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빛이 카페 문 앞에서 길게 눌려 있었다. 유리문이 미세하게 떨릴 때마다 작은 울림이 생겼다. 그 소리는 마치 오래된 마음의 문을 두드리는 것처럼 들렸다.
문이 열리고, 며칠 전 그 남자가 들어왔다. 병실의 냄새와 함께 사라졌던 손님이었다. 그의 걸음은 조심스러웠고, 손에는 작은 상자가 들려 있었다. 리본이 느슨하게 묶여 있었다.
그는 상자를 카운터 위에 올려놓고 조용히 말했다. "그날 벽에 붙였던 문장에 대한 답장을 전하러 왔습니다."
나는 꼬리를 천천히 내리며 그를 바라보았다.
벽 한쪽, 오른쪽 구석에는 아직도 그 종이가 붙어 있었다.
'내가 아빠라서 미안하다.' 작은 메모지는 문장의 습도를 머금어 눅진했지만, 글씨는 여전히 단정했다.
그는 그 종이를 떼어 손에 쥐었다. 그리고 상자를 열었다.
안에는 별 스티커가 가득한 휴대폰이 있었다. 화면에는 웃음이 가득한 어린아이와 아빠가 차지하고 있었다. 그는 손끝으로 사각의 녹음 앱을 눌렀다.
공기가 아주 잠깐 흔들렸다. 낯선 숨소리 하나, 그리고 어린 목소리가 나왔다.
"아빠, 오늘은 하늘이 예뻤어요. 근데 아빠는 왜 맨날 울어요? 나는 괜찮아요. 아파도 괜찮아요. 그러니까 아빠도, 괜찮아요."
짧은 말들이 공기 중에 흩어졌다. 그건 한 아이가 남긴 목소리이자, 세상에 남은 마지막 인사였다.
남자는 그 화면을 가만히 내려다봤다. 눈 밑이 젖어 있었지만, 울음은 터지지 않았다. 그는 낮게 말했다.
"그 아이는 늘, 나보다 단단했어요. 그게… 더 미안했습니다."
나는 그 말에서 오래된 체념의 냄새를 맡았다. 도윤은 잠시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는 기도를 하듯 두 손을 모아 이마에 대고 눈을 감고 있었다. 그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
"아이가 대단하네요."
"그렇죠. 나보다 어른이에요."
"아뇨." 도윤의 목소리가 낮게 떨렸다.
"그 아이가 남긴 건 어른의 위로가 아니라, 아이의 용기 같아요. 괜찮다고 말하는 사람은, 이미 자기 아픔을 이긴 사람이거든요."
그 말이 공기 속에 오래 머물렀다. 남자는 그제야 눈을 감았다. 그의 어깨가 조금 느슨해졌다.
가늘게 떨리며 가라앉는 그의 어깨를 보며 생각해 본다. 사람이 사랑하는 이를 떠나보낼 때, 진짜 아픈 건 그 사람이 사라졌다는 사실이 아니라, 더 이상 그 사람을 사랑할 수 없다는 것 때문이 아닐까.
사랑은 살아 있는 행위다. 손끝으로, 눈빛으로, 말 한마디로 이어지는 다리다. 그 다리를 건너던 날들이 끝났을 때, 그 사람을 잃는 동시에 ‘사랑하는 나’도 함께 잃는다.
죽음은 관계의 단절이 아니라, 사랑의 방향이 바뀌는 일일지도 모른다. 살아 있는 자는 이제, 기억 속에서 사랑해야 한다. 더 이상 닿지 못하는 곳을 향해 사랑을 보내야 하는 사람으로 남는다. 그래서 이별은 언제나 멈춤의 형태를 하고 있다.
심장이 여전히 뛰는데, 그 안에서 흐르던 사랑의 길만 멈춘다. 그 정지된 순간 안에서 인간은 배운다. 사랑이 사라지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바꾸어 ‘그리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자신을 사랑하게 만든다는 것을.
도윤은 자리에서 일어나 벽으로 갔다. 새 메모지를 꺼내 펜을 들었다. 나는 그의 손끝을 따라가며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그 말이 답장이에요.'
그 문장을 벽에 붙이는 순간, 나는 확실히 느꼈다. 도윤의 손끝이 아주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그 떨림에는, 타인의 아픔을 대신 붙드는 마음이 있었다.
남자는 아무 말 없이 그 문장을 한참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였다. 숨이 천천히 고였다. 그의 목소리는 거의 속삭임에 가까웠다.
"그 말을 듣고 싶었습니다. 정말로요."
잠시 후 그는 커피잔을 손에 들었다. 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창문 위로 흩어진 빗방울이 조용히 합쳐졌다. 나는 그의 눈 속을 들여다보았다. 이번에는 어떤 장면도 비치지 않았다. 대신, '끝'이 아니라 '멈춤'이 있었다. 그건 아직 슬픔이 남아 있으나 더 이상 흐르지 않는, 살아남은 자의 조용한 방이었다.
그는 딸 이서가 별자리를 좋아하고, 고양이와 함께한 적이 없었는데 이상하게도 마지막엔 고양이 이야기를 자주 했다고 했다. 고양이의 눈은 하늘에서 떨어지는 별의 조각 같다고.
나는 도윤을 바라보았다. 그의 눈 속에 반사된 내 모습이 흔들렸다. 그 빛이 잠시 그의 눈 속으로 번져 들어갔다. 그 안에는 아주 오래 전의 소년이 있었다. 누군가를 바라보던, 그러나 끝내 말하지 못했던 눈. 도망치기만 했던 그 장면. 지금 그는 끝까지 보고 있었다.
남자가 돌아가자 카페는 다시 고요해졌다.
벽에 붙은 새 문장이 가을의 공기 속에서 천천히 마르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읽던 책을 내려놓으며 조용히 말했다.
“때로 사람은 죽음 속에서도 우리에게 말을 건단다. 부재는 침묵이 아니라, 기억의 다른 이름이지. 그러니 진짜 이별은 존재하지 않아. 사랑이 계속 기억되는 한, 그 사람은 여전히 너의 시간 속에 살고 있는 거야.”
그리고 누구든 자신이 놓친 사람에게 답장을 쓰는 날이 온다고도 했다.
도윤은 고개를 숙인 채 그 말을 들었다. 도윤은 답장이 아니라 용서라고 했고, 할아버지는 이해라고 말했다. 이해는 말보다 조용하고, 미안함보다 오래간다고.
나는 카운터 위로 올라가 벽의 문장을 바라보았다.
'괜찮아요, 그 말이 답장이에요.'
글씨는 아직 젖어 있었지만, 그 젖음이 더 이상 슬프지 않았다. 그건 단순한 위로가 아니라, 관계가 다시 시작되는 언어였다.
새벽 무렵, 비가 그쳤다. 도윤은 불을 끄기 전 벽을 한 번 더 바라봤다. 그의 입가에서 낮은 속삭임이 흘렀다.
"나도 언젠가 답장을 쓸 수 있을까."
나는 그의 발치에 앉아 부드럽게 중얼거렸다.
이미 쓰고 있어, 오늘처럼.
창밖의 별 하나가 흘렀다.
그 별의 꼬리 끝에는 아주 희미한 이름 하나가 남아 있었다.
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