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카뮈 9 - 운명은 바람을 타고

by HeartStory

풍경의 방울이 울릴 틈도 주지 않고 카페 문이 화들짝 열렸다.

"민혁이 엄마가 왔다."
수연이 입술로만 그렇게 말했다.
말끝이 닿기도 전에, 이미 공기는 들끓고 있었다.

"이제는 소설책도 모자라 고등학생을 불러다 전단지를 돌리게 해요? 공부할 시간도 부족한 애를,
의대 갈 애를 왜 망치려 들어요?"
그녀의 말은 싸구려 불량 폭죽처럼 터졌다. 눈에서는 시든 불꽃이 타닥거리고 입에서는 불완전 연소로 매캐한 냄새까지 났다.

도윤은 짧게 숨을 고르고 말했다.

"죄송합니다."
그 한마디는 늘 그렇듯, 제일 먼저 나오는 단어였다. 도윤의 목소리는 매번 낮아졌다. 그는 사과할 때마다 조금씩 작아졌다.

옆자리의 수연이 말없이 의자를 바짝 당겼다.
나는 선반 위에서 꼬리를 내리며 그 장면을 지켜봤다. 오늘도 순해빠진 도윤을 막대하면 나도 가만있지 않겠다는 다짐으로 출격태세를 갖추면서.


"죄송하다는 말로 다 되나요?
애가 며칠째 독서실도 빼먹고, 하라는 공부는 안 하고, 당신네 카페에만 정신이 팔려 있는데 어떻게 책임질 거예요. “ 단숨에 일격을 가한다. 말의 파편들은 도란도란하던 손님들마저 황당하게 만들었다.

“됐다. 그만해라.” 딸의 말이 심했다고 생각했는지 그녀의 뒤에서 한 발 늦게 들어온 민혁의 외할머니가 나지막이 말했다.

"엄마까지 왜 그래요. 손주 인생이 달린 문제예요.” 자신 외에 모든 사람이 민혁의 인생을 송두리째 앗아간 듯 사방으로 분노를 뿜어 낸다.

“그 며칠 공부 못했다고 달라질 인생이면 내 인생도 몇 번이고 달라졌을 게다. 그랬다면 지금 우리가 여기 한자리에 모여 있지도 못할 테지.” 그녀의 목소리는 아주 낮았지만 단단했다.

“운명은 바람이고, 삶은 돛과 같은 거야.” 확고한 운명론적 철학을 가진 듯 말했다. 인간은 나이가 들면 철학자가 되는 것인가? 할아버지와 레벨이 비슷한데.

나는 그 말이 마음에 들었다. 바람은 내가 어쩔 수 없지만 바람에 따라 돛은 내 의지대로 방향을 잡을 수 있는 거니까.

할머니의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거기엔 오래된 주름 사이로 빛나는 작은 방이 있었다.
도윤의 할아버지와 마주 앉아 사주를 보던 장면이었다.

"아이의 길은 어른이 정하지 말아요."
오래된 기억의 대사였다.

아마 그때, 할머니도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모두 버리고 가시진 못했을 것이다. 그날 남은 앙금을 마저 털어 버리고픈 마음에 딸을 따라왔으리라.


할머니가 자리에 앉았다.

"그럼, 손주 사주라도 한 번 봐줄 수 있겠소? 옛날처럼."

도윤은 당황한 듯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옛날처럼 이라면.. 저희 할아버지를 아시나요?”

“민혁이 어릴 때부터 내가 할아버지 점집 단골이었지. 그러다가 별안간 점집을 관두고 무슨 카페를 하신다기에 설마 했는데 진짜 카페를 차리셨지 뭐야. 초창기에 몇 번 오고는 말았어. 이제 할아버지는 안 나오시나?”

“그러셨군요. 시간이 되시는지 연락해 드릴까요?”

“시간이 조금 길어져도 나온 길에 뵙고 갔으면 좋겠네. 오랜만에 손주 사주도 보고 싶고 말이야.”

할아버지를 기다리는 동안 딸은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할머니는 부드럽고 고소한 향의 따뜻한 라테로 서로 다른 온도의 마음을 추스르고 있었다. 그 사이 카페의 공기압도 정상을 찾았다.


두 사람에게 음료를 가져다주고 온 도윤에게 다가갔다. 도윤의 마음은 편치 않았다. 자신이 만든 문제를 할아버지가 대신 풀어줘야 하는 이 상황이 씁쓸한 눈치였다. 지금 이 상황을 내가 도윤을 도와서 해결할 수 있다면 우리 둘 모두에게 좋지 않을까 생각했다. 도윤에게는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신감을 줄 수 있을 테고, 내 능력을 도윤이가 믿을 수 있는 계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도윤에게 눈빛을 보냈다. 처음에는 나를 생각해서 안된다고 거부했지만 결국 내가 설득하고 말았다. 민혁이는 계속 카페 카뮈에 올 테고 소설을 읽을 테고, 카페가 민혁의 도움이 필요할 때면 양팔을 걷어붙이고 도울테니까. 그러다 보면 민혁의 엄마는 또 불량 폭죽을 몸에 달고 올 것이다.

무엇보다 결자해지다. 민혁의 엄마에게는 도윤에 대한 믿음이 필요충분조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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