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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트온 Nov 26. 2021

 도움이 필요했기에, 돕는 사람이 된 안톤 체호프

철학자는 아픔을 극복했다 12

순수하게 글이 재밌어서 좋아하게 된 최애 작가


나는 꽂히면 다 찾아보는 성격이다. 그래서 여러 작가를 두루 알기보다, 소수의 작가의 글을 있는 대로 찾아 읽는 편이고, 단어 하나하나를 꼼꼼하게 읽는 성향이라 책 한 권을 읽어내는데 몇 개월씩 할애하곤 한다. 그래서 내가 어떤 작가를 좋아했다고 하면, 몇 년에 걸쳐 그의 글을 꼼꼼히 다 찾아 읽어 보았다는 뜻이며, 다르게 표현하자면 그의 세상 속으로 들어가 살았었다는 뜻이다.


나의 청소년, 청년기를 함께 했던 작가들이 몇 있는데, 그중 나에게 가장 따뜻한 재미를 주었던 작가는 안톤 체호프였다. 다른 사람들의 글은 처음에 좋아하게 되기까지 어느 정도 작가의 유명세가 작용했다면, 체호프의 경우는 아무도 권하는 사람이 없었는데도 우연히 접하고 순수하게 글이 너무 재미있어서 계속 찾아 읽게 되었던 작가였다. 그의 짧은 글에서 느껴지는 따뜻하고 잔잔한 분위기가 참 좋았고, 간결한 문체가 눈에 쏙쏙 들어와서, 그의 책은 그냥 한 자리에서 다 읽어 버리는 편이었던 것 같다.



의학과 문학을 사랑한 농노의 자손


내가 잘 몰랐을 뿐이지, 그는 19세기 러시아 문학이 낳은 최고의 단편 소설가이자 극작가라 칭송을 받는 러시아 문학 황금기를 대표하는 사실주의 작가다. 대부분의 러시아 작가들은 부유한 집에 귀족으로 태어나 생계유지의 압박 없이 글에만 전념했던 경우가 많은데, 체호프는 매우 가난했던 집안 환경을 스스로 이겨내고 의사이면서 작가가 된 특이한 케이스였다.


그의 조상들은 대대로 농노였다고 알려져 있다. 할아버지 때 자유를 찾고 잡화상을 운영하게 될 정도로 재산을 모으기도 했지만, 아버지대에 와서 가게는 파산하고, 온 가족이 16살 체호프만 남겨두고 다 다른 도시로 도주를 해 버렸었던 적도 있었다고 한다. 그는 가정교사 일을 하며 스스로 학비를 벌어 학교를 마치고, 마침내 모스크바 대학 의대에 진학하였다. 하지만 그는 생활비를 벌어야 했으므로, 의학 공부를 하면서도, 동시에 단편 소설과 콩트, 만평 등을 써서 싸구려 잡지와 신문에 기고하기를 계속하였다. 생활비가 간절했던 만큼 밤낮으로 글을 쓴 것이, 그가 20세였던 1880년부터 1887년 사이에 쓴 글만 500여 편에 달했다. 그렇게 열심히 글을 쓰면서도, 의학 공부도 소홀하지 않았던 그는 대학을 잘 마치고 24세에 의사 자격을 얻었다.


그의 문학적 재능을 알아본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문학에만 전념하라고 권했지만, 그는 그의 힘닿는 데까지 가난한 농민들을 무료로 진료해 주고, 필요한 곳으로 왕진을 다니고,  기근과 콜레라 퇴치 자선 사업을 펼치고, 학교와 병원 건립 등의 사회사업에 참여하는 일도 마다하지 않고 나섰다.


그러면서도 젊은 날부터 부지런히 글을 써온 그의 필력은 끊임없이 단편 소설과 장편 희곡을 창조해 냈다. 그는 그의 친구에게 보낸 편지에 이런 말을 한 적도 있었다: "의학은 나의 아내고 문학은 나의 정부다." 요즘 말로 하면, 의사는 나의 본캐고, 작가는 나의 부캐다라는 뜻으로 와닿는다.



자신의 소신대로 따뜻하고 재미있는 세상 만들기 


체호프는 다작 작가로, 처음에는 생활비 마련이 시급했던 만큼, 신문 잡지사가 원하는 가볍고 재미있는 글 위주로 썼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본인의 글 쓰는 스타일까지 양보한 적은 없었다. 당시 러시아에서는 단어수를 따져 원고료를 주었기 때문에, 러시아 소설들이 분량이 긴 경향이 있었는데, 체호프는 항상 간결하고 재미있게 쓰는데 집중했다.


재능 있게 쓴다는 것은 짧게 쓰는 것이다.


라는 말을 남길 만큼, 그는 짧고 간결하게 쓰는 글에 가치를 두는 소신을 내내 가지고 있었던 것 같다. 지금도 그의 글은 현대의 글과 비교해도 그 문체가 구식이라는 느낌이 없고, 덕분에 나도 그의 글에 몰입해서 읽는 재미를 느낄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을까. 그의 문체는 그의 글을 좋아했던 막심 고리끼와 현대 러시아 작가들에게 큰 영향을 끼치기도 했다.


점점 경험 많은 작가로 성장하면서 진지한 주제의 글도 많이 쓰게 되었다고 한다. 그의 글은 특별히 대단한 플롯도 극적인 사건 전개도 보이지 않지만, 사실적으로 사람들의 모습을 담담히 그리는 자체가, 나 인생을 돌아보게 하고, 앞으로 살아야  인생을 생각해 보게 하는  울림을 남긴다. 그는 44세의 나이에 지병- 결핵으로 추정-으로 사망한다. 처음 각혈을 했던 것이 1884 (그의 나이 24)이라고 하는데, 치료를 소홀히 했다고 한다. 나중에 가서는 자신이 언제든 죽을  있다는 각오로 살았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위협하는 지병과 문학에 대한 열정과 가난하고 아픈 사람을 돕고자 하는 의사의 마음을 내내 품고 죽는 날까지 치열하게 살아갔.


힘들었던 나의 10대 후반과 20대 초반, 마음에 몰아치는 찬 바람 때문에, 세상의 따뜻함을 보이는 대로 긁어모아 먹고살며 버티던 그 시기에, 안톤 체호프 작가의 글은 나에게 따뜻하고 소박한 안식처였다. 그의 치열한 삶의 여정이 배어있었기에, 그런 힘든 삶 속에서도 타인을 겸허한 마음으로 있는 그대로 관찰하고, 값없이 돕고 싶어 하는 따뜻한 마음이 배어있었기에 나는 그의 글이 전하는 크고 따스한 위로를 먹고 자랄 수 있었다. 좋은 사람은 죽어서도 그 영혼이 살아, 절박함에 울부짖는 어린 영혼의 손을 잡아주고 돕는다는 것을 깨닫는다. 체호프 같은 작가가 있어서 나 같은 혼란에 빠진 어린 영혼이 나락으로 떨어지지 않고 살아날 수 있도록 따뜻한 세상 살만한 세상을 만들어 주었구나 깨닫는다. 나도 누군가에게 죽어서도 따뜻한 손을 내밀 수 있는 체호프가 되어주리라고 결심한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y (by greydog19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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