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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Dec 19. 2023

붕어빵과 분초 사회

서하의 On-Air

 저희 집은 붕세권입니다. 

 아파트 복도에서 붕어빵 가게가 문을 열었는지 한눈에 내려다 보일 정도로 가깝습니다. 

 그래서 겨울에는 참새가 방앗간 들리듯이 붕어빵 가게를 드나듭니다.


 며칠 전도 그런 날 중 하루였습니다. 

 늦은 오후 산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붕어빵 가게에 들렀습니다. 

 붕어빵이 나오기를 기다리며 그새를 못 참고 같이 파는 어묵 꼬치를 한 입 베어 물고 있던 참이었죠.
 초등학교 2~3학년 정도로 보이는 남학생 하나가 허겁지겁 달려오더니 발을 동동 굴렀습니다. 

 "붕어빵 한 개 사려면 몇 분 걸려요? 저 5분 내로 가야 하는데."

 아이가 소리쳤습니다. 

 사장님은 익숙한 듯 앞 손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붕어빵 하나를 종이컵에 담아 학생에게 내줬습니다.  

 학생은 붕어빵이 식을 새라 소중히 껴안고 골목길로 쏜살같이 사라졌습니다. 

 마음 한 구석이 불편했습니다. 

 언제부터 아이들이 밥도 간식도 제대로 먹을 시간이 없는 게 당연하게 되었나 싶어서요.


 연말이 되니 2024 트렌드 코리아신년 달력처럼 출간했습니다. 

 트렌드 책은 목차만 대충 훑어봅니다. 

 왠지 목차에 적힌 용어를 알고 있으면 그 해 유행을 아는 사람으로 살  수 있을 거 같은 착각이 들거든요. 

 올해는 붕어빵 학생이 인상 깊어서인지 '분초사회'라는 용어가 눈에 들어왔습니다.

 바쁜 사회가 새삼스러운 건 아닙니다. 

 '빨리빨리'라는 부사는 어느새 우리 민족성을 대표하는 말이 되어 버렸으니까요. 

 심지어 요즘은 '빨리빨리' 문화가 자랑스러운 K-Culture가 된 거 같습니다. 

 어디서든 30분 내 배달, 당일 택배 배송,  기가 단위의 빠른 인터넷 속도 등등. 

 하루 일과를 계획할 때 구분하는 단위가 일에서 시간으로, 분으로 변하더니 조만간 초 단위로 바뀌지 싶습니다. 

 "엄마, 나 5초만 통화할 수 있어.",

 "사장님 여기 국밥 하나 10초 안에 주세요."


  IT 업계에 있을 때 크런치 모드로 계속 야근을 하다가 속옷과 양말 빨 시간도 없어서 울상이 된 적이 있습니다. 

 한 선배가 혀를 차며 이렇게 말하더군요.

 "그걸 어느 세월에 빨고 있니. 

 그냥 매일 버리고, 매일 새 걸로 사. 월급은 그런데 쓰는 거야."

 그때는 정말 신의 아이디어라고 생각했습니다. 

 선배가 존경스럽더라고요. 

 왜 그런 생각을 못했는지 스스로 프로의식이 떨어진다고 느끼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무얼 위해 시간 경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바쁘게 지내면서 얻은 건 통장을 스치는 월급, 허리 디스크, 공황 장애 같은 것들이거든요. 

 회사를 위해 일하고 받은 월급은 다시 회사를 위해 소비하는 비용으로 신기루처럼 사라졌습니다. 

 무엇보다 바쁘게 지내면서 '나'라는 존재를 잃어버렸습니다. 

 오히려 내 노동가치는 하락하고 말이죠.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중에 '슈퍼맨 각성제'라는 작품이 있습니다. 

 무한 경쟁 사회에서 바쁘게 살아가며 더 효율적으로 살고, 더 높은 성과를 올리기 위해 각성제에 중독된 미국 사회를 다루고 있으니 관심 있는 분들에게 추천합니다. 

 다큐를 보면서 '약에 의존하면서까지 사회라는 게 바쁠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스펙도 성과도 소비도 모든 게 흘러넘쳐서 문제가 되는 세상입니다. 

 홍수가 난 세상에서 정작 개인은 어디로 휩쓸려 가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지금 시대에 필요한 건 프로메테우스의 불이 아닌  노아의 방주가 아닐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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