 당황시키지 않기만을 죽도록 간절히 바랬다.
난 생각을 전환하기 위해 내 안의 상상력을 끌어모을 수 있는 만큼 총동원했다. 연약해 빠진 내 정신력의 한계는 겨우 이 한순간의 민망함을 모면하려고 돌아가신 엄마까지 소환했다. 엄마다. 삶에 배신당한 엄마가 서러워서 울고 있다. 나는 엄마를 꼭 안고서 달래주고 있다. 엄마 가지 마. 엄마가 너무 그리웠어. 엄마! 나는 나도 모르게 감정이 격해져 어린애처럼 목놓아 울어버릴 뻔했다.
“됐어요.”
여자가 흠뻑 젖은 얼굴을 옷소매로 훔치며 벤치로 가서 앉았다. 여자는 가방 속에서 봉투를 꺼내 내밀었다. 나는 봉투를 보고서야, 정신이 들었다.
“일, 잘하셨어요.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내일 여기서 또 만나요.”
집에 도착해서 보니 7시 30분이 살짝 넘어 있었다. 좀 더 잠을 잘까 누웠지만, 격한 감정이 한바탕 몰아친 후의 뒤엉킨 마음을 잠재울 길은 없어 보였다. 무엇보다 여자에 대한 궁금증이 걷잡을 수 없이 뭉게뭉게 피어올랐다. ‘사람의 온기’를 이런 식으로 사는 여자라니… 오늘 아침부터 갑작스럽게 시작된 이 일이 기이할 정도로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잠을 포기하고 텃밭에 나갔다. 오이는 오늘도 열매를 맺을 기미가 없었다. 오이꽃이 얼마나 예쁜지. 예쁜 꽃만 피고 지우는 일이 힘들까 잠시 생각을 했다. 오이 줄기는 계속 새로운 잎을 틔어 내며 앙증맞은 팔을 뻗어 줄을 잡고 올랐다. 그 야무진 노력이 가상해서, 거름흙을 더 부어 주고 물도 뿌려주었다.
땅이 있는 집에 살게 된 것은 운이 좋았던 탓이었다. 한국에서 이름 난 연예인으로 활동한다는 외동딸을 둔 노부부의 고급 콘도에 고정적으로 드나들며 집안 일도 해주고 서류 봐주는 일도 했다. 한 번도 약속시간을 어기지 않는 내가 성실하다며 자신들이 세를 주려고 내놓은 집이 있는데, 세입자로 들어오지 않겠느냐고 했다. 시세보다 턱없이 싸게 받을 테니, 집 관리도 부탁한다면서 말이다. 집을 보고 한눈에 마음에 들었다. 혼자 살기에 더 바랄 것 없이 모든 것을 갖추고 있었다. 더욱이, 넓은 뒷마당엔 텃밭이 별로 다시 손 볼 것도 없이 잘 일구어져 있었다. 모종만 몇 그루 사다 심었더니 여름이 되자 푸른 생명들이 땅을 빈틈없이 정복해 나갔다.
젠장, 아침부터 빗방울이 제법 굵게 비가 내렸다. 여자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은 공원 주차장에서 만나요. 짧은 통보였다. 나는 고객에게 내 차를 보여주지 않는다. 밀사를 담당하는 존재인 만큼, 숨어 파악되지 않는 것이 마땅하다는 생각이다. 나는 여느 때와 같이 7시 전에 도착해 차를 수풀로 가려진 건너편 길가에 세워놓고 공원 주차장 입구에 서서 우산을 쓰고 그녀를 기다렸다. 정각 7시에 은색 고급 승용차가 등장했다. 차에 관해서 나는 특별한 눈썰미를 가지고 있다. 첫날 아이리쉬 펍에서 눈도장을 찍었던 그녀의 차는 주차장 깊숙이 들어가는가 싶더니 다시 돌아 나와 내 앞에서 멈춰 섰다. 나는 우산을 접어 최대한 물기를 털어내고, 조수석에 올라탔다.
“오늘은 한 시간 정도 시간 낼 수 있어요? 시간 더 내는 만큼 비용 지불해 드릴게요.”
그녀가 공원을 빠져나가며 물었다.
“네. 시간은 괜찮습니다.”
“잠시 드라이브해요.”
그녀의 차 안엔 클래식 음악이 흐르고 있었다. 격정적이고 애절한 느낌의 피아노곡이었다.
“클래식 음악을 좋아하시나 봐요.”
“피아노 연주자가 꿈이었어요. 크게 손가락 부상을 당하고 꿈을 접어야 했지만요. 이 곡이 제가 연주회를 앞두고 연습하던 곡이었어요. 절망하고 아팠던 제 젊은 날의 영혼이 깃든 인생 음악이라고 할까요? 저를 속속들이 잘 아는 유일한 친구 같은 느낌? 설명하긴 어려운데, 저의 일부 같은 참 특별한 곡이에요."
“그런 아픈 일이 있으셨네요. 저도 꿈을 포기해야 했던 적이 있어서, 절망감에 대해선 조금 알죠.”
믿거나 말거나, 나는 한 때 의학도의 길을 걷던 명문대 졸업생이다. 세계 최고 의대로 알려진 대학에 합격했단 소식을 듣고 엄마의 얼굴에 피어나던 환한 기쁨. 십만 불이 넘는 빚을 떠안고 수렁으로 던져질 거라는 혹독한 현실은, 그때 우리가 누리던 희망과 기쁨을 비집고 들어올 틈을 도무지 찾지 못했다.
엄마는 갑자기 돌아가셨다. 여느 날처럼 아침 일찍 일어나 밥을 안치려 했단다. 왜 이렇게 어지럽냐며 부엌 바닥에 주저앉듯 쓰러지더니, 그 길로 의식을 잃었단다. 남의 일 목격담인 듯 담담하게 들려주시던 아버지.
엄마만 불쌍했다. 이렇게 일찍 가실 줄 알았으면, 만사를 제쳐놓고 집안일이라도 좀 더 도와드렸을 걸, 말 한마디라도 더 나누었을 걸! 때늦은 회한이 가슴에 난도질을 해댔다. 두 아들이 사이좋게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밥을 안 먹어도 배가 부르다 하시던 엄마. 그 말만 믿고 우리는 엄마가, 아니 어쩌면 우리가 처한 현실들을 당당하게 외면하고 공부만 했다. 정말 그래도 되는 거였을까? 공부 말곤, 정말 우리 책임이 없었을까?
엄마의 장례가 끝난 후, 전과 다름없는 일상이 이어지는 듯했지만, ‘우리’를 묶어주던 고리는 끊어져버렸고, 제각각 뿔뿔이 흩어졌다. 엄마가 살아 계실 때부터 오랫동안 함께 다니던 교회라는 연결고리마저 끊어지게 된 건, 아버지가 같은 교회를 다니던 유부녀와 그렇고 그런 사이라는 소문이 파다하게 번지던 무렵부터였을 것이다.
그 비루한 소문이 현실에 투사되기 시작하자, 남이 수시로 드나드는 그 집은 더 이상 ‘우리 집’이 될 수 없었다. 형은 대학원 진학을 핑계로 자연스럽게 뉴욕으로 떠났고, 캠퍼스에 홀로 남은 나는 공기 중의 부유물처럼 아무도 상관하지 않는 하루하루를 정처 없이 떠다녔다. 형의 손때가 묻은 수험서와 정리노트를 다 넘겨받았지만, 나도 형을 따라 뉴욕으로 가고 싶었지만, 단지 원한다는 것만으로 되는 일은 없는 법이었다. 4년 대학생활 동안 눈덩이처럼 불어난 학자금 빚을 확인하고 손이 덜덜 떨려왔다. 의사가 되겠다는 꿈이 막연한 도박처럼 느껴졌다. 돈을 벌어야 한다는 생각이 내 심장을 틀어 쥐었다. 보건행정학이라는 전공이 나를 지역 보건 센터로 이끌었다.
한국 노인이 많은 지역에서 한국말하는 보건 센터 사무직원은 노인들 세상의 아이돌로 자리 잡았다. 미국에 살면서 영어를 모르는 이들만큼 도움이 끝없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을까. 끊임없이 집으로 배달되는 영문서들, 의료혜택이 요구하는 서류들, 통역이 필요한 각종 생활 업무들, 각종 보건 상담,……. 직원 월급은 쥐꼬리였지만, 부수입은 노인들의 입소문 속도만큼이나 놀라운 속도로 불어났다. 외로운 노인들과 교류하는 것은 잠시나마 나의 상황을 잊게 해 주었다. 그들의 고통, 두려움, 걱정, 슬픔, 죽음에 대한 공포 같은 강한 감정들이, 꿈으로부터 추락하는 듯한 내 인생, 내 상한 감정을 덮어 가려주는 듯했다.
정확하게 5년 후, 학자금 빚이 청산되자마자, 나는 보건 센터 일을 그만두었다. ‘만능 해결사, 장선생’의 사업을 제대로 펼치기 위해서였다.
지루할 만도 한데, 여자는 진지한 얼굴로 내 지난 이야기들을 경청했다.
“재호 씨도 많이 힘들었겠… 아아! 왜 이러지?”
평온하던 여자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지더니, 운전대를 잡은 팔에 힘이 꽉 들어갔다.
“어! 어! 조심하세요!”
“왜 이래 차가! 조종이 안 돼요!”
“브레이크를 밟았다 뗐다 해 봐요.”
도로에 흥건하게 고인 물 위에서 차가 헛바퀴를 구르는가 싶더니, 순간 미끄러지면서 중앙선을 침범해 들어갔다. 마주오는 차가 없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나는 재빨리 운전석으로 몸을 최대한 기울였다. 여자를 품 안에 넣다시피 안은 채 필사적으로 운전대를 이리저리 돌려보았지만 역부족이었다. 차는 신들린 격정의 클라이맥스를 연주하는 피아노곡에 맞추어 춤이라도 추는 듯, 이리저리 제멋대로 미끄러지며 광기를 부렸다. 물이 고여 있지 않은 길가로 나가려고 죽을힘을 다해 매달렸다.
차는 길가 펜스를 한 번 들이받은 후에야 야생마처럼 날뛰던 헛바퀴질을 멈추었다. 목숨을 건 전쟁이라도 치른 듯 여자는 하얗게 질려 기진맥진했다.
“제가 나가서 차를 좀 볼게요.”
비싼 독일 차라 그런지, 차가 들이 박은 펜스 일부만 찌그러져 덜렁거릴 뿐, 여자의 차체는 멀쩡했다. 바퀴 상태를 꼼꼼히 살펴본 후 차로 돌아와 내가 운전하겠다고 하자, 여자는 순순히 운전대를 넘겨주었다. 다행히 차는 문제없이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다음 신호에서 좌회전을 하는 것으로 문제의 2차선 도로를 벗어났다. 어느새 차는 내가 사는 타운하우스 동네로 들어가는 길을 서행하고 있었다. 망설였다. 나는 고객과 철저하게 거리를 유지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였을 뿐만 아니라 아직 누군가를 집에 들인 적 조차도 없었다. 다만, 이 여자에게 물이라도 좀 먹이고 쉬게 해야 한다는 생각을 뿌리칠 수 없었다.
“저기요, 제 집이 이 근처인데… 잠시 들리실래요?”
“…….”
“남자 혼자 사는 집이라서 좀 그렇긴 한데, 따뜻한 물이라도 한 컵…….”
“네. 고마워요.”
겨우 대답하는 여자의 목소리엔 기력이 하나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