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삼일 간의 파티'
아침에 일어나니 마룻바닥이 보통 싸늘하지 않다. 이젠 완연한 겨울인가? 바깥 온도가 많이 떨어졌나 보다.
숙정은 바지 정장 위에 단정해 보이는 회색 스웨터를 걸친다. 회색은 신뢰를 주는 색깔이라고 했던가? 거울을 보며 옷매무새를 꼼꼼히 챙긴 뒤 부엌으로 내려가 끓여서 한 김 식혀둔 녹차를 보온병에 붓고, 아직 따끈한 닭살 양념구이를 곱게 담은 도시락 뚜껑이 꼭 닫혔는지 그리고 냅킨과 수저를 함께 넣는 것을 잊지 않았는지 다시 한번 확인했다.
남편의 사무실은 백악관에서 몇 블록 떨어져 위치한 고층의 수려한 로코코 양식 건물 5층에 자리 잡고 있다. 남편의 사무실로 곧장 올라가지 않고 로비 한 편에 마련된 분수대 옆 카페테리아 의자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바닥과 벽면이 다 대리석이다. 사람들의 발소리가 또각또각 선명하게 들려온다.
“뭐하러 여기까지 왔어? 도시락 없으면 하루 사 먹으면 되지? 애는?”
대리석 기둥 뒤에서 남편이 갑자기 나타나는 바람에 먼데를 응시하고 있던 숙정이 화들짝 눈을 둥그렇게 뜬다.
“내가 오늘은 특별 도시락이라고 했잖아. 애는 아줌마하고 잘 있어. 아줌마가 잘해 주시니까 걱정할 것 없어. 한 번씩 다른 사람하고 있는 것도 괜찮아.”
애 두고 외출했다는 걸로 잔소리를 시작하게 하고 싶지 않은 숙정은 발랄한 기운을 잃지 않으려 애를 쓰며 대화를 이어 본다.
“내가 당신 좋아하는 닭살 양념구이 해왔어. 아직 따뜻해. 먹어봐.”
남편은 도시락을 주섬주섬 꺼내더니 무슨 생각이 드는지 도로 도시락을 집어넣는다. 그리곤 숙정의 눈을 똑바로 응시한다.
“나한테 뭐 할 말 있어?”
“밥 식어. 우선 먹어.”
“무슨 일이야? 나 성질 급한 거 알지? 할 말부터 해.”
“저기… 나… 오늘 내 미래를 의논하고 싶어서 당신 만나러 나온 거야… 나 말이야… 다르게 살아보고 싶어서… 나 지금까지 당신하고 아이 뒷바라지만 하면서 살아왔잖아. 발전하고 싶어. 공부도 한 번 해보고 싶고……”
“아줌마, 아줌마 나이에 공부해서 뭐할 건데? 나이 40에 취직하려고?”
힘들게 비친 숙정의 마음 자락을 꼬리 잡고 빈정대는 남편의 표정을 보니 목이 메일 정도로 울화가 치밀어 오르지만 할 말은 끝까지 하자고 아랫입술을 깨물며 스스로를 타이른다.
“내 인생을 후회하지 않을 것으로 만들고 싶어. 난 늘 시녀처럼 다른 사람의 삶만 보조하며 내 인생 자체는 방관하며 살아온 것 같아. 스스로의 인생을 책임지지 못하고 누군가에게 기대어 그 사람이 바라는 대로만 살고 있는 것 같이 느껴져……”
“그 ‘그 사람’이 나냐? 그래서 내가 너 시녀로 부려먹는 것처럼 느껴진다고? 하 참! 나 지금 정말 성질나는데 회사라서 참는다. 일주일 내내 가족 위해서 돈 버는 나는 뭐냐? 머슴이냐?”
“그래. 당신도 그렇게 느낀다면 우리 같이 다르게 살아보자.”
“다르게? 놀고 있네. 다 저 하고 싶은 것 하면 지금처럼 편안히 먹고살 수 있을 것 같아? 그런 사치스러운 생각할 수 있을 거 같냐고.”
“조금 가난해진다 해도 우리 모두가 의미 있는 삶을 살고 있다고 느끼는 쪽이 더 행복하지 않을까?”
머뭇거리며 말을 시작했던 숙정은 남편의 삐딱한 태도를 무시하며 자신의 할 말을 계속 이어가는 사이 머릿속을 찬물에 담근 것처럼 점점 더 자신이 원하는 삶이 마음에 맑게 비치는 것을 느낀다. 단호한 의지가 마음 가운데 자리 잡는 것을 느끼는 숙정은 점점 흥분하는 남편의 거친 말투에도 담담해지기만 한다.
“나 회사일로도 머리가 복잡해. 이 전쟁터 같은 곳에서 호시탐탐 내가 무너지는 기회를 노리는 저 경쟁자들로부터 내 자리를 지키며 사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복잡하다고. 네가 이렇게 엉뚱한 소리로 헤집어 놓지 않아도 말이야.”
“그래? 당신은 나와 함께 서로 도와주며 다르게 살아볼 마음이 없는 것 같구나. 그럼 할 수 없지. 나 혼자서 스스로를 도울 수밖에. 난 더 이상 무시당한다는 기분을 느끼며 살고 싶지 않아. 아니, 그보다 내가 가고 싶은 길을 당당하게 걸어갈 수 있도록 독립할래. 내가 아이 데리고 나갈게.”
남편이 어이없어 입을 다물지 못하는 사이 숙정은 차분하고도 냉랭한 태도로 자리를 털고 일어나 로비를 또각또각 걸어 나간다.
‘쿠당탕… 덱 떼구르르……’
숙정의 등 뒤에서 보온병 같은 것이 대리석 바닥을 구르는 듯한 소리가 난다.
‘집 나와 어디 갈 건데? 어떻게 살 건데?’
문득 의문을 제기하는 남편의 목소리를 들었다고 생각했는데 머리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니 숙정 혼자 차 안에 손에 얼굴을 묻은 채로 앉아 있다. 어떻게든 사는 거야. 내 의지대로. 짧은 인생 단 한 번이야. 그래도 대학물까지 먹었는데 조금만 더 공부하면 석사 학위를 딸 수 있을 것이고 석사를 달고 간부급 사원이 되면 나이가 있는 것이 크게 문제가 되지 않을 거야. 부모님 계신 한국으로 돌아가는 거야. 공부하면서 아이들에게 영어를 가르쳐야지. 엄마가 분명히 도와주실 거야. 아버지는… 아버지는… 이혼을 하고 돌아온 딸을 받아주실 수 있으실까?
‘미친년’이라고 눈을 부라리시며 열 살 때 집안의 종손인 남동생을 괴롭힌다고 엄동설한 내복 바람에 한 데로 쫓아내셨던 것처럼 그렇게 또 얼음이 어는 차가움 속에 내 마음을 세워놓으실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이제 어른이다. 아버지에게 기대지 않아도 살 수 있을 것이다. 일단 돈을 어떻게든 조금 빌리면 살 집도 얻고 아이 돌봐줄 할머니도 찾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면 아무도 나의 길을 방해할 사람은 없다. 마음을 다 잡으며 숙정은 이젠 상상이 아닌 혼자서 아이 키우며 직업여성으로 살아가는 계획을 세우고 있다.
남편에게 집을 나가겠다고 선언해 버린지 일주일이 지났다. 어색하고 냉랭한 분위기가 심해에서 느끼는 압력처럼 갈비뼈를 뻐근하게 눌러오는 일곱 번의 하루들은 출근하는 남편에게 아침을 차려주고 멍하니 보내는 낮들과, 퇴근하는 남편을 맞이하고 함께 같은 방에 들어 잠을 잤는지 안 잤는지 갈피를 잡을 수 없는 밤들로 채워졌다.
실로 모든 것이 확연하게 변했다. 보통 때 같으면 남편과 사이에 불편한 기운이 도는 것을 이기지 못하는 마음 여린 숙정이 먼저 사과를 한다. 꼭 잘못한 것이 숙정이 쪽이라서 보다 그러는 편이 숙정의 마음이 더 편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말 일주일 사이 딴사람이 되어버린 숙정은 몸은 그동안 해오던 집안일을 하곤 있지만 마음은 미래를 위한 계획과 결심으로 가득 차 있다. 남편에게 미안한 마음이 없는 건 아니다. 남편이 지친 모습으로 어두운 눈을 하고 집에 퇴근해 와 저녁을 몇 수저 드는 둥 마는 둥하고 어둑한 방 한 구석에서 등을 둥글게 말고 누워 있는 것을 보면 그 뒷모습이 전에 없이 가엽고 애틋하기도 하다. 그러고 보니 남편은 일주일째 수염도 깎지 않고 있다. 그래서 더 지쳐 보이는 것 같다. 남편의 수염이 길어 갈수록 매일 아침저녁으로 남편을 대하는 일이 더욱 마음을 누르는 것 같다고 느끼며 숙정이 한 숨을 토하는 순간.
‘드르르륵……’
차고 문을 여는 소리가 아래층에서 울려온다. 오늘은 남편의 퇴근이 조금 이르다.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두둑한 겨울잠바에서 매캐한 겨울바람 냄새가 스며 나온다.
“열어봐.”
노란 마닐라 봉투 하나를 식탁 위에 툭 던지곤 남편은 욕실 문을 열고 들어간다. 집으로 오는 내내 바랬던 자그마한 소망이 따뜻한 목욕이기라도 한 듯이. 꿀럭이며 파이프를 타고 물이 흐르는 소리와 샤워실 커튼 젖히는 소리가 삐걱이며 욕실 문 밖으로 전등 빛과 함께 새어 나온다.
숙정은 선뜻 봉투에 가까이 가지 못한다. 드디어 올 것이 온 것인가! 남편에겐 이혼을 결심하기까지 딱 일주일의 시간이 걸린 것이다. 한 번이라도 더 그녀를 만류하지 않은 것은 아마도 그녀의 눈에 서린 결심이 너무 굳건해 보여서겠지만. 그래도. 그녀에게 같이 살아달라고 지푸라기 한 번 잡아보는 심정으로 애걸복걸까지는 아니더라도 말 한 번 꺼내보는 일이 그 대단한 자존심엔 그렇게 안 되는 것이었을까?
'혼자 한 번 잘 살아 보라지.'
순간, 마음에 오기가 봉긋 솟은 숙정이 빳빳한 노란 봉투를 단숨에 낚아 들고 봉투 입을 열어 내용물을 확인한다.
하얀 서류 다발을 기대한 숙정의 눈 앞엔 남편 글씨의 손편지에 클립으로 함께 고정된 생뚱맞은 가계수표 한 장만이 봉투 밖으로 얼굴을 삐죽 내밀고 있다. 멍해진 숙정이 정신을 가다듬고 수표에 인쇄된 숫자에 집중해 보니 $20,000 - 한화 이천만 원에 가까운 금액 - 의 금액이 숙정의 앞으로 되어있다.
위자료? 그 금액에 대해 계산기를 두드려볼 틈도 없이 숙정의 눈은 남편의 편지를 읽고 있다.
[첨엔 결혼할 때 정말 당신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고 훨훨 날게 해 주겠다고 결심한 적이 있었어. 엄하고 가부장적인 장인 밑에서 숨죽이며 살아온 당신이 불쌍해서 미국에서는 하고 싶은 공부도 더 하게 하고, 편하게 해 주어야겠다고 생각하며 데려왔었지. 당신이 시녀가 된 것처럼 느낀다는 이야기를 듣고 깜짝 놀랐어. 처음엔 이렇게 잘해주는데 왜 그런 말을 할까 화가 났는데. 생각해 보니까 당신이 왜 주인공이 아니라 뒷바라지하는 시녀라고 느끼고 사는지 이해가 되더라고. 애 낳고 지금까지 계속 집에만 있었으니까 답답했을 거야. 왜 지금 이걸 깨달았는지 모르겠어. 이이만 불 그동안 일 많이 해서 받은 보너스라고 생각하고 학교 가서 수업을 듣던지, 여행이라도 한 번 다녀오던지 당신이 하고 싶은 거 하는데 써......]
돈 쓰고 기분 한 번 풀면 괜찮아질 거라는 글의 뉘앙스를 충분히 곱씹어 볼 새도 없이, 욕실 문이 벌컥 열리며 깔끔하게 수염을 깎아낸 남편이 샤워코롱 냄새를 풍기며 발걸음도 가볍게 숙정을 향해 다가온다. 마치 선물 받고 심히 감동한 얼굴을 기대하고 있는 사람처럼 그의 눈이 그녀의 표정에 집중하고 있다.
의미 있는 제2의 인생을 꿈꾸며 돈이 없어도 가난해도 행복할 수 있다고 결의를 다지고 있는 숙정이지만, 남편이 주는 2만 불의 선물 앞에서 머릿속이 뒤죽박죽 헝클어진다. 숙정을 응시하던 남편의 눈이 열린 봉투와 반쯤 삐져나온 수표로 시선을 향한다.
“열어봤네.”
난데없이 나긋나긋해진 듯 달라진 남편의 목소리와 태도. 왠지 기분이 나쁘다. 익숙하지 않은 미로 속에 던져진 것 같은 느낌이 불안한 숙정은 대꾸 없이 팔짱을 낀 채 검은 겨울 창 밖을 응시한다. 굳어진 숙정의 어깨에 남편이 살포시 손을 얹으려는 것을 그녀는 조심스럽지만 단호한 태도로 피한다. 그의 얼굴색이 변한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야?”
“글쎄,......”
숙정이 원하는 게 뭘까? 동양에서 온 진정한 귀부인이 되는 거? 남 뒷바라지 같은 건 안 하는 주인공? 남들이 무시할 수 없는 지위? 내세울 만한 학벌? 스스로 버는 쓰고 남을 만큼의 풍족한 돈? 존경받을 만한 직장, 지위?
숙정이 원하는 것은 그런 구체적인 것들이 아닌 것 같다. 그녀는 스스로 자신의 삶을 주도하며, 완벽하게 책임지고 있다는 느낌 같은 것을 가지고 싶다.
문제는 숙정이 아무리 머릿속을 샅샅이 뒤져보아도, 남편을 이해시킬 만한 언어를 찾을 수가 없다는 사실이다. 내가 원하는 것에 관해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과도 소통할 수 없는데, 이 가정 밖으로 나가 세상과 소통하는 것은 가능할까?
숙정은 갑자기 모든 것이 너무 두렵다. 소통이 불가능한 남편과 아무 일 없다는 듯 계속 살아가는 일도. 가난을 감수하고라도 주인공이 되어 스스로 모든 것을 책임지겠다는 꿈도. 어느 것도 제대로 할 수 없겠다는 생각에 마음이 자꾸만 무기력하게 흘러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