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최강의 슬픔 (2)

[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by 하트온

누나 휠체어를 밀어주던 똘망똘망 착한 눈빛의 그 아이. 어렴풋이 기억이 떠올랐다. 자기 누나를 위해 편지도 쓰고 그림도 그리던 그 착한 아이의 두 눈은 내내 기억 속에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3년 만에 사람이 그렇게 변했다는 것이, 그 아이의 아픔과 상처와 분노가 나와 무관하지 않을 거라는 느낌에 나는 가슴이 조여와 숨을 쉴 수가 없었다. 회한의 눈물이라는 것이 이런 건가 싶은 액체가 눈과 코에서 끊임없이 흘러나오고, 결국 온몸에 힘이 쭉 빠져나가버려, 나는 앉아 있을 수 조차 없이 탈진해 몸져누워 버렸다.


https://brunch.co.kr/@lovetree/696


나는 그 길로 일주일을 앓아누워 학교에도 나가지 못했고, 도무지 어떻게 된 일인지 걱정되어 우리 집까지 찾아온 수민이가 모든 것을 알게 되었고, 친구가 바짝바짝 말라죽어가는 상황에서 수민이는 누군가에게 도움을 요청해야 했고, 수민이에게 모든 정황을 들은 수민이의 이모 김영애 선생님은 최철광 선생님을 만나 의논하기에 이르렀다. 수민이는 계속 우리 집에 와서 내게 귀찮을 정도로 자꾸만 희망을 불어넣어 주려했고, 그리하여 마침내 몸을 추스르고 학교에 출석한 첫날 최철광 선생님이 저녁 자율학습 시간에 나를 조용한 교무실로 불러내는 상황까지 이른 것이었다.


"그동안 많이 아팠나 보구나."


선생님은 녹차 한 잔을 건네주면서 내 기색을 살폈다.


"네"


녹차 잎 여러 장이 미역 건더기처럼 생으로 들어 있는 녹차는 향이 너무 강했다. 맛이 비릿한 느낌이 들 정도로 강해서, 나는 입을 조금 대 보곤 마시지도 못하는 차를 손에 들고 온기만 느끼고 있었다. 이런 맛없는 것을 몸에 좋다고 마셔야만 하는 어른들의 삶이라니. 최철광 쌤도 매일 인삼즙이니 양파즙이니 하는 것을 부지런히 마시는 우리 아빠와 다를 바 없는 어른 아저씨구나 김칫국 실망을 끌어와 속으로 괜한 트집을 잡으며 쌤의 다음 말을 기다렸다.


"우리 지원이, 강이 누나가 작년에... 떠났거든... 강이에게 누나가 그냥 누나가 아니었거든. 정말 한 몸처럼 쌍둥이처럼 붙어 다니던 애들이어서, 강이가 많이 힘들었고, 지금도 그래..."


그랬구나. 그 마지막 소원이란 것이 그 언니가 죽기 전에 바라던 것이었구나. 내가 보고 싶다는 것이 죽어가는 사람의 소원이었구나. 선생님의 말이 전하는 감당할 수 없는 무게에. 내 속은 또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강이는 내 아들 같은 애고... 내가 참 많이 아끼는 조카야. 너희들이 한참 공부해야 하는 나이라서, 교사로서는 이런 말 조심스러운데... 지금은 그냥 삼촌으로서 말하자면... 걔가 지금 너무 방황하고 있어서... 누구라도 진심으로 다가가 손을 내밀어 줬으면 좋겠거든. 너한테 부탁해도 될까. 아니... 너 힘들게 하려고 말하는 거 아니고.. 야, 울지 마... 제발 울지 마...아이고, 선생님이 잘못했다."


내 눈에서 눈물이 쏟아져 나오는 것을 본 최철광 쌤은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하며, 옆의 여자 교사 책상에서 클리넥스를 한 뭉치 뽑아 내게 건네주었다.


나는 최철광 쌤이 너무 당황해서 우왕좌왕하는 모습에 웃음이 쑥 들어가긴 했지만, 죄책감은 여전히 마음에 무거운 돌을 얹고 있었다.


"제가 그 애와 그 언니한테 크게 잘못한 게 있어서, 선생님 조카가 저 다시는 안 보고 싶을 거예요."


나는 최철광 쌤이 그 이야기까지 알고 나를 부른 걸까 생각하며 말을 꺼냈다. 쌤이 알건 모르건, 나는 마음에 눌린 짐이 너무 무거워 말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너 중학교 1학년이 었다며. 모르는 애들이 와서 좋아한다고 만나자고 하면 어린애가 얼마나 놀랐겠어. 강이도 속으론 네 잘못 아닌 거 이해할 거야. 그냥 누나가 불쌍해서 트집 잡고 화 낼 데가 없어서 저러는 거야. 장애인 누나가 평생 사람들에게 무시당하는 거 옆에서 다 본 게 쌓이고 쌓여서... 모두에게 화를 내고 있어 지금은. 강이 화내는 거 조금만 참아주고 들어주면 안 될까. 나도 노력하고 있는데, 강이 마음 이해해주는 또래 친구가 필요할 것 같아."

"친한 친구들이 있는 것 같던데요."


나는 광안리에서 함께 있던 최강의 친구들을 떠올리며 말했다.


"친구? 금시초문인데... 걔 맨날 화실에서 혼자 그림만 그리는데... 근데, 이상한 게 그림을 그리고 자기 그림을 버리는 것 같아.. 맨날 보면 그림을 그리고 있는데, 그림을 보여주지도 않고, 녀석이 없을 때 화실에 가 보면, 그림 그려 놓은 게 하나도 없어. 그나마 그림 그리는 내 친구가 화실을 걔한테 열어줘서 가 있을 데가 있는 거야. 거기서 먹고 자고 하는 것 같아. 우리 형 부부가 애가 타, 걔 때문에...고등학생 녀석이 집엘 안 들어오니까. 학교에도 다니는 둥 마는 둥 제멋대로 다녀서 학교에도 몇 번이나 불려 갔지."

"누나 기억 때문에 집에 있는 게 힘든 게 아닐까요."

"그럴 테지... 그런데 지 누나 물건 치우려고 하면 그것도 난리를 치니, 형하고 형수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강이 눈치만 보고 있는 거야."


나는 무슨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도무지 짐작할 수도 없는 누군가의 고통 앞에서 침묵할 수밖에 없었다.


"너는 뭘 좋아하니? 그림 그리기나 독서 뭐 취미 같은 거 있잖아. 넌 대학 가서 뭘 전공하고 싶어?"


어려운 질문이었다. 아직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공부하고 싶은 게 뭔지 심각하게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어릴 땐 피아노나 미술을 배우기도 했지만, 재능이 없는 것 같아 크면서 저절로 그만두게 되었고, 크게 내가 잘할 수 있는 분야가 있겠다 생각되는 것도 없었다. 다만, 늘 남동생을 의식하며 자라다 보니, 여자인 나도 다 잘한다는 것을 보여주고 말겠다는 묘한 경쟁심이 있어, 뭐든 열심히 했고, 그 결과 성적을 상위권으로 유지하고 있는 것 밖에 딱히 내세울 것이 없었다. 어쩌면 높은 성적 또한 질 수 없다는 이상한 심리에서 시작된 것이라, 진짜 학자로서의 재능이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인지 몰랐다. 정말 내가 좋은 게 뭘까를 생각해 볼 여유도 없이 늘 혼자 비교하느라 바쁜 초조하고 불안한 마음으로 지내왔던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르겠어요. 저도 제가 뭘 좋아하는지 알면 좋겠어요."


"그럼 네가 뭘 좋아하는지 찾는 거 선생님이 도와줄 테니까, 너도 선생님 좀 도와줄래? 너 공부 시간은 많이 안 뺏을 게."


사실 누군가의 바짓가랑이라도 잡고 매달리고 부탁하고 싶은 사람은 나였다. 이 무너진 심장을 어찌해야 하느냐고. 학교도 못 나가고 앓았던 지난 며칠 동안 '죽음'이라는 단어가 내 머리 위를 빙빙 돌며 나를 끌고 가려고 몹시도 유혹하는 것을 느꼈다. 내 마음속에 '절망'이라는 단어가 내려앉아 몹시도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나는 '죽음'을 따라가고 싶은 욕구를 느꼈다. 내가 죽으면 최강이라는 아이의 입장에서 통쾌한 복수가 될 것 같고, 그래야 내 차가운 마음의 죄가 마땅한 벌을 받을 것 같았다. 내 마음은 산산조각 나서 도무지 앞으로 어찌 살아가야 할지 모르는 상황이었고, 나는 몹시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스스로 간절히 자각하고 있었다.


"선생님, 저 좀 도와주세요. 저도 너무 힘들어서 죽고 싶다는 생각밖에 안 들어요."


최철광 쌤은, 죽고 싶다는 표현이 들어가는 내 말에 몹시 놀라고 충격을 받는 것 같았다. 두 사람 다 다음 말이 생각나지 않았기에, 한참의 정적이 흘렀다. 결국 자율학습을 마치는 종소리가 정적을 깨고 들이닥쳤다.


"너 이번 주말에 시간 낼 수 있니?"

"네."

"내가 수민이 통해서 연락하든지 할 테니까, 주말에 보자."

"네."

"내가 너 꼭 도와줄 테니까. 죽는단 생각은 다신 하지 말고."

"네."

"잘 먹고, 잘 자고..."


쌤은 도무지 걱정돼서 안 되겠는지, 자꾸만 엄마처럼 잔소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쌤이 엄마처럼 말을 하는 게 이상하긴 해도, 나는 뱃속이 점점 따뜻해지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조금은 마음이 편해지는 것 같았다.


"걱정 마세요 쌤. 잘 지내려고 노력하께요. 그리고 죽는단 생각도 앞으론 안하께요."

"그래. 너 믿는다."


그제야 최철광 쌤은 걱정과 잔소리를 멈추고 한숨을 몰아쉬었다.



***


"너희 '소원 들어주기 모임'을 좀 더 확장해서 '꿈을 이루는 모임'으로 하면 어떨까 생각해 봤어. 우리 서로가 서로의 꿈을 이루는 걸 도와주는 모임인 거지... 그래서 나는 수학과 독서를 맡고, 김영애 선생님은 영어, 그리고 너희들도 한 가지씩 재능을 살려서 다른 친구를 돕자고. 예를 들어 남강 너는 그림을 가르쳐 주고,.."


쌤은, 최강이 둘이니, 쌤 조카 최강은 남자 최강을 줄여 '남강'이라 부르겠다고 선언하셨다. 아이들이 우리끼리 불러주기로 한 이름을 다 말하는 바람에, 나는 저절로 '혜강'이 되었다. '죽고 싶다'는 나의 말 때문이었는지, 도저히 애들을 이대로 가만둘 수 없다고 판단했는지, 김영애 선생님과 최철광 선생님 두 분 다 나서서, 최강과 우리 넷 소원 들어주기 친구들을 이 자리에 다 불러 모았다. 우리의 부모라도 되기로 결심한 사람들처럼 결연한 표정으로 두 분이 만든 리스트를 쭉 읽어 내려가셨다. 많은 의논을 거치고 생각을 짜고 또 짜내신 결과물인 듯했다.


"왜 이래 다들 갑자기 몰려와서. 난 안 해. 삼촌이라도 나한테 강요는 하지 마. 그리고 여기 내 아지트도 함부로 찾아와서 방해하지 마."

"야 솔직히 여기가 네 집은 아니지. 내 친구 화실이니, 나한테 권리가 더 있지."


반발하는 최강을 대하는 최철광 선생님의 표정은 학교에서 다른 학생들에게 호통칠 때와 완전히 달랐다.


"삼촌 마음대로 해. 대신 나는 여기 더 이상 안 나올 거야."

"그러시던 가. 집에 들어가면 더 좋고. 네 엄마 아빠 엄청 좋아하시겠다."

"에이... 씨!"

"그래 가지고 책상이 부서지겠냐? 톱이라도 가져다줘? 안 그래도 성식이 삼촌이 화실 가구 바꾸고 싶어 하던데. 네가 부수고 네가 돈 벌어 사 드리면 좋아하겠다."


최철광 선생님이 계속 빙글거리니 약이 올라 죽겠는 최강이지만, 보는 눈이 많으니 주먹으로 책상을 성질나는 만큼 힘껏 내리치진 못하고 스치듯 내리쳤다. 쌤은 조카에게 화낼 마음이 전혀 없는 것 같았다. 쌤의 두 눈 가득 고인, 조카를 귀여워하는 빛은 좀처럼 쉽게 방해받을 수 있는 게 아닌 것 같았다. 최강만 그걸 못 보는지... 열불이 나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여기 계신, 김영애 선생님도 그렇고, 나도 꿈이 있어. 너희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도 함께 꿈을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어."

"쌤들은 벌써 꿈을 이루신 거 아니에요? 저는 대학 나와서 선생님만 되면 소원이 없을 것 같은데..."


유경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혼잣말하듯 읊조렸다.


"내가 원래 축구 선수였단 이야기는 들어봤지?"


선생님께 가장 아픈 이야기일 것 같아, 본인 앞에서 아무도 절대 꺼내지 않는 말을 당사자가 먼저 꺼내니 아무도 감히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고개들을 숙였다.


"괜찮아. 그런 말 해도 이젠 아무렇지 않아. 물론 처음엔 많이 괴로웠지 솔직히. 축구밖에 모르고 살았었는데, 다리 이렇게 되고 원망도 많이 하고 화도 많이 냈지. 근데, 살아보니까 인생엔 축구만큼 재밌는 것도 많더라. 내가 선생님 돼서 너희들과 이렇게 만난 것도 좋고, 나는 요즘 책을 읽으며 글도 조금씩 쓰기 시작했는데, 내 안에 하고 싶은 말들을 글로 쓴다는 게 참 속이 시원하고 즐겁다는 사실을 깨닫고 있어. 선생님은 글을 쓰는 작가가 되고 싶다는 꿈이 생겼어. 너희 하고 함께 책도 읽고 글 쓰는 시간도 가져 보려고..."

"그리니까 꿈이 바낄 수도 있고, 어른이 돼서 새로운 꿈을 꿀 수도 있다는 거네요."


천조가 뭔가 인생의 깨달음을 얻었다는 표정을 지으며 끼어들었다.


"선생님도 새로운 꿈 있다!"


김영애 선생님이 늘처럼 사랑스러운 말투로 본인의 이야기를 하기 위해 끼어드셨다.


"선생님도 선생님인 거 나쁘지는 않은데, 뭔가 조금 지루해진달까, 늘 똑같은 일상에 좀 무기력해지는 느낌이 있었는데, 요새 주말마다 베이킹을 하고 있어. 그게 너무 재밌어. 최철광 선생님이 너희들과 함께 하쟤서, 이제 주말에 여기 와서 베이킹을 하려고. 물론 영어 공부도 가르쳐 주면서. 오늘도 쿠키 구워주려고 반죽해 왔거든. 지금 오븐에 쿠키 한 판 들어 가 있는데, 참 다 됐겠다. 남강아 오븐 옆에 접시에 쿠키 좀 담아 올래?"


상냥한 김영애 쌤 앞에서는 최강도 우리처럼 꼼짝 못 하는 것 같았다. 무섭게 말하는 선생님 못지않은 힘을 친절한 선생님도 가지고 있구나 하는 걸 늘 깨닫게 해 주는 선생님이었다.


"어쩐지 이 화실 냄새가 억수로 좋다 했어요! 와 신난다! 저는 집에서 구워주는 쿠키 먹어 보는 기 소원이었어요, 쌤! 우리 엄마는 그런 거 한 개도 못하거등요."

"천조는 벌써 소원 하나 이뤘네!"

"천조 말고, 혜리라 불러 주쎄용!"


쿠키를 담은 접시를 가져와 테이블에 내려놓던 최강이, 턱밑에 손가락 밭침을 하며 혜리라 불러달라는 천조의 애교를 정면으로 마주하고, 갑작스런 웃음 공격을 당한 듯 피식 웃는 게 느껴졌다.


"혜리는 벌써 소원 하나 이랐다, 이모."


수민은 쌤들이 쿠키를 하나씩 먼저 집으실 때까지 기다렸다, 저도 쿠키를 하나 입에 물며 뿌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천조... 아니 혜리, 소원이 뭐였을까?"

"일단은 부산에 온 김에 부산 여행요. 여기 광안리에 온 게 저한테는 소원 하나 이룬 기거든요."

"혜리는 여행 좋아하는구나. 혜리는 장래 꿈이 뭐야?"

"저는 꿈도 여행이에요. 제가 왜 여행을 하고 싶냐면요, 그게 우리 아빠 소원이었거든요. 은퇴하고 여행 많이 하는 거. 엄청 여행 좋아하는 양반이었는데, 맨날 우리 천조 만조 대학자금 결혼자금 조금만 더 벌어놔야지, 여행은 은퇴하고 해도 되지, 하면서 계속 미룬 거예요. 결국 은퇴도 못하고 여행도 못 다녀 보고 가신 게 너무 내 맘이 아파서... 아빠 대신 내가 갈라고요. 여행... 내 마음에 살아 있는 아빠가 나하고 함께 여행하면서 다 보실 거라고 믿어요..."


늘 씩씩한 천조가 통통한 주먹을 들어 참을 수 없이 솟구치는 뜨거운 눈물을 훔쳤다.


조용하고 고즈넉한 화실의 분위기가 사람의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고 속을 터놓게 만드는 면이 있는 것 같았다. 천조의 속마음을 지켜본 모두의 마음에 눈물이 고이는 것 같았다. 최철광 쌤은 천장을 보고, 최강은 아예 얼굴을 저쪽으로 돌리고 있었다. 김영애 선생님도 지갑에서 꺼낸 손수건으로 눈가를 찍어내느라 바빴다.


"부산 구경 많이 시키 주께 천조야. 힘내라."


유경이 같이 울먹거리며 천조를 달랬다.


"근데, 이제 너희들끼리 다니지 마. 지난번에 큰 일 날 뻔했다며?"


수민에게 모든 걸 들어 알고 있는 김영애 선생님이 말속의 위험을 감지하곤 눈물을 닦다 말고 재빨리 나섰다. 유경이 평소의 쌤들에 대한 경계심이 발동하여 쌤한테 다 일렀다 이거지 하는 표정으로 수민을 잠시 쏘아보았지만, 대학 가려면 이 분위기에 적응해야 한다 싶은지 금세 자포자기하는 것 같았다.


"이제부턴 항상 남강이 같이 다녀라."

"와, 그러면 너무 좋겠어요!"


최철강 쌤의 말에, 최강이 미쳤어라는 반항이 목구멍까지 나오다가, 천조와 유경의 동시 합창 물개 박수에 할 말을 잃은 듯 머리를 긁적였다.


"그쪽 친구분들도 같이 오면 좋은데."

"그때 같이 우리 도와주신 분들 있잖아요."

"야. 너희들 동갑이야. 말 놓고 얘기해."

"그러니까, 그 친구들도 데리고 나오라고, 우리말은... 그때 일 고맙다는 인사도 해야 되니까."


친구라는 말에 감을 못 잡는 듯한 최강에게, 유경과 천조가 눈을 반짝이며 그때 일을 떠올리며 친절히 설명했다. 최철광 쌤이, 서로 높임말을 할 필요가 없다고 아이들에게 훈수를 두자, 천조는 바로 반말로 직진하며, 그들을 왜 꼭 다시 만나야 하는지를 강조했다.


"친구는 아니고, 여기서 그림 그리는 대학생 형들. 그때 형들이 여기서 밤샜거든. 아침에 같이 나가서 밥 먹자고 해서 나가는 길이었고. 근데, 형들이 시험기간 같은 때 아니면, 주말엔 잘 안 나와."

"대학생이었구나. 어쩐지... 진짜 멋있더라. 그래도 여기 매주 나오면 가끔 마주칠 수도 있겠네!"


천조는 몹시 실망하는 듯하다가, 다시 혼자서 희망의 끊을 붙잡는 것 같았다. 그렇게 울다가 웃을 일을 알아서 만드는 천조를 보며, 다른 사람들의 마음에도 작은 웃음이 다시 고이는 것 같았다.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3. 최강의 슬픔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