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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하 Oct 24. 2021

그 문화권에서 얻을 수 있는 것

4-4 살아있는 외국어 공부의 심화, 다른 문화권과 만나는 언어 학습

언어는 문화와 떼려야 뗄 수 없이 존재합니다. 말했듯이 언어 자체가 사고의 틀을 형성하기 때문입니다. 세상을 바라보는 시각, 사회적인 지위를 나누는 시각과 그것을 대우하는 표현 방법, 얼마나 직설적인지 더 완곡한지, 말투는 더 부드러운지 아니면 거친지, 더 친근한지 더 거리감을 두는지 등 다양한 요소들이 복합적으로 언어 안에 작용합니다. 그래서 같은 한국인이라도 완전히 똑같은 문장 패턴을 구사하는 일은 없다고 할 수 있고 그것이 그 사람의 개성이자 성격의 일부가 되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문화권과 연결된 살아있는 언어는 그 문화권에서 살거나, 그 문화권의 사람들과 교류하면서 익히는 부분도 있습니다.


제가 일본에 교환학생을 갔을 때 같이 일본어를 공부했던 친구를 일본에서 만나서 쇼핑을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 친구는 가게에 가서 일본어로 “여기 카탈로그에 이 물건이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여기 없군요. 가져다주세요.”라고 했습니다. 친구의 일본어는 문법적으로 틀린 곳도 없었고 발음이 이상하지도 않았으며 모든 말을 일본인이 이해할 수 있는 완벽한 일본어였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그 일본어를 들으며 순간 ‘어색하다’고 느꼈습니다. 그 일본어가 제가 경험한 일본인들의 일본어 문화적인 사용에서 약간 이질적인 느낌이 들었기 때문입니다. 


일본의 문화는 알아차림(察し)의 문화입니다. 내가 어떤 것을 막 주장하지 않아도 그것을 상대가 알아차리고 해주는 노력을 들입니다. 개인적으로 일본에 살 때 느꼈던 점은 한국의 문화가 상부상조가 바탕이 된 문화라면 일본의 문화는 그 깊은 바탕이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人に迷惑をかけてはいけない。)”는 것이 강하게 들어있는 문화라는 느낌이었습니다. 물론 이것은 개인적인 인상이었기 때문에 학술적인 연구 결과나 정답 같은 것은 아닙니다. 사실 이런 문화적인 차이는 사회학이나 문화 인류학 쪽의 연구 주제이기도 하고 이 자체만으로 책을 쓸 수 있는 주제이기도 합니다. 언어 학습을 중심으로 쓰고 있는 이 글에서는 이 부분에 대해 깊이 적지는 않겠지만, 언어가 문화와 떨어져서 존재할 수 없기 때문에 이렇게 개인적인 것이든, 혹은 좀 더 사회적으로 형성된 느낌이든 그 문화권에 대한 인상을 느끼고 알아가는 것은 그 외국어의 의미를 외우고 공부하는 것만큼이나, 어쩌면 그 이상으로 중요할 수도 있습니다. 


이 말은 단순히 내가 한국에서 하는 한국어를 그대로 번역해서 이야기한다고 해서 외국에서 그 말이 그대로 전달되거나 통하지 않을 수 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그 문화권에는 그 문화권에서 자주 사용되는 말하기 방식이 존재합니다. 이는 단순히 언어적인 뜻을 이해하는 것 이상으로 중요할 수 있습니다. 어떤 질문이 어떤 문화권에서는 더 실례가 될 수도 있고 자연스러운 어떤 행동은 일반적이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외국어를 익혀나가는 것은 결국 이 문화를 아울러 배워 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이는 어떤 문화가 더 우월하거나 어떤 문화가 더 우월하지 않다가나 하는 비교나 무엇이 정답일까 하는 정답 찾기 같은 것이 아닙니다. 그보다는 어떤 상황에서 다른 방식으로 그 상황을 표현하고 접하고 다루는 타 문화권을 경험하면서, 내가 지금까지 일상적이고 당연하게 받아들여진 것에 대한 그 “당연함”이 흔들리는 경험에 가깝습니다. 이는 동시에 다양한 가능성을 접하는 계기가 되어서 내 세계를 좀 더 넓혀주기도 합니다. 우리가 일상적으로 하는 “허리를 숙여서 하는 인사”는 유럽 권에서는 널리 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학교의 “차렷, 선생님께 경례.”같은 한국의 문화도 유럽은 선생님이 오면 전부 기립을 하거나 하는 등의 행위로 존경을 표현하기도 한다고 듣기도 했습니다. 학술적으로 연구해서 안 것은 아니지만 한 유럽권 친구는 노예 제도 등의 역사의 반성이 그런 절이나 허리를 숙이는 인사를 하지 않는 문화를 키웠다고 이야기해 주기도 했습니다. 이는 허리 숙여 인사를 하는 한국 문화권이 노예제도 등을 찬성한다는 의미가 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문화권에서 자연스럽게 널리 행해지는 행위가 어떤 문화권에 가면 부자연스러운 것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줍니다. 어떤 사람이 한국 문화권에 오면 허리를 숙여 인사를 하는 것을 더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겠고 그 사람이 다른 문화권에 갔을 때에는 또 그들 문화의 인사를 할 수 있다면 좀 더 그 문화권에 자연스러운 행동을 하게 됩니다. 언어는 단순히 목소리의 발화가 아니라 이런 비언어적인 행동까지 포함하는 행위가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것은 어떤 문화권이 더 우수해서 따라야한다거나 네이티브를 흉내내야한다거나 하는 의미가 아니라 그 문화권 속에서의 행동의 틀과 의미, 사고방식을 익혀 나가는 과정입니다. 그 이해 전체가 실제 언어 사용의 의사소통을 매끄럽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내가 그냥 한국인으로서 허리 숙여 인사하는 것을 고수하는 것도 상관없습니다. 그와 동시에 나는 그 외국인에게 허리 숙여 인사를 하는 한국의 문화를 소개시켜 줄 수도 있습니다. 이러한 문화적 자잘한 차이의 알아차림은 그 자체로 외국인과의 만남을 풍성하게 해 주기도 합니다. 서로 낯선 무언가를 끊임없이 배워가면서 알아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 차이를 알아가는 과정은 서로를 더 깊게 이해해가는 과정이기도 합니다.


제가 문법적으로도 발음으로도 아무 문제가 없는 친구의 일본어를 듣고 ‘어색하다’고 느낀 것은, 그 문화적 부분이 덜 녹아있기 때문이었습니다. 문화적인 부분은 일종의 분위기 같은 것으로 모든 일본인이 그렇다는 것도 아니고, 좀 더 확실하게 말을 하는 일본인도 물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일본을 접하면서 저 스스로 느꼈던 어떤 감각은, 뿌리 깊은 “남에게 폐를 끼치면 안 된다.”에 기초한 행동에 더 가까웠습니다. 이것은 주관적인 저의 경험으로 이것이 정답이라는 의미는 아닙니다. 이 이야기를 듣고 동의하지 않는 네이티브 일본인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저 상황에서 이야기하는 자신을 떠올렸을 때 좀 더 조심스럽게 말을 건네는 일본어가 떠올랐습니다. “여기 카탈로그에 이 물건이 있다고 했어요. 그런데 여기 없군요. 가져다주세요.”가 아니라 대충 “저, 제가 찾고 있는 물건이 있는데, 카탈로그에서 봤는데 어디 있을까요?” 같은 느낌의 일본어를 제가 그 상황에 놓인다면 할 것 같았습니다. 이것이 일종의 그 문화권 안에서 살아가면서 제가 습득한 “일본어”인 것입니다. 둘 다 같은 일본어지만 제 안에서는 후자의 일본어가 좀 더 문화적으로 자연스러운 느낌이 듭니다. 이러한 표현은 사람들이 다 각자 다를 수 있고 주관적인 부분입니다. 이것은 네이티브 일본인이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한국인이 같은 상황에서 똑같은 문장을 말하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염두에 둘 점은 이렇게 같은 말 자체를 하더라도 표현방법, 내가 그 안에 담는 어조까지 어우러져서 그 언어가 품는 정서가 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 부분의 문화적 감각은 중요합니다.




영국인들을 만났을 때 하루는 일부 가정의 영국인들이 어릴 때 “please”와 “Thank you”를 열심히 배운다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please”를 ‘마법의 단어’라고 표현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재미로 그 자리에서 친구들과 같이 “Could you pass me the water, please?”를 같이 연습했습니다. “Pass me the water”라고 말해도 전하고자 하는 골자는 같을 수도 있습니다. 저는 스페인어는 잘 몰라서 확실하지는 않지만 실제로 스페인어는 좀 더 저 문장과 비슷하게 말을 하는 편이라고 그 자리에 있는 한 친구가 이야기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영국의 문화권 안에서 “Pass me the water.”는 어색한 문장이 됩니다. 대부분의 영국인이 식사 테이블 등에서  “Could you pass me the water, please?”를 매우 자연스럽게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제가 아는 다른 영국인도 친한 친구에게 말할 경우를 상상해보면서 이때에도“Pass me the water.”보다는 “Can you pass me the water, please?”같은 게 더 자연스럽게 느껴진다고 이야기했습니다. 

이런 문화적 감각은 실제의 네이티브 문화권 언어 사용의 관찰과, 익숙해짐, 그리고 이런 문화적 차이에 대한 대화 등을 통해서 조금씩 익힐 수 있습니다. 만약 그냥 단어장에서 “please”를 ‘제발, 부디’등으로 단편적으로 번역한 뜻을 외웠다면 please를 잘못 이해하게 될 수도 있습니다. 저런 맥락에서 쓰인 please는 실제 영국인에게 확인하면 다른 답변을 들을 수 있을지 몰라도 제가 느낀 감각적 느낌으로는 어떤 정중함의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나중에 직접 영국인에게 확인했을 때도 정중함의 표현이라고 하면서 옛날식 영어 표현인 “if you please”에서 나온 표현이라고 알려주었습니다.




이런 식으로 자신 안에서 어떤 단어의 감각을 형성해나감과 동시에 가능하다면 실제 네이티브 발화자들에게 그들만의 느낌을 묻는 것도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언어는 감각적인 사용입니다. 100% 어떤 식으로 치환되지도 않고 100% 동일하게 모두가 어감을 느끼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어느 정도 대충 공유된 느슨한 어감이 있습니다. 사실 언어라는 것 자체가 내 안에 있는 어떤 무언가를 밖으로 표현하기 위한 수단이기 때문에 그 무언가는 한 가지가 아닙니다. 같은 단어인 anger나 화 같은 단어도 화에 따라서 그 기분이나 정도 질감은 각기 다 다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말도 분노나 성을 내다, 짜증을 내다 등 다양한 말을 사용해서 더 지금의 기분에 어울릴만한 단어를 찾아내고자 합니다. 각각의 단어가 비슷하게 공유하는 영역이 있고 좀 더 고유한 느낌적인 영역이 있습니다. 이는 외국어의 단어와 1:1로 치환이 되지는 않습니다. anger, fury, rage, resentment 등은 동일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이 단어들이 한국어의 화와 관련된 단어와 반드시 1:1치환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각각의 단어의 감각을 기르는 것은 그 단어가 쓰이는 맥락과 상황을 통해서 천천히 익히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면 나도 스스로 고르게 됩니다. ‘이 상황은 좀더 fury에 가까운 것 같아’라든지 ‘아니 나는 이 마음은 resentment라고 표현하고 싶어’라든지 하는 식으로 내 안에 일어나는 어떤 감정을 혹은 관찰하고 느낀 상대방의 어떤 감정을 어떤 단어를 이용해서 표현할지, 단어를 내 안의 감각에 의존해서 섬세하게 찾아내고자 하는 시도를 하게 됩니다. 이는 주관적이기 때문에 100% 모든 사람이 동일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한국어로 짜증과 격노의 정도 차이를 단어를 들으면 직감하듯이 어느 정도 사회적인 공유되는 감각도 존재합니다. 언어의 이런 특성 때문에 초급 단계에서부터 단순한 단어 뜻 암기나 의미 번역 식의 학습이 아니라 대화문의 통 암기를 통한 맥락적 학습이 도움이 되는 것 입니다. 단어를 따로 떼어서 한국어 뜻을 같이 공부하는 것이 아니라 그 외국어 단어를 외국어 문장 속에 놓인 문맥과 상황과 함께 공부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영어의 have나 get같은 동사는 그 자체의 쓰임과 어감이 형성되지 않으면 단순 번역 식으로는 이 동사 자체가 품은 감각을 키우기는 쉽지 않습니다. 일종의 영어적인 사고의 틀의 기본이 되는 동사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초급 단계에서부터 이렇게 맥락과 상황 속에서 학습한 단어와 문장들은 실제 네이티브 발화 문화권 환경에 놓였을 때 좀 더 갈고 닦여질 수 있습니다. 다른 문화권에서의 생활은 온 몸에 신선한 경험일 수 있었습니다. 자연스러운 몸짓 하나, 사람들과의 거리감, 동작 등에서 모국어 문화권과는 다른 이질감을 느끼게 될 수 있습니다. 이 이질감이 학습의 열쇠이기도 합니다. 그러면 우리는 내가 그냥 당연하게 하고 지나쳤던 행동들을 한 번 더 바라보고 관찰하게 됩니다. 일종의 새 옷을 입는 것, 새로운 존재 방식을 습득하는 것과도 통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처음에는 당연히 어색하고 불편하고 이상합니다. 내가 느끼는 그 이상한 정도, 이질감이 클수록 문화적 차이가 크다고도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인사로 볼 키스를 하는 비쥬를 처음 이런 문화가 없는 타문화권 사람이 겪으면 많이 당황할 수 있습니다. 이것도 “인사”이기 때문에 비언어적인 행위이지만 넓은 의미의 언어 학습에 포함이 된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한국에서는 “안녕하세요.”라는 말과 더불어 허리를 숙여서 하는 인사가 같이 이루어지듯이 말입니다. 만약 비쥬를 하면서 “안녕하세요.”라고 말을 한다면 말은 한국어이지만 한국어가 뿌리를 두고 있는 한국 문화적인 인사를 하고 있다고는 보기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그래서 실제로 그 언어가 네이티브로 쓰이는 그 문화권에 살아보거나 그 문화권 사람들과 함께 살아보는 것은 좀 더 즉각적인 언어 감각을 키우는데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화면을 통한 매체 같은 것이 아니라 내가 직접적으로 듣고, 겪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교류의 깊이에 의해서도 느낄 수 있는 정도의 차이는 달라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농담처럼 외국어를 빨리 늘리는 방법은 그 외국어를 모국어로 하는 애인을 사귀는 일이라고하기도 합니다. 그만큼 함께 보내는 시간이 많을 수 있고 일상적으로 문화적으로 부딪히는 일도 많을 수 있으며, 일상적인 생활 패턴을 공유하는 일이 많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애인이 아니더라도 외국인 친구를 사귀는 것은 직접적으로 다른 문화권과의 만남의 장이 되기도 합니다. 사소한 상식과 동작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 문화권에서 일반적이고 당연한 많은 일들이 나에게는 낯선 무엇이 되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입니다. “한국에서는 옛날에 호랑이가 담배를 피웠어. 한국인이라면 대부분 아는 상식이야.”, “한국에서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호랑이가 곶감을 무서워하는 것을 알고 있어.”같은 것도 마찬가지 입니다. 물론 신데렐라, 인어공주 등 세계적으로 알려진 동화들도 있지만 문화적으로 공유하는 지역 설화나 이야기는 다릅니다. 아무리 국제화 시대이고 많은 삶의 방식이 보편화되고 국가 별 경계가 느슨해진 문화가 퍼졌다고 해도 일상의 삶 자체로 들어가면 문화권에 따라 많은 차이점이 존재하고 그것이 그 사람들의 사고방식과 패턴, 그리고 언어를 구성합니다. 언어 학습은 궁극적으로는 이렇게 다른 문화권과의 만남 자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의복의 경우는 그래도 가장 보편화가 되어서 전 세계적으로 티셔츠나 바지를 입기도 하고 운동화나 구두도 마찬가지 입니다. 지역 색깔이 드러나는 지역 전통 의상들, 국가별 의상들도 있지만 우리나라의 한복이 그렇듯이 지역 의복을 널리 입지 않는 문화권도 많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살과 피부와 관계된 영역에 가까울수록 지역 색깔은 뚜렷합니다. 첫 번째는 음식 입니다. 음식만큼은 우리의 피와 살을 구성하는 요소이자 선조부터 해온 습관, 맛의 길들여짐, 그 지역의 기후에 따른 농작물의 종류 등 여러 요소가 복합적으로 작용하여서 각 문화권 별로 많은 차이를 보일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외국인 친구를 사귈 때도 음식에 관한 화제는 마르지 않는 샘물 같은 화제가 될 수 있습니다. 언제나 섭취하지 않으면 안 되는 삶에 있어서 생명을 유지하는 필수 요소 중에 하나이자 우리의 피부와 가장 가까운 것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개인차도 있지만 문화권에 따른 입맛의 특성, 요리나 먹는 행위의 중요도 등이 다를 수 있습니다. 그리고 먹는 방식에도 차이가 있을 수 있습니다.




저는 프랑스에서 어느 날 빵집에서 프랑스 짠 빵의 대명사인 키슈와 달달하고 맛있는 타르트를 같이 사서 프랑스인 친구와 나눠 먹게 되었습니다. 한국인인 저는 한국적 입맛의 반찬의 단짠단짠 같은 느낌으로 키슈 한입, 타르트 한입 하면서 맛있게 돌아가며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걸 본 프랑스인 친구는 기겁했습니다. 아니 너는 어떻게 빵을 그렇게 먹느냐는 것이었습니다. 의아했던 저는 그럼 어떻게 먹어야하는지 물어봤는데 프랑스인 친구는 짠 것을 먼저 다 먹고 단것을 먹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제 음식을 먹는 패턴에는 존재하지 않았던 그 사고방식이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비슷하게, 프랑스인 친구 하우스메이트와 살던 때, 다 같이 이탈리안 바질 페스토를 만든 적이 있습니다. 그래서 냉장고에는 짭조름한 페스토가 있었는데, 어느 날 아침 아무 생각 없이 빵 위에 절반에는 페스토 조금, 다른 절반에는 잼 조금 그런 식으로 발라서 먹고 있었습니다. 역시 그것을 우연히 본 프랑스인 하우스메이트는 엄청 놀랐습니다. 페스토는 짜고 잼은 달기 때문에 함께 먹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외국 문화권에서 직접 외국 친구들과 교류하며 산다는 것은 직접적으로 문화적 충돌을 경험하는 일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하나하나의 생생한 체험들은 어학 교재나 심지어 간접적인 그 언어권의 영상 미디어로도 체험하기 어려울 수도 있습니다. 특히 그 언어의 문화적인 부분은 그 문화권에 가서 살아보고, 그 문화권 사람들과 교류해가면서 비로소 체험하고 직접적인 경험으로 알게 되는 것들이 많습니다. 작게는 특정 상황에서 더 많이 쓰이는 어휘나 특정 상황에서의 말하기나 표현 방식까지 더 깊게는 이러한 사소한 문화적인 사고방식 자체까지 다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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