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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Feb 27. 2024

무엇이든 있는 서점

서하의 On-Air

 남학생 둘이 서로 어깨를 치며 웃으며 들어옵니다.

 "내기하자, 내기."

 "그래 내기하자. 이 서점에는 무엇이든 있다니까."

 "그래도 성경책은 없을걸?"

 내기의 정답을 알고 있는 저는 웃음을 참으며 학생들이 카운터에 오기를 기다립니다.

 없다 쪽을 선택한 학생이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묻습니다.

 "성경책 있나요?"

 "네, 성경책 카테고리가 따로 있어요."

 순간 학생의 표정이 일그러지며 힘이 빠진 듯 비틀거립니다.

 반면 내기 결과를 숨죽이며 기다리던 있다 쪽을 선택한 학생이 환호성을 지르며 친구의 목에 팔을 걸고 조르는 시늉을 합니다.

 "거봐라, 자식아. 여긴 다 있다고 했지?"


 저희 서점의 물건 배치는 신참 알바에게는 참으로 오묘합니다.

 다이소의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은 문구 및 잡화 코너인데 손님들이 찾는 것은 대부분 있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생긴 반려동물 용품 코너마저도 사료 가짓수는 몇 개 되지 않고, 잘 찾지 않는 브랜드인데 사가는 손님들이 꼭 있습니다.

 이쯤 되면 눈치채셨죠?

 단골 장사를 하는 곳이다 보니 손님들이 찾는 물건은 가급적 소량으로라도 주문해서 가져다 놓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가끔 이런 일도 생깁니다.

 "한지 있어요? 왜 전 부칠 때 밑에 까는 기름 먹는 종이로 쓸 한지 말이에요."

 "한지는 없는데요."

 "그럴 리가. 아니야, 어디 분명히 있을 거야.

 있어 봐요, 내가 찾아볼게."

 없다 해도 손님들이 믿지를 않습니다.

 이곳에는 자기가 찾는 물건이 있을 거라는 믿음으로 열정적으로 물건 찾기에 나섭니다.

 학생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때로는 학생들이 없는 물건인 줄 알았던 것을 찾아서 의기양양하게 카운터로 오기도 합니다.

 '거 봐요, 여기는 다 있다니까요.'라는 표정으로 말이죠.


 저에게도 이곳은 글로 쓸 소재를 무궁무진하게 제공해 주는 무엇이든 있는 서점입니다.

 엄마에게 줄 생일 선물이라며 삼천 원짜리 종이비누 장미를 한 송이 골라 들고 어떻게 선물하면 좋을지 물어보는 꼬마 친구,

 설 명절 가족들과의 시간에 얼큰하게 취해 홍조 띤 얼굴로 손주들의 장난감을 사주던 할아버지, 할머니와 그에 보답하기 위한 감사 편지를 쓸 편지지를 사 가던 손주들,

 친구들과 여러 한국 소설들을 들쳐보며 작가와 작품에 대해 유명 평론가들 못지 않게 열띤 토론을 벌이던 문학소녀들,

 히가시노 게이고의 추리 소설을 집어드는 딸의 손을 찰싹 때리며 공부해야지 소설 볼 시간이 어딨 냐고 타박하던 어머니까지.

 생동감 넘치는 살아있는 감정들이 그곳에 있습니다.

 어제는 팔순은 되어 보이는 할머니가 조정래 작가님의 황금종이 시리즈를 구입했습니다.

 귀도 어둡고 말도 어눌한 할머니는 아직도 잠 자기 전 두 시간씩 독서를 한다며 검버섯과 주름으로 뒤덮인 얼굴로 해사하게 미소지었습니다.

 독서광 할머니께서 저에게 책도 추천해 주셨는데 조만간 읽어볼 생각에 벌써부터 즐겁습니다.

 

 작년에는 사람들과 만남 횟수도 줄인 채 집에서 글만 쓰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저는 허구의 소설이라도 현실 사회의 모습이 있어야 하고, 그 안에 사람들에게 힘이 되어 줄 긍정의 메시지를 담는 게 작가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집에서 책과 매체로만 접하는 사회의 모습이 너무 어두워서 빛 하나 들어오지 않은 사면이 막힌 공간에 갇힌 기분이 들더라고요.

 도무지 어떤 메시지를 담아야 할지, 그런 것들이 다 무용한 건 아닌 지 방황하는 시간이었습니다.

 그런데 서점 알바를 통해 그 답을 찾았습니다.

 사회에 답이 없을 때는 개인에게 답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요.

 사회를 개인보다 어른이라 생각해서 따라야 존재라고 생각했습니다.

 사회는 집단 지성으로 생각하고 행동하니까요.

 하지만 사회는 개인처럼 경험을 통해 감각하고 느끼지는 못한다는 걸 간과했습니다.

 경험이 따르지 않은 생각과 행동은 나침반 없이 산에 오르는 것과 같습니다.

 이제야 사회에 대해 개인 책임이 있다는 말의 의미가 조금씩 이해가 갑니다.

 사회라는 방에 불을 있는 건 개인 뿐이라는 것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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