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잠을 꼭 자야 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김장훈 작가님의 잠에 대한 목마름 끝에 얻은 오전이 있는 삶을 읽고 영감을 받아 쓴 글임을 먼저 밝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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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루잠을 자는 슬픈 짐승이여
잠을 깊이 들지 못하고 자꾸 깨는 사람들이 있다. 노루잠을 잔다고 다 같은 이유를 가진 것은 아니다, 어릴 때부터 형성된 습관, 성향, 체질, 현재 건강 상태, 밤에 자꾸 깨는 아이 돌보기, 밤에 소음이 많은 동네 거주,... 각자의 다양한 이유로 노루잠을 자게 되었다.
이들에게 아침이 되어서야 살풋 깊이 드는 아침잠은 건강을 지키는 보약이다. 이 아침잠 덕분에 그나마 뇌가 충분히 쉬고, 푹 쉬었다는 느낌을 가지고 하루를 시작할 수 있다.
아침보다 오후 저녁 시간에 일이 몰리는 교육 사업을 하고 있는 데다, 원래 올빼미 성향에, 아들 둘을 키우고 나니, 나도 남편도 노루가 되어 있다. 밤늦게까지 열심히 일하고, 아침에야 깊이 잠드는 부모와 살다 보니, 아이들도 라이프 스타일이 굳어져, 아침잠을 못 자는 스케줄을 감당하기 힘들어한다. 아침 일찍 일어나 학교에 가야 하는 생활을 시작하니, 아이들의 입안이 짓무르고 혓바늘이 돋아 성할 새가 없었다. 아침 일찍 아이들을 깨워 준비시켜 데려다줘야 하는 부모 입장에서도 루틴이 깨지고 하루 종일 멍해서 힘들긴 마찬가지였다. 방학만 기다렸고, 방학이 끝나갈 때면 우리는 몹시 괴로워했었다.
그런 억지 생활이 10년 정도 지나자, 우리는 라이프 스타일이라는 게 시간이 지난다고 적응되고 고쳐지는 게 아니란 걸 깨달았다. 우리의 건강이 위협받고 있음을 확실히 느끼는 상황에 이르렀다. 누가 뭐래도 우리 라이프 스타일에 맞게 살아야겠다고 외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아침잠을 푹 자야만 개운한 심신으로 일상을 잘 살아갈 수 있는 우리 자신을 인정하기로 했다. 충분히 자고 천천히 일어나 여유 있게 아침 먹고 운동도 하고, 우리 라이프 스타일에 맞는 삶을 살자고 온 식구가 뜻을 모았다. 망설이고 망설이다, 마침내 우리는 아이들을 학교에서 빼서 홈스쿨을 시작했다.
데카르트가 아침잠을 못 자 죽었대
근데 철학의 아버지, 위대한 17세기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1596-1650)도 아침잠이 많았다. 어릴 때부터 몸이 약했던 그는 늦잠을 푹 자고 쉬는 생활에 길들여져 있었고, 학교에 가서도 명석하지만 몸이 약해 병에 잘 걸리는 데카르트에게 관대했던 학교장의 배려 덕분에 늦잠을 실컷 잘 수 있었다고 한다. 그는 침대에서 오전 11시까지 미적거리며 책도 읽고 생각도 하고, 공부도 침대에서 할 때가 많았을 정도로 그는 몸이 요구하는 만큼 아침잠을 푹 자고 일어나 천천히 하루를 시작하는 쪽으로 길들여져 있었던 사람이었다.
종교적인 이유로 네덜란드에서 20여 년 간의 망명 생활을 하는 동안에도 그의 늦잠 라이프는 바뀌지 않았다고 한다. 그에게 그의 아침 뒹굴뒹굴 시간은 충전과 영감의 시간이었으며 실제로 그 시간을 통해 중요한 이론들을 완성하는 깨달음을 많이 얻었다고 전해진다. 점차 데카르트의 철학이 널리 알려져 유럽 사회에서 그는 매우 유명해졌고, 1649년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이 그를 자신의 과외 교사로 초청하기에 이르렀다.
사실 데카르트는 50이 넘은 나이에, 자신의 편안하고 안정된 일상을 깨고 낯선 나라로 갈 마음이 없었다. 하지만 여왕은 끈질긴 사람이었고, 결국은 데카르트를 데려오라고 군함을 보내기에 이르렀다. 그렇게까지 하는 여왕 앞에 데카르트는 완전 기겁하고 항복하는 마음으로 스웨덴으로 이주한다.
문제는 여왕은 바쁜 일상에 미라클 모닝을 즐기는 아침형 인간이었던 것이다. 데카르트는 새벽 5시에 왕궁으로 들어가 철학 강의를 해야 했다. 아침에 피곤한 몸, 개운치 않은 뇌 상태로 일어나기 얼마나 싫었을까. 하지만 무한 권력을 가진 여왕에게 맞춰주지 않을 수 없었고, 데카르트 철학에 심취해 열심히 공부하는 여왕은 매일 끝없는 질문으로 데카르트의 기운을 소모시켰다.
스웨덴 최고 권력자가 프랑스 사람 데카르트로부터 큰 영향을 받는 상황 자체도 데카르트에겐 심한 스트레스를 불러왔다. 약한 사람은 자극에 예민할 수밖에 없고, 예민한 사람은 심한 자극으로 약한 체력을 고갈시키는 갈등을 극렬하게 싫어한다. 평화롭게 유유자적하며 여생을 보내길 선호했을 데카르트가 말도 문화도 기후마저도 극도로 다른 타국에 와서 여왕이 끼고 도는 프랑스 철학자가 아니꼬운 스웨덴 사람들의 노골적인 적대감을 견디는 일은 너무나 큰 부담과 스트레스였을 것이다. 데카르트는 심신이 말할 수 없이 지쳐가는 걸 느끼며 스웨덴으로 이주해 온 걸 심히 후회했다고 한다.
스웨덴으로 떠나온 지 1년 만에(1650년) 데카르트의 약한 체질은 스웨덴의 혹독한 겨울과, 못지않게 얼음장 같은 스웨덴 사람들의 시선과, 아침잠을 누릴 수 없는 과한 스케줄을 견디지 못하고 폐렴에 과로가 겹쳐 50대 초반이라는 이른 나이에 사망하고 말았다.
생명의 아침잠
아침에 늦게 일어나는 사람은 아침잠이 필요한 사람이다. 아침잠이 필요 없는 사람이었다면 진작 현대 사회 문화가 압박하는 대로 새벽형 인간 집단에, 미라클 모닝 운동에 적극 참여했을 것이다.
하지만 새벽에 몸을 일으켜선 안 되는 사람들이 있다. 과로사를 막고, 건강한 삶에 꼭 필요한 체력과 면역력을 지키기 위해서 아침잠이 보약이 되는 사람들이 있는 것이다. 사람마다 약한 점이 있고 그것을 보완하기 위해 필요한 보조 기구, 보조제가 있는 것처럼, 잠이 약점인 사람들은 아침잠을 꼭 붙들고 지켜야 한다.
오래 자도 푹 쉰 것 같지 않고, 밤에 자꾸 깨고, 깊이 잠들지 못하는 느낌이 들고, 아침에 깜박 드는 잠이 꿀맛이라면, 당신은 아침잠이 꼭 필요한 사람이다. 아침잠이 당신의 체력을 지탱해 주고 있는 건강 보조제고 비타민이다.
이 세상 기관들은 대부분 아침형 인간에게 맞게 디자인되어 있으므로, 아침잠이 필요한 사람들은 아침잠을 놓치지 않는 길을 스스로 만들어 가야 한다. 아침잠 때문에 아이들 홈스쿨을 시작했다는 건 어디에도 털어놓은 적이 없는데, 결국 브런치에다 고백을 하게 되었다. 그렇다,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아침 일찍 못 일어 나는, 안 일어나고 싶은 가족이라는 것이 홈스쿨을 선택한 결정적인 이유다. 아이들을 왜 그렇게 길들이냐고 야단치고 싶은 마음이 들지 모른다. 나도 잠을 조절하는 것이 문제가 되지 않는 입장이었다면, 나 같은 선택을 한 사람들을 보면 한심하게 생각했을 것 같다. 좀 약하고 부족한 사람들이 건강을 지키기 위해서 나름의 최선을 다 한 것이었다고 밖에 할 말이 없다.
아침에 원하는 만큼 푹 자고 일어나서, 아이들은 자신들의 목표에 맞게 적당하다고 생각하는 만큼 공부를 하고, 부모가 가르쳐야겠다 싶은 만큼 가르치고 훈련시킨다. 먹고 싶은 시간에 먹고 싶은 만큼 음식을 먹고, 함께 산책하고 운동을 한다. 아이들 공부가 끝나면, 아이들은 각자 맡은 집안일을 시작하고, 부모들은 일을 시작한다. 아이들은 맡은 바 일이 끝나면 자유시간을 갖고 동네 친구들과 놀기도 하고, 날씨가 궂으면 집에서 온라인 상에서 친구들과 만나 게임을 하며 놀기도 한다. 밤 9시-10시 정도가 되면 부모들의 일이 끝난다. 아이들은 컴퓨터나 전자기기 사용을 멈추고 잘 준비를 한다. 잠들기 전까지 책을 읽거나 그림을 그린다. 부모들은 내일을 계획하기 위해 대화를 하고, 하루의 삶을 구석구석 돌아보며 밤을 마무리한다.
노루의 밤이 지나고 또 달콤한 아침잠을 누린다. 그리고 느리지만 개운하고 자유로운 하루가 시작된다.
대문 사진 출처: Pixabay (by zoosno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