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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하 Mar 12. 2024

행복 쫓기

서하의 On-Air

 지난주는 신학기로 서점이 눈코 뜰 새 없이 바빠서 글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사실 마음속으로 갈등이 있었어요.

 글 퀄리티가 좀 떨어지더라도 연재일을 맞추는 게 중요할까, 연재일을 못 맞추더라도 글 퀄리티를 좀 더 고려하는 게 맞을까.

 후자를 선택하기로 하면서 생각을 숙성하는 시간을 조금 더 가졌습니다.

 오늘 글은 언젠가는 꺼내야지 하면서도 쉽게 마음속 서랍에서 꺼내지 못했던 이야기입니다.


 며칠 전 오랜만에 전 동료에게서 카톡을 받았습니다.

 "잘 지내시죠?"라는 짧은 안부 인사였습니다.

 "행복하게 지내고 있습니다."라고 답장했더니 이런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행복이라는 말 진짜 오랜만에 들어본 거 같아요. 그 말을 들으니 저도 힘이 납니다."


 또 다른 날 만난 친구와는 이런 대화를 했습니다.

 "서점 아르바이트하면서 고작 달에 130만 원 버는데 행복해.

 달에 500만 원을 벌어도 행복하지 않았었는데."

 "너 그거 알아?

 우리 첫 회사 월급이 달에 130이었다."

 "그러네. 까맣게 잊고 있었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네."

 다시 처음으로 돌아왔다는 말을 하면서 행복의 이유를 깨달았습니다.

 끝인 줄 알았던 인생에서 다시 시작선에 서게 되니 첫 직장을 잡았던 그때처럼 불안과 설렘이 뒤섞여 심장을 두근거리게 했던 겁니다.


  20대 때는 꿈을 이루면 행복할 거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꿈을 이루는데 열정을 불태웠고, 꿈을 이루었습니다.

 행복했습니다.

 그때는 몰랐습니다.

 꿈은 이루는 순간부터 진짜 어려움이 닥쳐온다는 것을요.

 왜냐하면 꿈은 이루는 것보다 그 꿈을 유지하는 게 더 어렵거든요.


 30대 때는 이룬 행복을 유지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고 일했습니다.

 나를 지우고 조직에 맞는 사람, 성과를 내는 사람이 되기 위한 시간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성과를 내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지만 어느새 제 꿈은 눈 녹듯이 사라져 버린 후였습니다.

 꿈이 사라지며 행복도 같이 사라졌습니다.

 주변에서는 꿈이나 행복은 어린 아이나 말하는 거라면서 현실을 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주는 콘텐츠가 아니라 사람들을 더 오래 붙잡아 두는 콘텐츠, 그래서 수익을 창출할 수 있는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 조직을 위하는 것이라고요.

 그렇게 살 수 있을 거라 착각했습니다.

 주 100시간 근무는 IT 업계에서는 흔합니다.

 오죽하면 개발팀은 개 발에 땀나게 일하는 팀이라서 개발팀이야라는 농담까지 있을 정도니까요.

 하지만 제가 간과한 한 가지는 원해서 하는 100시간 근무와 선택권 없이 기계의 부품처럼 100시간 근무를 하는 건 전혀 다른 이야기라는 겁니다.

 그것도 위계질서 속에서 상사의 가스라이팅과 함께 말이죠.

 저에게는 목숨 빚이 있습니다.

 퇴근할 자유도 없고, 휴가를 쓰겠다는 건 곧 퇴사하겠다는 말과 같은 팀 분위기 속에서 우울증이 심해져서 조증 발현까지 되면서 감정 통제가 안 되는 상태였습니다.

 울고 싶지 않아도 눈물이 나고, 웃고 싶지 않아도 계속 웃음이 나더라고요.

 의사 표현이 제대로 안 돼서 그때 제 상태를 이렇게 표현했습니다.

 "나는 컴퓨터입니다. 그런데 고장 났어요. 수리하게 해 주세요."

 돌아오는 답은 한결같았습니다.

 "너만 우울증이냐, 나도 우울증이고, 누구도, 누구도, 우리 다 우울증이다.

 휴가 쓰려면 나가야 돼. 참고 견뎌."

 그때 유일한 휴식처가 화장실이었습니다. 화장실에서만 숨을 쉴 수 있어서 한참을 그곳에 머무르니 화장실 가는 시간도 체크되기 시작했습니다.

 그런 제 상태를 딱 한 명, 팀에 새로 온 분이 진심으로 걱정해 주었습니다.

 그분이 우는 저를 부둥켜안고 같이 울며 했던 말이 잊히지 않습니다.

 또다시 동료를 잃는 경험을 하게 하지 말아 달라던 절실한 말이요.

 제가 병이 나기 전 년에 회사에 자살자가 한 명 있었습니다.

 익명으로 운영하는 회사 커뮤니티에 자살 방법을 질문했는데 절반의 사람이 그분의 상태를 걱정하며 만류했고, 절반의 사람이 비아냥 거리며 자살할 용기가 있으면 해 보라고 자살 방법을 댓글에 달았었습니다.

 그분은 그 댓글대로 자살을 시도했고, 안타깝게도 성공했습니다.

 절 걱정해 준 분은 그 동료의 옆자리 동료였습니다.

 그 일에 큰 충격을 받아서 본인도 한 동안 심리 치료를 받았고, 심리 상담사 공부도 따로 하고 있다고 했습니다.

 덕분에 더 늦기 전에 병원에 갈 수 있었고, 살 수 있었습니다.

 물론 회사는 나와야 했지만, 회사를 나온 순간 안도감과 해방감으로 떨리던 몸의 감각이 선명합니다.

 살았다, 살았구나!라는 원초적 감각이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회사를 관둔 그다음 해 다른 동료가 회사 옥상에서 뛰어내려 생을 마감했습니다.

 항상 그런 생각을 합니다. 중간에 빠져 있는 한 자리는 제 자리였을지도 모른다고요.

 

 40대가 되며 글을 쓰다 보니 비로소 조금씩 알아갑니다.

 행복은 는다고 쫓아지는 것도 아니고, 가지고 싶다고 해서 가질 수 있는 것도 아니라는 것을요.

 제가 요즘 행복한 이유는 나와 대화하는 방법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사회의 기준이 아닌, 내 기준, 타인의 감정이 아닌, 내 감정을 먼저 살펴보고 인정해 주기.

 애덤스미스의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습니다.

 가장 이기적인 것이 가장 창의적이고, 가장 창의적인 것이 가장 이타적이다.

 내 감정을 먼저 보살피면 그다음에 타인의 감정을 곡해 없이 받아들이고 공감할 수 있는 마음의 상태가 됩니다.

 저는 이것이 창의성을 시작할 수 있는 기본 상태값이라고 봅니다.

 내가 가진 생각 중 타인, 나아가 사회에서 참신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창의성이라 생각하기에 창의성이야말로 가장 이타적이고, 그 창의의 시작은 나 자신을 본질 그대로 똑바로 바라보고 인정해 주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고요.

 

 우리나라는 사람 값을 안 쳐주는 나라가 되어버린 것 같습니다.

 사람보다는 시스템이나 숫자 같은 실제하지 않는 것들이 더 중요해진 것 같습니다.

 제가 겪은 이런 일련의 일들이 너무나도 평범한 이야기가 되어버린 것에 마음이 아프곤 합니다.

 그리고 이런 마음 아픔을 나약한 것으로 치부하는 말들에도 마음이 아프곤 합니다.

 그 사람의 삶 역시 녹록지 않았기에 나온 말임을 알기 때문에.

 다른 어느 때보다 우리는 우리 자신과 대화가 필요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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