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 '금(경계선)'
팔랑거리는 여름 원피스를 입고 따사로운 햇살이 팔과 다리를 간질이는데도 신바람이 나지 않는다. 대신 세월이라는 빗자루가 수줍음과 같은 불필요한 감정을 쓸어가 준 덕택에 가슴골, 팔, 다리를 훤히 내어놓고도 당당하다. 다만 아무도 이젠 돌아 봐 주지 않을 뿐이다. 세월이 쓸고 간 것은 미성숙한 감정뿐만이 아니기에. 살과 근육이 중력에 저항할 힘도 서서히 앗아가고 있다. 힘을 잃고 쳐져가는 것은 우울하다. 그리고 아무도 우울한 것을 보고 싶지 않다. 이젠 빌딩 유리에 모습을 비춰 보고 싶은 마음조차 들지 않는다.
고등학교 2학년 때였던가? 지금은 이름도 가물가물한 한 친구가 노래를 만든 적이 있었다. 그녀가 자신이 만든 곡에 푸쉬킨의 시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를 가사로 붙이는 바람에 우리 반 친구들이 모두 이 시를 통째로 외워 버렸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
슬퍼하거나 노여워하지 마라.
설움의 날을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오고야 말리니.
마음은 미래에 살고
현재는 언제나 슬픈 것.
모든 것은 순식간에 지나가고
지나간 것은 또다시 그리움이 되는 것.
그녀의 우스꽝스러운 지휘에 맞춰 유치한 가락의 노래를 부르면서도 푸쉬킨의 시는 무척 비장한 느낌이라고 생각했었다. 그때는 어느 대단한 거사의 뜻을 품었던 사람에게 환멸을 가져다준 거창한 정치 이념이나 사상에 관한 이야기일 것이라고 지레짐작했다. 지금 문득 떠오르는 이 시를 다시 곱씹어 보니 시인은 모든 인간이 겪는 인생의 보편적 경험에 대해 노래한 것일 뿐이다. 배신자 같은 인생을 어떻게 처단할지가 누구에게나 정말 중요한 사안이 될 것임을 시인은 알고 있었다. 참고 견디면 기쁨의 날이 올 것이라는 시인의 말은 그의 바람이었을까, 종교나 도덕적 신념이었을까? 아니면 경험에서 우러난 권유였을까? 더 일찍 이런 질문을 내 인생에 던졌더라면 뭐가 더 나아졌을까?
바이러스 감염 피부병이 아니라 ‘알레르기’라고 했다. 의사는 스테로이드와 피부용 항히스타민제를 처방해 주었다. 한국식 찜질방을 경험해보고 싶다는 ‘나디아’와 뉴저지에 있는 찜질방으로 목욕을 다녀왔던 다음 날부터, 허벅지 근처가 우둘투둘 빨간 분화구들이 터지더니 환장하게 가렵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 나게 알려주었다. 긁어댈수록 피부에 솟아 오른 빨간 자국들은 매운 소고깃국 위에 둥둥 뜬 기름처럼 뭉치기도 하고 흩어지기도 하면서 몸의 다른 부위로 번져나갔다. 잘 씻고 깨끗한 옷을 입으면 되겠지 했지만 이 빨간 것들은 세계 정복을 꿈꾸는 야심 찬 지휘관을 둔 군부대 인양 좀처럼 물러서지 않고 내 몸을 차지해 나갔다. 때때로 전기가 온몸을 훑고 지나는 듯한 찌르르한 기운을 느끼기도 했지만 심장을 벌렁이는 심한 가려움이 절대 압도적이라 내 몸의 미열 상태를 알리는 그 기운은 주목받지 못했다. 몸이 최선을 다해 보내는 작은 신호를 감지하지 못했으므로 갑작스레 고열에 시달리는 쓴 대가를 치러야 했다. 한 여름에 이불 두 개를 덮어도 턱이 달달 떨렸다. 내 몸에 대해 이렇게 절망적이고 걷잡을 수 없다고 느낀 것은 어릴 때 한꺼번에 충치가 여덟 개나 생겼다는 읍내 치과의사의 선고를 받은 이후로 처음이었다.
이 ‘알레르기’는 그에게서 전염된 것이 틀림없다. 당신은 알레르기는 전염되지 않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을 것이다. 하지만 전염된 것이 맞다. 친정 쪽 친인척 조상까지 탈탈 털어 생각해도 알레르기 환자는 본 적도 들은 적도 없었다. 모르고 유통기한이 지난 화장품을 발랐을 때도, 추운 겨울방학 동안 목욕을 열흘 씩 하지 않았을 때도, 어떤 새로운 과일을 먹었을 때도, 다리를 훤히 내놓고 시골 산속을 헤매고 돌아다니며 자라는 동안에도, 이런 증상은 한 번도 없었다.
반면, 그와 그의 모친은 일 년의 반을 시달리는 심한 알레르기 환자다. 열대과일은 대부분 전혀 먹지 못하고, 그 외 웬만한 과일도 근질거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고 싫어한다. 봄엔 꽃가루 알레르기, 가을은 낙엽인지 가을 풀인지 이름 모를 무언가에 알레르기. 하얀 봄 꽃이 눈처럼 흩날리는 아름다운 봄밤에도 낙엽 밟는 소리가 감성을 깨우는 구르몽의 가을에도 로맨스는커녕 그 큰 몸은 서 있을 힘조차 없어 가르릉 소리를 내는 것으로 목젖을 쉴 새 없이 긁으며 에어컨이 최고 강도로 바람을 불어대는 차가운 실내에 누워 있어야만 한다. 그를 처음 만났을 때 코끝이 유난히 빨갛다고 생각했었다. 모든 유난한 것은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마땅하다. 그 유난함 뒤에 숨은 습관이나 병증이 오랜 시간 옆에서 견뎌줄 수 있는 것인지 확인하지 않는 것은 인생의 덫이 되기 마련이다.
알레르기에 약한 예민한 그의 몸은 아침저녁으로 샤워를 하고 매일 세탁기를 돌리고 청소를 하고 주기적으로 벌레 약을 치는 것을 자신을 보호하기 위한 최선으로 여기는 듯했다. 문제는 그와 함께 오랜 시간과 공간을 공유한 다음 어떤 순간부터 나는 입덧을 시작하는 여자처럼 덜컥 냄새에 예민해졌다는 것이다. 처음엔 의사를 찾아갔다. 내 몸에서 좋지 않은 냄새가 난다고. 의사가 직접 환자의 온몸 구석구석 냄새를 맡아보았더라면, 냄새로 환자의 상태를 가늠할 수 있는 의사였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대신에 의사는 환자의 말만 그대로 믿고 열흘 분의 독한 항생제를 처방해 주었다. 몸은 자기 탓인 줄 알고 그걸 모조리 다 삼켰다. 독한 체취가 떠나가기를 바라면서.
‘나디아’의 독설과 ‘알레르기’ 진단이 한꺼번에 나를 ‘자각’이라는 차가운 흙바닥으로 내동댕이 쳤다. 깨달았다. 비누 냄새가 아닌 내 몸 고유의 체취가 느껴지면 불결하다고 느끼고 있었다는 것을. 샤워를 하루라도 거르면 몸에 눅눅한 곰팡이가 낀 것처럼 느끼고 있었음을. 그런 내 몸의 체취를 남편이 맡을까 봐 남편 곁에 감히 가까이 다가갈 생각도 못하고 전전긍긍했다는 것을.
나는 끊임없이 내 안 만을 들여다 보고 내 속에서만 살았다. 결혼 전 한국에서 비위생적인 생활습관을 배웠다고 생각했고 심지어 시골에 계신 친정엄마를 원망하기도 했다. 이틀에 한 번 머리나 겨우 감는 습관이 부끄러웠고 일주일에 한 번 빨래하고 한 달에 한 번 청소할까 말까 하던 버릇도 정리를 잘 못하는 성격도 부끄러웠다. 부끄러운 것은 숨기 마련이다. 남편의 단단한 등 뒤에 숨었다. 그가 내 대신 모든 것을 아메리칸 스타일로 세련되고 깔끔하게 결정하고 청소하고 정리했다. 나는 그가 시키는 대로 인간관계를 정리했고, 커리어를 깨끗이 버렸으며, 하루 종일 집 안에 거하며 쉴 새 없이 몸을 씻고 물건을 소독하고 옷을 빨아댔다. 그렇게 나의 면역도 점점 씻겨져 내려간 것이 틀림없다.
결혼생활 십 년 동안 한 번도 의심하지 않았고 깨닫지 못했다. 남편에게 강박증이 있을 수 있다는 것을, 그가 나를 망가뜨릴지도 모르는 위험상태 속에 모두 내어준 채 스스로를 방치하고 있었음을. 어둠 속을 헤매었다. 마귀할멈처럼 사마귀가 콧등에 혹같이 달린 매부리코를 가진 옆 집 ‘나디아’가 명치를 한 방 날린 것처럼 숨을 턱 막히게 했던 그 말들을 뱉어내기 전 까지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