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최강의 슬픔 (1)

[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by 하트온

10 분 후쯤 버스가 그곳에 도착하면 내가 그 아이를 만나게 될 거라는 게 믿기지가 않았다. 수민이가 전해달라고 준 영어쌤이 만들었다는 롤케잌이 무슨 방패막이라도 되는 양 들고 있는 두 손에 힘을 꽉 주었다. 이렇게 갑자기 만나게 될 줄 상상도 못 하고 있었기에,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느낌으로 허겁지겁 버스를 탔다. 어쩔 수 없었다. 꼭 한 번은 만나봐야 한다고 느꼈기에, 이렇게 온 기회를 놓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이모가 오늘 아침부터 빵을 굽길래, 우리 이사도 도와주셨는데, 먹는 것 좀 나눠 드려야 되는 거 아냐 말했더니, 이모가 빵 싸서 같이 나서자는 걸, 내가 재빨리 반장하고 같이 갖다 주고 올게. 오늘 내가 반장 만날 일도 좀 있어서라고 잽싸게 말했지. 이모가 최철광 쌤한테 전화했더니, 강이 갖다 주라고 주소를 주셨는데 광안리더라구. 거기가 화실 이래나 암튼 그렇대. 그래서 그때 강이가 광안리에 있었던 것 같아."


하나 난 자리를 나에게 주고, 내 앞에 서서 내내 재잘거리는 수민이가 같이 있다는 사실만이 이 불안하고 비현실적인 느낌 속에 현실적 안정감을 주고 있었다.


"나 진짜 머라 말해야 되노."

"네가 걔를 왜 만나려고 했는지를 생각해. 잘 모르는 사람을 계속 생각만 하는 거는 좀 아니잖아. 일단은 만나보고 사람을 알고는 봐야지."


어떻게 이런 걸 다 알고 있을까 생각이 들만큼, 오늘따라 수민이가 나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어른처럼 느껴졌다.


찾아간 건물은 흰색의 아담한 3층 건물이었다. 계단 입구에서부터 미술실 냄새가 풍겨오는 것이, 우리가 찾아가는 곳이 화실이 맞을 거라는 예감이 들었다. 화실은 3층 짧은 복도 끝에 있었다. 문이 열려있고, 장신의 누군가가 미술용 앞치마를 입고 왔다 갔다 하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강이니?"


저쪽에서 멈칫하고 이쪽으로 시선을 주는 게 느껴졌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고 싶은 수민이 수다를 늘어놓으며 화실 안으로 다가갔다. 지난번 도와줘서 고마웠다는 둥. 이모가 빵을 구워서 가져다주라고 하여서 오늘 여기까지 찾아왔다는 둥 이야기를 이어갔다.


"내 친구하고 같이 왔는데, 이 친구 이름 뭐게?"


수민이 이름 같은 친구를 소개해 주는 역사적인 순간 앞에서 혼자 신나서 깔깔거렸다.


"얘도 이름이 최강이다! 너도 최강이라며! 최강에게 최강을 소개해준다. 야 최강들아, 너희 둘이 빨리 인사해라!"


최철광 선생님의 조카라는 최강은 물끄러미 사람을 응시할 뿐, 입을 열지 않았다.


"안녕"


내가 먼저 인사를 건네자, 몹시 이상한 표정이 되더니, 한마디 언질도 없이 갑자기 뒤돌아 저쪽으로 걸어가 버렸다. 그때 우리를 도와주러 올 때와 전혀 다른 사람인 듯 느껴졌다. 오늘 본 최강의 두 눈은 그날보다 더 싸늘하고 음울한 느낌이 들었다.


"쟤 원래 쫌 저래. 사연이 좀 있어. 그때 이사 도와주러 왔을 때도 한마디 말없이 일만 하다 갔어. 그래도 여기서 물러설 순 없지. 이야기는 해 봐야지."


수민이가 내 귀에 소곤거렸다. 그리곤 이 화실 안에 있는 사람 다 들으라는 듯 크게 소리쳤다.


"강이야, 우리 목마른데 , 물 한 잔 줄 수 있어?"


한참 정적이 흘렀다.


"그냥 가자."

"야, 칼을 뽑았으면 무라도 자르고 가야지. 있어 봐."


최강이 한참만에 손에 물 컵 두 개를 들고 다시 나타났다. 몹시 귀찮다는 듯 화실 중간의 긴 테이블에 내려놓는 컵 속의 물이 밖으로 튀어나올 듯 몹시 일렁거렸다.


"여기 너 그림 그리는 화실이야? 선생님이나 다른 사람들은?"

"오늘은 주말이라서... 아무도 없어."


몹시 말을 하기 싫은 데 억지로 말을 하는 듯한 느낌이 드는 고집스럽고 단호하고 차가운 말투였다.


"케잌 같이 먹을 사람 없겠네. 그럼 우리 같이 먹을까."


수민이가 있는 붙임성 없는 붙임성을 다 끌어 모아, 계속 함께 있을 구실을 만들려고 애를 써 보는 것 같았다. 최강의 어깨가 가볍게 으쓱하는 것이, 마음대로 하라는 뜻 같았다.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수민이가 불도저처럼 밀어붙였다.


"아침에 구운 케잌이라 정말 맛있을 거야. 혹시 우유 있어?"


최강은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전혀 우리가 반갑지도 않고, 도무지 말도 이어가기 싫은 눈치여서 나는 실망감으로 마음이 이미 너덜하게 내려앉고 있었다.


"내가 우유 사 올게. 이 케잌은 꼭 우유하고 같이 먹어야 제맛이거든! 여기서 쫌만 기다려!"


수민이는 나에게 눈만 찡긋하곤, 말릴 새도 없이 튀어 나갔다. 수민이가 나를 생각해서 둘이 말해 볼 시간을 벌어주는 것이라는 느낌이 왔지만, 나는 완전히 자신감을 잃고 어쩔 줄을 몰라 허둥거리기만 할 뿐이었다. 물컵을 잡으면 손이 떨리는 게 보일 것 같아서, 물도 마실 수 없었다.


수민이가 나가자마자 어두운 공간 저편으로 사라졌던 최강이 갑자기 쿵쿵거리는 발걸음으로 다시 나왔다.


"너 나 기억 안 나?"


수민이 있을 때와 몹시 다른 느낌의 목소리로 최강이 말을 걸었다. 퉁명한 건 마찬가지지만, 지금까지의 최강이 몹시 차갑고 검푸른 느낌이었다면, 갑자기 변한 최강은 새빨갛게 화가 난 사람 같았다. 처음 보는 사이인데도 눈길을 피하지도 않고, 눈을 전혀 깜박거리지도 않고 거침없이 이쪽을 쏘아보는 눈에 불길이 이글거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마치 악연을 외나무다리에서 만난 듯한 느낌. 어릴 때 같은 학교라도 다녔던 걸까? 내가 누구에게 피해를 준 적이 있었나?


"최지원"


갑작스레 튀어나온 이름에 나는 기억을 더듬느라 한참을 멍하니 앉아 있었다.


"3년 전. 너 좋아서 한 번만 만나 달라던... 역시 너는 기억도 못하는구나... 그때 내가 누나를 위해 편지를 그렇게 많이 쓰고 그림도 많이 그려 보냈는데도... 넌 사람 마음 완전히 무시했으니까...우리 누나 마지막 소원을 무시했어, 넌! 너 같은 차가운 마음 가진 인간들, 정말 꼴도 보기 싫어!"


차갑게 비웃는 최강의 얼굴 위로, 3년 전 까까머리 중학생의 얼굴이 겹쳐왔다. 몹시도 간절하게 누나를 좀 만나 달라고 하던. 누나의 마지막 소원이라고 하던. 그 아이가... 키가 정말 많이 컸구나. 전혀 다른 사람 같아 못 알아볼 정도로. 나는 순간 너무 부끄러워졌다. 지금까지의 며칠간의 설렘에 오늘의 불안과 실망, 그리고 당황스럽고 갑작스러운 수치심이 확 몰아치자, 더 이상은 손쓸 수 없는 둑이 무너지는 것처럼, 걷잡을 수 없이 눈물이 터져 나왔다.


화실 밖으로 튀어 나갔다. 수민이는 보이지 않았다. 수민이를 찾고 기다릴 여유가 없었다. 수민이라도 남아서 강이의 화난 이야기를 다 들어주었으면 싶었다. 이 감당할 수 없는 순간을 벗어나야 한다는 일념만으로 첫 번째 도착한 버스를 잡아 타고 집으로 왔다.


집에 도착하자마자 나는 다락방에 올라가 박스를 뒤지기 시작했다. 먼지가 가득 쌓인 상자를 열고, 그때의 편지들을 다 쏟아부었다. 최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온 편지는 구분하기 쉬웠다. 편지마다 그림이 한 장씩 들어 있어, 편지봉투가 유달리 두툼했기 때문이었다.


편지를 한 장 한 장 열어 다시 읽어 보았다. 첫 편지를 찾았다.


안녕하세요?

우리 누나가 그쪽을 엄청 좋아해요. 누나가 몸이 불편해서 말도 잘 못하고, 글도 못쓰고 그렇지만, 저는 누나의 마음을 잘 알거든요. 우리 누나 정말 착하고 순순한 좋은 사람이에요. 처음으로 가족이 아닌 다른 사람을 이렇게 좋아하는데, 꼭 만날 수 있게 도와주고 싶어요. 그리고 얼마나 좋은 사람이길래 누나가 이렇게 좋아하게 된 건지, 나도 궁금해졌어요. 전에 누나하고 같이 있다가 그쪽을 보게 되어서, 솜씨는 없지만 그려 봤는데, 마음에 들면 좋겠어요.



누나 휠체어를 밀어주던 똘망똘망 착한 눈빛의 그 아이. 어렴풋이 기억이 떠올랐다. 자기 누나를 위해 편지도 쓰고 그림도 그리던 그 착한 아이의 두 눈은 내내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3년 만에 사람이 그렇게 변했다는 것이, 그 아이의 아픔과 상처와 분노가 나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에 나는 가슴이 조여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회한의 눈물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싶은 액체가 눈과 코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결국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버려, 나는 앉아 있을 수 조차 없이 탈진해 몸져누워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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