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하의 촉촉한 눈 속에서 장면 하나가 또 보인다.
창문을 두드리는 빗소리, 그녀가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던 밤, 그리고 그 남자의 낮은 목소리.
“너밖에 없어.” 이 말과 함께 남자가 인하의 휴대폰을 뒤지며 웃으며 말을 잇는다.
“사랑하니까 궁금한 거야.” 남자의 말 뒤에, 그녀의 표정에는 공포와 체념이 섞여 있다.
이 소름 끼치는 소리를 그대로 도윤에게 전할 수만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도윤은 소리 없는 영상만으로도 충분히 알아 들었다는 듯 얼굴이 붉어졌다.
상기된 마음을 추스르려 하는지 케모마일 차를 만들었다. 손에도 목소리에도 떨림이 느껴진다.
“사랑은 너밖에 없어라고 말하는 게 아니라, 너도 있고 나도 있다고 말할 수 있을 때 시작된대요.” 도윤은 아직 사랑을 경험해 보지 않아서일까 누군가의 말을 옮겼다.
여자가 고개를 들며
“그건 누가 한 말이에요?”라고 물었다.
“에리히 프롬이라는 사람이요. 사랑의 기술이라는 책에 그런 내용이 나와요.” 역시 책을 많이 읽는 도윤답다. 책에는 내가 해보자 못한 다양한 경험들이 들어 있는 모양이다.
수연이 인하에게 시선을 돌리며 한 마디 거든다.
“사랑은 기술이라 했죠. 프롬이. 사랑은 나를 숨 쉬게 하고 상대가 숨 쉴 수 있는 자유를 줄 수 있을 때 커지는 게 아닌가 싶어요.” 수연도 지난 사랑에서 질식의 고통을 겪은 듯 긴 숨을 쉬었다.
“그럼... 사랑은 어떻게 해야 하는 걸까요?” 인하가 조심스레 물었다.
“사랑의 기술이란 감정이 아니라, 연습이 필요하다는 뜻 같아요. 내가 상대를 소유하려는 충동을 알아차리는 연습, 상대의 불안과 나의 불안을 구분하는 연습 같은 거 말이죠.” 도윤은 수연의 말에 동의하듯 살짝 미소 지었다.
사랑에 관해서는 자신보다 수연이 월등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직접적인 경험도 중요하다. 모든 것을 다 경험해 볼 수는 없지만. 경험하지 않아도 될 일들을 더 많이 겪는 게 인간의 삶이라는 것이 안타깝다. 이럴 때만 묘생이 상팔자다.
“사랑이 기술이라면... 이제라도 배우고 싶어요.” 수동적이 말이 처음으로 능동적으로 바뀌었다. 무언가를 하고 싶다는 욕망이 들어선 것일까? 욕망이라는 단어가 이렇게도 쓰일 수 있구나. 욕망이라는 단어가 주는 느낌은 늘 나빴는데.
“그게 그렇게 어려운가요?”
“사람들은 대부분 사랑을 ‘받는 기술’만 배우려 하거든요. ‘주는 기술’을 배우는 건, 늘 나중의 일이더라고요. 저도 그랬고요.” 수연은 자신의 경험을 녹여 말했다. 딱딱한 막대 아이스크림이 입안에 들어가 살살 녹듯이 카페 안에 스며들었다.
인하의 눈빛에는 뭔가 결심 같은 것이 비쳤다. 그녀는 그 순간, 사랑의 기술이란 단어를 어쩌면 자신이 앞으로 평생 공부해야 할 과목처럼 받아들였음에 틀림없다.
인하가 나선 카페 밖에서는 비가 내리기 시작했다. 그녀에게 튼튼한 마음의 우산이 펼쳐지길 바라본다.
유리창에 맺힌 물방울들이 서로 닿았다가 이내 흩어졌다. 붙었다가 흩어지는 그 움직임이, 사랑이라는 감정의 모양 같았다.
수연은 손끝으로 식은 머그잔을 굴렸다.
잔이 내는 가벼운 소리가 그녀의 생각을 따라갔다.
“사랑이 기술이라는 말, 이상하게도 슬프게 다가와.” 생각을 밖으로 끄집어 내며 말을 이었다.
“배워야 한다는 건, 본능만으로는 사랑할 수 없다는 뜻이니까. 그런데 그게 왠지 위로가 돼. 사람들이 사랑을 잘 못하는 이유가, 나빠서가 아니라 아직 배우지 못해서라면...”
도윤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도 일부는 동의한다. 하지만 잘 못 배운 놈은 어떡해야 하는지 궁금하다.
누군가는 사랑을 시작하고, 누군가는 사랑을 끝내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모든 과정이, 결국에는 같은 연습의 연속이라는 생각이 든다.
수연은 잔을 들어 남은 커피의 향을 음미하며 한 모금 마셨다. 삽싸름한 커피의 맛이 전하듯 말을 이었다.
“사랑이 기술이라면 그건 아마도 서로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서로를 파괴하지 않기 위해서 익혀야 하는 기술일지도 몰라.”
그 말이 문장이 되어 마음에 내려앉는 순가, 카페의 공기가 아주 천천히, 그러나 확실히 달라져다.
종이 한 번 더 울렸다. 작고 가벼운 소리였지만, 그 소리는 방금 막 생겨난 깨달음을 흔들 만큼 깊었다.
사랑이 기술이어야 하는 이유는, 사람이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이 기술이 될 때, 비로소 불완전한 서로가 서로를 다치게 하지 않고 조금이라도 가까워질 수 있다는 것. 그것은 고양이인 나보다 고슴도치한테 배워야 해.
도윤이 읽고 있던 로라 데이브라는 작가 쓴 <그가 나에게 말하지 않은 것>이라는 책에 이런 구절이 있다.
“나에게 있어서 문제는 다른 사람의 인생에 나를 맞히려고 노력할 때, 특히 그 과정에서 나의 일부를 포기해야 할 때 생겼다. 그래서 나는 내가 다른 사람에게 맞춰야 할 필요가 없을 때까지 기다렸다. 그저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맞춰진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을 만날 때까지 기다렸다.”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맞춰진 것처럼 느껴지는 사람이란 어떤 사람일까? 나는 아직 모르겠다. 모른 체 지나쳐 갔을 수도 있겠다. 아래층 편의점을 오가는 무릎 나온 트레이닝복 차림의 사람처럼 자연스러워서, 잠옷처럼 너무 편안해서 그게 편안함이라는 것조차 잃어버려서 못 느꼈을 수도 있겠다. 기다리면 느껴질까... 기다려보자. 또 알아. 베르베르의 소설 속 고양이 피타고라스 같은 녀석을 만날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