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 가시가 필요한 이유 (2)

[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by 하트온

동우는 화실에 가득 쌓여있는 만화책을 보기 위해, 매주 주말 새벽같이 나를 깨워 화실로 나갔다. 아침밥을 먹으러 던킨 도너스에 갈 필요는 없었다. 김영애 선생님이 갖다 놓으신 부엌 가전들과 기본 식재료들이 있어 해 먹을 수도 있었고, 딸내미 공부 봐준다고 감사한 유경이 어머니와 천조 어머니가 돈으로 보상할 수 없는 게 안타까워, 컵라면과 참치캔, 각종 과일, 과자 같은 간식거리들을 잔뜩 넣어 놓으셔서 먹을 게 점점 풍성해지고 있었다. 누군가는 부지런히 먹어줘야 음식을 낭비하지 않을 것이었다.


음식을 가장 많이 축내 주는 사람은 새벽부터 저녁 늦게까지 화실에 있다 가는 동우와 나였다. 물론 여기서 가장 시간을 많이 보내는 사람은 최강이지만, 최강은 먹는 것에 별로 관심이 없는 것 같았다. 일주일 만에 화실에 가도, 음식이 딱히 많이 줄었다는 생각이 들지 않았다. 뭔가 라면이 확 줄었다는 느낌이 드는 날은 대학생들이 와서 밤샘 작업을 하고 아침에 쿨쿨 잠들어 있는 모습을 목격하는 것으로 이어졌다.


오늘도 그런 날이었다. 대학생들이 아직 가지 않고 있었다. 나는 아침에 도착해 낌새를 알아차리자마자 천조에게 재빨리 문자를 했다. 천조가 대학생 오빠들 있는 날 꼭 알려달라고 했기 때문이었다. 대학생들은 보통 선생님과 아이들이 들이닥치는 시간쯤엔 아침을 먹으러 나가 버리고 없었기 때문에, 천조는 아직 한 번도 기다리고 기다리던 대학생들과의 조우를 경험할 수 없었다.


천조는 정말 항상 만반의 준비로 대기하고 있었던 사람처럼, 30분 만에 헐레벌떡 나타났다. 다행히 대학생들은 아직 잠들어 있었다. 내가 입에 손가락을 갖다 대고, 그들이 자고 있는 작업실 쪽을 가리키며 소리를 내지 말라는 신호를 주었다. 천조가 금세 눈치를 채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가락으로 오케이 신호를 보내왔다.


"와 드디어 그때 그 내 스타일 오빠 만나는 기가! 떨리 죽겠다!"


천조가 곁으로 다가와 귓속말을 했다. 우리는 웃음소리를 낼 수 없어, 서로를 마주 보며 어깨를 들썩이기만 했다. 자세히 보니, 천조는 언제 시간이 있었는지, 가벼운 화장을 하고 있었다. 다행히 창원에서 잘 나가던 스타일이 아니라, 피부만 좀 화사하고 입술만 좀 발그레 촉촉한, 유경이가 가르쳐 준 쌤들한테도 안 들키는 사기 화장이었다.


"우리가 오빠야들 묵그로 아침밥 해놓으까?"


"니 밥할 줄 아나?"


"그라모. 내가 전에 말했잖아. 우리 엄마는 하나도 못하고 안해준다꼬. 먹고는 살아야 되는데 누가 밥을 했겠노 지금까지?"


"와. 니 대단하다, 고등학생이!"


"내가 오는 길에 전복 실한 놈 하나 사 왔거든. 전복죽 끼리자."




천조의 가방에서 방금 산 전복과 함께, 죽 끓이는 데 필요할 재료들이 한가득 쏟아져 나왔다. 언제 광안리 수산시장까지 들렀다 왔는지, 나는 천조가 신통해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게다가 전복은 결코 싸지 않은 식재료였다. 나는 종종 엄마를 따라 수산 시장을 간 적이 있어 알고 있었다. 엄마가 손바닥보다 작은 전복을 오천 원 주고 사는 걸 보면서, 오천 원이면 짜장면 네 그릇은 거뜬히 먹을 수 있는데 생각하며 놀랐던 마음이 아직도 생생했다. 천조가 챙겨 온 저 정도 큰 전복이면 만 원은 했을 텐데, 가시나 손도 크다라고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내가 다 할 테니까. 니는 식탁만 좀 차리도. 근데 몇 명 있는지 모르겠네. 동우야 니가 가서 형들 몇 명 있는지 좀 살짝 보고 온나."




천조의 말투에서 마치 아빠의 동향을 살피고 오라고 아들에게 심부름시키는 아주머니 한 분이 느껴졌다. 동우는 살금살금 갔다 오더니, 손가락 세 개를 펼쳐 보였다.




"최강도 있어?"




요즘 최강은 화실에서 잠을 자는 것 같지 않았지만, 혹시나 물어보았다.




"행님은 아직 안 온 것 같다."




내가 실망과 안도감 두 개의 상충하는 감정 사이에서 멍하니 있는 동안, 천조는 재빠른 손놀림으로 전복죽을 후다닥 끓여냈다.




"와 냄새 너무 좋다. 부엌에서 나는 소리가 우리 엄마 소리 같아서 집에 누워 있는 줄 착각까지 했네. 너희들 아침 해 먹나? 오늘도 여서 공부하는 갑지."




천조는 운도 좋지, 그녀의 스타일이라는 그 근육 짱짱한 듬직하게 생긴 오빠가 부스스한 머리를 긁적이며 가장 먼저 일어나 나온 것이었다.




"혹시 잠자는 거 방해했으면 미안해요. 사과하는 의미로, 전복죽 같이 드세요."




근육 오빠는 고등학생이 전복죽을 끓였다는 말이 눈이 휘둥그레졌다.




"와... 전복죽! 느그 엄청 대단하네!"


"천조가 다 한 거예요. 같이 드세요. 정말 맛있어요."




천조가 정말 요리를 다 한 것이기도 했지만, 천조를 팍팍 밀어 줄 타이밍이었다.




"그라면, 나도 좀 얻어 무 보까. 내 진짜 전복죽 엄청 좋아하그든. 엄서서 못 묵는 거지. 진짜 지인짜 좋아한다."


"담에도 오시면 해드리께요. 언제 화실에 오는지만 알려주세요. 삐삐 번호 드리께요."


"고등학생이 삐삐도 있나! 니 사람 여러 번 놀래키네. 네 이름이 머꼬?"


"저는 처... 아니 혜리요. 그리고 저는 엄마가 직장 생활하시기 때문에 삐삐가 꼭 필요해요. 오빠 번호도 주세요. 오빠 이름은요?"


"아... 내 이름은 백만이. 천백만."




나는 손을 들어 입을 틀어막았다.




"니는 와 실실 웃노. 내 이름이 우끼나? 우리 부모님이 돈을 좀 좋아하시가... 근데 스케일이 좀 적으셨지. 요새 세상에 억은 넘어야 안되겠나."




근육 오빠가 문득 내 얼굴 만면에 웃음기가 잔뜩 번져 있는 걸 눈치채고 물었다.




"신경 쓰지 마세요 오빠. 야는 원래 맨날 이래 실실 쪼개고 다닙니다. 맨날 웃음이 터지는 지병이 있십니다."




내가 당황하는 걸 눈치챈 천조가, 나에게 일상적으로 실없는 년 이미지를 덮어 씌우며 상황을 부드럽게 무마시켜 주었다. 발로는 내 발을 팍팍 밟고 있었다. 기분이 나빠야 하는데, 자꾸 내 안의 웃음보따리는 점점 더 커져, 이젠 더 이상 참을 수 없는 지경에 이르러, 와하하 폭발적으로 웃어 버렸다.




"쟈 쫌 심각한 거 같은데... 병원에 데꼬 가바야 하는 거 아이가."


"쫌 그렇지예, 백만 오빠. 우리 친구 약 물 시간 지났는 갑따."




나를 안주 삼아, 천조와 머슴 오빠는 주거니 받거니 하며 점점 서슴없이 친해져 가고 있었다. 나는 천조가 하는 걸 지켜 보면서, 이 아이는 정말 일을 계획적이고 철두철미하게 잘하는구나라고 생각했다. 자신의 목적을 위해 늘 준비된 자세로 있었으며, 한 번 온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근육 오빠의 삐삐 번호까지 따냈다. 브라보! 나는 속으로 그녀를 향해 열렬한 박수를 쳐 주었다.




천조가 끓인 전복죽은 백만 오빠뿐 아니라, 아침을 못 먹고 온 모두에게 찬사를 받았다. 모두들 천조를 다시 봤다며, 요리를 전담해 주면 안 되겠냐는 요청도 받았다. 선생님들은 앞으로 꿈에 요리도 넣어 보라고 격려를 해 주셨다.




"세계 돌아다니면서 여러 나라의 요리를 배워 올랍니다. 그래가, 한국에 돌아와서 식당을 차릴랍니다."




잔뜩 바람이 들어 꿈에 부푼 천조 입에서 나온 소리였다.




"나는 선생님이 될 거니까. 내가 점심마다 가서 밥 묵그로 우리 학교 앞에다가 차리라."


"니가 어느 학교에서 일할 줄 알아서? 쌤들은 몇 년마다 옮기 댕기시는 거 아이가."


"나는 우리 쌤들처럼 사립학교 일할 기다. 그라면 안 옮기 댕기도 된다."


"맞나."


"때리진 않아."




천조와 유경이가 앞날 계획을 진지하게 고민하는데, 괜히 수민이가 실없는 말장난으로 끼어드는 바람에, 수민이는 또 등짝을 맞았다.




아이들이 꿈을 구체적으로 꾸기 시작하는 것이 나는 신기할 따름이었다. 나는 이제 겨우 가시를 만들어 가는 것이 나를 위한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을 뿐인데, 어떻게 더 가시를 강하게 키워갈까 고민만으로 머리가 터질 것 같은데, 아이들은 선생님이 되고 요리사가 되겠다는 구체적인 직업까지 정하고 있다. 동우만 해도 만화가가 되겠다는 꿈을 키우고 있고, 아마 최강은 당연히 화가를 꿈꿀 것 같고,... 수민이는 연애도 하고 결혼도 하고 애들도 낳고 남들 하는 거 다 해 보는 평범한 삶이 좋다고 일찍이 말한 적이 있으니 적어도 나보다는 나은 것 같았다. 나는 그냥 깜깜한 터널을 지나고 있는 느낌, 암흑 그 자체였다. 나에게도 미래가 과연 오는 것일까.




"혜강이는 꿈이 뭐야? 너는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는 것 같은데."


"'기운 센 천하장사'가 되는 깁니다. 아주 힘이 센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에 나도 놀랐다. 이런 단어가 어디서 튀어나왔는지 나도 종잡을 수가 없었다. 힘을 키우겠다는 생각을 계속하고 있다 보니, 내 마음이 나도 모르게 여기까지 이르러 있었던 모양이었다. '기운 센 천하장사' 라니 뜬금없는 말에 혼자 헛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 입술을 꽉 깨물었다.




"씨름하려고? 그쪽은 아닌 것 같은데... 원래 운동 좀 하나?"




최철광 선생님은 감을 잡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얘 팔목 봐. 이런 팔로 무슨 씨름을 해."




김영애 선생님이 내 팔목을 낚아채 이리저리 관찰하며 운동 스타일은 아니라는 결론을 내리셨다."




"그래서요. 지금은 제가 너무 약해서요. 모든 면에서 강해지고 싶습니다. 몸도 마음도... 열심히 운동하고 열심히 배우고 성장해서 진짜 강하고 힘센 사람이 되고 싶어요. 지금은 거기까지 밖에 생각 못하겠어요."




짝짝짝... 아이들이 갑자기 박수를 쳤다. 문득 묘한 느낌에 뒤를 돌아보니, 최강이 벽에 기대 서서 우리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순식간에 내 얼굴이 빨개져 버렸다.




"구체적인 직업이 아니더라도, 뭔가 멋진데. 난 그 꿈 마음에 든다."




최철광 선생님이 뭔가 와닿는 게 있으신지 고개를 계속 주억 거리시며 다독여 주셨다.




"남강, 너는?"


"나? 몰라... 나는 그냥 나를 찾고 싶어... 아직 내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우리 강이는 화가가 될 거 맞지?"


"글쎄요...모르겠어요. 자신 없어요..."




김영애 선생님의 질문에 대답하는 최강의 표정이 고통스러워 보였다.




"나를 찾는다는 꿈... 난 맘에 든다! 그게 가장 중요한 것 같다."




나는 용기를 내어 최철광 선생님이 나를 지지해 주신 그 느낌을 살려, 최강을 향해 말해주었다. 그러자 모두들 나도 나도 하며 최강을 지지했다. 최강은 또 감당이 안되는지, 얼굴을 돌리고 작업실로 걸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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