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 살아있는 외국어 공부의 고급단계, 나의 일부로서의 언어 학습
저는 일본어 능력시험 JLPT N1급 3번 연속 만점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만점을 받기 시작한 시기는 이전처럼 일본어를 ‘공부’로 관련 교재를 공부하거나 따로 시험 기출문제를 풀거나 일본어 수업을 듣던 때가 아니었습니다. 물론 이런 학습은 도움이 됩니다. 저도 제 일본어를 더 갈고 닦으려했다면 이러한 공부도 병행했을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을 하지 않았는데도 JLPT N1급 세 번 연속 만점을 받은 것은, 언어가 어떤 수준에 올라가면 굳이 ‘공부’라는 형태로 그 언어에 파고들지 않더라도 그 언어적 감각을 어느 정도 유지할 수 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저는 애니메이션을 통해서 일본어를 많이 듣고 일본어 노래를 많이 불러 본, “소리 언어 감각”이 어느 정도 쌓인 이후에 일본어 대화문 교재 통 암기를 통한 기초 학습-> JLPT N2급 공부-> 산문 교재를 통한 일본어 초중급 학습 -> JLPT N1급 공부 순으로 일본어를 1년 반 동안 본격적으로 공부했고 그 이후에 일본 츠쿠바 대학교로 교환학생을 다녀오면서 일본인 친구들을 사귀고 직접 일본 문화권을 피부로 접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이는 책이나 간접 체험과는 다른 그 언어나 문화권 자체의 생생한 감각을 느끼게 해주는 일이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 일본어 고급 과정 공부를 좀 더 했는데 도움이 되었던 하나는 일본어 뉴스 듣기였습니다. 뉴스를 듣고 그것을 전부 일본어로 쓰고, 쓴 일본어를 전부 한글로 해석하고 그 한글 해석을 보고 일본어 뉴스 전체를 다시 일본어로 생산해내는 과정이었는데, 이 과정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 즉 뉴스 한 꼭지, 한 꼭지를 처음부터 끝까지 한자를 포함해서 암기하는 시간이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는 일본어 중고급 학습자에게 적합한 수업방식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했듯이, 뉴스 자체의 일상 언어와는 동떨어진 표현 때문에 초급 때부터 뉴스를 교재로 활용하는 것은 “언어”로서 그 외국어의 감각을 익히는데 부적절한 면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는 어린 아이에게 뉴스가 아니라 그림책을 보여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단계가 오르면 뉴스도 훌륭한 교재가 됩니다.
그리고 그 이후에는 이렇다 할 “공부”나 “수업”으로 일본어를 접하는 일은 거의 없었는데, 제가 일본어능력시험 만점을 맡기 시작한 것은 이 즈음부터였습니다. 물론 그렇게 된 것은 그 이전까지의 꾸준한 일본어 학습이 쌓이고, 그 위에 일본 교환학생 경험이 쌓이고, 이렇게 뉴스 수업 등을 들으며 형성된 일본어적인 감각이 쌓인 결과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이후에 제가 일본어를 접한 것은 거기서 끝은 아니었습니다. 이때 저는 이미 일상생활에서는 무리 없는 일본어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할 수 있었기 때문에, 조금씩 일본어 자체로 된 매체를 그대로 즐기는 것도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제가 언어 학습의 동기에서 얘기했듯이 외국어를 학습하는 견인차의 역할을 합니다. 언어는 수단이기 때문입니다. 제가 “삼총사”의 뒷얘기를 언젠가 다른 언어로 읽어서라도 알고 싶다든가 한국에 번역되어서 들어오지 않은 정보나 작품들을 알고 싶다는 것은 커다란 동기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러한 것이 단순히 지식적인 차원을 넘어서 마음을 채워주는 독서나, 마음을 움직이는 사상이나 세상을 보는 시각과의 만남, 혹은 마음을 즐겁게 해주는 엔터테인먼트적인 방향이어도 그렇습니다. 이러한 만남에 외국어를 활용하면 더 이상 외국어는 “공부”가 아니게 됩니다. 내 마음을 채워주고 내가 더 즐거울 수 있는 행위를 재미있게 하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 과정에서 외국어가 늘지 않는 것도 아닙니다. 계속해서 외국어를 접하고, 표현을 접하고, 사용하기 때문에 외국어 감각은 계속 살아있고 변화하며 어휘나 표현들이 늘게 되기도 합니다. 고급 단계의 외국어 학습 단계에 이르면, 더 이상 단 하나의 더 좋은 교재나 알맞은 교재가 존재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내가 일에 그 외국어를 쓰면서 특정 분야와 관련된 용어나 그 외국어의 쓰임이 필요한 경우에는 따로 공부가 필요하기도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경우에는 그저 내가 흥미 있고 좋아하고 재미있는 분야에서 그 외국어로 만들어지거나 쓰인 모든 것이 교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단계에 이르면, 외국어를 실제 사용하고 활용하는 학습자가 되기 때문에, 외국어를 ‘공부’했던 보상을 충분히 받을 수 있습니다. 실제로 외국어도 직접 내 언어의 일부가 되어 세계가 넓어지는 경험이 가능한 것입니다. 내 외국어가 완벽하거나 모든 표현이나 단어를 다 아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실제 활용과 사용 과정에서도 배움의 과정이 있고 외국어 실력은 더 늘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때가 되면 외국어 교재는 서점에서 ‘어학’영역에 있는 것이 아니라 더 풍성해 질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추천하는 교재는 그 외국어로 된 자신이 좋아하는 어떤 것입니다. 그것이 흥미 있는 블로그 기사가 될 수도 있고 재미있는 유튜브 영상이 될 수도 있으며, 그 언어로 된 드라마나 애니메이션, 소설 등이 될 수도 있습니다. 혹은 실용서나 자기개발서, 영적 공부를 위한 수련서나 명상에 관련된 책이 될 수도 있습니다. 무엇이 더 훌륭한 교재라는 우위 비교는 불가능합니다. 자신의 필요와 흥미에 맞춰 자신이 원하는 정보를 얻고 즐거움을 얻을 수 있는 매체가 그 사람에게는 가장 좋은 교재가 됩니다. 언어는 결국 수단이고, 그 언어를 통해 무엇을 하는가 하는 것은 그 사람 개개인의 성격이나 취향, 직업, 흥미, 사명 등에 따라 다를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 단계에 오면 “공부”가 아닌 외국어를 하게 됩니다.
계속 외국어와 접하는 환경은 필요할 수도 있는데, 그것은 언어가 흐르는 강물을 거꾸로 거스르는 것처럼 자주 쓰지 않으면 잊어버리거나 무뎌지는 부분도 생기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일정 레벨에 오른다면 자전거처럼 다시 기억나는 특성도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 주머니 안에서 자신이 필요한 언어를 그때그때 꺼내 쓸 수 있게 되면 좋습니다. 처음부터 언어 공부의 동기가 특정 어학시험의 패스라거나 막연히 어떤 언어를 잘 하고 싶다 같은 것이라면 그 언어를 정말 사용하게 되는 필요성이 적어질 수 있습니다. 언어는 사용되는 도구입니다. 내가 그 언어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가 더 명확해지면 그 언어 학습 자체에 대한 더 확실한 목표가 생기는 것과 같고, 이 고급단계에서는 비로소 그 언어 공부의 목적을 실천하는 단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