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너희들 오늘 하루 어땠는지, 소감 한 마디씩 하고 마칠까? 반장부터!"
항상 반장이 개시 희생양이 되는 건, 교실에서나 여기서나 같구나 자포자기하며 나는 훈련된 순발력을 발휘하여 떠오르는 대로 생각을 말하기 시작했다.
"어린 왕자 책, 항상 읽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함께 생각을 나누면서 읽을 수 있어 좋았고, 그게 영어 수업과 바로 연결되니까, 뭔가 제가 아는 지식이 확실히 넓어진다는 느낌이 들어 좋았어요. 학교에서도 이렇게 수업하면 훨씬 재밌을 것 같았요."
"저는 오늘 우리 누나 이름하고 똑같은 이름 가진 행님 만나서 정말 좋았고요. 행님의 삼촌이신, 최철광 수학쌤 만나 이야기한 것도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수학에 대해 내가 가진 마음, 감정을 한 번 돌아보라고 하셔서 제가 글을 써 봤는데, 제가 틀릴까 봐 두려워하는 마음이 있다는 걸 알았습니다. 다음 시간에 또 멀 배우고 어떻게 발전할지 억수로 기대가 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엄청 맛있는 간식을 만들어 주시는 미인 김영애 쌤과, 중학생인 저를 끼워주시고 환영해 주신 멋진 누님들께도 감사를 드립니다."
돌아가는 순서상 내 옆에 있다 보니, 동우 차례가 왔다. 당황하지 않고 자기 생각을 또박또박 말하는 것이 내 동생이지만 새삼 인상적이었다. 게다가 김영애 쌤 미모 칭찬에, 누나들에 대한 감사도 빠뜨리지 않는 저 여자 마음 여는데 타고난 신동 자질이라니. 예민 보스만 가득한 우리 집 분위기에서 어떻게 저런 게 나왔다 싶었다. 누나 마음 여는 게 몹시 힘들어서, 애가 이쪽으로도 고도로 훈련이 되었나 싶었다.
"저는 책으로도 여행을 갈 수가 있구나 깨닫는 시간이었습니다. 새로운 영어 단어도 많이 배우고 영어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고, 재밌을 수 있구나 영어가 좋아질 것 같아요. 제가 창원에서는 영포자였거든요. 김영애쌤 진짜 고맙습니데이."
"저는 학교에서 배우는 기 늘 이해가 안 가서, 고등학교 들어와서부터 공부에 손을 놔뿌서, 영포자일뿐 아니라 수포자이기도 했는데, 이렇게 제 수준에 딱 맞게 조정해서 가르쳐 주시니까 너무 좋았어요. 쌤들 정말 사랑해요! 이래 계속 쌤들하고 공부하면, 진짜 내 실력도 좋아지고 대학도 갈 수 있을지 모르겠다 희망이 생겼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이렇게 사람 많은 앞에서 말을 잘 못해서... 그냥 이 모임, 이 우정이 오래오래 계속되었으면 좋겠다는 것만 말할 게요... 아참... 선생님들께 진짜 궁금하게 하나 있는데요, 이렇게 주말을 저희한테 다 쓰시면, 연애는 언제... 두 분 결혼도 하셔야 할 텐데...""
천조와 유경이, 그리고 수민이가 순서대로 말했고, 수민이는 결국 김영애 쌤의 눈흘김을 당하고 말을 맺었다. 이제 최강 차례였다. 한참을 뜸을 들이다 입을 열었다.
"머릿속에 생각은 많은데,... 생각이 너무 많아서 그걸 정리하는 게 아직 힘들어요. 신경 써 주는 거 아는데... 아직은... 저한테 너무 많은 걸 바라지 마세요."
수많은 눈동자들의 집중을 받으며 어느새 최강의 얼굴이 빨개져 있었다.
"우리 강이 참 성숙하다. 난 네가 어떤 어려움도 잘 이겨낼 참 괜찮은 애라는 거 믿어."
김영애 선생님이 아낌없는 격려의 말을 쏟아부었다.
"우리도 니 믿는다."
누군가 우리 모두를 대신해서 말했다.
"행님, 저는 행님을 100% 믿십니더. 행님은 딱 봐도 좋은 분, 멋진 분이라고 이마에 씌어 있습니다."
동우가 저만 빠질세라, 끼어들었다. 덕분에 모두가 함께 웃을 수 있었다.
김영애 선생님이, 남은 케이크, 쿠키 더 먹고 갈 테냐고 묻는 바람에, 모두가 테이블 위 간식 앞으로 집결한 사이, 최강이 내 곁으로 몹시 어색해하며 걸어왔다. 나는 어찌 대응할 바를 몰라 얼어붙은 듯 서 있었다.
"계속 같이 볼 건데,..."
나는 가까이 다가온 그 애의 눈을 차마 마주치지 못하고 바닥으로 시선을 떨군 채 고개만 끄덕였다.
"내가 너무 우리 누나... 아니 내 감정만 생각하고, 네가 어린애였다는 걸 깜빡했어..."
"미안해... 정말, 시간을 되돌릴 수 있다면 좋겠어. 진심으로 사과해..."
요즘 툭하면 눈물이 솟구쳐 오르는 걸 나도 어쩔 수 없었다. 굵은 눈물 방울이 툭툭 바닥으로 떨어지는 것을 들키지 않을 수도 없었다.
"미안해하지 마. 네가 미안할 일 아니야. 삼촌하고 어제 이야기하다가 깨달았어. 내가 화가 나서 억지를 부리고 있었구나... 내가 말도 안 되는 억지를 부려서, 너를 힘들게 한 거야... 다 잊고 지금부터 다시 시작해 줄래? 처음 만난 사람처럼."
최강이 내 눈앞으로 손을 내밀었다. 망설일 새 없이, 내 오른손이 저절로 그 애의 손으로 끌려가 맞잡았다. 크면서도 섬세한 느낌. 부드러우면서도 거칠다는 느낌이 드는 묘한 손이었다. 그 애가 천천히 손을 흔들었다. 어딘지 장난스러운 느낌이 들어, 고개를 들어 그 애의 눈을 마주 보았다. 차가운 밤 같고 겨울 강 같던 그 애의 두 눈에 작고 따뜻한 별이 떠올라 반짝이는 것만 같았다.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았다.
'우리 더 이상 힘들지 말고 즐겁게 지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