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후의 비가 그친 뒤, 카페 카뮈는 조금 더 얇은 공기 속에 잠겨 있었다.
창문 너머 비가 쓸고 간 골목은 반짝였고, 사람들은 젖은 어깨를 접힌 우산처럼 잔뜩 움츠린 채 발걸음을 재촉했다.
카페 안은 조용했다. 할아버지가 두고 간 찻잔 하나와 손님들이 남기고 간 메모들이 벽에 붙어 있었다.
그날의 마지막 손님이 나가며 한 문장을 남겼다.
“나는 그때,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도윤은 그 메모를 손에 쥔 채 한참을 들여다보았다.
짙은 검은색 펜으로 또박또박 써 내려간 글씨.
그의 눈이 글자를 따라 움직일 때마다, 공기 속에서 어떤 묘한 울림이 흘러나왔다.
나는 카운터 위에서 그것을 보고 있었다.
글씨에는 체온이 남아 있었다. 무겁고 오래된 체온.
본 사람의 글씨였다. 본 사람은 늘 이런 문장을 남기곤 한다. 미안하거나, 두렵거나, 혹은 너무 늦었거나 할 때.
“증언... 하지 않았다.”
도윤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나는 꼬리를 한 번 움직였다.
그의 시선이 벽으로 향했다. 거기에는 그동안의 문장들이 층층이 붙어 있었다.
‘보았지만, 외면했습니다.’
‘그날은 끝나지 않았습니다.’
괜찮아요, 그 말이 답장이에요.‘
새로 붙인 메모만 유난히 도톰한 구름처럼 하얗게 떠 있었다.
“이 말도... 비슷한 결이네.”
“보았는데 말하지 않은 사람의 문장” 도윤이 말했다.
나는 의자 위로 뛰어올라 앉았다.
“대신 무게를 오래 들고 있는 사람의 문장이지.” 앞발을 가지런히 모으고, 살짝 고개를 기울였다.
“말하면 가벼워질 수 있는데, 말 안 했으니까. 오늘까지 들고 온 거야.” 도윤을 바라보며 동의를 구하듯 말했다.
“근데 그때는... 말하기가 진짜 어렵잖아.” 그의 목소리는 말의 무게에 눌려 가라앉았다. 다시 일으키려는 듯 안감힘을 보태 말을 이었다.
“이런 건 늘 나중에 생각나. 아, 그때 말을 했어야 했는데... 그때 그 애 편을 들어줬어야 했는데...”
“나중에 떠올리면 세상이 멈춰 있거든.” 나는 말했다.
“하지만 그때 그 사람한테는 세상이 멈춰 있지 않았겠지. 어느 방향으로든 흘러갔을 테니까. 말하면 자기 자신한테도 일이 번질 것 같은 순간이었을 거야.”
내가 본 수많은 눈들, 그 눈 안에서 흔들리던 공포가 그런 문양을 띄고 있었다.
도윤이 나를 보며 피식 웃으며 말했다.
“너무 잘 아는 말투인데.”
뭐야? 이 웃음과 질문인지, 비아냥인지 모를 어감은?
“사람들 눈을 너무 많이 봤나 봐. 다 비슷해.” 나는 하품을 하며 귀찮다는 듯 얼버무렸다.
계속 이어진 하품 끝에 나온 말은 나 스스로도 놀랄 만큼 낮았다.
“여긴 그런 사람들 오는 데잖아. 보긴 했는데, 말은 못 했던 사람들.”
카페 안이 다시 고요해졌다.
시곗바늘이 한 눈금씩 움직이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공기가 가냘프게 흔들렸다.
도윤은 의자를 끌어다 벽 쪽으로 옮기더니 메모를 가장 높은 곳에 붙였다.
“왜 거기 붙여?” 내가 물었다.
“이런 말은... 좀 더 위에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눈에 더 잘 띄잖아.”
“눈에 잘 띄면 더 아프다.” 나는 고개를 들어 메모를 보며 물었다.
“너 그러면 오늘 밤에 그거 생각하면서 잘 거지?”
도윤은 대답 없이 카페 불을 하나씩 껐다. 계산대 위의 작은 조명과 창가 스탠드만 남기니, 공간은 물속처럼 잔잔해졌다. 나는 문쪽으로 걸어가며 말했다.
“넌 꿈꿀 거야.”
“뭘?” 그가 물었다.
“오늘 붙인 그 문장. ‘나는 그때,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말들은 사람 꿈으로 들어가기 좋거든.” 장난기 섞인 주문을 도윤에게 던졌다.
“거기까지만 해라.” 그는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잇는다.
“요즘 잠 잘 자고 있었는데.”
“그럼 벽에 붙이질 말았어야지.” 나는 그 말을 내뱉고 도망치듯 내뺐다.
카페에서 가장 아늑한 공간. 푹신한 소파와 포근한 쿠션이 기다리는 나의 전용석으로.
그날 밤, 내 예감이랄까. 주문은 통했다.
도윤은 꿈을 꾸었다.
나는 그의 곁에서 그 꿈을 보았다.
그의 눈동자 깊은 곳에 반사된 장면들이 내 시야로 스며들었다.
복도였다.
학교 복도의 냄새, 반쯤 벗겨진 왁스 자국, 벽에 걸린 축제 포스터들.
그 복도 한가운데 서 있는 도윤의 뒷모습이 보였다. 그는 움직이지 않았다.
문 안쪽에서는 여학생의 울음소리가 새어 나왔다.
“그만해…”
목소리가 떨렸다.
그는 그 문을 열지 못했다. 손이 문손잡이로 향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의 심장의 떨림을 느꼈다. 그건 지금의 도윤이 아니라, 과거의 도윤이 느꼈던 떨림이었다.
복도 끝, 창가 쪽으로 흰 빛이 흘러들었다. 그 빛 속에 하얀 운동화 한 켤레가 놓여 있었다. 그 앞에서 한 아이가 웅크리고 있었다.
“그만… 그만해…”
그 아이의 목소리와 울음이 겹쳤다.
도윤의 시야가 흔들렸다. 나는 그의 가슴이 쿵 내려앉는 걸 느꼈다.
그 장면을 그는 알고 있었다. 잊었다고 믿었던 장면, 봉인된 기억의 한 조각.
문 안에서 누군가가 말했다.
“봤잖아. 너.”
그 한마디가 그의 숨을 끊었다. 들숨에서 멈추게 했다.
그 말은 안에 있는 아이가 바깥을 향해 외친 말이었다.
‘너 봤잖아. 너 거기 있잖아. 왜 말 안 해.’
나는 도윤의 마음속에서 터져 나오는 고통을 들었다.
그는 문에 등을 대고 눈을 감았다.
꿈 속인데도, 그 수치와 공포가 현실의 온도로 되살아났다.
그는 단지, 그 장면을 보았다. 그리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장면이 바뀌었다.
교무실이었다. 어른들이 웅성거렸다.
“그런 일 없었다는데요?”
“애들이 장난이 좀 세긴 해요.”
“그걸 본 학생이 있다면서요?”
“있는데…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그 말이 떨어지는 순간, 공기가 서늘해졌다.
그 문장은 오늘 카페 벽에 붙인 바로 그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을 하는 사람의 얼굴이 어둠 속에서 또렷이 드러났다. 도윤의 꿈속에 나타난 얼굴은 다름 아닌 할아버지였다.
“잊고 살면 돼.”
꿈속 할아버지가 말했다.
“어른들은 그런 말 쉽게 하지.”
나는 도윤의 심장이 터질 듯 부풀어 오르는 소리를 들었다.
그의 눈이 벌게졌다. 그리고 그 순간, 꿈이 산산이 흩어졌다.
그는 새벽에 깨어났다.
방 안은 어두웠고, 창밖에서는 비가 다시 내리고 있었다. 그의 호흡이 거칠었다.
나는 그의 품에 머리를 묻었다. 그리고 느꼈다.
그의 머릿속에서 아직 꿈의 잔상이 흔들리고 있었다.
‘증언하지 않았습니다.’
그 한 문장이 그의 가슴을 꽉 움켜쥐었다.
그는 두 손으로 얼굴을 감싸고 한참을 그대로 있었다. 꿈에서 벗어나려는 것인지 다시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새벽의 카페는 낯설었다. 벽의 메모는 노란 등 아래에서 더 하얗게 떠 있었다. 종이는 살짝 젖어 있었다. 습기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꿈이 남긴 눈물 때문이었을까.
나는 가르랑 거리며 앞발로 그의 무릎을 두드렸다.
그는 나를 보며 조용히 숨을 내쉬었다.
“꿈꿨지?” 답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장난기 섞인 말투로 물었다.
“봤어.” 그의 목소리는 장난기 섞인 내 질문이 무색하게 낮고 거칠었다.
“그때도 봤고, 오늘도 봤고.”
나는 벽의 메모를 올려다봤다.
“그럼 이제… 말할 차례겠네.”
“누구한테?”
그가 물었다.
“그때 네가 말하지 못했던 사람들한테.”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아니면, 그 사람의 남아 있는 사람들한테.”
그의 눈이 심연에 초첨을 맞춘 듯 깊은 곳에 머물렀다. 카페 안의 공기도 덩달아 멈추었다.
벽의 메모, 꿈의 잔상, 그리고 지금의 말 한마디가 모두 같은 결로 이어졌다.
나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다시 열었을 때, 도윤의 눈 속에서 오래된 복도의 빛이 반짝였다.
그의 과거가, 나의 과거가, 다시 깨어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