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페 카뮈 14 - 사랑의 기술 2

by HeartStory

사람들은 삼각형이 가장 안전한 구조의 도형이라고들 한다. 고양이인 내 관점에서는 위험하게 보인다. 인간을 가까이하면서도 경계해야 하는 고양이로서는 당연한 상상일지도 모른다. 일반적으로 우리가 생각하는 모든 도형의 꼭짓점 중에서 가장 날카로운 것이 삼각형의 꼭짓점이다. 인간관계에서도 가장 위험한 관계가 삼각관계 아니던가. 세 개의 꼭짓점 중에서 어느 하나만 움직여도 그 형태가 위태로워질 수도 있고 도형이 사라져 버릴 수도 있다. 물론 지금 이들의 관계를 삼각관계라 할 수는 없지만.

수연이 자리에서 일어나 두 사람이 있는 바 테이블로 갔다. 이제 도윤은 바 테이블을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있는 두 여자를 상대해야 했다. 삼각형이 만들어졌다.

고양이인 나의 동물적인 본능이 위험신호를 알린다.

“저도 같이 이야기 나눌 수 있을까요?” 수연이 부드럽지만 당차게 도윤과 여자의 대화 속에 끼어들고자 했다. 끼워주지 않으면 큰 일이라도 날 것 같다.

“저는 괜찮아요. 그런데...” 낯선 여자가 불쑥 대화에 끼어드는 것이 썩 좋지만은 않은지 말끝을 흐린다. 누구인지도 모르는 사람이니까. 그러한 분위기를 느낀 듯 도윤이 수연을 소개한다.

“이쪽은 수연이라고 해요. 어느 날은 직원, 때로는 손님이지만 늘 가족처럼 지내는 동생이에요. 본업은 대학생이죠. 함께 이야기를 나눠도 좋을 거예요. 저보다는 두 분이 더 말이 잘 통할 것 같네요.” 슬그머니 발을 빼고자 하는 마음이 보인다. 하지만 도윤의 뜻대로 되기에는 아직 이르다는 듯 여자가 말한다.

“좋아요. 둘 보다는 셋이 더 낳겠죠. 저는 인하라고 해요.”

“죄송해요. 불쑥 끼어들어서. 오빠랑 나누는 말씀 대충 들었어요. 엿들으려고 한 것은 아니었는데, 듣다 보니 같은 여자로서 공감 가는 이야기도 있어서 주제넘지만 저도 함께 하고 싶어서요. 끼워 주셔서 고맙습니다.” 질투로부터 나온 행동인 줄 알았는데 수연에게도 어떤 사연이 있는 듯하다. 내 감이 점점 무뎌지는 느낌이다.

잠시 어색한 침묵이 이어진다. 도윤이 말을 꺼낸다. 마치 이 토론회를 주제 하는 사회자처럼.

“가끔 사람들은 사랑을... 서로를 존중하는 일보다, 서로를 지키는 일이라고 착각하죠.” 다시 하던 이야기로 돌아가자는 듯 도윤이 말에 힘을 실었다.

“지키는 게 사랑 아닌가요?” 도윤의 말에 인하가 고개를 들며 물었다.

“지키는 건 좋은데요. 그게 내가 원하는 모습으로 만들어두려는 지킴이라면... 그건 지키는 게 아니라, 가두는 거겠죠.” 도윤은 부드럽지만 단호하게 답했다.

여자의 눈이 흔들렸다. 한동안 마무 말이 없어다. 그 침묵을 깨뜨린 것은 수연이었다. 수연은 인하를 향해 고개를 돌리며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전에 사귀던 남자 친구가 전화를 하면 늘 하던 첫마디가 ‘어디야?’였어요. 처음에는 그게 나에 대한 관심이고 걱정이고 사랑인 줄 알았어요. 그게 감시의 언어이고 통제의 언어라는 것을 깨닫고는 헤어졌죠.” 수연은 구원투수처럼 이야기를 자신의 페이스로 이끌려한다. 야무진 데다가 해결사 기질까지 있다. 논리력만 갖추면 내가 본 미래 그대로 훌륭한 법조인이 되겠는 걸.

“사랑은... ” 수연이 투구를 계속 이어갔다.

“서로를 바라보는 일인 줄 알았어요. 그런데 언젠가부터, 누군가를 바라보는 게 아니라 확인하는 일이 되어버리더라고요.”

수연의 말을 들으며 인하는 고개를 떨구었다.

“확인하는 일...” 인하의 입술이 미세하게 떨렸다.

“맞아요. 매일 물어요. 나 사랑해? 그 대답을 들어야만 마음이 조금 편해져요. 그게 틀린 건가요?” 인하는 기어들어 가는 소리로 말했다. 그 질문조차 다시 확인을 받으려는 듯이. 자신감의 문제라기보다는 자존감의 결여가 더 큰 문제인 듯싶다.


가끔 인간들을 보고 있으면 이상한 생각이 든다. 그들은 자신을 사랑한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자기 자신을 쉽게 버린다.

누군가를 위해 웃고, 누군가의 기분에 맞춰 울고, 그 사람이 떠날까 두려워 스스로를 조금씩 지워간다. 그리고 그것을 ‘사랑’이라고 부른다.

하지만 내가 보기에는 그것은 착각이며 착시다. 사랑이 아니라 존재의 포기다.

사랑은 두 사람이 서로를 비추는 거울이 되는 일인데, 자존감이 사라진 사랑은 거울이 아니라 그림자만 남는다. 그림자는 빛이 있어야만 존재할 수 있다. 그 빛이 꺼지면, 자신도 함께 사라진다.

사람들은 자신을 사랑하지 못해서, 상대의 사랑으로 자신을 증명하려고 한다.

“나를 사랑해?”라는 질문은 사실 “내가 존재해도 괜찮을까?”라는 절규일지도 모른다. 그건 자신감의 문제가 아니다. 자신감은 누군가의 시선 속에서 만들어지는 것이고, 자존감은 그 시선이 사라져도 흔들리지 않는 것이다.

고양이인 내 시선으로 보면, 자존감이 있는 인간은 빛이 다르다. 그들은 누군가의 사랑을 구걸하지 않는다. 사랑은 ‘받는’ 것보다 ‘주는’ 것에 더 자유롭다. 자신을 지킬 줄 아는 이들은 상대를 억누르지 않는다. 그들은 자신이 온전하기 때문에, 타인도 온전하길 바란다. 나는 종종 인간들이 그것을 잊은 채 사랑을 시작하는 걸 본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조여 가고, 결국 숨이 막혀 떠난 뒤에야 말한다. “나는 최선을 다했어”라고.

진정한 사랑은 자신을 잃지 않으면서도 타인을 품을 수 있는 일이다. 그게 어려워서, 인간들은 자주 상처를 만들고, 그 상처 속에서야 진짜 ‘자신’을 마주하곤 한다.


인간들 속에서 살다 보니 나도 점점 인간에 가까워져 가는 것 같다. 나도 인간들에게 가스라이팅을 당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다. 동물적인 본능은 점점 사그라들고 있다. 위안과 따뜻한 관계를 삼각관계로 오인하고 위험신호로 받아들였다는 것에 자괴감이 든다. 내 본능을 잃어 가면서 사람들을 알아가는 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어떤 사람은 본능에 충실하라고 하던데. 뭐가 뭔지 아직 모르겠다. 다행인 것은 아직 나에게 있어 평형감각을 유지하는 본능은 남아 있다. 내가 중심이 되어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러다 보면 인간을 이해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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