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카뮈 13 - 사랑의 기술 1

by HeartStory

카페 문이 열렸다.

여자가 들어왔다. 바깥공기에 젖은 머리카락이 천천히 흔들렸다. 그녀의 발끝은 무언가를 밟지 않으려는 듯 조심스러웠고, 목소리 대신 손끝으로 문을 닫았다.

"따뜻한 아메리카노 주세요." 그녀의 말은 유리잔 속 얼음처럼 금세 가라앉았다.

도윤은 주문을 받고 잠시 시선을 내렸다. 팔목에 감긴 팔찌 아래로 보랏빛 자국이 희미하게 보였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시선은 나를 찾아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무언가 알리고 도움을 청해야 한다는 눈빛으로.

창가에 앉아 일광욕을 하던 나는 도윤의 누동자가 굴러가는 소리에 반응했다. 도윤의 "저 여자의 눈을 읽어줘."라는 소리 없는 말이 들렸다. 여자의 눈 속으로 들어간다. 순간 나는 몸을 뒤로 젖히며 '헉'하는 신음을 낸다.

어둑한 방 안, 유리컵이 바닥에 깨지며 튀는 물방울, 손바닥이 뺨을 때리는 장면이 슬로 모션으로 지나간다. 그 뒤 이어지는 '사랑한다'는 목소리.

그 말이 얼마나 공포에 가가운 울림으로 변했는지, 나는 그 장면들을 여과 없이 도윤에게 전달했다.

그는 아무렇지 않은 척 여자가 주문한 커피를 내리며 말했다.

"요즘 날씨가 좀 변덕스럽죠. 그래서인가 사람 마음도 쉽게 식거나, 또 쉽게 끓는 것 같아요."

여자는 잠시 그 말을 곱씹더니, 어색하게 미소 지었다. 그 웃음은 금방 그녀의 말을 피해 달아났다.

"사람 마음이... 그렇게 쉽게 변하면, 사랑이라는 건 존재할까요? 사랑은 뭘까요?"

그때 수연이 책 속에 있던 집중력을 모두 꺼내 도윤과 그 여자에게 보냈다. 여자의 직감일까? 아니면 질투일까? 가끔 수연은 여자 손님들에게 예민한 반응을 보인다. 그녀의 눈동자가 잠시 흔들렸다. 수연은 '사랑'이라는 단어가 늘 혼란스럽다고, 자신을 아껴주는 것과 자신을 지배하려는 것의 경계가 세상에서 가장 불분명한 것 같다고. 민혁의 엄마가 다녀간 후 말한 적이 있다. 나도 동감이다. 그 경계를 구분할 줄 아는 것이 사랑의 기술이 아닐까. 나에게도 기술을 연마할 연습 상대가 있었으면 좋겠다.

"아마도..." 도윤이 커피를 건네며 조심스럽게 말을 이었다.

"사랑은... 배우는 거겠죠. 그냥 느끼는 게 아니라, 익히는 거요. 누군가를 다치게 하지 않으면서도, 그를 잃지 않는 법을 배우는 기술."

여자는 커피의 온기와 대기의 냉기가 만나 모락모락 피어나는 안갯속에서 생각을 멈춘 듯했다. 그녀의 손이 잔을 받쳐 들 때 미세하게 떨렸다. 그 덜림은 커피잔 표면의 진동처럼 카페의 공기를 흔들었다.

수연은 그 장면을 바라보다가, 왠지 모르게 가슴 한편이 조여 오는 듯 손으로 가슴을 꾹 꾹 눌러댔다. 같은 여자로서, 그 떨림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아는 듯이. 말로 다 하지 않아도, 몸은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카페 안은 고요했다. 지그시 눈을 감아 본다. 무슨 생각을 해야 하지 모르지만 그렇게 해야만 할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여자의 목소리가 다시 들렸다.

"사람이 사람을 아프게 하는 것도... 사랑일까요?"

도윤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 말은 천천히 수연에게 흘러갔다.

여자가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잔이 살짝 흔들리며 작은 소리가 났다. 그 소리는 오래된 유리잔의 울림처럼, 부서질 듯 얇고 서늘했다.

"그 사람은 늘 저를 걱정해요." 그녀는 무게를 가늠하기 어려운 말을 이었다.

"뭘 입는지도, 누구를 만나는지도, 다 신경 써줘요. 그게 사랑이라고 믿었어요. 그런데 요즘은... 그게 왜 무섭다고 느껴지는 걸까요?

도윤은 말없이 또 나를 쳐다본다. 마치 이제는 내 차례라고, 어떻게 좀 해보라는 눈짓으로.

나는 다시 몸을 풀 듯 고개를 한 바퀴 돌리고 그녀를 바라본다. 아까보다 더 깊이.


남자의 목소리가 먼저 들려온다. '그건 다 네가 잘 되라고 하는 말이야. 너를 위해서 하는 말이라고.' 하지만 말과는 달리 그의 손은 여자의 어깨를 세게 움켜쥐고 있었다.

나는 흠칫 놀라며 눈길을 돌렸다. 계속 보다가는 나도 가스라이팅을 당할 것 같았다. 순종과 복종이라는 단어가 내 몸속으로 스멀스멀 기어 들어오는 것 같은 소름이 돋았다. 그 장면 뒤에 남은 건, 걱정이나 염려의 향이 전혀 섞여있지 않은 통제의 냄새였다.


드디어 수연이 끼어든다. 역할은 구원병이다. 속뜻은 모르겠다만. 나는 질투라고 본다. 나도 암컷이다. 이 상황에서 질투심을 꺼낸다는 것은 너무 앞서가는 생각이라고 할 수도 있겠지만 사람일은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사람은 힘들 때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마음을 줄 확률이 높다. 내가 알고 있는 작업의 정석 중 하나다. 그러니 조심해라. 호의와 배려를 가장한 작업이 있으니. 그렇다고 도윤이 작업을 걸고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그럴만한 깜량이라도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다만 수연의 입장에서 보면 걱정은 되겠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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