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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Feb 03. 2023

1, 2, 3...

 세상은 1, 2, 3…의 법칙이 존재한다. 무엇이든 1이 되면 다음에 2로, 그다음 3으로 순차적으로 나아간다. 학년도 1학년, 2학년, 3학년…. 회사도 경력 1년 차, 2년 차, 3년 차…. 사업도 창업 1년 차, 2년 차, 3년 차…. 나도 이 1, 2, 3…시스템이 통용되는 세상에서 살았고, 당연히 글을 쓰는 일도 같은 법칙이 적용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세상에는 예외가 있는 법이다. 나는 세상을 몰랐다.


 19년부터 웹소설 쪽으로 준비했다. 게임 콘텐츠 기획자로 10년 넘게 쌓은 경력이 있으니 정통 문학은 몰라도 웹소설 쪽은 요리 방법은 달라도 재료는 같다고 생각했다. 달걀부침이든 달걀찜이든 다 같은 달걀 요리이니까. 달걀부침에서 달걀찜으로 메뉴를 변경하겠다는 말에 주변 사람들은 내가 콜럼버스의 달걀을 발견하러 신대륙으로 떠나는 사람처럼 소란을 떨었고, 나는 그놈의 달걀이 뭐길래 이 난리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들은 예술 범주에 들어가는 문학을 천재 수학자나 풀 수 있는 어려운 수학 문제로 보았고, 나는 숫자와 기본 사칙연산만 알면 풀 수 있는 쉬운 산수 문제로 보았다.


 20, 21년 동안 유명한 작법서들을 교과서 삼아 ‘이야기=(캐릭터+목표)/장애물‘이라는 공식을 열심히 풀어보려 애썼지만, 결과는 번번이 실패였다. 내가 만든 이야기는 매력이 없었다. 완벽한 주인공들이 끊임없이 사건을 일으키고, 온갖 장애물을 만나는데 따분해서 연신 하품만 나왔다. 차라리 오늘 아침 빙판길에 발을 헛디뎌 넘어질 뻔했을 때가 등줄기에 땀이 흐르는 게 더 긴장감 넘쳤달까. 그래도 포기하려면 세상에 두들겨 맞아보기라도 하자는 심정으로 한 메이저 플랫폼 웹소설 공모전에 눈 딱 감고 응모했다.


 당연히 결과는…

 응?! 이게 왜 돼? 어떡하지…?


 비겁하게 도망치기로 했다. 때마침(?) 어머니 건강이 나빠져서 구급차로 응급실로 실려 가고 입원까지 정신없을 때였다. 회사에 사표를 제출하고, 출판사와 생애 첫 계약은 포기했다. 세상은 1, 2, 3…법칙으로 돌아가니까, 어쨌든 나는 1을 만들어냈으니 시간과 무거운 엉덩이의 조합으로 2, 3으로 갈 일만 있다고 생각했다. 이번 계약은 포기하지만, 더 완성도 있는 글로 2, 3으로 나아가면 되지 않겠는가!


 22년 한 해 동안 20편 남짓한 단편을 쓰고 그중 나름 쓸만하다고 생각하는 10편 정도를 규모 가리지 않고 공모전에 냈다. 그리고 드디어 예외에 대해 깨달았다. 1, 2, 3…이 아닌 1, 0, -1…로 돌아가는 세상도 있다. 그나마 수확이 있다면 드디어 내 글의 문제점이 뭔지 논문을 쓸 정도로 빼곡하게 구체화했다는 정도이다.

 그중 가장 심각한 문제는 내가 만든 캐릭터들이 세상에서 제일가는 모범생들이라는 것이다. 대전제부터 잘못되었으니 지구를 멸망시켜도 따분할 수밖에. 나에게 글쓰기 재능은 없었다. 이제 돌아갈 시간이 된 것이다. 오즈의 마법사 도로시처럼 은 구두 뒤축을 맞부딪쳤다. 1, 2, 3…세계로 데려가 줘! 착한 마녀는 내 소원을 들어주지 않았다.


 년 초에 아는 작가님과 영종도에 있는 선녀 바위에 다녀왔다. 올해 출간 계획이 있는 작가님은 선녀 바위에 소원을 빌고 오고 싶다고 했다. 먼지를 뒤집어쓴 채 어두운 주차장에서 잠들어 있던 꼬질꼬질한 내 경차가 간만에 세상 구경에 나섰다. 작가님이 차 뒤에 붙어 있는 초보운전 스티커를 보더니 물었다. 도대체 운전한 지 십 년이 넘었으면서 왜 스티커를 떼지 않냐고. 사실 작가님뿐만 아니라 지인들도 볼 때마다 하는 소리였다. 그리고 내 대답은 매번 같았다. 도대체 운전 초보가 아니라는 건 어떤 기준인지 모르겠다고.

 그 작가님은 나를 ’작가‘라고 부른다. 나는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물었다. 제가 작가가 맞나요? 어느 시점부터 작가라 불릴 수 있는 건지 기준을 모르겠어요. 고등학교를 문과에서 대학교를 이과에서 보낸 변종인 나는 가끔 이렇게 이과적 질문으로 상대를 당황 시킬 때가 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아직도 모르겠지만, 한 가지는 분명히 안다.


 나는 글을 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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