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 관찰의 의무 (1)

[소설] 최강 인생 파이팅!

by 하트온

오늘 뒷정리는 나와 동우가 맡기로 했다. 최강도 오늘은 화실에서 좀 더 할 일이 있다며 남았다. 최철광 선생님은 무슨 말인가를 하려다 최강의 어깨를 두드리시곤, 뒷정리를 잘 부탁한다며 다시 한번 당부하시고 나가셨다. 마음 좋은 친구가 빌려준 공간에 예의를 다하고 싶은 마음이신 것 같았다.


우리가 썼던 테이블 위를 깨끗이 닦고, 바닥을 꼼꼼히 쓸었다. 이 정도면 충분히 했다 싶어, 기분 좋게 화실을 나서려던 참이었다.


"집에 가는 거 맞지? 같이 가."


최강이 따라 나왔다.


"느그 집은 어딘데?"


나는 문득 그가 어디에 사는지 궁금해졌다. 같은 방향으로 걸어가 같은 버스를 탈 수 있는지도 궁금했다.


"너랑 같은 동네 살아."

"진짜가!"

"와, 행님! 우리 동네라고예! 진짭니까!"


같은 동네에 살 거라곤 상상도 해 본 적 없었다.


"한 동네 안 살면 우리 누나가 널 어떻게 봤겠냐?"

"어떻게 봤는데?"


동우는 뭔 소린가 어리둥절한 눈으로 우리의 대화에 더 이상 끼어들지 않고 가만히 듣기만 했다.


"너 6학년 때 자전거 열심히 탄 적 있지?"

"어..."


어릴 때 아버지와 어머니는 여자애는 자전거 타면 안 된다고 하셔서 자전거를 배우지 못했었다. 하지만 동우는 자전거를 사주셨고 배우라고 하셨다. 나는 오기가 나서 뒤늦게라도 자전거를 배워 보려고, 동우에게 자전거를 끌고 집 근처 아파트 단지까지 오라고 시킨 후, 몰래 혼자서 배워냈다. 넘어지는 게 무서웠고 싫었지만, 나는 매일 끈질기게 자전거와 씨름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내 몸이 균형점을 찾아내는 것을 느꼈다. 마치 수영 배울 때, 몸이 물 위에 뜨는 느낌을 찾아낼 때와 비슷했다. 그때까지의 노력을 조금도 아깝지 않게 만드는 희열을 맛보는 순간이었다. 그때부터 나는 학교에 다녀오면, 자전거를 타는 것이 일이었다. 부모님께는 동우 자전거 타러 가는데 따라간다는 명목을 댔지만, 실은 동우가 나를 따라오는 것이었다. 몇 시간씩 자전거를 타는 누나를 기다리느라 심심해진 동우는 그 단지 안에서 새로운 친구들을 사귀기에 이르러, 지금까지도 만나는 동우의 친구들은 대부분 그 아파트에 산다.


"네가 우리 집 동 바로 앞에서 자전거 연습을 했어. 우리는 베란다에 나가 앉아, 마치 싸이클링 선수를 응원하는 관중처럼 너를 응원했어. 포기하지 않고 자전거 연습을 하는 너를 보면서, 우리 누나가 힘을 많이 얻었었어. 그때 누나가 가장 강하게 삶의 의지를 보였던 것 같아. 너는 우리 누나를 씩씩하게 만드는 사람이었어."


나는 최강의 말을 들으면서, 얘가 원래는 이렇게 말을 잘하는 애였구나 생각했다. 그리고 그때 나를 보고 있는 사람들이 있었구나 깨달으면서 몹시 이상한 기분이 들기도 했다. 다른 사람이었다면 불쾌했을 것도 같은데, 최강과 그의 누나가 보고 있었다는 것은 느낌이 달랐다. 우리가 참 특별한 인연이었구나 싶고, 그때부터 서로 친구가 되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아쉬운 마음이 들기도 했다.


"네가 넘어지지 않고 드디어 자전거를 잘 타게 된 날, 우리도 정말 기뻐서 소리를 지를 정도였어. 우리 박수도 쳤었는데... 넌 자전거를 타고 바람처럼 사라져 버렸지... 그리곤 좀처럼 볼 수 없었어. 그러다가 우린 네가 다닐만한 학교에 찾아가 보기로 했던 거야."


생각해보니, 박수 소리를 들은 기억이 나는 것 같기도 했다. 나는 내가 자전거를 탈 수 있다는 사실에 도취되어 멀리서 들려오는 박수 소리 같은 것에까지 마음이 가지 않았을 뿐이었다. 바람을 가르고 달리는 그 시원하고 짜릿한 느낌만이 내 온 신경을 장악하고 있었다. 그 순간에 같이 있었구나. 같이 있었던 사람들이 있었구나. 나를 응원했던 사람들이 있었구나 뒤늦게 깨달을 뿐이었다. 이 뒤늦은 자각에 이상하게 가슴이 뜨거워지고 목이 메어왔다. 우리 동네로 가는 버스가 왔고, 우리는 버스에 올라타, 빈자리를 찾아 모두 흩어져 앉았다. 나는 최강과 더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지만, 그는 더 이상 할 이야기는 없다는 듯, 이어폰을 꽂고 혼자만의 시간 속으로 들어가 버린 듯 했다.


아마도 최강도 나처럼, 그때, 6학년 때의 순간들을 생각하고 있을까? 자전거를 타고 세상을 다 얻은 것 같았던 그때. 내 성취를 목격한 사람이 나 자신 말곤 없다는 생각에 조금은 쓸쓸한 기분도 들었었는데... 아니었다. 그 순간을 목격한 이들이 있었다. 나에게서 힘을 얻고, 자신의 삶에도 의지를 가져보려고 애쓰는 사람이 있었다. 나를 좋아하고 응원하는 사람이 있었다. 내가 몰랐을 뿐이었다. 나는 또 무엇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삶이라는 것이 참 기묘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아는 것만이 아닌, 내가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이 뒤섞인 뒤죽박죽 같은 삶. 지금의 나는 또 무엇을 못 보고, 한참 후에야 알게 될까.


인간이 눈이 앞에만 달려 있기에, 위로 아래로, 위로 옆으로를 보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면서, 그런 인간의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우리는 우리 서로를 꼼꼼히 관찰해 주어야 하는 의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나를 그렇게 오래 관찰해준 최강에게 특히, 그 관찰을 갚아주어야 하는 게 아닐까 의무감이 들었다. 나는 건너편에 앉은, 최강의 옆모습을 열심히 흘깃흘깃 보았다. 최강은 목이 참 길구나. 그리고 손가락도 길구나. 온몸이 어른처럼 길쭉길쭉한데, 눈빛만은 파란 물처럼 참 깨끗하구나. 그림을 좋아하고 음악도 좋아하는구나. 생각을 더듬어 보니 너는 회색과 네이비색 톤의 옷을 많이 입는구나. 나는 오늘의 관찰 기록들을 마음의 보고서에 새겼다.


일기를 쓰고 싶어 져서, 나는 학기초에 사서 책장에 쟁여둔 새 노트를 하나 꺼내, 오늘의 관찰 기록들을 옮겨놓았다. 의식의 흐름대로 글을 써 내려가다 보니 나의 일기는 어느새 최강에게 보내는 편지글이 되어 있었다.


너와 지원 언니가 내가 자전거를 배우던 순간에 함께 있었다는 사실에 나는 몹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어. 이 감정이 뭘까 한참을 생각해 봤어. 그때의 나에겐 아무도 내가 자전거를 배우기 바라는 사람이 없었거든. 여자는 자전거를 배우면 안 된다는 부모님의 말을 듣고도, 나는 포기할 수 없어 모든 어른들을 속이고 자전거를 몰래 배운 거였거든. 그래서 쓸쓸하고 힘들었거든. 내가 자전거를 잘 탈 수 있게 된 것이 기쁘면서 동시에 마음이 무거웠거든. 나는 내 주변 세상이 바라는 대로 모범적인 사람이 되고 싶으면서도, 내 안의 욕구들을 잠재울 수가 없었거든. 남동생에게만 시키는 것들, 태권도, 수영, 테니스,... 자전거까지 나도 다 하고 싶었어. 내가 그런 것들을 좋아하건 말건 상관없이, 나는 다 하고 싶었어. 아무도 여자라서... 여자니까...라고 말하지 못하게 세상에서 가장 키 크고 강하고 똑똑한 사람이 되고 싶었어. 그걸 위해서 내가 미친 듯이 고민하고 싸우고 애를 쓰고 있던 그때에 너와 지원이 언니가 나를 보았던 것 같아.

내가 느끼는 감정은 '기쁨'인 것 같아. 내가 주위에 사람이 없는 줄 알고 이상한 행동이나 말을 한 게 있을까 봐 좀 걱정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내가 자전거와 홀로 씨름하는 모든 과정을 목격해 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게, 기뻐. 나는 그 모든 순간들이 나 혼자만 아는 시간인 줄 알았었거든. 같이 기억을 공유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는 것이 나를 응원하고 지지해준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 나는 너무나 마음이 놓이고 든든한 느낌이 들어.

나는 이 느낌을 너에게 갚아주고 싶어 졌어. 이제부턴 내가 너의 시간을 관찰하고 기억을 공유해 주고 싶어. 의무감이나 억지로 하는 무엇이 아니라, 진심으로 너를 응원하고 제가 잘 되는 것을 보고 싶은 마음이 생겼어. 하지만 네가 나의 관찰을 불쾌해한다면 해서는 안 되겠지. 그래서 물어보고 싶어 졌어. 내가 너의 기억을 공유하는 그런 사람이 되어도 될까...


나는 글을 써 내려가다가, 이 글을 최강에게 전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전하고 싶지 않은 마음도 들었지만, 그 소심함을 이기고 마음을 전하는 것이 내겐 용기고, 책임을 다 하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또한 나는 어제까지와는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내일은 문방구에 들러 편지지를 사야겠다고 생각했다. 이 모든 일, 그 애를 생각하며 일기를 쓰고 편지를 쓰는 것 모두가 아버지가 알면 경을 칠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기에, 내 마음 한 편이 여전히 두려워하며 찌르르 떨려왔다. 그래도 이젠 멈출 수가 없었다. 아무리 숨기고 눌러도, 더 이상 내 안의 세상이 커져가고 내 안의 가시가 더 무성히 자라 가고 있는 것을 막을 도리가 없었다. 마음이 어디까지 자라 뻗어가는지 나는 나에게 자유를 주고 싶어졌다.


자유! 자유를 마음먹자, 내 마음에 몹시 놀라운 일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내 안의 가시 줄기가 확 굵어지면서, 큰 먹잇감을 향해 달려드는 보아 구렁이처럼 세상을 향해 걷잡을 수 없는 속도로 뻗어나가기 시작했다. 나를 막고 있던 것은 결국 나 자신이었구나. 이렇게 강하고 힘찬 마음이 세차게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 나는 나를 가만히 관찰해 주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는 일은 정말 나 밖에 모르는 일이라서, 내가 관찰하고 기억해주지 않으면 아무도 해 줄 수 없으니까. 내 안에 이렇게 크고 강한 것이 있다는 것에 나는 가슴이 뛰었다. 이게 설렘인지 불안인지 정확히 구분이 되진 않았다. 이런 마음을 내가 감당할 수 있을지 자신도 없었다. 하지만 나 스스로에게 자유를 주었다는 사실은 내 마음을 시원하고 편안하게 했다. 고여있는 것보다 흘러가는 게 나았고, 아빠가 제시하는 기준의 틀 안에 나를 맞추려고 애쓰는 것보다, 내가 생긴 모양 그대로 풀어놓고 보는 것이 마음 편했다. 못생겼든 잘생겼든 이게 진짜 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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