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경계선) 3

단편소설 '금(경계선)'

by 하트온

“넌 네 남편의 그림자 같아.”

“무슨 소리야?”


소금방이란 팻말이 붙은 찜질실에 들어갔다 10분도 못 견디고 나와 줄줄 흐르는 땀을 식히고 있을 때였다. 그녀의 입에서 그런 무례한 말이 나올 줄 전혀 예상 못했던 탓에 마음이, 아니 몸이 꿀렁 한쪽으로 쏠릴 정도로 당황스러웠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녀가 그 말 전에 던진 질문이 있었다.


“넌 미국에서 대학원까지 다녔다면서 왜 일 안 해?”


나는 ‘남편이 내가 나가서 일하면 살림 소홀히 한다고 싫어해.’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빨래나 저녁이 안되어 있으면 굉장히 차가워진다구.”라고도 덧붙였을 것임이 틀림없다.


“지금 네 남편이 다 조종하고 있잖아. 네 모든 것을.”


다 알고 있다는 그녀의 눈빛. 불쾌한 것보다 궁금한 것이 앞섰다.


“어떻게 알았어? 아니, 왜 그렇게 생각했지?”

“네가 다 보여 주잖아.”

“뭐? 내가?”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하면서 그녀의 입가에 빙글거리는 미소가 어렸다. 그 앞에서 나는 다시 한번 놀림당하고 내팽개쳐지는 아찔함을 느꼈다.


“남편에게 물어봐야 된다. 남편이 싫어한다. 남편이 못하게 한다…… 이런 말들을 달고 살고 있잖아. 누구라도 네 문제를 눈치챌 수 있게 너는 다 보여 주고 있어.”


말문이 막혔다. 넌 피부가 정말 아프리카 난민 같이 까무잡잡하구나 라고 들로 냇가로 동네 아이들과 쏘다니다 여름 볕에 그을린 내 모습 (내가 미처 자각하지 못하고 있던)을 서울에서 시골 친척을 방문하러 온 아이가 묘사했을 때처럼 듣기에 충격적이어도 부정할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몰아치는 폭풍 속에서 난파되고 있는 듯한 마음을 추스르려 노력하면서 나는 다음 말을 해야 했다.


“난… 그게 ‘순종’이라고 생각하는데? 성경에서 말하는 남편을 기쁘게 하는 순종. 남편이 가정의 리더가 되고 아내와 자녀들은 그에게 순종하는 게 성경적인 순리지.”

“나도 크리스천이라는 사실을 말해주고 싶군. 신이 각 사람에게 선물한 ‘자유 의지’를 넌 남편에게 던져 줘 버린 거야. 그건 신이 말하는 순종이 아니야. 네가 피해자의 자리에 앉아 네 상한 감정을 책임지지 않는 핑계지.”


그녀는 나에 대해 정말 많이 연구하고 분석한 결과를 발표하고 있는 것처럼 당당하고 빠르게 거침없이 대꾸를 했다.


“난 그렇게 하는 게 옳은 것이라고 알고 살았을 뿐이야. 내가 힘들다고 이야기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이 그렇게 해야 하는 것이라고, 남편에게 잘해야 한다고 했단 말이야!”


남편에게 무조건 잘해야 한다고, 모든 일에 남편을 우선으로 해야 한다고 말을 한 사람은 시골 친정 엄마 한 사람뿐이었음을 문득 자각하며 내 마음이 빨개졌다. 내 얼굴도 빨개지고 내 음성도 빨개졌다. 나디아는 아무 동요 없이 여전히 빙글거리는 미소를 입가에 띤 채 내 얼굴을 빤히 보더니 천천히 아이를 얼르듯 말했다.


“넌 남편이 시키는 대로 네 재능도 못 살리고 네가 하고 싶은 대로 못하는 삶에 만족하니?”


그 순간 모든 불이 한꺼번에 나가버렸다. 아니, 그렇게 모든 불이 나가고 정전이 되기를 원했다. 아니, 실은 내 마음은 이미 한 번도 빛이 든 적 없는 어두컴컴한 지하실이었다. 남편이 경제권을 차지하고 금고에 자물쇠를 채워 버려, 나는 남편의 월급이 얼마인지 지출이 어떤지도 몰랐다. 관여하고 싶은 마음을 누른 채, 관여할 자격도 없다고 당연히 여긴 채 살고 있다는 것, 한 번도 남편에게서 있는 그대로 받아주는 수용이나 사랑은커녕 따뜻함조차 느낀 적이 없다는 것, 섹스리스 상태인 부부관계의 비참함, 그래서 아기가 생길 수 없었던 것이 당연한데도 그걸 다 내 탓이라는 듯 그래도 버리지 말아 달라고 비굴했던 태도, 바보 같은 삶… 어두움 속에 꾹꾹 묻어두었던 모든 검은 그림자의 조각들이 갑작스레 부력이 생긴 듯 다 수면으로 떠올라 버렸다.


“너는 어른의 삶이 아니라 어린아이의 삶에 머물고 있어. 네가 허락하고 있는 거야. 네 삶이 그렇게 되도록.”


나디아는 유명 아이비리그 대학의 불어과 교수다. 영어와 불어 스페인어 삼 개 국어에 능숙한 똑똑하기로 소문난 여자. 그동안 권위의 대상이기만 했던 교수라는 직업을 가진 여자와 바로 옆 집에 사는 이웃이라는 게 좋았다. 그리고 친구처럼 스스럼없이 대해주니 더욱 동등한 느낌이 들어 차를 나눠 마시고, 피트니스 클럽이나 찜질방을 함께 다니며 문을 활짝 열고 가까이 다가갔다. 교수인 그녀의 교양을 믿고 마음의 오랜 습관대로 배려를 쏟아부으면서 말이다. 그래서 그녀가 더욱 괘씸했다. 나는 그녀의 기분을 살피며 혹시나 마음 상하는 말이나 관계에 해가 되는 말이라도 하게 될까 봐 정성껏 조심조심 다가갔었는데 그녀가 그렇게 나의 치부를 단숨에 찌를 수 있다는 것에 대해 화가 났다.


나는 네가 무슨 상관이냐고, 왜 함부로 우리 부부 일에 끼어들어 판단을 하느냐, 왜 나를 함부로 진단하고 모욕하느냐는 날 선 칼날의 말들이 뱃속 깊숙이에서부터 솟아오르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구차하고 비굴한 배려의 버릇을 가진 입은 그 칼날의 끝을 뭉툭하게 변형시켜 버렸다


“넌 어찌 그리 이런 문제에 대해 잘 아니?”

“우리 엄마가 네 남편보다 더 심한 강박증을 가진 나르시시스트였거든. 그녀의 정서적 학대로 나와 동생이 나르시시스트를 모방하는 패턴을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자각했을 때 지금 네가 느끼는 것 같은 그런 배신감을 느꼈었지.”


별 역할 못하리라 생각했던 나의 구차한 질문이 의외로 내 심장을 향하던 독설의 방향을 돌리는 기염을 토했다. 하지만 그게 다였다. 그녀는 더 이상의 구체적인 이야기를 들려주지 않았다.


“나르시시즘이란 걸 말하는 거야? 그게 그렇게 문제가 될 수 있는 거야?”

“문제 정도가 아니라 대단히 끔찍한 거지. 인터넷 검색해봐. 도움이 될 거야.”


어쩔 수 없이 발가벗겨진 나는 그녀의 몸도 발거 벗겨 보려는 작은 복수심을 가지고 연거푸 그녀의 상처 이야기 꼬리를 잡아당기려 했다. 하지만 그녀는 차가운 바람에 더욱 옷깃을 여미는 이솝 우화 속 나그네처럼 조금의 틈도 보여주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포기하지 않았다. 남의 일에 신경 끄시지 하고 문을 박차고 나갈 타이밍은 어차피 놓쳐버렸고, 적어도 그녀의 시선이 내 속의 어두움으로 다시 향하지는 않도록 막아내고 싶었다.


“지금은 회복되었다고 느껴?”

“글쎄…… 어느 정도는. 엄마가 조금 변하시긴 했지. 엄마를 프랑스에 혼자 두고, 나는 미국에 왔고, 내 동생은 브라질로 갔어. 오랜 시간 이렇게 뿔뿔이 흩어져 사는 것으로 우리가 얼마나 엄마와 함께 살았던 시간들을 아파했는지 보여줬던 셈이 되었달까? 지금은 더 이상 서로를 원망하고 있진 않아. 그리고 난 결코 타인에게 기대거나 내 삶의 조종권을 뺏기지 않을 만큼 강해졌고.”

“난 어떡해야 될까?”


탄식처럼 뱉은 혼잣말이었다. 하지만 그녀는 놓치지 않고 답을 찾아 주었다.


“내가 너라면 일단 남편이 뭐라 하든 직장을 찾고 독립할 거야.”

“전업주부로 살아온 지가 몇 년인데…… 직장을 구할 수 있을까?”

“그건 너의 숙제겠지. 나를 봐. 프랑스인인 내가 미국에서 타국 살이 하고 있지만, 조엘과 곧 헤어질 상황이지만 난 혼자서 헤쳐 갈 자신이 있다고!”

“뭐라고? 네 남편과 이혼한다는 얘기야?”

“우린 결혼한 적도 없어.”

“쌍둥이들은 어떡해 그럼?”

“쌍둥이들은 내가 키워. 조엘은 처음부터 아기를 원했던 적이 없었어. 지금 그는 우리와 함께 하는 생활이 행복하지 않대. 그가 떠나면 나도 아이들도 좀 슬프긴 하겠지. 하지만 나는 그가 당장 내일 떠난다고 해도 문제없이 살아갈 수 있어. 나는 당당하고 독립적인 어른이니까.”


나디아와 헤어진 그날 밤, 나는 삼촌이 예뻐해 주는 걸로만 알았는데 그게 성추행에 지나지 않는다는 걸 자각한 소녀처럼 누구에게도 말 못 할 분노와 절망으로 몸이 부들부들 떨려왔다. 잠이 오지 않았다. 그리고 다음 날 알레르기 반응이 시작되었다. 나디아가 던진 말들의 파문이 마음을 넘어서 온몸에 퍼져나가는 것만 같았다. 존재가 뿌리 째 흔들리고 그동안 쌓아 온 삶의 벽돌이 와르르 무너지는 듯했다. 마음을 덮어둔 돌무더기가 파헤쳐져 생살이 찢어지는 것처럼 고통스럽고 비참하도록 가려운 진저리 쳐지는 날들이 흘러갔다.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 (원래 연락하는 사람이 많이 없어 이건 무척 쉬운 일이었다). 최대한 혼자가 되려고 했다. 아무에게도 속하지 않은 작은 골방에 매트리스와 이불을 가져다 놓고 남편조차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다. 인생이 바닥을 치는 이 시점에도 남편의 기분을 건드리고 싶지 않은 뭐라 이름 불러야 할지 더 이상 모르겠는 이 마음의 습관은 나에게 우렁각시 역할을 시켰다.


다행히 처방받은 스테로이드는 알레르기 반응뿐만 아니라 몸에서 진행되는 모든 통증을 멈추게 하는 묘약이었다. 함께 받아 온 피부용 항히스타민제도 졸려 쓰러질 정도로 정신 차릴 수 없게 만드는 약발을 과시했다. 이 약들은 내 몸이 열흘 정도 죽은 듯 잠을 잘 수 있게 도와주었다. 가끔 약기운이 누그러지고 정신이 들면 집 앞에 나가 잠시 어슬렁 산책을 하기도 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집에서 나오고 싶어 하지 않을 시간을 골랐기에 사람 그림자를 보는 일은 드물었다. 멀리 서라도 사람의 기척이 느껴지면 집으로 다시 숨어들곤 했다. 대부분의 시간은 집 안, 나의 작은 방 안에서 보냈다. 변신의 시간을 번데기 속에 숨기는 애벌레를 지배하는 자연법칙이 당연히 내 변신의 시간도 지배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약을 다 먹고 약 기운이 가시고 약의 후유증까지 가라앉는 데 한 달 정도 걸렸다. 변해야겠다는 의지가 제일 처음 한 일은 상담사를 찾아 약속을 잡는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랩탑을 열어 ‘나르시시즘’을 구글 검색창에 넣고 엔터키를 눌렀다. 나타나는 웹 정보들을 손에 잡히는 대로 클릭해서 읽었다.


[자신과 타인에 대한 생각의 균형을 잃어버린 자기애성 인격장애자…… 미모, 학벌, 명예 등의 완벽한 이미지를 가꾸는데 혼신의 힘을…… 끊임없이 찬사를 갈구…… 공감할 수 없고 타인과 결속할 수 없다…… 남을 이용하는 일에만 능한……자신이 제일 중요하다고 여기고 모든 것을 제 마음대로 해야 하고 타인을 무시하고 경멸……그들은 당신을 결코 사랑하거나 수용할 수 없으니 인생의 길에서 그들을 만나면 뒤돌아 보지 말고 도망가라!]


읽다가 소름이 끼쳐 결국 랩탑을 닫아버렸다. 남편에 대해 허락한 적이 없었던 생각들이 경계를 넘어 밀려오는 걸 어찌해야 할지 몰랐다. 그는 빛 좋은 개살구 같은 완벽한 모습으로 주변 사람들의 찬사를 밑 빠진 독처럼 끝없이 갈구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나는 남자들이란 다 그러려니 했던 것이었다.


이것이 컴퓨터 게임이었다면 나는 <강제 종료> 버튼을 꾹 누르고 새로운 게임을 시작했을 것이었다. 하지만 중년의 나는 현실이라는 게임판에서는 <강제 종료>가 옵션이 될 수 없다는 것을 이미 안다. 가면을 쓴 나르시시스트는 세상 곳곳에 잠복해 있다. 세상의 모래알처럼 많은 사람들 중에 남편과 내가 서로에게 끌려 십 년이라는 시간을 보냈다는 것은 내가 또 그와 비슷한 성향의 사람을 끌어당기거나 혹은 끌리게 될 높은 가능성을 의미한다. 여기서 살아남지 못하면 세상 어디에서도 살아남을 수 없다는 걸 세월이 가르쳐 주었다. 결국은 남편을 만나게 된 것도 나를 부수고 무참히 침범해 오는 누군가로부터 도망치던 끝에 택했던 최후의 보루였다는 것을 나는 인정할 참이다. 더 이상 옮겨 갈 게임판도 없고 나는 지쳐 있다. 일단은 상담사를 만나는 일에 기대를 걸어볼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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