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롭고 기쁜 삶으로 가는 길
불완전을 용서할 수 없었다
글을 쓸 수 없는 날들이 있었다. 푸른 젊음이 주는 무모한 희망은 언젠가는 글을 쓸 수 있겠지 과감히 책임을 떠넘기고 미룰 배짱을 부렸다. 하지만, 푸른 낙관이 더 이상 먹히지 않는 날들이 왔고, 나는 몹시 조급해지기 시작했다. 내가 그토록 쓰고 싶은 글인데, 써서 타인에게 왜 보여줄 수 없는지, 왜 나는 더 나아가려고 노력하지 않는지, 나에게 물어야 했다. 나는 나에게 몹시 억울하고 언짢은 목소리로 퉁명스레 대답했다.
내가 글쓰기를 싫어하거나 게으른 게 아니라, 나의 내면을 내 안의 감정과 언어들을 드러낼 자유를 주지 않고 있잖아.
나는 내가 어딘지 미심쩍고, 창피하게 생각되었던 것이다. 내가 가진 감정이 보편적 기준으로 볼 때 맞는 것인지, 내가 가진 언어가 정확한 것인지 나는 자신이 없었다. 뛰어난 재능이 있다는 걸 아직 증명해 내지 못한 아이가, 아직 제대로 연습도 해 보지 않은 아이가, 피아니스트가 되겠다고, 화가가 되겠다고 결심하는 것을 보는 부모의 심정이 이런 느낌일까. 나는 내가 더 배워야 한다고 생각했고, 더 완벽해지기를 기대했다. 더 인생을 살아보고 다른 일도 해 보면서 글쓰기가 정말 내가 원하는 게 맞는지도 거듭 시험해 보아야 한다고 믿었다.
아무리 지식을 쌓고 또 쌓아도, 아무리 학위를 따고 또 따도, 나의 재능이나 지식 상태, 나의 적성을 확신할 수 있는 날은 오지 않았다. 아무리 노력해도 내가 생각하는 이상에 도달하는 날이 오지 않았다. 너무 높이 올라가려 애쓰다가, 나는 추락을 경험하기에 이르렀다. 그때까지 쌓아가던 모든 것이 와르르 함께 무너져 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내 얼굴이 처참하게 일그러져 마주 보고 있는 것은 그토록 피하고 싶었던 인생의 바닥이었다.
참으로 이상하게도 바닥은 고통스럽지 않았다. 오히려 점점 편한 마음, 느긋한 마음이 들기 시작했다. 바닥은 인생의 끝장이 아니라 결국 나를 지키는 자의 손바닥일 뿐이라는 것을 깨달았다. 나를 끊임없이 쉼 없이 사랑하는 존재가 거기 버티고 있었다. 거기서 나는 세상에 대한 두려움과, 숨 쉴 틈 없이 스스로를 몰아붙이던 조급함을 벗었다. 두려움과 조급함을 벗으니 신기하게 죽어가던 내면에 힘이 솟아올랐다. 내가 전에 알지 못했던 내 안의 힘이었다. 하나하나 다시 삶을 쌓아 갈 여유 있는 용기가 점점 내 안에 차오르고 있었다.
나는 바닥에서 내 몸을 일으켜 냈지만, 전에 가던 길을 또 나설 마음이 들진 않았다. 같은 실수를 반복하기 싫은 마음이 너무나 강했다. 이상과 완전을 향하여 나아가 봤지만, 내 실력으론 아무리 노력해도 도달할 수 없다는 실패감과 자기혐오가 남아 나를 막아선 것인지도 모르겠다. 그렇게 노력했는데도 열매가 없는 삶이 너무나 목마르고 허무해서였을지도 모른다. 어떤 이유에서건, 나는 그 삶이 나에게 옳은 것이 아니었다는 것만은 확신할 수 있었으므로, 더 이상 이상을 좇는 삶은 거기서 끝이었다.
그때 내 머릿속에서 일어난 일을 나는 한참 후에야 이해했다. 나는 인생의 바닥에 도달하고서야, 언제나 저 멀리 향하고 있던 나의 시선을 내 삶으로 내 내면 안으로 가져온 것이었다. 저 하늘의 달만 쳐다보다가 내 손가락부터 시작해서 나 자신을 보기 시작한 것이었다. 현실의 나, 내가 딛고 선 현실, 그 상태 그대로를 자각하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나는 한 번도 나를, 내 삶을 제대로 봐준 적이 없었다는 걸 말이다. 언제나 목표만을 바라보며, 나에게 따라오라고 재촉하기만 했었다. 해내지 못할 때마다 몹시 미워하고 실망하는 마음의 채찍만을 휘둘렀다. 내 마음이 더 이상 고통을 견디지 못하여 바닥으로 곤두박질친 것이었다. 더 이상 나 자신의 차가운 마음도, 외부 기준과 시선도 견딜 수 없어 내면이 살아갈 힘을 잃어버린 것이었다.
새로 얻은 나의 '힘'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누군가 세팅해 놓은 '꿈 타이머'를 치우는 것이었다. 30세 전에 교수가 되고, 다섯 개 국어를 하고, 40세 전에 책을 쓰고 저자가 되고, 50세 전에 전 세계를 돌며 강연과 컨설팅을 다니고,... 몹시 조급해 난리를 치고 재촉하며 들이대던 타이머를 버렸다. 이 타이머에 맞추지 못하는 자신을 너무 오랫동안 창피해하고 미워해왔다는 것을 깨달았다. 오히려 이 미친 타이머 때문에 나는 몹시도 긴장하고 굳어 버려,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나는 나를 옥좨고 괴롭히던 모든 것을 버리기로 했다. 나도 모르던 나의 내면의 힘이, 모든 사슬을 풀어 나 스스로를 자유롭게 놓아주고 있었다.
나에게서 세상으로 뻗어 나가는 자유
나의 '힘'은 끊임없이 일을 했다. 그 일의 목적은 모두 한결같이 '나'를 자유롭게 하려는 것이었다.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았다. 보편적 문화, 도덕, 종교, 사상, 제도, 기관들이 나의 내면에 덫을 쳐 놓은 나를 제한하고 억누르는 몹쓸 관념들을 하나하나 끈질기게 걷어내고 또 걷어냈다.
힘이 불끈불끈 솟아 열심히 나를 위해 일하는 내가 좋았다. 그럼에도 나는 쉽게 풀어낼 수 없는 무언가에 여전히 묶여 있었다. 수치심에 취약한 사고의 습관이 쉽사리 걷어지지 않았다. 그것이 자꾸 나에게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충동질이 깨끗이 사라지지 않았다. 지금 내 모습 그대로로는 주변 사람들, 특히 나의 어머니가 나를 자랑스러워 할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을 지워내기가 몹시도 어려웠다. 내가 어머니에게 주고 싶은 감정, 힘들었던 삶에 대한 보상을 줄 수 없으리라는 것이 마음이 아파 견딜 수가 없었다.
내가 나 스스로에게 완벽하기를 요구하는 만큼, 세상에 완벽하지 않은 모든 것들에 대해서 분노하는 마음을 버리지 못하고 여전히 품고 있었다. 내 글이 완전하지 않아서 화가 나는 만큼, 완전하지 않은 글, 완전하지 않은 논리와 지식이 가득한 책들이 함부로 세상에 나와 있는 것만 봐도 화가 났다. 완전하지 않은 것들을 참아 줄 수 없어 글쓰기도 할 수 없고 독서도 할 수 없는 내가 되어 가고 있었다. 그것이 나를 사랑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것을 굳건히 가로막고 있었다. 내 삶이 많이 자유로워지고 충분히 변한 것 같은데도, 아직 풀리지 않는 사슬이 있는 것 같은 느낌에 찝찝하고 답답한 마음이 남아 있었다.
코로나가 시작되고 3개월쯤 지난 어느 날, 이 세상이 조금 불완전한 정도가 아니라 견딜 수 없게 망가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기 시작하더니, 결국 쌓이고 쌓이다 어느 날 대폭발을 했다. 그 폭발이 마지막까지 나를 놓아주지 않던 깊이 박힌 완벽주의의 사슬을 박살 내 버렸다. 내 마음을 제한하던 가장 오래되고 굳고 센 것들이 갑자기 시작된 허리케인을 타고 보이지 않는 곳으로 날아가 버렸다.
빗장이 풀리자 내 안의 글들이 마구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부끄러워서 내놓지 못하던 모든 것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완전하지 못해서 반박을 받을까 두려웠던 생각들을 뱉어내기 시작했다. 나의 실수들, 실패들, 어리석었던 과거들을 다 까발리기에 이르렀다.
나의 불완전한 글, 나의 불완전한 삶에 자유를 주고 우주로 날려 보내기 시작하는 순간부터, 나는 세상에도 자유를 주고 있었다. 놀랍게도 불완전한 세상이 몹시도 아름답게 보이기 시작했다. 불완전해서 읽지 못하겠다고 화를 내던 글이 읽어지기 시작하였다. 불완전한 지식, 불완전한 지혜가 담긴 책들이 내 마음과 소통하기 시작했다. 세상의 불완전한 것들을 수용하고 긍정하기 시작하니, 전에 내가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진귀한 인생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불완전과 불완전의 아름다운 소통이 나를 열고 세상에 대한 앎과 타인에 대한 이해를 공급하기 시작했다. 나를 가로막고 있던, 오래 나를 답답하게 했던 문이 드디어 환하게 열리기 시작했다.
인생의 본질, 인간의 본질이 불완전이라는 깨달음이 왔다. 그것이 인간에게 생동감 넘치는 힘을 주고 발전의 역사를 쓰게 만드는 원천인 것이 선명히 보였다. 나와 타인의 불완전함에 자유를 주고 나를 둘러싼 모든 불완전을 사랑하고 지지해야 하는 것이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일인 것이 아닐까. 불완전한 것이 이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것이 아닐까. 불완전을 끌어안는 것이 내가 그토록 이르고 싶어 하는 사랑으로 나아가는 길이 아닐까. 나의 불완전을 믿고 천천히 여유 있게 그리고 자유롭게 나아가 보려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