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하 Feb 12. 2023

슬램덩크

글을 쓰는 중입니다

 세상 사는 재미는 불확실성에서 온다. 1월 영화관 승자로 점쳐졌던 건 누가 뭐래도 아바타 물의 길이였고 실제로도 천만 관객을 돌파했다. 의외는 이런 아바타를 2순위로 내려보낸 복병이 나타났으니 바로 슬램덩크 더 퍼스트이다. 가상 현실과 움직이는 그림 간 대결이라니 흥미진진하다. 하지만 어느 것 하나 내 발길을 영화관으로 향하게 하지는 못했다. 나비족 이야기는 14년 전에도 나에게 자연 다큐 그 이상의 설렘은 주지 못했으니 당연하다 할 수 있지만, 슬램덩크를 보러 가지 않은 건 스스로 생각해도 의외였다.

 바로 내가 슬램덩크 세대이기 때문이다. 체육이라고 하면 치를 떠는 몸치인 내가 농구 규칙을 달달 외울 정도였으니. 그 시절은 스포츠를 만화영화로 배웠던 세대이다. 초등학교 때는 통키로 피구를 배우고, 중고등학교 때는 슬램덩크로 농구를 배운 세대가 바로 나였다. 아, 중간에 슛돌이로 축구도 잠깐 배웠던 것 같다. 여중, 여고 루트인데도 이랬으니 남중, 남고는 아비규환이지 않았을까?


 그런데 보고 싶은 마음이 쉽게 들지 않다니 이 무슨 조화인지 이유를 알고 싶어서 슬램덩크를 보러 갔다. 다행히 집에서 10분 거리에 작은 영화관이 있었고, 통신사 할인 혜택으로 공짜 영화 예매가 가능했으며, 게다가 그 주는 팝콘도 천원에 먹을 수 있는 이벤트 중이었으니 내 작은 의지만 있으면 행복한 영화 관람이 될 터였다.

 평일 낮, 한가한 시간대 가장 큰 상영관 정중앙 좌석을 예매했다. 혼자 보는 행운을 기대했으나 그 시간대에도 열댓 명의 영화관 동지가 나와 함께 했다. 경기장의 함성과 열기가 화면 밖으로 뚫고 나올 것 같은 슬램덩크 분위기와 달리 영화관 안은 팝콘 씹는 소리만 간간이 들려왔다. 사람들은 한참 경기 장면이 나올 때는 농구공 튕기는 소리 뒤에 숨어 저마다 열심히 팝콘을 씹어댔고, 송태섭의 개인사가 나오는 잔잔한 바닷가 장면에서는 서로 합이라도 맞춘 듯 숨소리조차 조심하는 게 느껴졌다.

 그랬다 나는 영화에 몰입하지 못했다. 그렇다고 재미없게 본 것도 아니었다. 오히려 이 작품으로 내가 슬램덩크의 어떤 점을 좋아했는지 더 명확해졌달까.


 10대 때는 강백호의 똘끼와 잠재력이 좋았다. 고릴라 덩크 채치수, 포기를 모르는 삼점슈터  정대만, 현란한 드리블 송태섭, 농구 천재 서태웅의 화려한 개인플레이가 눈에 들어왔다. 나는 열정만 앞서는 강백호를 가장 좋아했는데 20년이 지나서야 내가 왜 강백호를 좋아했는지 알게 되었다. 강백호라는 캐릭터를 좋아했던 게 아니었다. 강백호라는 원석을 알아봐 주는 농구부 감독과 농구부원들이 있다는 사실이 부러웠던 것이었다. 스스로 원석이라 생각하며 나도 누군가 알아봐 주기를 기대하면서.

 20대 때는 정말 강백호처럼 살았다. 그리고 그게 통했다. 열정 넘치는 신입은 열에 아홉 번은 사고뭉치 짓을 하다가 한 번 정도는 팀에 도움이 되는 법이었다. 그래도 신입은 귀염을 받는다. 그게 신입의 특권이라면 특권이니까. 하지만 30대가 되고 40대에 진입하면서 강백호처럼 사는 삶은 지나가고 어느새 채치수, 정대만, 송태섭, 서태웅처럼 프로로서 생각하고 일해야 할 나이를 지나왔고, 지나는 중이다.

 아 이것 역시 진실과는 거리가 멀다. 나는 안경 선배나 벤치에 이름 모를 후보 선수들처럼 있었던 적이 더 많았다. 하지만 여전히 마음은 서태웅 같은 천재이기를 꿈꾸며 송태섭처럼 작은 키와 왜소한 체격을 스피드라는 장점으로 승화시켜 개성으로 만들기 위해, 정대만처럼 다친 무릎을 대신할 삼점슛 스킬을 연마하기 위해 달리고 있다. 가장 프로다워야 할 나이니까. 그리고 이 시기마저 지나면 안한수 감독처럼 일을 하는 자가 아닌, 일을 전수하는 자로 누군가의 성장을 지켜보는 사람으로 또 한 번 포지션이 바뀌길 꿈꿔본다.

 그래서 10대 때와 같은 감정은 아니지만 슬램덩크는 여전히 볼만한 작품이었고, 농구 코트를 땀으로 적시는 선수들에게 여전히 가슴이 뛴다.


 이제 내가 왜 영화관에 가기 싫었는지 이유를 깨달았다. 10대 때 열정이라는 감정 하나면 다 된다고 생각했던 철딱서니는 40대에 이르러서 열정은 감정이 아닌 시간과 투자이며 그 결과는 노련함이라는 걸 아니까. 그 노련함을 얻기 위해 얼마나 많은 시간을 나 자신과 싸워야할지 아니까. 그리고 그 결과가 항상 해피엔딩이 아니라는 것도 아니까. 열정의 무게가 부담스러워 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나는 노련함을 얻기 위해 오늘도 열정을 불태운다.


 나는 글을 쓰는 중이다.

이전 03화 1, 2, 3...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