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하트온 Sep 17. 2023

비참했던 시절에서 위대한 유산을 발견한 찰스 디킨스

철학자는 아픔을 극복했다 9

고통스럽도록 어려웠던 어린 시절


찰스 디킨스는 1812년생으로, 영국 남부 해안도시 출신이었지만, 한자리에 정착하여 살아갈 수 없는 운명이었다. 해군 말단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의 과한 낭비벽 때문에, 그들은 늘 빚에 허덕이며 살았고, 가세는 점점 기울어, 가난 속으로 침몰해 들어가듯 점점 더 열악한 곳으로 이사 다니기에 바빴다. 더 이상 빚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이 되어 아버지가 체포되고 감옥에 갇혀 버렸을 때, 찰스 디킨스는 겨우 열한 살의 나이로 학업을 중단하고 가족과 떨어져 생계전선에 뛰어들어야 했다. 


찰스 디킨스가 남긴 기록에 그는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나는 아무도 상상할 수 없는 고통을 겪었고, 그 고통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나밖에 아무도 모른다.”


어린 나이에 자신을 돌봐 줄 가족도 없이, 고된 노동을 하며 살아가는 삶이 얼마나 혹독하고 힘들었을까. 그는 그 과정에서 어른에 대한 신뢰도, 사회에 대한 희망도 잃어버렸고, 아무도 치유해 줄 수 없는 그의 어린 자아를 스스로 글을 쓰며 보듬을 수밖에 없었다. 그에게는 글을 써야 하는 이유가 그토록 절실했을 것이다. 



영원한 스타 작가 찰스 디킨스


찰스 디킨스의 글은 마치 ‘모네’의 그림을 눈앞에 바로 마주할 때와 비슷한 느낌을 준다. 모네의 그림을 이루는 섬세하고 치밀한 터치 하나하나가 생생하게 살아서 다가오는 것처럼, 디킨스의 묘사 또한 글이 스스로 살아 움직이는 것처럼 독자의 머릿속에 세밀하고 생생한 그림을 그려준다. 읽자마자 바로 선명한 그림이 그려지는 디킨스의 친절한 문장은, 작가가 그리고자 하는 세계를 정확히 묘사하는 역할을 할 뿐, 현학적 허세도, 모호함도 없고, 함부로 뛰어난 미모를 과시하며 나서는 일도 없다. 그의 소설을 읽기 시작하면 어느 시대 어느 나라 누가 읽어도 그의 소설 세계 속으로 푹 빠져들게 된다. 시간 차, 문화 차를 뛰어넘어 모든 것이 이해되고 공감되는 신비한 문학 허구 세계가 펼쳐진다.


어린 시절부터 바닥 생활을 하며 체득한 인간 본성과 사회 문제를 꿰뚫어 보는 통찰력은 그의 글에 매력을 더한다. 특히 어른들의 위선과 이기심 허세 허영에 치이는 아이들의 고통에 대한, 마음을 파고드는 날카로운 심리 묘사는 아이 어른 할 것 없이 그 시절을 힘들게 살았던 모두를 울리며 영국 사회에 문제가 있음을 자성하게 만들었다. 


이 극적인 감동과 깨달음에 더해, 찰스 디킨스의 뼛속까지 차오른 유머러스한 풍자 희극 감성이, 도저히 예상할 수 없는 파격적인 스토리 전개로 롤러코스터급 재미를 함께 선사한다. 이 모든 것을 다 갖춘 그의 글쓰기 능력이 그를 세계 역사를 통틀어 전무후무한, 후대까지 두고두고 회자되는 이야기꾼, 세계적인 스타작가로 만들었다. 


퍼즐 피스 하나하나 꼼꼼히 맞춰가는 군더더기 없는 디킨스의 소설을 좋아하고 즐겨 읽었던 에드거 엘런 포는, 찰스 디킨스의 소설에 스며 있는 추리 소설, 수사 소설의 그림자를 놓치지 않고 받은 영감을 긁어모아 독창적인 추리 소설 장르를 발명하기에 이르렀다. 찰스 디킨스와 에드거 앨런 포는 영국과 미국이라는 거리에도 불구하고, 서신을 교환하고, 디킨스가 미국을 방문해 찾아가기도 하며 서로 의미 있는 글 교류를 이어갔다고 한다. 여러 장르의 선구자로 후대 작가들에게 큰 영향이 된 에드거 엘런 포에게 가장 큰 영향이 찰스 디킨스였다는 사실을 생각할 때, 우리는 현대 문학에 끼친 찰스 디킨스의 영향을 조금이나마 짐작해 볼 수 있다. 



찰스 디킨스가 마침내 찾아낸 유산


찰스 디킨스 작가가 나이 50에 이르러 쓴 <위대한 유산> 작품에서 그는 드디어 그의 어려웠던 유년 시절을 끌어안을 수 있었던 듯하다. 결핍과 학대 가득한 불우했던 환경이 아니라, 위대한 가치를 물려받은 소중한 시간으로, 자신이 겪은 파란만장한 인생 과정을 자신이 꼭 겪어야 했던 중요한 의미로 다시 재조명 재창조하는 작업을 감행하였다. 


거센 산업혁명의 물결이 요동치던 19세기 빅토리안 시대 영국 사회, 세습제 신분사회에서 스스로의 노력으로 재산을 만들어 갈 수 있다는 신분 상승 욕구가 팽배하던 이 시기에, 사람들에게 꿈과 환상을 심어주는 듯 유혹하던 이미지는 바로 '신사'였다. 

커서 멋진 신사가 되어야지.


'신사'라는 말은 한국의 '선비'처럼 18세기부터 영국 아이들이 귀가 따갑게 듣고 자라던 말이었다. '신사'라는 말이 상징하는, 돈과 지성과 교양을 고루 갖춘 남성 이미지는 그 시대 남자들이 모두 욕망하고, 서로 되어야 한다고 권하는 강렬한 외부 기준이었다. 위선을 꿰뚫어 보는 작가 찰스 디킨스는 갈수록 물질주의에 빠져 돈과 지위 겉모습만 중시하는 속물 사회가 되어가는 '신사'의 시대를 통찰하였고, 그 시대 사람들의 마음에 뿌리내리고 있던 ‘신사’라는 이미지가 결국은 작가 자신의 아버지까지 허영으로 파멸시킨 존재하지 않는 '허상'임을 꿰뚫어 보았다. 


디킨스는 <위대한 유산>을 쓰며 깨달았다. 그토록 배곯고 고생하며 보냈던 어린 시절이 자신에게 진짜 존경할만한 귀한 가치를 찾아주었다는 걸. 자신을 귀하게 대해 주었던 순수한 어린 소년 핍에게 막대한 재산을 물려주고 싶어 했던 탈옥수의 은혜 갚음, 앞으로는 천박하지 않게 옳은 일을 하겠다는 정의에 대한 의지, 탈옥수인 그를 부끄러워하는 잘난 신사가 된 핍을 이해하는 너그러움까지. 또한 끝까지 핍을 보호하고 지키고 사랑했던 대장장이 매형 조의 온화하고 따뜻한 사랑도. 그것들이 그가 물려받은 '위대한 유산'이었음을 소설 속 주인공도, 그런 주인공을 그리는 작가 디킨스도 깊이 자각하였다. 


어린 시절에 외부 기준이라는 편견에 빠져 보지 못했던 아름다운 가치들, 어려움 속에서도 현재의 자신이 있을 수 있게 도와주었던 '당시엔 별 볼 일 없고 모자라 보이던' 사람들이 보여준 단단한 내면의 가치들을, 진짜 어른으로 성장한 디킨스 작가는 마침내 깨닫고 <위대한 유산>이라는 소설 작품으로 기록해 낼 수 있었던 것 같다. 진정한 가치는 돈과 위선으로 꾸미는 허상에 있지 않다는 사실을, 그래서 돈이 없어 비참했었음에도 수많은 보석 같은 삶의 가치를 발견할 수 있었던 자신의 어린 시절이 고통스러웠지만 가치가 있었노라고 자신에게 거듭 말해주고 싶었던 것 같다. 




대문 이미지 출처: Pixabay (by GDJ)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